2007. 8. 2. 18:31ㆍ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일본 제1의 고봉 후지산은 일생에 한번 쯤은 올라 볼 만한 산이라고 생각했기에 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공부하러 온 조카가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미국가기 전에 기념으로 같이 오르자고 연락이 왔기에 후지산 등정을 결행하기로 약속을 했다.
7월 25일, 서로간에 시간이 안 맞으니 산행의 시작점인 후지산 5고메까지는 각자가 와서 만나기로 했다. 서두르다가 기차를 잘 못 타는 바람에 조카보다 한 시간 늦은 2시 10분에 5고메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우선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가게에서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등 시간을 보내고 오후 3시가 조금 안 되어 산행을 시작했다. 날이 흐려있어 좋은 경치를 보기는 어려우나 날이 개일 조짐도 있어 기대가 되기도 한다. 등산의 관문이 되는 이곳 가와구치코구치(河口湖口) 고고메(5合目)는 버스가 올라오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정식 등산이 시작되는 곳인데, 해발 2,300m 의 높이이다. 후지산의 높이가 3,776m 이어서 5할이 라는 명칭인 고고메(五合目)의 높이가 사실은 5할이 좀 넘고 있다. 계속해서 6합목, 7합목, 8합목, 9합목의 명칭을 부여하여 정상까지 가는 사람들이 위치를 파악하도록 해 놓은 점이 특이했다.
후지산을 오르는데에는 6-7시간이 걸리고 내려오는데에는 3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안내서에 나와 있어 오후 3시에 출발했으니 빠르면 밤 9시에는 정상에 도착할 수가 있어 내일아침 해뜨는 시각인 4시 반 정도까지 산위에서 기다리기엔 너무나 이른 시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보낼 다른 방법도 없기에 천천히 올라가기로 하고 두사람은 발길을 계속했다.
5합목 근처까지는 식물이 자랄 수 있어 교목과 꽃을 볼 수 있었으니 올라가는 길에는 땅에 깔린 작은 관목 밖에 볼 수가 없고 길도 화산재 특유의 검으틱틱한 흙으로 되어 있다. 한마디로 황량한 길이다. 오후 3시 36분 6합목에 도착했다. 지도원이 한 사람 길에 서서 산행에 주의하라고 하며 안내도 한 장을 주는데 주의사항과 개념도가 그려져 있다.
한 시간을 더간 오후 4시 36분 7합목에 도착하였다. 높이는 2,700m 이다. 여기서부터는 花小屋이라는 산장을 시작으로 약 20개의 산장들이 정상까지 늘어서 있어 등산객들이 묵어가도록 하고 있었다. 산장이라거 하지만 규모가 커서 수십명이 묵을 수 있는 일종의 여관과 같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가격인데 하룻밤 묵으며 2끼 식사에 6,000-7,000엔을 받는 점이었다. 우리돈으로 보면 8배를 곱하여 5만원 정도나 되어 잠깐 쉬는 숙소로는 너무 비쌌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산장을 예약한 사람이 아니면 내부에서 쉴 수도 없는 점이었다. 고도가 3,000m를 넘으니 차차 추워지는데(8합목에서의 온도는 영상 5도 정도였다.) 산장에서 묵는 사람이 아니면 산장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우리는 밖에서 한참을 떨어야 했다.
7합목부터는 고도 때문인지 발걸음이 느려진다. 주위에는 일본인과 서양인 등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꾸준히 오르고 있었는데 이들은 차츰 예약한 산장으로 도착하여 수가 줄고 있었다.
7합목에서 1시간 50분이 걸려서 오후 6시 12분 8합목에 도착하였다. 그 동안 하늘을 가리던 짙은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걸려 있다. 어제인가 장마가 끝났다더니 다행히 비도 없고 좋은 날씨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6시 반이 지나자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조각달이 하늘에 나타나 있다.
고도 3,020m인 8합목은 5합목에서 720m 올라오게 된다. 따라서 8합목은 고도로 보면 등산의 중간지점으로 볼 수가 있다. 750여m만 더 가면 정상이 되기 때문이다. 추워지기 시작한다. 정상으로 계속 간다면 4-5시간 후인 10시-11시엔 도착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내일 아침 일출을 보기로 작정했기에 일찍 정상에 도착해 보았자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봉래관인가 하는 산장에 하룻밤 묵는 값을 물어 보니 1인당 6,300엔(약 5만원)이라고 한다. 다다미 위에서 담요 한 장을 덮고 자다가 새벽 1시쯤 일어나 정상으로 가서 해맞이를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갈길은 멀고 벌써 여기서 자면 내일 아침 고생이 될 것이며 요금 또한 만만치 않으니 계속 올라가 보기로 한다. 바람막이용 고어텍스 밖에 여벌 옷을 준비 안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조금 춥다. 계속 걸으면 문제가 없으나 휴식하느라 가만히 있으면 제법 춥다. 바람이 불고 있어 바람맞이에 서면 더욱 춥다.
이제 정상을 향한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다. 다들 예약된 산장에 들어가 따끈한 국물을 마시며 내일 아침 새벽같이 등산할 준비를 하고 있다. 희안하게도 산에는 꼭대기까지 불이 여기저기 켜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계속해서 갈 수가 있다. 우선 산장들이 있기에 그곳에 불이 켜 있고 후지산 정상에도 전등이 켜져 있었다.
9합목(여기서는 本 8합목이라 부름)쯤 까지 갔으나 날이 춥고 운행속도가 너무 빠르기에 일단 100여m 를 다시 하강했다. 그리고 어느 산장에 들어가 700엔짜리 라면을 두개 시켜서 30분 동안 시간을 끌며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치를 보며 무작정 있을 수는 없는 일, 우리는 정상까지 아예 다 올라가기로 했다. 가 보아서 아주 못 견딜 정도면 하산하기로 하고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달빛이 있다면 분화구도 보고 내려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랜턴을 준비 못한 조카는 내가 비추는 헤드랜턴 불빛을 보면서 와야 했기에 조금은 불편한 듯 했다. 또한 길은 돌길이기에 발밑을 조심해야 했다. 정상에 켜있는 희황한 불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올라간 결과 새벽 1시가 조금 지나 정상에 도착했다. 이제 7월 26일이다. 정상 직전에는 책에 쓰여 있는대로 신사의 정문인 도리이가 있기도 했다.
정상에는 산장같은 집이 서너채 있었는데 불은 꺼져 있었고 불빛은 음료수를 파는 두 군데의 자판기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안개가 끼어 주변을 살필 수가 없고 더욱이나 분화구가 어디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유령마을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산정에 오면 그래도 사람의 그림자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도 없으니 약간은 황당하다. 불이 꺼진 가게의 문을 열어 보았다. 문 안쪽으로 마루를 지나 방안에 불이 희미하게 켜있어 사람이 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문을 두드렸더니 답이 있다. 2시간만 안에서 쉬고 싶다고 하니 1인당 6,000엔을 내고 쉬라고 한다. 지독한 장사속이다. 이곳 후지산의 산장들이 모두 담합을 하고 있음을 알겠다. 한국의 대피소가 그리워진다.
4시반까지는 이제 3시간만 견디면 된다. 떠오르는 해를 꼭 보고야 말겟다고 각오를 다진다. 조카는 너무 지치고 졸려서 자판기 앞 벤치에 몸을 눕힌다. 좀 자겠다고 한다. 추위에 자다가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흔한 이야기인지라 잠시만 자라고 했다. 나는 머리만 아프고 졸리지는 않다. 고산병 증세가 약간 온 것 같다. 못 참을 정도는 아니나 신경이 쓰인다.
어둠 속을 헤치고 다니며 주변에 익숙해 지려는데 화장실 건물이 하나 나온다. 이용료가 200엔이고 바이오화장실 어쩌고 써 있는데 우선 바람은 막아줄 것 같다. 황급히 조카를 깨워 그리로 데리고 들어간다. 마침 입구에 약간의 공간이 있어 거기서 바람을 피하기로 하는데 조카는 이제 냄새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소연이다. 공기 소통을 위해 문을 조금 열어 놓았다.
시간은 꽤나 더디 흐른다. 머리는 계속 아프다. 그러나 이 어둠도 언젠가는 끝나려니 하며 기다리고 기다린다. 2시반이 지나고 3시가 된다. 드디어 등산객 한사람이 화장실로 온다. 일출을 보기 위해 온 첫사람이다. 물론 첫사람은 우리였지만.
오늘 일출은 4시 40분이라고 어제 들른 산장에서 이야기 해주어 기억하고 있었다. 3시반이 지나고 4시가 까까워 오니 산정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올라와 떠들고 있어 제법 잔치 분위기이다. 우리도 화장실을 나와 그들 속에서 일출을 기다린다.
4시가 되니 가겟집 하나의 문이 열리고 차와 우동 라멘의 판매가 시작된다. 추위에 떨던 사람들은 우르르 그 집안으로 들어가 마루에 걸터 앉는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녹차 두잔을 주문하였다. 가게안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긴밤의 고생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머리 아프던 것도 어느 새 괜찮아 졌다.
4시 45분 사람들을 따라 광장으로 나가 동쪽을 바라보며 해를 기다렸다. 처음엔 해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약간의 붉은 기가 보일 뿐이다. 그러다가 3, 4분 지나자 구름 속에서 해가 모습을 들어낸다. 사람들은 다들 기뻐서 무어라고 소리를 친다. 나도 가슴속에서 희열이 솟는 것을 느끼며 카메라의 셧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안개와 구름 때문에 완벽히 맑은 날씨는 아니었으나 후지산에서의 해맞이를 충분히 맛볼 수 있는 행운의 아침이었다. 해가 더 떠오르도록 하늘을 보고 있던 우리는 분화구를 천천히 살펴본 다음 하산길에 들어섰다.(아침 5시 10분경) 하산길은 따로 마련되어 있어 올라오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가 되어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화산재를 밟고 미끄러지며 먼지를 날리며 오는 길인데 발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지루하고 먼 길이었다. 결국 거의 다 내려와서 조카가 발을 곱질리고 말았다. 돌부리에 발이 걸린 것이었다. 다행히 절뚝거리지만 길을 갈 수는 있다고 한다.
오전 9시 20분, 드디어 어제 출발했던 고고메(5합목)에 도착하여 후지산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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