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 2. 07:26ㆍ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3월 29일 토요일. 송백산악회를 따라가는 토요대간날입니다. 비는 오후 늦게야 온다는 기상청 예보를 믿고 안심했는데 날씨가 심상치 않네요.. 어쨌든 백두대간 한 구간을 좁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요. 집을 나서려는데 비가 쏟아집니다. 갈까? 가지말까 하는 갈등의 순간이 잠시 있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잠실로 나가기로 합니다. 아침 6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었지만 우산을 받쳐들고 버스정류장으로 나갑니다.
여느 때처럼 몇몇의 낯익은 얼굴들께 인사하고 버스에 앉아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을 노려 봅니다. 충주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버스는 연풍을 지나 문경 나들목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빗줄기가 더 굵어지지 않고 이슬비 수준에 계속 머무르니 다행이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9시 59분 배낭커버만 씌우고 우의는 안 입은 채(우의를 입으면 더워서 혼나겠지요) 버리미기재에서 대간길로 들어섰습니다. 온 산에 안개가 끼어있고 가는 빗줄기가 천천히 뿌려주더니 어느새 진눈깨비가 되기도 합니다. 첫번째 목표인 장성봉을 향해서 열심히 나아갑니다. 특공대와 선두를 힘겹게 좇아갑니다.
비가 살살 내려주니 초소통과는 무난?
안개와 나무와 돌, 오늘의 주제입니다. 태양과 꽃과 봄은 어디에? 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산모퉁이엔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도 있어 봄에 보는 때아닌 눈경치가 볼 만 합니다.
눈위로 불어오는 바람도 서늘했습니다.
10시 50분 경 장성봉에 도착했습니다. 이 근처에 만리장성이라도 있다는 지명인데 그 이름의 연유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백두대간길을 가는 것이 만리장성을 쌓는 일이다'라고 해석해 봅니다. 아전인수로 장성봉이라는 봉우리 이름의 뜻을 새겨 봅니다. 여기서의 산길은 비에 젖어 약간은 질척거렸는데 다행히 비는 좀더 약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앞에 가는 산님을 따라 다음 목표지점인 악휘봉 삼거리를 향하여 다시 열심히 걸었습니다. 알몸의 나무들이 맞아주는데 이들도 곳 초록색 옷을 입을 것입니다. 그때엔 우리의 화려한 봄이 되겠지요.
표지기 하나가 액센트로 날리고...
악휘봉 삼거리 거의 다 가서 나타난 공터입니다. 나무들이 안개옷을 입고 반겨 줍니다.
짙은 안개속의 오리무중, 또 다른 경치입니다. 근처 묘등 옆에서 혼자서 김밥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군중속의 고독? 인가요. 대개 송백님들을 따라가지만 산행길은 멀찍이서 혼자 하는 습관이 제겐 있습니다. 혼자서 공상하며 또는 무한상상하며 가는 산행의 묘미를 제가 즐기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분들과의 의사소통의 부족은 제가 놓지는 기회비용이지요.
악휘봉 가는 삼거리입니다. 악휘봉은 여기서 북쪽으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만큼 대간길에서 비켜 있었지만 다들 들러 가는 곳입니다.
악휘봉 도착 직전의 촛대 모양의 바위입니다. 제 모습을 여기 배경으로 하나 남기고도 싶었으나 홀로 산행하고 있으므로 통과...입니다.
산행시작후 액 2시간 40분 만인 12시 40분경, 해발 845m 의 악휘봉 정상에 섰습니다. 돌로 이루어진 정상의 경치입니다. 마침 송백님들도 떠나고 쓸쓸한 이미지가, 묘지에 온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맑은 날씨라면 주변의 빼어난 경치를 볼 수 있었겠지만 안개속에서는 난망이었습니다. 거대한 돌덩어리로 이루어진 희양산의 멋진 모습도 보고프건만 다시 다음 기회를 기약합니다.
악휘봉이라는 이름에 '악'자가 붙어 있어 돌로 된 산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는데 그 돌길이 그렇게 험하지는 않았습니다. '휘'라는 말은 빛난다는 뜻 같은데 그렇다면 바위의 경치가 휘황찬란하게 빛날 정도로 멋지다는 뜻 같습니다. 오늘의 산행은 안개가 끼어 소위 'Foggy Bottom(안개의 심연)"이 되고 말았습니다. 포기 보텀이란 미국 국방성건물을 이야기한다고 하는데 그 근처에 안개기 잘 끼는가 봅니다. 천문학적인 국방비나 복잡한 무기산업의 로비를 생각해 보면 보통사람이 국방성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오리무중(포기 보텀)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멋진 경치가 이 악휘봉 산자락 속에 숨어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포기보텀처럼 안개에 싸여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확대 해석해 보면 현재 나의 생활이 그런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분명 열심히 어디론가 가고는 있는데 명확한 목표가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 말입니다. 확실한 것이라면 어딘가로 열심히 가고 있다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확실한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하겠다는 그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악휘봉에서 은치재 가는 길에 설치된 철계단입니다. 가파르지는 않고 위험도 없어 싱거운 하강이 됩니다. 조금 더 가니 밧줄이 매어 있으나 비교적 완만한 바위길이 두어번 나왔습니다.
은치재 도착하기 7분 전인데 악휘봉삼거리를 내려와서 앞쪽으로 보이는 은치재 너머 주치봉의 모습인데 제법 당당하게 솟아 있습니다.
은치재 도착 전에 보이는 곧은 나무들의 숲입니다. 꼿꼿하게 높이 솟은 나무들이 저의 휘어진 생활을 고치라고 하는 듯 합니다.
오봉정고개라고도 불리우는 은치재 풍경입니다. 여기서 대간길을 벗어나서 은티마을로 가면 오늘 몫이 끝나는데 지난 번 희양산구간 때 가지 못 했던 주치봉을 들러 가기로 했습니다. 20-30분만 더 투자하면 될 것입니다. 은치재의 해발고도가 520m이고 주치봉의 고도는 680m 정도이니 약 160m를 올라가야 했습니다. 올라가기전의 계산으론 10m당 1분씩 쳐서 16분이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실제 올라가는 시간도 정확히 16분이 소요되었습니다. 100m 상승에 10분 소요라는 공식을 앞으로도 애용해 볼 작정입니다.
주치봉의 정상인데 정상석은 없고 나무위에 표지반 붙어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가기 시작하여 10분도 안되어 안동권씨 묘가 있는 효리골재 삼거리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왼쪽으로 꺾어 대간길을 벗어나서 은티마을로 향했습니다. 효리골재라는 이름은 안내판 사진에 의한 것입니다. 안동권씨 묘소와 마을을 이어주는 골짜기가 효리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티마을에 서 있는 등산로 안내도인데 악휘봉은 표기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금줄이 쳐 있어 신성시하는 돌인데 남근석 같습니다. 은티마을은 산행입구로서 여러번 와 보았는데 빼어난 자연경치에 비해 인공물들이 난립하여 조금은 산만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역시 마을 입구에 서있는 마을유래비와 장승 한 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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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25분 주차장에 도착하였으니 전체 산행시간이 4시간 24분 걸린 셈입니다. 보통 6-7시간 걸리는 구간이 대부분인데 오늘은 매우 짧은 구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쉬운 코스입니다. 다행히도 12시 쯤부터 비가 그쳐 산행이 구질구질해지지 않아 좋았습니다. 백두대간의 한 구간을 줄였다는 산뜻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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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서 있는 등산안내도입니다. 지명중에 마분봉, UFO바위, 마법의 성 등은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어 가지 못한 곳이네요. 또한 오봉정재, 효리골재란 이름도 낯설게 들립니다. 어느 맑은 날 이 길을 다시 가며 경치를 반추해 보고 싶습니다. 그때 내려오는 길은 마분봉과 UFO바위, 마법의 성을 거치는 것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름들이 매우 매력적입니다.
-후기-
악휘봉 정상에서 그분께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답답하게 사방에 안개만 짙은지요? 바위에서 바라보는 멋진 경치가 정말 있기는 한 겁니까?'
그분의 답, '너는 꼭 보아야만 믿느냐? 상상으로 보는 법을 배워라'
그래서, '안개 낀 제 인생도 '안개속이지만 밝게 빛나고 있구나!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구나.' 라고 제가 상상했다면 엄청난 아전인수이겠지요?
대답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분이 뒤에서 물을 끼얹으신다.
'그렇다. 네 인생은 네 생각처럼 그렇게 찬란한 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인간, 백두대간을 걸어 갑니다. 그래도 상상은 계속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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