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926-27 덕유산

2017. 7. 13. 10:36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옛날에 써 놓은 덕유산 산행기가 있어 올립니다.


2003. 9. 26. 금

 

1.

육십령(02:00)-할미봉(02:53)-서봉(장수덕유산,04:56)-남덕유봉갈림길(05:35)-남덕유산(05:45)-월성재(6:20)-삿갓골재대피소(07:25-07:55)-무룡산(08:45)-동엽령(09:55)-백암봉(10:42)-향적봉(11:35-11:45)-백련사(12:50)-삼공리매표소(13:57)-주차장(14:10)/ 총소요시간 12시간 10분 / 총산행거리 약 33km

 

2.

지리, 설악 다음은 덕유라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덕유산 종주를 꿈꾸어 오다가 몇일 전 산악회에 전화하고 입금하였기에 금요일 밤이 기다려진다. 밤 10시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9번출구로 나가니 대우빌딩앞에 안내산악회 버스가 서 있다. 신고를 하고 자리에 앉으니 아직 시간은 20분이나 남아있다.

 

10시 10분쯤 서울역을 떠난 버스는 양재동에 10시 반쯤 도착, 사람들을 더 싣고 밤의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죽전정거장과 망향휴계소에서 한 사람씩 더 실으니 기사를 제외한 총원은 34인이라고 한다. 45인승이기에 내 옆자리도 비어 가게되어 다행히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때 여자 산행대장이 오늘의 산행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원래는 영각사에서 산행을 시작하려고 계획하였는데, 육십령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고 하며 사람들의 의향을 묻는다. 원래대로 영각사에서 시작하자는 데에 찬성하는 사람은 7명 뿐이다. 나도 육십령에 찬성하였다. 조금 더 걷는다는 것도 좋았지만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좀더 걷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였다.

 

결국 육십령팀과 영각사팀으로 나누어 산행을 하기로 하고 육십령팀을 먼저 내려준다고 한다. 그 대신 산행시간은 12시간으로 하고 탈출코스로 동엽령에서 칠연폭포와, 향적봉에서 곤돌라탑승의 두 방안을 제시하였다. 결국 12시간의 산행예정시간은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다는 것이 산행 후 결론이다.

 

2003. 9. 27. 토

새벽 1시 52분. 잠들어 있던 육십령의 고요는 관광버스의 굉음에 깨지고 20여명의 검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무언의 결의를 다지며 배낭을 메고 내린다. 신발끈을 매는 사람, 화장실에 가는 사람들로 산행은 곧 시작되지 못한다. 이미 버스에서 모든 준비를 끝낸 나는 묵묵히 서서 떠나길 기다릴 뿐이다. 오늘 산행을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을 떨쳐내며 맞는 육십령의 밤바람은 시원함을 넘어 으스스하기까지 하다.

 

3.

새벽 2시 드디어 산행이 시작된다. 웬일인지 목책 울타리를 넘어 산행이 시작된다. 헤드랜턴을 켜고 손에는 후래쉬를 하나 더 들고 사람들과 같이 앞으로 매진이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리나 조금 가서 힘이 들 때 쯤에는 스틱소리와 발자국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으며 모두들 어둠속을 걸어갈 뿐이다. 오늘의 갈길이 결코 녹록치 않아서이리라. 매 처음 목표인 할미봉까지는 2.3km, 한 시간은 가야할 거리이다. 할미봉엔 반도 못 갔는데 어디서인지 개짖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린다.

한참 힘들여 전진하니 개소리는 더 들리지 않고, 밤하늘엔 별들이 영롱하다. 할미봉에 도착하여 물을 마신다. 꿀맛이다. 어떤 사람이 어둠 속에서 귤을 하나 준다. 이제는 몸이 더워오며 땀이 나서 긴 팔 웃옷이 거추장스러울 정도이다. 육십령에서 시작할 때의 시원한 공기가 그립다.

 

4.

힘이 들고 숨이 차지만 계속 전진이다. 앞에 간 삶들은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가 맨 뒤는 아니지만 중간보다 약간 뒤인 것 같다. 4시 54분 서봉에 도착하였다. 서봉은 장수덕유산이라고도 불리우는 것 같다. 이곳의 고도는 해발 1500m라고 한다. 육십령이 해발 870m이니까 630m를 올라온 셈이다. 중간에 허기가 져서 쵸코렛을 꺼내어 씹고 사과를 조금 잘라서 먹으니 허기가 가라앉는다. 다음 산행엔 귤을 가져가는 것이 갈증과 허기를 면하고 시간절약에도 좋을 것 같다.

 

5.

날이 좀 훤해지는데 후래쉬의 건전지가 다 한 것 같다. 갈아 끼우고 조금 더 가니 월성재로 직접 백두대간을 따라가는 길과 남덕유산으로 우회해서 가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때 시각이 5시 35분. 일행의 한 사람이 힘들어하며 쉬고 있는데, 자기는 힘이 들어서 남덕유를 안보고 월성재로 직행하겠다고 한다. 10분을 가니 남덕유산 정상이다. 이제 날은 거의 다 밝아서 플래쉬가 필요하지 않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뜰 것이다.

 

6.

계속 빠르게 전진하는데 동녘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능선을 탄다지만 길이 능선 아래로도 갈 뿐 아니라 산의 나무에 가려서 해뜨는 광경을 아주 잘 감상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운행 중 해가 보이는 지점에서 카메라로 일출을 잡아보며 바삐 가다 보니 6시 20분 월성재에 도착한다. 여기는 해맞이를 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다. 그러나 해는 이미 1-2분 전에 나와 버렸다. 두 컷트 정도를 찍고 부지런히 아침 식사 예정인 삿갓골재로 향한다.

 

7.

삿갓봉을 약간 우회해서 삿갓골재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이 7시 25분이다. 이미 같이 떠난 사람들이 여러 명 대피소앞 벤취에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어젯밤 집사람이 싸준 김밥을 꺼내서 맛있게 먹었다. 식사하는 중에도 뒤에 처졌던 사람들이 속속 도착한다. 취사장에서 물 2리터를 뜨고 조금 쉬다가 7시 55분 뒷사람들을 남겨 놓은 채 무룡산을 향해 언덕을 올라간다. 이제 5시간 이상 걸었기에 속도도 늦어질 뿐 아니라 오르막은 매우 힘이 든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 짜내서

앞으로 내달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몇사람을 추월하게도 되었다.

 

8.

날은 맑고 화창한데 멀리 좌우를 내려다 보며 걷는 능선길은 정말 일품이다. 내가 원하던 상황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이 길은 백두대간의 마루금이기도 하다. 최근 백두대간 종주를 한다던 정하선 선배도 이길을 걸었으리라 생각하니 더 힘이 나는 듯하다. 그이도 이렇게 힘이 들었을까? 몸은 고달프게도 능선에 매어 있으나 생각은 고삐가 풀려 여기 저기를 떠다닌다.

8시 42분 해발 1,492m의 무룡산에 도착한다. 잠시 경치를 조망하며 물을 마신다. 오늘 마시는 물의 양은 날씨가 더워서 더욱 많다. 이미 3리터 정도를 마셨다.

 

9.

1시간 14분을 더 걸으니 9시 56분. 오늘의 첫 번째 탈출지점인 동엽령에 도착한다. 능선의 내리막이나 평평한 곳은 나는 듯이 가다가도 오르막이면 몸이 말을 안 듣는데 향적봉은 곧 나타날 기세는 아니다. 산세는 점점 높아지니 힘은 더욱 들고 드디어 10시 42분 백두대간과 향적봉으로 길이 갈리는 해발 1,503m의 백암봉에 도착하였다. 이제 오늘의 최고이자 최후 목표인 향적봉은 지척이다. 2.5km앞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10.

무주에 스키타러 몇 번 와서 향적봉 바로 밑의 팔각정휴계소까지는 곤돌라를 타고 여러번 올라왔었으나 덕유의 정상인 향적봉은 밟아보지 못하였기에 늘 향적봉등정을 꿈꾸고 있었다. 이제 그 꿈이 실현될 순간이다. 꿈을 가슴에 안은 자는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나의 평소 생각이다.

 

11.

힘을 너무 빼서인지 남은 거리가 잘 좁혀지지가 않는다. 11시 25분 향적봉대피소에 도착하여 물을 보충하고 조금 위에 있는 향적봉 정상을 향하여 기진맥진 올라간다. 대피소 샘에서 앞서 도착했던 일행 두 명과 같이 오르는데 내가 가장 힘들어 한다. 11시 35분 드디어 정상이다. 동서남북을 조망하며 마음 속에 뿌듯함을 만끽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종이팩에 든 소주를 하나 권하기에 단숨에 다 마셔 버린다. 그 분은 떡도 조금 안주로 권한다. 정상주로 맥주 한 깡이 있다면 아주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에겐 점심용 김밥이 있어 같이 먹자고 하니 입맛이 없어서 먹지 않겠다고 한다. 나 역시 입맛이 없어 나중에 먹기로 하였다. 그 사람에게 부탁하여 정상표지판 옆에 선 내 사진 한 컷을 디지털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12.

이제부터는 하산 길이다. 빈속에 소주를 들이키니 걸음이 갈지자가 되는 듯 한데 내려가는 길이라 쉬지 않고 갈 수가 있다. 백련사까지는 제법 가파르게 내려가야 하기에 계단이 아주 많으며 걷기가 수월하지가 않다. 같이 내려오던 두 사람은 벌써 앞으로 가 버렸다. 부랴부랴 백련사에 도착하니 12시 50분이다.

 

13.

백련사를 간단히 돌아보고 매표소까지의 이정표를 보니 5.6km라고 되어 있다. 아뿔사, 큰일이다. 오후 2시까지 주차장으로 오라고 했는데 주차장까지는 적어도 7km는 넘을 듯 한데 시간은 1시간 10분 밖에 없다. 속보로 걷는 수 밖에. 죽어라 속보로 걸으며 1km쯤 오다가 백련사쪽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매표소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으니 1시간은 더 가야 된다고 한다. 답답하다. 죽어라 하고 걷다보니 삼공매표소 2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때가 오후 1시 40분 쯤이다. 걸음을 더욱 빨리하여 앞에 걷는 모든 사람들을 다 추월하며 가다 보니 정상에서

같이 있다가 먼저 간 일행 한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그이 이야기가 오늘 12시간 산행계획은 아주 무리한 계획이므로 2시에 안가도 될 것이라고 한다. 자기는 공룡능선을 10시간에 주파하는 산의 베테랑인데 자기도 오늘 코스에 12시간보다 더 걸리는데 보통 사람은 14시간은 걸릴거라고 장담한다.

 

14.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지라 바람같이 매표소를 통과하는데 시각은 13시 57분이다. 휴대폰으로 산행대장을 부르니 곤돌라로 내려온 사람들 10여명과 함께 주차장으로 오는 중이니 천천히 오라고 한다. 버스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2시 10분, 아줌마 한사람만 도착해 있다. 그분 정말 대단한 속도이다. 내가 2위이다. 10분 쯤 지나니 여자 산행대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나더니 버스 출발은 오후 3시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린다. 날이 더워서 산행시간이 더 걸린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댄다. 내 생각에 오늘의 코스는 12시간에 주파하기는 무리이라고 생각 된다. 아침식사시간 30분을 빼고는 거의 쉬지 않고 나의 최대속력으로 달렸는데도 12시간 10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15.

냇가에 가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김밥을 먹었다. 3시가 거의 되어서 버스에 오니 아직 하산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3시 10분쯤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지금 매표소 전방 2km를 지나는 중이라고 한다. 약속시간을 한시간 반이나 위반하는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다. 나하고는 종류가 다른 사람으로 치부하고 참는다. 산행대장도 그렇고 그 사람도 그렇다. 주먹구구의 본보기이다. 3시 40분에서야 버스는 서울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꿈꾸던 덕유산 종주가 무박으로 무사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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