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401 용문산-국수봉 구간 : 사진없는 산행기 - 그때 그곳으로 다시 가고 싶다.

2007. 4. 4. 15:33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거기서도 봄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습니다. 백두대간의 산줄기에도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 산을 찾는 송백님들에게 봄을 알립니다. 지리산 아래에서 백두대간 줄기를 타고 북상하던 봄이 추풍령을 넘어 용문산 국수봉에도 뚝뚝 듣는 그런 날이었지요. 멀리 서북쪽에서 날아온 황사가 시야를 가리는 우중충한 날이긴 해도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반겨주는 진달래와 노란 생강나무, 땅끝에 매달린 작은 제비꽃들이 봄은 이미 왔다고 외치는 날이었지요. 멋쩍게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신갈나무들은 아직 옷을 걸치진 못했지만 나들이를 서두르는 듯 수양버들같은 나무들엔 연두색의 새싹이 비죽이 머리를 내밀고 아우성치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아침 7시 잠실벌을 떠난 송백호는 음성휴게소에서 잠시 쉬더니 추풍령휴게소에서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로 조금 가니 오늘의 산행들머리인 아침 10시 10분 조금 안되어서 작점고개에 도착합니다. 작점고개가 송백에겐 오늘의 작전고개가 된 셈이지요. 오늘 작전은 대간길의 1/3 쯤 남쪽이 되는 곳의 한 토막[작점고개-용문산-국수봉-회룡재]을 작전에 따라 완주해야 합니다.


제가 카메라를 꺼내고 GPS를 켜고 옷매무새를 매만지는데 송백님들은 벌써 앞으로 내달았습니다. 거의 꼴찌에서 착실히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늘은 황사로 찌푸려 있는데 길옆에 서있는 연분홍 진달래들이 웃음을 머금고 반겨줍니다. 그 미소를 대하니까 한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합니다. 매년 오는 봄이지만 올 때마다 신선하게 다가옴도 은총이라 해야겠지요.


가끔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부지런히 언덕길을 가다보니 땀이 납니다. 겉옷을 벗어서 배낭속에 넣고 물도 한 모금 마십니다. 다행히도 어느 정도 스피드가 붙으니 후미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가니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산행안내에 의하면 이곳 용문산, 국수봉 구간은 사람이 별로 없는 청정지역으로 고도도 비교적 낮고 산세도 유순하여 산행에 어려움은 없으리라고 하였기에 느긋하게 움직였는데 다른 분들에겐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여느 때처럼 총력을 기울여 총알같이 움직이시는가 봅니다.


길은 분명하게 숲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잘 나있고 길 위엔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이 푹신하게 덮여있어 걷는 데에는 아주 이상적인 환경입니다. 잎을 떨구고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거의 같은 모습의 길이 계속되니 한편으론 지루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가면 무언가 나은 볼거리가 나오리라는 희망에 걸음을 쉬지 않았습니다. 우선 목표로 삼을 곳은 해발 710m인 용문산입니다.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있는 비닐움막을 지나고 언덕을 오르내기를 여러 번, 11시 36분 해발 710m의 용문산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시작후 1시간 반이 된 시각입니다.


정상에는 아주 못생긴 정상석이 하나 볼품없이 서 있었습니다. 용문산은 보통 때 같으면 먼 곳을 보며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전망지점이지만 오늘은 하늘이 흐려있어 좋은 경치는 기대난망입니다. 이런 상황은 계속되어 50분 떨어진 더 좋은 전망처인 국수봉에서도 경치를 감상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용문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곧 다음 목표지인 국수봉을 향했습니다. 언덕을 한참 내려가니 용문산기도원으로 가는 길이 대간에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났습니다. 여기서 대간길을 탈출하면 어렵지 않게 김천행버스가 들어오는 기도원으로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자료에 찾아보니 용문산기도원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맨처음인 1940년에 형성된 기도원이라고 합니다. 산을 오르내리며 그분이 빚어놓은 자연을 감상하며 그분과의 대화를 추구하는 저에게 한자리에 붙박이로 앉아서 기도할 필요는 없을 듯했습니다. 기도원가는 삼거리를 지나니 길은 다시 언덕으로 올라붙습니다.


12시 11분 또 하나의 용문산 팻말이 있는 봉우리에 섰습니다. 용문산 해발 730m 라고 팻말에 분명히 써있어 30여분 전에 지난 용문산과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산행기나 지도의 표현 등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먼저 만난 봉우리가 진짜 용문산인 듯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제가 이름붙인다면 제2용문산이라고나 해야겠는데 원 용문산보다 고도가 높은 것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점심식사를 할 예정인 국수봉도 가까워 옵니다. 무거운 몸을 산비탈로 힘들게 밀어올립니다. 숨은 가쁘고 오금이 저립니다. 그러나 말안듣는 몸을 채찍질하여 마침내 오늘의 최고봉인 해발 795m 의 국수봉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뭔가 손발이 맞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정표로 된 나무말뚝엔 국수봉 795m 라고 써있는데 그 옆에 서있는 돌로 된 정상석엔 높이가 763m 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국수봉 도착시간은 12시 25분으로 산행시작후 두시간 15분이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국수봉은 제법 높은 지역인지라 이곳에 흐르는 바람과 기가 범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용문산에 기도원이 선 것도 이곳을 흐르는 강하고 진한 기의 흐름과 무관치는 않을 거라 그 기를 취하기 위해 가슴을 크게 열어 봅니다. 정상에서 잠시 사진촬영을 하며 숨을 돌린 다음 조금 내려간 언덕배기에서 식사를 시작하는 산님들 곁으로 가서 같이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준비해 온 떡을 점심삼아 먹고 있는데 옆의 분들이 자꾸 밥을 권하여 조금 동냥하여 먹었습니다. 그 외중에 한 분이 자가제조한 복분자술을 두 잔이나 권하십니다. 이 복분자술은 제 입에 들어붙는 명주라고나 할까요. 달착지근하고도 독한 복분자술이 고지에서 이미 업된 마음을 더욱 고양시키는 듯 합니다. 거기다가 막걸리도 두 잔이나 마시니 술은 이제 노탱큐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음 목표인 큰재를 향하여 급경사길을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 12시 51분이었습니다. 낙엽이 싸인 경사길은 제법 미끄러워 조심해서 내려왔습니다. 몇잔 마신 술에 뇌가 살짝 마비되어 생각이 몽롱해지는 듯 합니다. 과음한 것입니다. 평소에 제가 술이 센 걸로 알았는데 오늘 보니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국수봉을 떠난지 얼마 안되어 13시 9분 헬기장을 만들기 위해 나무들을 베어내어 흉하게 된 언덕을 지났습니다. 그곳을 지나 능선길을 한참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립니다. 약장수 아니면 시골운동회? 멀리 앞쪽의 큰재에서 들리는 소리 같았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갑자기 풍악이 울리니 정상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하면 이곳의 대간길은 음악이 들릴만큼 민가와 가까운 곳을 지난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13시 46분 찻길이 가로지르는 큰재에 도착하였습니다. 음악소리의 정체는 시골초등학교 동창회였습니다. 진행자가 잡은 마이크에서 나오는 육성과 와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였던 것입니다. 큰재에는 제법 큰 초등학교 분교(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가 있었는데 그 분교의 졸업생들이 오늘 동창회를 모교에서 여는 듯 했습니다, 분교건물은 제법 여러 동이 있었는데 관리가 안되어서인지 밖에서 보기에 너무나 쇄락하고 초라하여 밖에서 열린 화려한 잔치와는 묘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술기운에 불콰해져 즐거운 기분에 들뜬 졸업생들에게 폐허로 변해가고 있는 학교 건물들이 아름답게만 보여질 것인지요?


옛날 것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회상모드로 전환되겠지요. 폐허가 되어가는 분교를 지나며 독한 복분자에 맛이 간 이 넘도 옛날 국민학교(지금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며 그때의 친구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서 전 이제 너무나 멀리 떠나왔음을 느낍니다. 머릿속엔 먹물만 들어가서 속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백두대간 능선이 높고 험준한 지역을 가다가 가끔 해발이 500m 가 안 되는 낮은 부분을 지나가는 지역을 걸을 때면 꼭 제 고향의 뒷동산을 가는 듯이 느껴져서 과거로의 회귀가 제 생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곤 합니다. (그래서 소설-구라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그걸 후기 구라편에 써 보지요.)


대간길은 분교의 건물들 사이를 지나 산비탈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거기로 조금 가니 산소 2기가 나오고 조금 더 가니 목장으로 가는 신작로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신작로는 목장으로 통하는 길인 듯한데 대간길은 이 길을 잠시 따라 가다가 다시 산속으로 접어들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의 길은 비교적 낮은 산들을 통과하는데 여느 동네의 뒷동산과 같은 느낌이었는데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길가는 재미를 더해주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오후 2시 54분 회룡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대간길을 탈출하는 줄 알았는데 조금 더 가서 탈출하도록 송백의 표지기가 달려 있었습니다. 능선따라 5분을 더 가니 좌측으로 마을로 가는 대간탈출로가 나오고 대간길과는 이제 안녕입니다.


다시 마을을 통과하며 9분을 걸어가니 송백호 버스에 도착하고 오늘의 산행은 끝났습니다. 끝난 시각은 15시 8분, 다섯시간에서 2분이 빠지는 시간으로 송회장께서 주신 5시간 반에는 32분이나 빠른 우수한 기록이었습니다.

(참고로 13시 51분에 송백호에 도착하여 3시간 50분에 이 구간을 완주한 선두의 산도깨비님은 예정시간을 1시간 40분이나 단축하였다는 계산이 됩니다.)


-후기 : 구라편-


사진은 이미 일괄처리하여 별도의 꼭지로 올려놓은지라 글로만 쓰다보니 친구이자 라이벌인 시인마뇽의 산행기처럼 사진없는 산행기가 되었습니다.(저도 라이발처럼 사진없이도 쓴다?)


대저 서양인들이 얘기하길,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라고 하는데,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믿으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글만 있어도 나머지는 마음의 눈으로 보신다구요? 잔소리말고 빨리 야그나 하라구요? 알겠습니다.)


각설하고, 한 50년 전 쯤인가 인성분교처럼 나지막한 언덕밑에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있었지요. 이 학교 저학년에 재학중인 하이맛 소년은 봄이 되면 울긋불긋한 온갖 꽃들이 피어나서 그런지 신열에 걸린 사람처럼 산과 들로 쏘다닐 뿐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답니다. 학교에 가봤자 엄한 담임선생님의 재미없는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지요.(알려진 비밀인데, 사실 그때는 많이 얻어 맞았지요.)


그날도 들판엔 노오란 장다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이었어요. 하이맛소년은 엄마한테 배가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 가기 싫은 학교에 합법적인 결석을 유도해냈지요. 동무들은 다 학교에 가고 텅빈 들을 헤매던 소년은 학교로 이어진 언덕길을 올라가서 숲속으로 들어갔지요. 야트막한 고개 하나를 넘어 진달래가 만발한 호젓한 곳에는 쉬어감직한 넓적한 바위가 하나 있었지요.


동네엔 노란 개나리가 가득한데 산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더군요. 소년은 바위 위에 벌렁 누워 파란 하늘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지요. 학교 같은 건 누가 만들었는지 다시 없애면 안될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아릿다운 처녀 하나가 생긋 웃으며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에 진달래 꽃다발을 든 나이는 열대여섯이나 될 누나벌의 아름다운 처자였지요.


하이맛 넘은 하릴없이 누워서 딩굴던 바위위에서 얼른 일어나 그 쪽을 보았지요. 그리곤 그 아가씨의 아름다움과 기품에 완전히 넋이 나가 할 말도 잊은 채 멍하니 다가오는 그 처자를 보고 있었답니다. 그러자 그 처녀는 살포시 웃으면서 손안에서 붉고 영롱한 구슬 하나를 꺼내는 것이었어요. 그러더니 저의 입속에 그걸 살짝 넣어주네요.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그 향기와 맛이라니. 도저히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맛, 하늘에서 온 맛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오늘 국수봉에서 마신 복분자술처럼 취하게 하나 봅니다. 저는 몽롱한 상태에서 눈을 감았는데 처자는 어느새 구슬을 제 입에서 꺼내들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짧고 황홀한 꿈에서 깬 저는 그 처자의 간 곳을 찾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그녀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연분홍 진달래꽃만이 그녀의 색깔인듯 주변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날은 더는 그 처자를 보지 못한 채 할 수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신비스러우며 너무나 황홀한 체험 이야기는 혼자만 간직했습니다.

 

그 후의 여러날을 하이맛 넘은 그 고개에 가서 그 처자를 만났답니다. 옛날 얘기에 나오는 것처럼 그의 몸은 차차 야위어 가고 집안사람들은 그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어떤 형이 말하길 ‘처녀가 입속에 넣어주는 그 구슬을 삼키지 않으면 진이 빠져서 너는 죽게 된다.’ 라고 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지요.


그래서 이 넘은 그 구슬을 삼켰을까요?  그 구슬을 삼켜 버리면 그 처녀는 100년 먹은 여우라는 진면목이 들어나고 그 자리에 넘어져서 죽겠지요. 선과 악이 분명히 그어지고 야위었던 하이맛의 몸은 다시 비만의 초기상태로 복원되겠지요.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나쁜 여우는 죽여서 하이맛은 잘 먹고 잘살게 되며 동네 어른들은 더 걱정할 게 없어서 태평성대가 이어진다는 해피엔딩으로 정말 우리가 행복하게 되는 건가요?

 

마음이 가난한 소년에게 꿈을 주고, 신열에  달뜨게가지 하고, 아름다움에 취하게 하여 엄혹한 현실의 신산함을 잊게 해주던 구슬삼키기 의식의 효용은 어떻게 되나요? 그 아름답던 처녀와 영롱한 구슬은 가짜였고 단지 하이맛넘의 살만 찌게 하는 보약이었나요?


인성분교의 뒷동산에서 시작된 대간길은 사이좋게 누워계신 두 무덤을 지나서 비산비야의 능선으로 이어집니다.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 어릴 때 보던 개나리가 되고 분홍색 진달래는 역시 어릴 때 학교에 가며 꽃잎을 따서 먹던 그 꽃과 같았습니다.


복분자주 두 잔에 취한 이 넘은 주제넘게도 40여년 전 우리 동네를 배경으로 있지도 않은 구라를 소설로 풀어보며 그 길을 갔다는 이야깁니다. 상상이 그쪽으로 흐른 이유는 그 길(대간길)이 옛날 그 길(제가 등교하던 길)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상상에 취한 저는 제 얘기를 들어 줄 어릴 적 친구들을 불러 보았습니다.)

 

('거기 누구 없니?') 


백두대간을 홀로 조용히 걷다보면 제겐 이야기의 실마리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따라 상상 속으로 들어가서 구라를 풀다보면  ‘숨이 차다 다리가 아프다’ 이런 얘긴 저차원의 야그가 되는 걸 자주 경험했습니다. 마음속의 상상만이 저를 구름위이지만 고차원에 머물게 한답니다.


-후기 2-

Deja Vu, 데자뷔, 기시감(旣視感). 우연히 어느 곳에 갔는데 예전에 한 번 와 본 곳처럼 친숙하게 느껴질 때의 감을 데자뷔(불어)라고 한다네요. 마땅한 우리말이 개발 안되어 먹물들이 불어에서 차용하여 쓰는 어휘이겠지요.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에서 뒷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가며 그런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전해오는 옛날 얘기와  저와 불여우를 엮어서 구라를 하나 소설로 써가며 대간의 한 구간을 쉽게 완주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처자와 구슬이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여쭈어 봤지요.

 

‘다시 그 처자를 만난다면 구슬을 삼켜야 되나요?’


‘삼키지 말거라. 네 몸보다 꿈이 더 중요하니라.’

‘단, 하마부인이 주는 토마토쥬스는 꼭 마시도록 해라.’

.

.

.

(황사도 심한 이런 날에 그분마저 이러시면 안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