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208 소백산[죽령-비로봉-국망봉-늦은맥이]구간 : 국망봉에서 서울을 째려보다.

2007. 2. 10. 08:36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S산악회를 따라서 산에 가려면 통과의례처럼 늘 거쳐야 하는 잠실역의 3번출구. 그 유리문에 붙여진 광고 그림입니다. 뜬금없는 사자그림이 뜬금없이 목요산행에 뛰어들어 본, 제 처지 같아서 한 컷 찰칵했습니다. (이번 산행기에 올린 사진들에는 사진의 아랫쪽 가운데에 산행시각을 일괄적으로  표기해서 시간거리를 짐작할 수 있게 해 보았습니다. 秒의 자릿수가 하나로 된 것은 실수입니다만 다시 고칠 시간이 부족해 그냥 올립니다.)

 

2월 8일 목요일, 백두대간길에 나서기 위해 아침 6시 제기동 집을 나섰습니다. 하마부인은 성당 새벽미사에 가고 아들과 딸은 꿈속에 들어있고, 우리집 강아지만 섭섭한 듯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으로 배웅을 합니다.

'잘 있어. 후치. 아빠 갔다 올게. 엄마가 곧 올거야'

 

하늘이 꾸물꾸물한 것이 비가 내릴 조짐이 보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잠실에 도착하니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오랜만의 가믐을 해갈하는 비이지만 오늘따라 반갑지가 않고 마음속까지 축축히 적셔 칩칩하게 해 줍니다. S산악회의 산행이 결코 취소되지 않음을 알기에 제가 먼저 항복해서 산행을 접을 수는 없는 일, 버스 속 산님들 사이에 앉아 각오를 다지는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은 비오면 비오는대로 산행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큼한 기대감도 있을 터였습니다.


8시 50분쯤 버스는 치악휴게소에 잠시 머뭅니다. 저는 이 틈에 스패츠를 단단히 매었습니다. 버스의 창엔 김이 서려 무채색의 바깥경치나마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저는 손으로 애써 유리창의 김을 지우며 오늘의 산행도 무사하길 맘속으로 기원합니다.


치악휴계소의 앞산도 운무에 젖어 오늘의 축축한 산행을 예고합니다.

 

비가 내리는 고속도로를 따라 단양까지 내려간 버스는 국도로 나와서 오늘의 들머리인 죽령고개에 여느 대에 비하면 제법 이른 시각인 아침 9시 45분에 도착했습니다. 비를 막기 위해 많은 산님들이 비옷을 걸치고 배낭커버로 배낭을 덮느라 부산합니다. 저는 오늘따라 우의는 필요없을 줄 알고 준비 못했기에 바람막이 옷으로 견디기로 하고 배낭에 푸른색 비닐커버를 씌운 다음 우산을 꺼내들었습니다. 제법 높은 산에 오르는데 조금은 허술한 채비인 것 같아 일말의 불안감도 있었으나 군중심리인지 아니면 배짱인지 산님들을 따라 용감하게 출발해서 시멘트포장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죽령을 표시하는 표지석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이 궂은 날씨에...지난해까지 매표소였던 산행안내소를 통과하는 산님들, Mt.라는 호칭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사진기와 스틱과 우산을 양손으로 다루면서 가는데 약간은 불편합니다. 거기다가 안경에 김이 서려 오리무중 속을 가는 격입니다. 완만한 경사길 오름이지만 제법 긴 시간을 걸으니 힘이 들고 지루합니다. 그래도 쉬는 분들은 보이지 않고 묵묵히 길을 가고 계십니다. 각자의 짐을 등에 지고 힘들게 비탈길을 오르는 그분들은 이 시대의 성자같이 보입니다. 비를 막기 위해 온몸을 가리운 모습이 수도자들의 수도복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세상의 속진을 버려두고 결국은 내려갈 길을 열심히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S산악회의 산행에 100번째 나오시며 100번의 산행을 기록하셨다는 박경하님을 위해 버스 안에서 떡돌리기 축하가 있었습니다. 산행의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산행기록을 100개나 만드셨다는 데에 박선생님이야말로 이 시대의 수도자가 아닐까 존경의 념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줍잖게도 산행기라는 걸 저도 써 보았지만, 그 작업이 정말로 쉽지 않음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산행을 열심히 하고 산행기 또한 열심히 쓰시는 분들에게는 Mt.(Mount)라는 칭호를 드리면 어떨까 혼자 걷는 빗속에서 혼잣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수도생활을 열심히 한 분들에게 기독교는 St.(Saint)라는 칭호를 이름 앞에 붙여 드립니다. 저는 박경하님과 제 동료 우명길(필명: 시인마뇽)님에게 두분의 산행과 기록을 경하하며 각각 Mt. Park K H, Mt. Woo M K 라고 영어 글자로 표현해 보는 먹물짓을 하며 지루한 산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경치를 보기는 틀렸고 오늘같은 날은 외향적으로 밖의 경치를 보기 보다는 자기자신의 내부로 들어가서 자신의 내부 풍경을 만들어 가기에 좋은 날입니다. 소백의 멋진 경치를 은근히 기대했던 저도 우선은 외부경치 감상은 포기하고 자신속으로 들어가서 생각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일들을 정리하고 생각하느라 마음은 바빠집니다. 생각은 많은데 시간도 많습니다. 잡초같은 생각들은 잘라서 산길에 묻고 아름다운 생각들은 잘 정리해서 마음 속에 갈무리합니다.


눈이 듬성듬성 얼어붙은 위로 비가 뿌려 발을 잘못 딛으면 미끄러질 길인데 아이젠 착용은 일단 보류하고 조심스럽게 빗속을 걸어갑니다. 11시 조금 못되어 제2연화봉 직전에 중계소 갈림길을 지나가는데 주변이 구름에 싸여 보통날이면 멀리서도 잘 보일 중계탑을 볼 수 없습니다. 11시 정각에는 해발 1,357m의 제2연화봉이 있는 공터에 도착했는데 역시 주변의 생김새를 살피기엔 운무가 짙었습니다. 기록을 위한 사진을 두 장 찍어 봅니다. 점점 얼음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져 길의 반 이상은 얼음으로 덮여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며 조심스레 반얼음길을 진행합니다.

제2연화봉이라는 팻말이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남쪽)을 보는데 모든 것이 희미합니다. 그래도 성자처럼 묵묵히 전진하는 산님들이 사진을 값지게 합니다. 

이런 길이 펼쳐집니다. 고독한 레이스는 여기저기서 펼쳐집니다.

 

11시 26분 유명한 소백산 천문대에 도착합니다.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 안내투어가 있다는 설명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쩜 주중이라 웰빙시대에 필요한 천문지식을 접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가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갈 길이 바쁜 산객은 욕심을 접어든 채 다음 목표인 연화봉을 찾아 발걸음을 옮깁니다.


천문대는 서너채의 건물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 한 건물을 담아 보았습니다.

 

11시 35분 해발 1,383m의 연화봉에 섰습니다. 맑은 날이면 경치가 끝내 줄 포인트인데 오늘은 단양군에서 커다랗게 다듬은 돌로 세워놓은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곳은 별칭으로 천문대정상으로도 불리울 수 있음이 목제 이정표를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연화봉 정상석, 부처님의 연화장세계는 여기서부터 펼쳐지소서! 날이 맑았다면 최고의 전망점일 것입니다.

 

그 옆에 서있는 나무로 된 이정표에도 눈얼음이 붙어있어 이 곳이 높은 지대임을 말해 줍니다. 희방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오늘 가장 높이 올라야 할 비로봉은 4.3km라고 알려줍니다.  

 

연화봉 직전부터 시멘트포장길은 이미 끝나고 정겨운 산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산등성이엔 눈이 쌓이고 키가 크지 않은 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은 제게 있어 평화로운 과수원을 지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당숙(아산)과 삼촌네(평택) 과수원에서 보았던 풍경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이젠 사과값도 떨어지고 과수원은 폐원이 되고 땅값만 다락같이 올랐다고 하네요. 어느새 비는 약해지고 저도 우산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삼촌네 과수원 풍경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붉은 옷의 액센트까지. 고호의 걸작 "과수원 그림" 못지 않은 풍경으로 여겨집니다.

다시 과수원길로. 당숙네 과수원도 오래 전에 정리했지요. 과수원은 망하고 아파트는 몰려 옵니다. 

 

3개의 연화봉 중에서 가장 높은 제1연화봉(해발 1,394m)에 오르기 위해선 제법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계단수가 296개인가 얼마인가 국화대장이 산행설명 때 겁을 주었는데 그 숫자도 확인해 보고 산행의 고통도 잊을 겸 계단의 수를 세면서 올라가는데 그 개수가 300개가 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숫자는 끝무렵에 흩으러져 놓치고 말았습니다. 제법 기다란 계단이었습니다. 헉헉대며 계단을 거의 다 오른 순간 뒤에 오던 산악회의 김춘희대장(들국화님)이 저를 따라잡았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니 제1연화봉 팻말이 나왔습니다. 12시 6분 제1연화봉에서 잠시 쉬며 김대장이 주는 귤을 고맙게 받아서 까먹었습니다.

어줍잖은 산객의 인내를 시험하는 계단길. 배경을 이룬 산줄기의 실루엣이 제법 날카롭습니다. 비가 와서인가요?

제1연화봉 표지말뚝입니다. 김대장께 귤 하나 신세졌습니다.

 

잠시 쉰 다음 식사할 장소인 대피소(또는 주목관리소)까지 내쳐 가기로 합니다. 이제 길은 푸석한 눈이 덮여있어 제법 미끄럽지만 아이젠은 일단 보류합니다. 아이젠없이 균형을 잡으면 운동도 될 것 같고 어쨌든 버텨 보았습니다. 아이젠을 착용할 필요가 있는데도 이를 무시해 보는 오기를 자존심으로 착각합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어디선가 한번 미끄러져 팥빙수 같은 눈을 손으로 짚었고 장갑이 다 젖었으나 날씨가 푹하여 그대로 끼고 전진합니다. 식사시간 때나 배낭 속에 지닌 마른 장갑으로 바꾸어 낄 요량이었습니다.

 

이런 길보다는 조금 가파른 길에서 넘어져도 보았습니다.

 

12시 41분 비로봉 밑의 대피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대피소 안에선 이미 도착한 산님들이 식사를 하시느라 분주합니다. 김대장과 황규용님 곁에서 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A코스(풓코스의 딴 이름)를 가려면 먼저 일어나야 하기에 10여분을 식사시간으로 활용하고 동쪽으로 400여미터 떨어진 비로봉을 향했습니다. 소백산 특유의 억센 바람을 은근히 기대했으나 오늘 바람은 그리 세지 않아서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소백이 소백다우려면 능선을 때리는 강한 서북풍의 칼바람과 멀리까지 보이는 풍광을 들 수 있는데 오늘은 둘 다 기대난망입니다. 대신 약한 비가 뿌리며 무채색의 산을 보여줍니다. 다른 면의 소백이라 할 수 있겠는데 ‘내가 본 색다른 소백’으로 마음속에 저장해야 하겠습니다.

비로봉 오르기 직전에 내려다 본 경치입니다. 저 산너머에 더 푸른 풀밭이 있을 터인데...

 

오후 1시 9분 해발 1,439.5m이자 오늘의 최고봉인 비로봉에 도착했습니다. 무채색의 산정엔 약한 바람이 불고 을씨년스럽게도 비가 뿌려대는데 다행히도 안개가 약간 걷혀 주변의 산줄기의 윤곽이 조금은 들어났습니다. 정상석과 주변을 카메라에 담고 보통 때 같으면 주변경치를 보느라 5분 이상을 며무를 중요지점인데 날씨 탓에 1, 2분 머문 후 다음 목표인 국망봉을 향해서 걸음을 떼어 놓았습니다.

비로봉 경치 1/4. 왜 이렇게 초라하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을씨년스러운 무채색...

비로봉 경치 2/4. 충청북도! 잘났습니다. 충북이면 어떻고 경북이면 어떻습니까? 어울리지 않는 돌덩어리에 가슴 아픕니다.

비로봉 경치 3/4. 동쪽으로 국망봉을 향해 떠나는 산님들입니다.

비로봉 경치 4/4. 바람과 구름과 비, 그리고 오리무중의 앞길입니다.

비로봉에서 오른쪽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렌즈에 맺힌 서리가 약간은 불온합니다.

비로봉을 아쉽게도 급히 지나쳤는데 그래도 가장 높은 봉우리이기에 몇번씩 뒤돌아 봅니다.

 

국망봉까지는 3km가 넘는 제법 가야 할 거리입니다. 표고도 100m 이상 하강했다가 상승하기에 제법 가파른 부분도 있었는지 다시 이 구간에서 미끄러져 두 번 째 장갑도 흥건히 물에 젖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이젠 착용은 악착같이 보류하고 오기로 운행해 봅니다. 어느새 아랫도리는 비에 젖고 윗도리는 땀에 젖어 칩칩한 상태가 되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잎으로 나갑니다.

국망봉을 가늠해보나 보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읽어야 하나요?

다시 비로봉을 돌아 보는데 완만하고도 후덕한 흐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각에 국망봉도 멀리서나마 그의 자태를 보여줍니다. 그분께 고마운 마음을...

 

그러나 비도 아주 약해졌고 산행거리도 많이 좁혀 놓은지라 주변의 경치도 살피며 오전보다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걸어가며 국망봉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천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은 고려태조에게 나라를 헌납하였습니다. 경순왕의 아들이자 신라의 왕권계승자였던 마의태자는 이 사건을 돌이켜서 나라를 되찾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호응을 받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만사가 그르쳐진 후 마의태자는 이미 망한 나라이지만 그 나라를 바라보기 위해 이 봉우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국가의 망함(國亡)을 탄식하며 멀리 서라벌 즉, 국가를 바라보며(國望) 눈물지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을까요? 아니면 일망무제로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개인 날이었을까요. 아마도 후자일 것 같습니다. 아주 멀리 떨어진 고향을 보고 싶다면 맑은 날에나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저의 산행은 국망을 하기에는 일진이 따르지 않는다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두 눈으로 하는 가시적인 국망만이 나라사랑하기는 아닐 것입니다. 心眼으로 하는 국망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후 2시 9분 해발 1,420.8m인 국망봉에 도착했습니다. 비로봉보다 18.7m 밖에 낮지 않은 꽤 높은 봉우리였습니다. 정상은 펑퍼짐한 땅위에 검은 돌 두 덩어리가 제법 날카롭게 솟아있고, 그 돌의 밑 평평한 부분에 밝은색의 화강암으로 된 정상석이 서있었습니다. 날이 흐려 국가를 조망할 수가 없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누구라도 이 봉우리에 섰다면 국가의 안전과 겨레의 앞날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국망이라 함은 글자만 보면 물리적으로 높은 곳에 올라 국가를 조망함이지만, 우리가 오르는 높은 산들의 정상에 서면  마음속으로 국가의 장래를 전망함도 국망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의 국망은 국망봉에 선 순간 꼭 해야 할 일로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산행 후 4시간 반 가량을 걸어서 국망봉에 어렵게 올라서니 마의태자만큼 절실하지는 못할지라도 요즘의 나라 돌아가는 꼴을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국망(국가를 바라보기)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북향하여 저 멀리 서울쪽을 노려보고 속으로 외쳤습니다.


'당신들 잘들 해. 잘 하란 말이야. 망하지 않게!'

 

(너나 잘 하세요!)  바람 속에서 제가 잘못 들었나 봅니다.

국망봉에 서서 마음속으로나마 국가를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외침으로 발전합니다. '잘 좀 해요. 잘들 하시란 말입니다.'  너나 잘 하라는 대답에 카메라 렌즈에서도 눈물이 흐르나요?

 

이제 2km 쯤만 더 가면 오늘 대간길의 끝이자 탈출지점인 늦은맥이재에 도착할 것입니다. 1km 쯤 가니 상월봉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이왕 온김에 상월봉을 들르려고 오른쪽으로 꺾어 언덕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조금 올라가니 바위 봉우리가 나오는데 약간은 험하고 얼음길인지라 상월봉 정상은 포기하고 우회로를 따라 다시 내려오기 위해 늦은맥이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길이 제법 험하여 아이젠없이는 힘들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껏 잘 견뎠지만 여기서까지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어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양발에 착용하였습니다. 그래서 가파른 길을 쉽게 통과했는데 길은 곧 평탄하게 변합니다. 그렇다고 자동기계처럼 아이젠을 벗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흰눈이 덥힌 과수원같은 길을 또 통과하며 눈길을 갔습니다. 실컷 밟아보는 눈이지만 아무리 밟아도 싫지가 않습니다. 걷는 맛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오후 2시 48분 늦은맥이에 도착하였습니다. 대간능선은 여기서 끝이고 왼쪽으로 꺾어 5km 정도 내려가면 오늘 산행은 끝입니다. 몇분이서 쉬고 있는데 그중 한 분이 소주 한잔을 권합니다. 고맙게 받아서 단숨에 마셧습니다. 여유가 있는 그분이 부러웠습니다. 맥주 한 깡을 배낭속에 넣어 가지고도 시간에 쫓겨 마시지 못했던 저이기 때문입니다.

리바이벌되는 과수원 풍경 하나. '오래된 과수원'?

과수원 풍경 둘.

대간길의 탈출지점인 늦은맥이재 풍경입니다. 카메라 렌즈는 아직도 불온하게 반란을 꿈꾸는군요.

 

내려오는 길의 처음은 제법 가팔랐습니다. 아이젠이 다시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산님들과 무리지어 조심조심 내려왔습니다. 어느 분인가 미끄러져 넘어지십니다. 이 길 중간 중간에는 아주 잘 자라서 곧게 뻗은 낙엽송(?)들이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곧고 높은 그 기상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휘어지고 낮은 마음을 지녔기에 그 반대인 높고 곧은 상태를 동경하는 게 제 처지인 것 같습니다.

높고 곧음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이 하이맛은 높고 곧음에 대해선 일생동안 늘 경의를 표할 것을 약속합니다. '차렷, 경례!'

  

고도를 낮춤에 따라 눈은 점점 적어져 아이젠의 효용은 떨어지고 드디어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어디 쯤 내려오다가 아이젠을 벗으니 아주 시원했습니다. 개울을 건너는데 얼음이 녹고 시냇물이 보이며 물소리는 봄을 알리듯 소란스럽게 내려갑니다.

녹은 얼음 사이로 봄이 비죽이 나오는 듯 합니다.

봄을 찾는 눈길은 개울위로도 넓직하게 더듬어 봅니다.

 

하산길의 아래쪽엔 안개가 짙게 끼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우리를 맞아줍니다. 또 하나의 괜찮은 그림입니다.

오늘의 산행에 축복있으라! 안개의 베일이 우리를 감싸줍니다.

산행 마무리 쯤의 안개 베일 2.

 

오후 4시 3분 소로가 끝나고 시멘트 포장길로 올라 섰습니다.  한가한 걸음들이 시멘트길 위를 수놓습니다. 이제서야 옷이 속까지 다 젖었음을 깨닫고 마음이 칙칙해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산행을 무사히 마친 기쁨이 있는지라 불평하는 몸을 잘 달래며 화해무드를 조성하며 이제 다 끝난 길을 즐겁게 내려옵니다.

포장도로를 걸으면서도 여유가 있는 광경. 한가로운 파이널 터치입니다.

 

오후 4시 12분 식사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6시간 25분의 산행이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휴대했던  GPS 상 거리는 22.6km 였습니다. 총무님이 준비한 오늘 식사는 조랭이떡국이었습니다. 가끔 들르는 용두동의 개성집이 생각나고 구정이 생각나는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소통이 잘되는 길을 버스는 달립니다. 웃옷을 갈아입어 칩칩한 상태는 아래쪽에만 머무르니 다행입니다. 마음속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맑은날에는 햇볕 아래서 납작 엎드려 있을 온순한 산도 궂은 날씨엔 구름 아래에서 심술궂게 각을 세우는 것이 산행의 이치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소백은 그리 험상궂지 않게 적당한 미끄럼과 짙은 구름으로 저를 단련시켰습니다. 시계가 트이지 않아 가까이의 경치들만 눈에 담았고 전에 소백을 오르며 보았던 소위 그랜드 뷰(Grand View: 환상적 경치)는 다음 번을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남아돈 저는 은근히 그분께 불평해 보았습니다.

‘소백의 그 멋진 경치는 정말 있기나 한 겁니까?’


느긋한 그분.

‘꼭 눈으로 보아야만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진짜 믿는 것이다. 소백은 거기 늘 있으니 오늘은 마음의 눈으로 보거라.’


저의 볼멘 대답.

‘마음만으론 성에 차지 않습니다. 저, 또 가야 합니까?’


그분의 판단.

‘욕심을 줄여라. 너는 오늘 네 잇속은 다 차렸지 않았느냐?’


-후기-

그분에게서 마음으로 소백을 보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안 가신 하이맛, 집에 와서 소백산을 조망하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 하마부인에게 지청구를 먹어가면서 침식도 잊은 채 열심히 무언가에 빠졌습니다. 알고보니 구글어스(Google Earth)에 매달려 공중에서 소백산을 보려고 용을 쓰는군요. 진이 빠진 하이맛, 여기 쯤에서 항복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소위 ‘소백산의 우주경치(Space View)' 또는 오버뷰(Overview) 10매인데, 아래에 실은 그림들입니다.

 


평면도입니다. 나머지 그림들은 기울여서 본 것들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