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29. 05:56ㆍ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경동 24회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을 전재합니다.
‘봄날은 어찌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이냐? 지나간 날들이 아름다웠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 치고 우리보고 어쩌라고 오늘 또 이렇게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날이 온 것이냐?’ 이넘은 그날 왼종일 이렇게 외쳤다. 산이 좋았고 친구들이 좋았고 날씨가 좋았다.
부처님 오신 날이 이틀 밖에 지나지 않은 토요일에 해발 1,288m의 치악산을 경동 동문들과 같이 올랐다. 계절의 여왕 5월의 봄날 하루를 정다운 오랜 친구들과 푸르른 녹음속을 지치도록 걷게 된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가 있었음은 물론이다.(그 분은 가장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릴 내려다 보고 계셨음이라.)
산행을 하게 된 모임의 이름은 '경동고 분당용인성남지부 2007 춘계 등산대회'였다. 분당 수지의 경동고 동문들이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을 등반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분당 수지 밖에 사는 나같은 동문들에게도 초청장을 보내주었기에 산을 좋아하는 이 넘도 참석하여 말석에나마 앉게 되었다.
5월 26일 5시반이 조금 지난 새벽에 동대문구 제기동 집을 나섰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양재역 2번출구 강남웨딩문화원 앞에 도착하니 관광버스 한 대가 기다리는데 시간은 6시반이 채 안되었다.
동문들을 기다려 싣고서 6시 55분쯤 버스는 분당으로 출발 약 15분이 걸려 분당의 중앙공원에 도착하였다. 많은 동문들이 이미 나와 있고 24기 김준식군을 비롯하여 동기들도 여럿 나와 반가이 맞아준다. 특히 오늘 김문겸군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니 매우 반가웠다. 소문에 의하면 마라톤으로 몸을 가꾸고 있다기에 그 튼튼한 몸을 사모하고 있었는데 오늘 실물을 만나는 영광을 갖게 된 것이다 머리가 희어졌지만 거대한 산처럼 믿음직한 모습이다..
오늘 산행인원은 모두 102명이라고 하는데 버스 3대가 동원되었다. 24기 인원은 남녀 합하여 16인이라고 하는데 경동의 다른 기수인 21, 29, 30기 동문들과 3호차에 자리를 배당받았다. 7시 40분쯤 예정시각보다 조금 늦게 버스는 분당을 출발하였다. 아침식사로 떡과 생수를 배급받았는데 떡을 먹으랴 물을 마시랴 바쁜데다가 오랜만에 보는 동기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바쁘다. 버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쪽으로 또 남쪽으로 달려간다.
한 시간이 채 안 지나서 우리는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가지는데 행락객들로 휴게소가 만원이다. 바야흐로 봄날, 날씨는 쾌청(약간의 황사가 있었지만)이니 자연과 연결해주는 데에는 가장 지름길인 이 영동고속도로가 붐비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버스에 실려 깜박깜박 졸면서 보니 버스는 새말인터체인지를 나와서 안흥가는 길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오늘의 산행들머리 부곡리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어떤 초등학교의 분교가 있었다. 경동인들은 모두 버스에서 내려서 분교장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10시 30분이다.
산행을 하기 전 몸을 풀어주는 체조가 시작되는데, 단상에서 솔선수범하며 동작을 이끄는 지휘자는 짐작대로 우리 24기 동기인 이종소군의 어부인이었다. 쭉쭉빵빵의 몸매와 다년간의 관록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요염하기조차 하다.
약 10여분간 동문들이 몸푸는 체조에 열중하는 동안 나는 카메라를 챙겨 사진을 몇 커트 찍었다. 오늘 산행도 중요하지만 지난 4월에 비싸게 주고 마련한 디지털 카메라인 캐논 30d와 17-40mm 줌렌즈의 위력도 확인하려는 게 나의 욕심이다.
중식으로 김밥을 받아서 배낭에 넣은 다음 10시 50분경 드디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아득히 멀고 높은 곳을 향하여 동문들과 함께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오늘의 산행은 이곳 해발 494m인 부곡리를 출발, 곧은재와 입석사갈림길을 지나 해발 1,288m의 비로봉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입석사로 해서 황골로 내려오는 것이지만 부담을 느끼는 분들을 위하여 다른 코스도 마련되었다. 집행부에서는 이 코스들을 A,B,C로 명명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임기응변에 강한 24기 동문들은 D코스를 추가하였다.
A코스 : 부곡리-곧은재-비로봉갈림길-비로봉(유턴)-갈림길-입석사-황골 산행안내소-식당
B코스 : 부곡리-곧은재-비로봉갈림길-입석사-황골 산행안내소-식당
C코스 : 부곡리-곧은재-971봉-지름길-식당
D코스 : 체력에 맞추어 자유산행(24기 민경진군과 어부인을 위한 코스)
우리 24기는 가능하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어서 적어도 B코스이상은 가자고 다짐하며 산행에 임한다. 10시 51분 분교를 떠나 들판가운데로 난 평지길로 산행을 시작한다. 길옆으론 몇채의 민가가 있는데 그중 한 집의 마당에 불두화가 피어 있다. 부처님의 머리와 닮았다는 불두화, 부처님을 상징하는 꽃이라서 반갑고 오래 머무르며 감상하고 싶다. 그러나 길을 계속 가야하기에 카메라에 넣고 급히 떠난다. 부처님의 가호로 오늘 산행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참을 더 가니 산행안내소(옛날 매표소)가 나온다.(11시 06분) 여기서부터는 길이 숲속으로 나있고 운치가 있다. 어제 내린 비로 돌로 된 개울에 맑고 양이 많은 물이 힘차게 흘러내려 우리를 맞아준다. 조금 가다보니 작은 폭포 하나가 나타났다. 폭포를 카메라에 담고 또 전진.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주니 날짜 택일은 정말 잘 했다고 모두들 이구동성이다.
곧은재(곧은치라고도 함)에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의견을 나눈 뒤 멋진 숲길을 다들 경치에 취하여 걸어간다. 산행시작점이 거의 500m나 되는 고지인지라 해발 860m인 곧은재까지는 별로 힘들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힘들어 하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힘이 들면 잠시 쉬며 물을 마시고 기력을 회복하고 끈질기게 곧은재를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목에 걸어 앞으로 늘어뜨린 무게 1,400g이나 되는 쇳덩어리인 이 넘의 카메라가 문제다. 걸리적거리는 걸 무릅쓰고 운행을 해 보지만 힘을 자꾸 빼가는데에는 장사가 없다. 할 수 없이 다시 배낭속에 집어 넣어 정상에서나 꺼낼 요량을 한다. 그 중간에는 주머니 속에 있는 작은 카메라를 꺼내어 촬영하기로 한다. (야생화촬영에 좋다는 매크로 렌즈 하나도 배낭 속에 있지만 급히 길을 좇다 보면 그 녀석을 써 볼 시간이 없을 것 같다.)
길바닥은 양탄자처럼 푹신하고 완만한 오르막인데 곧은재 직전에서 약간 급해진다. 길위론 나무가 태양을 가려 자연스러운 채양이 된다. 길옆으론 활엽수들이 늘어서서 자연스레 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기온이 높지만 바람이 불어와서 길을 쾌적하게 만들어 준다. 모든 것이 신선하고 새롭고 아름답다.
12시 20분 오늘의 첫 번째 목표지점인 곧은재에 도착하였다. 발이 빠른 이달헌군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일행을 한참 기다린다. 그 동안 카메라를 가지고 실험을 해 본다. 실험이래야 여러장 찍어보는 일이다. 약 20분이나 기다려서야 24기 동기들이 다 올라온다. 민경진군은 D코스를 택하였다는 소식이 들린다.
배급받은 K-레이션(김밥)으로 평등한 식사를 맛있게 하는데 김문겸군이 막걸리와 함께 사제 정식을 내놓는다. 부인의 충실한 배려로 밥과 김치, 신선한 야채 쌈과 된장, 풋고추 등을 챙겨 온 것이다. 다들 밥싸오지 말라는 지시를 어긴 김동문에게 허를 찔렸지만 눈빛을 반짝이며 김밥보다 훨 맛있는 사제 정식을 먹어치우는데 일조를 한다. 맛있는 관제와 사제 식사를 끝내고 나니 오후 1시가 되었다.(김동무의 어부인께 영광을...)
자리에서 일어나 치악산의 주능선(비로봉에서 향로봉으로 이어짐)을 밟는다. 경사진 길을 계속 올라가니 전망이 좋은 헬기장이 나온다.(13시 11분) 잠시 휴식한 다음 언덕을 조금 더 오르내리니 C코스로 빠지는 갈림길을 만난다. 지도에 나와있는 971봉이다. 여러 동문들이 C코스로 빠지는 듯 한데 24기 동기들은 아무도 그 유혹에 굴하지 않고 고(Go)다.
어이없게도 길은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고도 971m에서 880m까지 90m나 하강한다. 그 후로는 다시 상승이다. 쳐올라가는 길이 힘드는지 동문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힘들게 입석사 갈림길(해발 1,130m)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2시 28분이다. 이곳에서 좌로 가면 입석사를 거쳐 황골로 내려가는 B코스이다. B코스를 가는 동문들도 1,130m나 되는 이곳까지 와야 하니 어늘 산행코스가 만만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특히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부터 입석사까지 내려가는 길이 제법 험하였다.)
갈림길에서 한참을 쉬었다. 그래도 24기 후미는 소식이 없다. B코스를 가겠다는 이종소군에게 A코스를 가려는 우리 계획을 전한 다음 장광종군, 김주홍군 부부, 그리고 나 넷이서는 비로봉으로 가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
길옆엔 연분홍 철쭉이 활짝 피어서 산행에 지친 우리의 피로를 씻어주는 듯 하다. 경치는 최고다. 숲의 위엔 햇빛이 빛나고 숲속은 그늘이 진데다 시원한 바람이 만땅이다. 멀리 돌탑 두개가 쌓여있는 비로봉이 뚜렷이 보인다. 오늘의 지고의 목적지이다. 비로자나불의 이름을 차용한 비로봉 그 높고 정갈한 자태가 우리 혼을 부른다. 비로자나부처님이 거기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시는데 몸은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못한다. 그래도 마음은 이미 돌탑에 도착하여 부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비로자나 부처는 법신불로서 석가모니 부처 이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계실 영원한 부처님이라고 하는데 어리석은 이 넘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안 되나 우주에 상주하여 늘 계시는 이치의 부처님, 최고의 부처님으로 해석해 본다.
우리나라의 명산을 보면 비로봉이라는 이름이 네 곳이나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 산들의 최고봉이다. 금강산, 소백산, 오대산, 그리고 오늘 오르는 치악산이 그렇다. 불교를 굳게 믿던 조상님들은 가장 높은 신령한 봉우리들에 최고의 부처님인 비로자나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분들이 바칠 수 있는 당대 최고의 찬사였으리라.
(아주 먼 옛날 마을의 뒤쪽에 험상궂게 서서 사람들의 운명을 관장하는 듯한 영험한 산의 힘에 사람들은 압도되었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자비로운 부처의 이름을 갖다 붙여서 산을 순치시켰다. 비로자나 부처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런 것 아니었을까? 부처님 이름으로 명명된 후 정말로 산은 자비로운 부처님처럼 후덕하고도 가슴넓게 사람들을 끌어안으며 위안과 희망을 주게 된다. 자신이 사는 땅에 부처님 이름을 붙여서 모셔 둔 그 땅, 그곳이 바로 서방정토이자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부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 별 것 아닌 것이다. 동네 이름이 극락이요, 산 이름이 비로라면 거기 사는 사람들은 저절로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될 것이거늘...)
비로봉 가는 길은 멀고 험해도 이 넘의 생각 속에 구라는 넘친다. 우리의 깊은 산을 걸을 때면 이 넘은 언제나 우리 땅이 주는 긍정적 상상력에 푹 젖곤 한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한참 가다가 이미 비로봉을 찍고 오는 강윤관군을 만났다. 정상에서 이달헌군이 기다리니 빨리 가보라고 한다. 비로봉 오르는 마지막은 정말 힘든, 가파르고 사기를 꺾는 목제 계단길이다. 수백개의 계단을 마지막 고행으로 생각하며 장광종군과 같이 계단을 계속 오르니 정상이 지척이다. 오후 3시 11분 오늘의 최고점인 비로봉에 도달하였다. 정상에는 돌을 쌓아서 만든 돌탑이 세 개나 있는데 정상석은 가운데 돌탑 옆에 있다. 정상에 계시던 부처님은 조용히 푸른 숲속으로 숨으셨고 정상엔 검은 복장들만이 사진을 찍고 또 찍히고 있다.
먼저 올라와 한 시간 가량이나 기다렸을 이달헌군이 반가이 맞아준다. 그의 배낭속에는 플라스틱 병에 든 소주가 한 병 있다. 그 술을 정상에서 정상주로 마시기로 약속했기에 기다려 준 것이다. 술과 산의 달인 이달헌군의 성의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조금 늦게 김주홍군 부부가 힘겹게 정상으로 올라와 합류해서 장광종, 이달헌, 나까지 5명에 의한 정상에서의 작은 파티가 시작되었다. 나는 김문겸군이 선물한 막걸리를 한 병 꺼내었다. 이달헌군은 손수 만든 계란부침을 내놓고 다른 사람들도 배낭 속에서 부시럭거리며 과일과 멸치 등 먹을 것을 내놓는다.
종이잔이지만 술잔을 높이 든다. '경동을 위하여! 분당 수지를 위하여! 99 88! 비로자나 부처님을 위하여!' 싼 술은 입에 달고 고고한 결의는 마음에 아름답다.
그런데 이때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의 동기가 정상석옆에서 나타났다. 구천모군과 이기후군이었다. 둘은 최선을 다해 우리 뒤를 좇아 정상까지 온 것이다. 특히 이기후군은 다리가 문제가 있는지 자꾸 뒤로 쳐지기에 A코스를 오리라곤 생각도 못하였는데 이를 악물고 정상까지 왔다. 마침 술이 동나지 않았기에 이기후군도 소주 몇 모금을 입안에 넣어 마시며 구구팔팔을 외칠 수 있었다.
정상은 이제 잠시나마 우리들의 것이 되었다. 정상등정과 알콜섭취의 상승작용에 얼굴이 불콰해지며 기분이 들뜬 나머지 우리는 큰 소리로 담소하며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물사진을 여러 장 촬영하였다. 또한 멀리 산아래로 이어지는 거침없는 경치도 눈과 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동기들과 즐겁게 정상에서 교우하다 보니 조용히 그분께 기도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그분께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오늘 좋은 날씨 감사드립니다. 저희 경동 동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앞길도 순탄하게 하소서.'
기도할 시간은 짧으나 기도할 제목은 많다. 사실 끝이 없다. 경동, 가족, 그리고 국가를, 가장 높은 곳에 서서 그분께 부탁한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 가까이 되었다. 이제 부지런히 내려갈 일만 남았다. 이번에는 나무계단을 쉽게 내려온다. 계속해서 내려가서 아까 통과했던 B코스 갈림길(입석사길)에 도착하였다. 시각은 오후 4시 19분이다. 우리들이 A코스의 마지막 사람인 것 같다. 산행을 돕고 마지막 사람을 챙기기 위해 동문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장광종군, 김주홍군 부부와 나, 넷은 한 팀이 되어 입석사로 가는 비탈길을 내려가는데 길이 가파르고 돌이 있어 제법 험하다. 구천모군과 이기후군이 우리 뒤를 따른다.
그러나 지난 번 지리산의 세석에서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길도 이미 겪은 우리들(김주홍, 장광종, 나)인지라 그보다는 덜 험한 이 길은 큰 문제가 안된다고 이야기하며 산을 내려온다. 돌부리에 차이면서 계속 길을 내려오니 오후 5시 07분 드디어 입석사이다. 기와집 몇 채가 절집을 구성하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아스팔트가 깔린 길이라서 좀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정표가 씌어있는 나무말뚝을 보니 오른 쪽 200m 위에 마애불이 하나 있다고 한다. 몸도 지쳐 그냥 내려가려는데 독실한 불교도인 김주홍군 어부인께서 들러 가자고 한다. 철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니 절벽위에 서게 되고 탑이 하나 서 있다. 그곳은 경치가 아주 멋진 곳인데 그곳이 바로 입석대 인 것 같았다.(산을 내려온 후에 입석대라는 이름을 들었다.)
입석대는 깎아지른 절벽위에 있는 평평한 테라스인데 중앙에는 날카로운 바위가 서있어 입석대라 부르는 듯 했다. 입석 옆에는 돌을 막쌓은 탑이 하나 있었는데 입석대에서 계곡의 아래 쪽을 내려다 보는 경치가 일품이었다. 마애불은 입석대의 바위에 새겨진 것이 아니고 약간 산속으로 더 간 곳의 바위 앞면에 새겨져 있었다. 1090년에 만들어진 부처라고 설명문에 써있는데 온화한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합장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입석대에서 내려다 보니 우리 뒤를 따라 내려오던 구천모군과 이기후군이 입석사를 통과해서 먼저 내려가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우리가 A코스 가는 사람 중 꼴찌인 것 같다. 서둘러야 하지만 입석사옆의 개울에 발을 담글 시간은 갖기로 했다. 양말을 벗고 깨끗한 물속에 발을 넣었다. 약 5분을 그렇게 썼다. 이제는 서둘러서 내려가야 한다.
급한 아스팔트길을 내려가는데 한 무리의 동문들이 길에 서서 음식점에서 보내온 봉고를 기다리고 있다. 오후 5시 43분이다. 곧 음식점 차가 오고 우리는 그 차에 동승해서 쉽게 산머루가든에 도착하였다.(오후 6시경)
이미 대부분의 동문들이 도착하였고 주지육림의 파티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도 말석에 정좌하여 고기를 뜯고 술을 음복하였다. 각자의 눈에선 높은 산에서 받은 정기가 총총히 빛나고 있었고 산을 등정한 프라이드에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그러니 그들이 마시는 술은 물처럼 쉽게 목을 통과하는 것 같았고 그들의 담화는 치악산의 황골 계곡을 흔드는 듯 했다. 심부름하는 총각은 연두색 빛의 참이슬 병들을 지천으로 내오고 있다. 아- 대경동의 기개앞에 어이없이 쓰러지는 술병들! 병들.
오후 7시 쯤 버스에 타라는 전갈이 왔다. 예정시각인 7시 반보다는 조금 이르게 황골을 출발하여 분당을 향하였다. 오는 길은 교통혼잡으로 지루한 길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루함을 술과 여흥으로 바꾸어 쉽게 통과하려는 의지가 작용하였다. 문막휴게소에 선 다음 버스 안은 술마시기와 자기 소개로 부산해졌다. 각자 마이크를 잡고 앞에 나와 자신을 소개하고 오늘의 의미를 해석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나는 ‘수지에 살면 수지맞을 거’라는 이야기와 분당에 살면 ‘분탕질 할 만큼 재산이 는다.’는 이야길 했다.(잘 했나?)
오후 10시반 버스는 예정대로 분당의 중앙공원에 도착하였다. 동기들과 아쉬운 바이바이 후에 1호차에 탑승, 양재까지 쉽게 올 수 있었고 거기서 지하철에 환승하여 비교적 수월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5월 26일의 ‘경동고 분당용인성남지부 2007 춘계 등산대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렇게 봄날은 또 하루가 지나갔고 이 넘의 길고 긴 그날 얘기도 여기서 그친다. 그렇다고 그날의 이야기가 이 정도 뿐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여기 쓰지 못한 얘기들까지 책으로 다 쓴다면 분당 수지조차도 그 책을 두기에 모자랄 정도로 풍부한 이야기거리가 있었음을 부기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그날의 행사를 위해 수고하고 짐졌던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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