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090315 한북정맥 국망봉 구간 산행기(화악지맥의 대체)

2009. 3. 22. 05:31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3월 15일(토) 기획산행날이다. 동서울터미널에 6시반까지 가야 되니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새벽 4시에 하마부인을 깨워 도시락을 부탁하고 아침신문과 실크로드여행기를 열독, 시간은 금방 지나고 5시 반에 집을 나선다. 포천과 가평쪽으로 오랜만에 가보는 것 같아 마음이 끌리니발걸음도 가벼웁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박현출님이 나와 있고 이명재님은 포장마차에서 식사 중, 내가 3번째이다.

 

회원들이 하나 둘 모이더니 드디어 12명이 다 모였다. 박현출, 이명재, 유한준, 정병기/김의정, 김정호, 오창환, 김남진/김양미, 김주홍/김경옥, 이규성 이렇게 12인데 왕년의 용사들이 보이지 않아 섭섭했다. 우명길대장을 비롯, 서중원회장, 백인목선생, 이기후동지, 장광종사장 등 다 사정이 있어 같이 못 가게 되니 20명 가까이 성황을 이루던 시절이 언제인가 싶다.

 

6시50분에 동서울을 떠난 강원고속 시외버스는 한강변을 따라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우리 팀이 있음에도 사창리행버스는 사람이 정원의 반쯤만 차서 자리는 여유가 있다. 가방을 옆에 두고 혼자 앉아 창밖을 보는데 막 해가 떠오르고 있다. 6시 56분, 좋은 징조이다. 이렇게 일출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붉은 해가 더욱 반갑다.

 

버스는 포천군으로 들어기서 일동에서 10여분을 쉰 다음 이동과 광덕고개를 지나 목적지이자 종점인 강원도 화천의 사창리에 도착한다. 화장실에 잠시 들른 다음 우리는 3대의 택시에 분승하여 오늘의 들머리인 도마치재로 향했다.

 

택시를 타는 데에는 12 이라는 숫자가 매우 편리하다. 4명씩 3대에 타니까 절약도 되고 어느 차에 더 타고 어느 차에 덜 탈 이유도 없이 신속히 진행된다. 택시 미터기가 1만원을 가르칠 때 자로잰 듯 정확히 도마치 고개에 도착했다. 시각이 8시 45분경. 몇일 전 내린 눈으로 등산하려는 길 위에는 눈이 제법 덮여 있다. 찻길의 눈은 다행히도 도로관리기괸에서 치워 놓았기에 차로 이동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제 화악지맥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곳 도마치재가 시작점이 아니고 도마봉이 그 시작점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여기서 1km 가량 북쪽으로 올라가서 한북정맥의 도마봉에 갔다가 다시 도마치재로 내려온 다음 석룡산과 화악산으로 이어 걸어야 한다. 등산을 하기 위해선 눈길을 밟아야 하기에 스패츠를 두르거나 아이젠을 차는 등 대원들이 분주하다. 그러니 나는 스패츠와 아이젠이 배낭 속에 있지만 그것들 없이 우선 견디어 보기로 한다. 장착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우선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해 보려는 심리도 있었다.

 

한북정맥을 향해 가는 길은 눈이 덮혀있는데 능선을 타지 않고 우선은 골짜기로 나있는 임도를 따라서 올라갔다. 눈에 덮힌 길이 거죽은 얼어서 단단하지만 발로 밟으면 그 표면은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눈속으로 발이 빠지게 되니 걷는데 부담이 된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다시 밟으며 가면 약간은 힘이 덜 들게 된다. 오늘의 산행대장 유한준회원이 앞장서서 러셀을 하고 그뒤를 나머지 사람들이 따른다. 3-40분을  힘들게 진행하니 9시 28분 드디어 한북정맥 능선과 만나는 삼거리로 올라갈 수 있었다. 바로 위에 평평한 헬기장이 있어 그 곳에서 후미를 기다린다.

 

도마봉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야하는 한다. 눈길을 오느라 조금 힘들었기에, 한북정맥에 도착했으니 이곳에서 다시 내려가 화악지맥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 생각되는데 박현출씨가 화악지맥은 도마봉에서 시작되니 우선 도마봉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선 도마봉까지 가기로 했다. 그런데 후미에 있는 사람들이 갔다가 다시 올 거면 그냥 있을 터이니 선두에 선 다녀올 사람만 다녀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때 주목할만한 일이 일어났다. 한북정맥엔 이미 사람들이 다니고 있어 밟자욱이 나 있고 멀리 도마봉에도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화악지맥이 눈으로 덮혀 있고 사람들의 발자욱이 없어 새로 러셀을 하며 가려면 꽤 힘들 것임에 틀림없지만  한북정맥은 수월하게 국망봉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이 생각되었다.

 

선두의 몇사람이 논의한 결과 오늘 산행은 한북정맥의 국망봉구간으로 하기로 정하였다. 화악지맥 1구간은 다음 달로 연기하는 결정이다. 곧 무전으로 이 사실을 후미에게 전달하고 도마봉으로 오기를 요청한다. 9시 32분 선두가 도마봉에 도착하였다. 10여분이 지나 후미도 도착, 오늘의 산행계획변경에 대해 유한준대장이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 눈에 덮혀 험하리라고 예상되는 화악지맥을 안 가게 되어 다들 안도하는 표정이다. 이제 이곳 도마봉에서 국망봉까지는 6.09km이다.(이정표) 약 3시간이 소요되리라고 예측하였다.(실제론 30여분 더 소요됨)

 

10시 15분경 대열은 국망봉을 향하여 한 줄로 서서  잔행한다. 멀리 산줄기들을 바라보며 가는 산행이 견딜만 하다. 산행 초기에 눈에 빠지며 올라올 때에는 약간의 긴장도 있었는데 이제는 눈속에 길도 선명하고 경사도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는 경치를 구경하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가끔 나타나는 이정표에 의하면 목적지인 국망봉은 점점 가까워져 오는데 그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국망봉 앞에 신로봉이라는 봉우리가 솟아있기 때문이다.

 

11시 45분쯤 조금 일찍 중식을 위해 자리를 잡았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기에 배고픈 사람들이 여럿일 것 같다. 식사는 언제나 꿀맛이다. 집에서 챙겨온 더덕술을 한잔씩 권했다. 하마부인이 정성들여 담아놓았던 술이다. 다른 등산객들이 옆길로 올라와서 인사를 하고 김양미여사기 권하는 밥과 반찬, 술을 같이 들었다. 산악인들만이 통하는 정이다. 알고보니 송파에서 온 사람들인지라 김양미여사가 더욱 반가워 한다.

 

식사가 끝나고 다시 국망봉을 향하는데 길은 멀다. 이제쯤은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이다. 힘을 내서 느리만 확실하게 한발 한발 딛는 회원들의 발걸음이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그러나 속세를 떠난 높은 전망처에서 경치를 내려다 보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젖는 이 놀음을 누가 재미없다고 하랴? 

 

오후 1시 45분 드디어 오늘의 목표이자 가장 높은 고지인 국망봉에 도착했다. 조금 아쉬운 점은 구름이 끼어 시계가 제한된 점이다. 그래도 1,168m의 고지에 서서 여기까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산행을 한 사실에 만족한다. 그리고는 국망봉이 가진 뜻을 음미해 본다. 國望峰이란 국가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의 요지라는 뜻이렸다. 그곳에 서면 나보다는 우리라는 개념을 생각하며 큰 뜻을 품으라는 의도로 그런 이름이 지어졌나 보다.

 

이곳 포천의 국망봉 말고 소백산에도 국망봉이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물론 일품이다. 그곳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신라가 다 망해갈 무렵 마의태자가 그곳에 올라 서라벌 쪽을 바라 보며 자기의 힘으로도 신라라는 국가가 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눈물지었다하는 이야기이다.

 

이곳 포천의 국망봉엔 궁예가 올라 마의태자처럼 비감에 젖었다든가? 궁예가 세웠던 태봉이라는 나라가 이 근처 철원을 중심으로 발전했었고 후년에 궁예는 왕건에게 나라를 잃었다는 데에서 이곳에서 궁예가 울었다는 사실이 더욱 그럴 듯하다. 그런데 궁예의  국망봉 등산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다. 순전히 나의 창작 아닌가?  대신 근처의 명성산에서 궁예가 울었다는 이야기는 전해내려 오고 있다.

 

어쨌든 국망봉에 힘들게 올랐으니 여기서라도 국가와 국민을 한번 쯤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거창한 주제보다는 국망의 國을 이웃과 주변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자신을 반성해 보았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 속에 또는 행동 속에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또 나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로 긍정적으로 비치는 것인지? 걱정을 해 본다. 또한 그분(신)과의 관계는 정상적인 것인지? 그분이 원하는 길을 내가 가고 있는 것인지?

 

지금은 모든 것이 국망봉을 가린 개스처럼 불분명하다. 그 불분명한 안개와 구름 속에서도 언제나 푸른 하늘을 찾으려는 나의 소망과 노력을 그분께서 기쁘게 받아주시려나? 내가 더 이상 변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고백한다. 이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도록 기도해 볼 뿐이다.

 

국망봉에서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잠시 쉰 다음 오후 2시가 조금 안되어서 하산길에 임했다. 내려가는 길에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이제서야 아이젠을 꺼내어 등산화 밑에 착용했다. 아이젠의 모양이 덧신처럼 되어 있어 등산화의 겉에 고무신처럼 신으면 되게 되어있어 편리하다. 국망봉에서는 봉우리에서 바로 서쪽으로 탈출하는 길이 있고 보통은 그길로 해서 휴양림으로 내려가면 되는데 오늘같이 눈이 쌓인 날은 그 길이 가팔라서 미끄러울 것 같아 다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정맥 능선을 따라서 남쪽의 개이빨산쪽으로 조금 가다가 서쪽으로 탈출하기로 한다. 그래서 남쪽으로 정맥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2시 22분 개이빨산을 0.5km 남겨둔 지점에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서쪽인 이동 쪽으로 길을 틀었다. 그런데 이 길의 경사도도 만만치 않다. 눈이 쌓인 가파른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가끔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도 나온다. 한참을 내려가니 길이 완만해 지더니 다시 가팔라진다. 속도가 나지 않는 길이다.

 

한참을 내려가니 길에서 눈이 안 보이는데 GPS의 고도를 보니 700m 보다 조금 낮은 곳이다. 이쯤에선 기온이 높아 눈이 오지 않았거나 왔더라도 다 녹은 것이다. 조금 성급하지만 아이젠을 벗었다. 그런데 바로 가파른 길을 만나고 김주홍회원이 진흙에 미끄러졌다. 아이젠을 너무 빨리 벗은 것이다. 다행히 다친데는 없는데 옷에 흙이 약간 묻었다.

 

조심조심 미끄러운 곳을 통과하며 능선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데 가끔은 능선길이 봉우리를 만나 치올라가는 경우도 생긴다. 예상보다 시간이 가는 것 같다. 산아래로 내려오니 길에 낙엽이 쌓여있어 부드러우니 마치 양탄자같은 길도 나와 눈길에 지친 다리를 위로해 주기도 한다. 드디어 평지와 연결되는 완만한 임도에 도착했다. 4시 40분. 정말로 고생 끝이다. 곧 나오는 콘크리트 포장길을 천천히 걸어냐려 온다.

 

유대장이 휴대폰으로 부산갈비의 봉고차를 부른다. 펜션마을에 있다고 알려서 차가 오도록 했다. 오늘의 등산은 또 이렇게 끝났다.  

 

 

 

 

 

 

 

 

 

 

 

 

 

 

 

 

 

 

 

 

 

 

 

 

 

 

 

 

 

 

 

 

 

 

 

 

  

출처 : 경동OB산악회
글쓴이 : 24이규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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