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퇴계선생, 매화, 그리고 두향

2009. 9. 2. 11:47MISCE.

잠잘 시간이 와도 잠이 안오는 '울산의 잠못 이루는 밤'입니다. '컴'앞에 앉았습니다.
엊그제 청량산에 다녀오고 나니 불현듯 퇴계선생이 그리워지기에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선생의 사랑얘기가 하나 있기에 여기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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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선생은 일생 매화(梅花)를 사랑하여 매화에 관한 시를 1백수 넘게 지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끈질긴 매화사랑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단양군수 시절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답니다.

퇴계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이 48세 때, 두향의 나이는 방년 18세였습니다.
(지금으로선 되게 거시기 합니다만, 그때는 그럴수도 있었네요.)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뻣뻣했던 퇴계선생이었기에 그녀는 한 동안 사랑을 응답받지 못하고 애태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습니다. 가히 재색을 겸비한 예술인이었지요. 두향의 존재야말로 선생에게는 우울한 일상에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두 사람의 깊은 사랑도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퇴계선생이 경상도 풍기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두향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큰 변고였습니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 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지요.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습니다. 퇴계선생이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하늘의 이치를 아는 선생이건만 두려움을?)


그러자, 두향이 말없이 먹을 갈더니 붓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 한 수를 써내려 갔습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때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별도 슬픈데 넉넉히 사다 놓았던 술도 다 마셔 버렸고, 내일 아침이면 님도 가는데, 앞으로 남은 좋은 세월에 홀로 쓸쓸히 지낼 생각에 두향은 어이없어 하네요. 이렇게 허전할 때에 담배 얘기가 없는 걸 보아서 이때까지 담배는 미처 전래되기 전인 것 같네요.)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보면 안동과 단양이 그리 멀지 않은데 왜 그랬는지 미스테리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행가 가사같은 역설인가요?)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습니다. 퇴계 선생은 평생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습니다.

선생은 두향을 만나지 않았지만 매화를 그녀 보듯 애지중지 했는데,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답니다.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짓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퇴계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는데,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것이었다고 합니다.

"매화에 물 주어라."

선생의 그 말씀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 가득했었다는 증거였습니다.

다음은 퇴계 선생의 시 한편입니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자신을 매화 즉, 두향에 비해 한없이 낮추는 선생...)

퇴계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는데,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지극히 절제되었지만 내부에서 불타는 애틋하고도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그 때 두향이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습니다.

[후기]
이 넘은 울산의 텅빈 아파트에 홀로 앉아 자판을 두드리다가 퇴계선생을 패러디해 봅니다.

“물잔에 술 따라라.”

(담배는 끊은지 오래 되어서 '담배에 불 붙여라' 라고는 안 합니다.)

"내 전생은 공부하는 교수였지. 몇 생애나 닦아야 퇴계가 될까."

(퇴계선생이 이 넘의 멘토Mentor 임을 은근히 자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