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1. 18:02ㆍ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 프롤로그
송백을 따라 종자산을 다녀왔습니다.
시인마뇽님과 산도깨비님, 그리고 천자봉님의 산행기가 이미 올려져 있습니다. 훌륭한 글과 사진들을 대하며, 제가 산행기를 써보았자 사족일 뿐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 기여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날 제가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 올려보기로 합니다.(지겨운 뽀샵Photoshop 신공의 노가다 삽질) 사진만 있으면 싱거우니까 글도 조금 써 넣었지요.
대저 산행기가 다음 산행할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게 되면 좋으련만, 저의 산행기는 그런 실제적 이익을 주는 산행기는 아니고, 액자사진 몇장과 거기 딸린 감상문이다 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산에 가면 현실의 각박한 생각들은 잠시 접어두고 이런 저런 생각에 분주합니다. 그런 생각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따라서 저의 산행기는 흥에 겨워 마시는 술과 같은 것입니다. 없어도 좋지만 마시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술처럼 경치 몇 점을 액자로 포장하고 넋두리 몇 마당을 늘어 놔 봅니다. 문체는 작가 김훈을 흉내냈는데 글을 더 압축하고 줄여야겠지요. 그러다 보니 경어체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과감히 생략하며 드라이하고도 터프하지만 가녀린 마음도 놓지지 않는 그런 글, 어디 없나요?
* 오페라의 유령
새벽 6시 제기동, 밥도 못 먹고 아파트를 어렵게 떠나다. 6시 45분경 어두컴컴한 잠실역 출구에 도착한다. 롯데그룹 소유, ‘샤롯테극장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나 보다.
지하철을 나오는 유리문과 주변에 광고를 도배해 놓았다. 소설을 책으론 읽었지만 공연은 못 보았다, 극장 어딘가에 숨어 미모의 여배우를 사랑하고 감시하는 유령. 맨얼굴로 나타나진 못하고 가면으로만 나타나는 오페라극장에 숨어사는 유령. 설정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광고사진을 카메라로 찰칵하면서 드는 생각.
‘나야말로 송백에 출몰하는 유령’?
유령과 나의 공통점?
1. 보통 때 안 보이고 가끔만 나타난다.
2. 외모 콤플렉스로 가면을 쓰고 있다.
3. 무언가 음모를 꾸미는 중이다.
4. 마음이 여리다.
5. 끈기가 있다.(없다?)
6. 그래서 나 솔직히 말해 송백의 가면이다!
등 등.... 상상하는 재미가.
* 송백 산행
오늘 산행은 A, B, C, D & E 코스가 차려져 있어 뷔페식으로 운영된다나. 먹을 게 너무 많아서 좋다고 시인마뇽은 좋아하는데, 다리 심 없는 사람은 A코스나 B코스는 언감생심, 미래에나 도달하는 彼岸이렸다.
* 종자산
종자산을 오르며 .종자'라는 말에서 70년대에 읽었던 신동엽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나의 생월에'라는 시인데 내가 가지고 있던 옛날 명시집에 수록되어 있었다.(시집은 둘 데가 없어 버렸고 옛날 써 놓은 산행기에 마침 이 시가 남아 있다.)
‘나의 생월에'
3월이 나의 고향이라면
어느 부토의 가슴안에서
시간은 조용히 실눈을 열고 있나
묻히인 그 날의 별의 종자여
수풀의 의지는 저 편 산록에
오늘도 부딪는 잔풍과 맞서 있지만
사람은 여기 시의 밭을 갈면서
잃어버린 종자의 행방을 찾는다.
갈다보면 부서진 옛 기와도 나오리라
물오른 독사의 모가지도 튀어나리라
말속에 풀려오는 고향이 있다면
3월은 살에 스며 열이 되리라
그 날의 비애 희열은 삭아 부토로 변하고
살에 스민 3월의 순한 열이여
잃어버린 종자의 눈을 따수어라’
좋은 시다.
시인마뇽, 그의 산행기에서 말했다. '송백인들은 별의 종자를 산 속에 묻어놓고 매주말에 밟아주며 별의 싹이 눈트이길 기다린다.'고.
다시 읽어 보아도 좋은 시다. (내 생월이 음력 3월이라서인가?)
* 雪山산행
마음은 저 높은 곳을 향하는데 몸은 낮은 곳으로 임하려 하니 큰일이다. 이만한 눈과 만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축복이다. 그런데도 힘들다. 나이 탓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어떤 자가 구라를 풀긴 했었다. 오늘 따라 그 자를 이 눈길에다 데려다 놓고 싶다. 마음의 나이야 물론 젊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 몸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다리가 안 움직여 줘서 지장산까지 못 가고 말았다. 향로봉 오르막길 테라스에서 도도하게 경치를 내려다 보며, 복분자 한잔에 버너에 끓인 어묵을 먹으며 늑장부린 한 시간도 미완성에 일조했다. 포기한 자에게 보이는 여유?
* MT. 칭호를 생각해 보다.
시인마뇽과 요즘 뵙지 못 하는 방울아찌님에게 수여했었다. 오늘은 천자봉님에게 수여하련다. 나무꾼님, 국화님도 받고 싶으려나. 정작 나는 어쩌지. 누가 안 주나? 가면이라도.
* 눈과 러시아
눈길을 가며 눈의 나라, 러시아를 생각했다. 나의 히로인 ‘라라’를 다시 생각했다. 라라같은 히로인이 러시아소설에는 자주 등장한다는 걸 알았다. 시인마뇽에게 빌린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속에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나타샤’,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눈길을 걸으며 많이 생각해 본다. 톨스토이는 역시 틀을 깨지 않는 방정한 주인공들을 좋아한다. 나도 방정하고 싶다. SQUARE!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여러 번 받았던 상장 속에 쓰여진 말이다. 나는 정말 방정했던가?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흰 눈이 쌓인 먼 곳의 아름다운 산들을 바라보며 능선길을 느긋하게 걸어가면 내 마음은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다. 그러나 종자산을 넘고 향로봉을 지나 삼형제봉의 가파른 비알을 오르는 내 몸은 참을 수 없이 무겁다. 이 사람(밀란 쿤데라) 소설의 주인공들은 방정하지 않다. 조금 진실해 보이기는 한다. 그래서 포스트모던이라 한다던가?
* 지장산
지장산은 못 갔다. 그곳엔 힘세고 뜻이 강한 사람들만 갔다. 무리해서 잘못 갔다간 지장보살을 만났을지도 모를 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하데스의 신 ‘지장보살’. 결국 지장산은 눈에 덮혀 접근할 수 없는 ‘마의 산’으로 남고 말았다. 따라서 그 다음 이어지는 잘루목이고개도 잘라 먹었다.
어차피 인생도 미완성, 산행도 미완성인가? 그러다가 큰 그림은 언제 그리냐?
그런데, 그런데, 마음만은 훨훨 날아서 지장산으로 갔다나 뭐라나.
* 에필로그
눈속을 원없이 걸었다. 더 올라갈래야 더 올라갈 수 없기에 포기했다는 편이 옳다. 멀리 솟은 지장산이 정말 ‘마의 산’처럼 보였다. 접근금지의. 마음만 날아서 그리 갔다.
그분께 물었다.
‘저 오늘 잘 했나요? C코스 탔는데.’
‘미완성이다.’
‘언제 완성되나요?’
‘꿈을 버릴 때이니라.’
까칠한 그분.
그래도 난 꿈에 산다나.....
* 에필로그 하나 더
새벽 네시에 일어나 '노가다 신공' 으로 뽀샵을 해서 사진을 자르고 펴고 붙이고 다림질한 다음 테두리 액자를 만들어서 올렸는데,
아뿔사!
액자가 너무 두껍다.
두어시간 투자해서 고쳐 보려는데 회의가 있다고 빨리 학교로 나오랍신다.
'이런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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