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427 보현산 산행기 Mt. Bohyeon

2014. 5. 13. 17:19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4월 27일 대구 서울 합동산행이 보현산과 인접 면봉산에서 실시된다고 하여 즐거이 산행에 동참하고 무사히 산행을 다녀왔다. 대구분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산행준비와 선행답사, 앞풀이(아침식사)와 뒤풀이 연회에 고맙다는 말씀을 한번 더 남긴다.

 

 

 

시인마뇽이 택하고 오르기를 원하였으나 몸이 불편하여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던 보현산, 그 이름이 불교의 보현보살에서 온 것은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보현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먼저 떠올린 것은 고려 때 무신란이 일어난 장소로서 보현원에서 일어난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었다.

 

 

보현원사건(普賢院事件)이라 함은 1170년(의종 24년) 8월 정중부(鄭仲夫) 등의 무신들이 보현원에서 문신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장소의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 사건은 20세기의 대한민국에서 군인들이 모의하여 일으킨 현대판 쿠데타의 원조이고, 보현원은 고려판 지하벙커에 해당되는 곳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인터넷에서 사건에 대해 알아 보면,

 

 

때는 고려말, 의종은 여러 이궁(離宮)이나 정대(亭臺)를 지어놓고 향연을 즐겼는데, 무신천대의 풍조로 이를 호위해야 하는 무신들은 피로와 푸대접에 시달렸다. 1170년 8월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연복정(延福亭)과 흥왕사(興王寺)를 거쳐 보현원에 행차하였는데, 이를 호위하던 대장군 정중부, 이의방(李義方), 이고(李高) 등은 문신 살해를 미리 모의하였다.

 

이 행차 도중에 왕이 신하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무신들에게 씨름을 하게 했는데, 이때 젊은 문신인 기거주(起居注) 한뢰(韓賴)가 씨름에서 진 대장군 이소응(李紹膺)의 뺨을 때리며 모욕하였다. 이 사건으로 무신들은 더욱 격분하였다.

 

 

정중부 등은 보현원에 도착하자 순검군(巡檢軍)을 동원하여 승선(承宣) 임종식(林宗植),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이복기(李復基), 한뢰와 승선 이세통(李世通), 내시 이당주(李唐柱), 어사잡단(御史雜端) 김기신(金起莘), 지후(祗候) 유익겸(柳益謙) 등 문신들과 환관을 살해하였다. 이들은 곧바로 개경으로 돌아가 많은 문신들을 없애고 의종을 폐하는 등 정권을 장악하여 약 1세기에 걸친 무신정권을 세우게 되었다.

 

 

아침 6시반 대구행 KTX에서 성봉현형 옆자리에 앉아서도 보현원사건을 떠올린 나는 혹시 오늘 가는 지역이 보현원이 있던 곳은 아니었나? 하고 흥분했다. 영천과 청송의 경계에 보현산이 있고 그 밑에 보현원이라는 큰 절이 있어 고려말 정권이 쇠약해진 탓에 대구 근처로 왕이 신하들을 데리고 내려왔던 장소가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거기서 국가찬탈의 모의가 실현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성봉현형에게도 우매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오늘 가는 곳이 보현원사건 현장인가요?”

 

 

성형과 나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결과는 나의 와일드한 상상이 결국 꼬리를 내렸다는 이야기. 보현원은 당연히 개성에 있었다.

 

 

왕이 연복정과 흥왕사를 거쳐 보현원에 행차한 것으로 보아 그때 보현원은 개성 일곽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없어진 흥왕사가 개경의 대표적 사찰이기 때문이다.

 

 

보현원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보현산이라는 이름을 가져오게 한 보현보살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알아본다.

 

 

* 보현보살(普賢菩薩)

 

부처님의 행원(行願)을 대변하는 보살. 이 보살은 문수보살(文殊菩薩)과 함께 석가모니불을 협시(脇侍)하는 보살로 유명하다. 문수보살이 여래의 왼편에서 여러 부처님의 지덕(智德)과 체덕(體德)을 맡음에 대하여, 보현보살은 오른쪽에서 이덕(理德)과 정덕(定德)과 행덕(行德)을 맡는다.

 

 

또 문수보살과 함께 일체보살의 으뜸이 되어서 언제나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돕고 널리 선양한다. 또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보현연명보살 또는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형상은 여러 가지로 묘사되나 크게 나누면 흰 코끼리를 탄 모양과 연화대에 앉은 모양의 2종이 있다. 예로부터 이 보살은 코끼리에 탄 형상으로 많이 표현되었고, 연화대에 앉은 모습은 주로 진언밀교(眞言密敎) 계통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화엄경≫에 의하면, 이 보살은 일찍이 비로자나불 밑에서 보살행을 닦았던 보살들의 대표로, 구도자들에게 법계(法界)를 열어 보여주는 사실상의 ≪화엄경≫ 설법사이다.

 

 

그는 일찍이 수천 억의 여래에게 봉사하고, 모든 보살도의 구극에 도달하고, 삼매에 의하여 자재력을 얻고 모든 것을 알며, 여래의 비밀처에 통하여 일체의 불법에 대하여 의문을 끊고, 일체여래의 가지(加持)를 받으며, 일체중생의 근기(根機)를 알며, 일체중생의 신해(信解)와 해탈에의 길을 잘 보여주며, 모든 여래의 가계(家系)를 흥성하게 하는 지혜를 가지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해설하는 데 능통하며, 기타 무량한 덕성을 완비하고 있다.

 

 

그리고 보현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본원력(本願力)에 근거하여 그 가지법(加持法)에 의해서 중생이익의 원을 세워서 수행하는 것을 그 의무로 삼고 있다. 이것을 보현의 행원이라고 하는데, 이를 압축하면 10대원(大願)이 된다.

 

 

① 모든 부처님께 예배·공양하고(禮敬諸佛), ② 모든 부처님을 우러러 찬탄하고(稱讚如來), ③ 모든 부처님을 널리 공양하며(廣修供養), ④ 스스로의 업장을 참회하고(懺悔業障), ⑤ 남의 공덕을 따라서 기뻐하며(隨喜功德), ⑥ 부처님이 설법해 주기를 청하고(請轉法輪), ⑦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기를 청하고(請佛住世), ⑧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常隨佛學), ⑨ 항상 중생들에게 순응하며(恒順衆生), ⑩ 두루 모든 것을 가지고 회향하는 것(普皆廻向)이다.

 

 

이 10대원은 보현보살의 본원이자 모든 구도자들이 이룩하기 위하여 실천해야 하는 조항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널리 신봉되고 있다. 특히 고려 광종 때의 균여(均如)는 <보현십원가 普賢十願歌>를 지어 불교의 대중화를 꾀하기도 하였다.

 

 

특히 ≪보현행원품 普賢行願品≫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포되는 경전 가운데의 하나로서 보현보살을 관하는 중생들에게 보현삼매(普賢三昧)에 몰입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보현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를 관하여 죄장(罪障)을 참회하는 이 삼매는 ≪법화경≫의 유행과 함께 우리 나라의 천태종(天台宗) 등 법화신앙계 종파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보현보살은 관음이나 지장보살처럼 현세이익 또는 내세이익의 측면이 부족하였으므로 신앙으로는 널리 유행하지는 못하였다.

 

 

이상이다. 보현이라는 이름에 집착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다. 보현산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이렇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던 것이다. 보현보살의 덕을 힘입어 무사산행하기를 기원했다. 산행중 보살님을 만난다면 더욱 좋은일이겠고....

 

 

이제부터는 간략히 산행에 대해 보고하고 지도, 구글로 만든자료와 사진을 실어 볼까 한다. 

 

 

아침 8시반경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전날 내려온 범솥말님이 미리 와 있고 대구의 친구들이 반겨준다.

 

 

미니버스에서 여성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탑승, 익산포항 고속도로로 영천을 향했다. 와촌휴게소에서 준비해 온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북영천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나와 인근에서 기다리는 얼음골님을 태우고 버스는 산행시작점인 포항시 북구 죽장면의 두마리를 향한다.

 

첩첩산중에 떨어져 분지로 된 마을인 두마리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45분경이었다.

 

 

오늘 산행은 보현산(普賢山 1,124m)만이 아니고 그옆에 우뚝 솟은 면봉산(眠峰山 1,121m)도 올라야 한다. 두 산을 연결하여 오르기로 했는데 먼저 우리 팀 15인은 면봉산으로 향했다.

 

 

10:49 마을을 지나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마을 주민의 트럭으로 곰내재에 쉽게 도착했다.

11:12 곰내재에서 산행 시작

11:37 샘터도착(물이 거의 없음)

12:21 면봉산 정상

12:30 점심식사 시작

13:50 가지재 도착

15:03 보현산 수리봉 도착

15:22 보현산 정상

15:44 천문대 주차장 도착(산행 끝)

 

영천으로 이동, 한우집에서 식사후 동대구역 8시 10분전 도착. 1시간 동안 대구 임상택님 배려로 간단히 음주후 울산으로 츨발. 보현보살의 음덕으로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여기부터는 그림으로 산행을 설명하고자 한다.(그림은 50장만 허용되어 50장으로 줄였다. 사진에는 촬영시각을 기록하여 이해를 돕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