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310 보길도 격자산 산행기 : 청산에 살어리랏다.

2007. 3. 12. 21:52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조회 : 1   스크랩 : 0   날짜 : 2007.03.12 21:04
 남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게 있어 보길도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바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광도 볼 만할 뿐더러 고산 윤선도 선생이 눌러 사시며 주옥같은 글들을 쓰신 국문학을 빚은 역사의 현장이기에 꼭 가보고 싶은 것이다. 마침 3월 9일 밤에 떠나는 S산악회의 산행을 따라 그 목마름을 달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정을 시간대별로 기록해 본다.


3월 9일

11시 잠실 출발.


3월 10일

0시 47분 서산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한다.

4시 29분 달마산 입구에 도착하여 달마산 산행팀을 내려놓다.

5시 반경 땅끝마을에 도착, 6시에 순두부로 식사.

7시 정각에 떠나는 보길도행 여객선에 승선하다.

7시 38분 중간 기착지인 넙도에 도착.

8시 4분 보길도 바로 앞이 노화도를 거쳐 목적지 청별항에 도착.

8시 25분 보옥리행 버스에 승차하여 섬의 반대편 끝으로 가다.

8시 49분 보옥리 종점에서 버스하차하여.

8시 55분 공룡알 해변에 도착하다.

9시 3분 해변을 본 후 산행을 시작함.

9시 34분 네거리에 도착, 능선길로 우회하다.

10시 6분 누럭바위 도착 후 경관 감상.

10시 19분 최고봉인 격자산 도착하다.

10시 25뷴 전망바위 도착후 요기하며 경관을 보다.

10시 51분 406봉 도착하여 역시 경관 감상.

11시 14분 큰길재 네거리에 도착하여 능선을 버리고 좌회함.

11시 32분 낙서재 도착.

12시 20분 세연정 도착, 정원과 정자 감상.

12시 45분 급하게 걸어서 청별항 부두에 도착하다.

12시 55분 땅끝행 여객선에 예정보다 1시간 먼저 승선.

오후 2시 경 땅끝 도착, 식사.

오후 3시 서울로 출발하다.


시간이 빠듯하여 보길도에 머문 시간은 5시간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짧은 시간을 밀도있게 써서 섬의 끝인 보옥리에서 공룡알 해변을 본 후 격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산행하며 수려한 봉우리들을 통과하고 멀리 다도해를 굽어볼 수 있었다. 육지와는 달리 보길도의 산은 아열대 나무들로 덮여 있고 동백나무도 아주 많았다. 산중의 동백꽃은 이미 다 졌지만 상록수들의 녹색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산밑의 동백은 아직 그 꽃이 볼만 하였다.


산행의 끝에 고산선생의 주택이 있던 곳인 낙서재 유적을 방문하였는데 저택은 사라졌지만 돌담과 병풍바위와 집터가 옛날의 영화를 말해 주는 듯 했다. 나중에 GPS로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곳 낙서재의 위치는 참으로 절묘하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부용동 마을로 가는 북동쪽만 열려 있는 형상으로 참으로 명당이라 할 만하였다.


고산선생은 주택지를 고르는데 있어 현대인처럼 전망이 트인 바닷가로 하지 않고 아늑하게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을 정하였는데 섬의 속성에서 보면 바다는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이기에 오히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아늑한 곳에 집터를 고른 것 같다. 물론 풍수지리로 보더라도 격자산을 주산으로 하고 주위 산들로 좌청룡 우백호를 논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흘러가는 물도 볼 수 있는 곳이다.


낙서재를 본 후에 한 30분 포장도로를 걸어가서 오늘 여정의 핵심인 세연정을 찾았다. 세연정은 바닷가에서 낙서재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낙서재의 대문 역할을 하는 듯 했다. 두 명소가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절로 치면 낙서재가 대웅전이라면 세연정은 일주문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세연정 또한 낙서재처럼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생각해 보건대 이 섬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장소를 찾는 것이 바다가 보이는 장소를 찾는 것보다 어려울 터였다. 여기에 고산의 미학이 있는 듯 했다. 보통 때엔 경치가 좋긴 하나 가끔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위험한 바다를 어쩌면 섬사람들은 잠시나마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다는 보고 싶으면 조금만 걸어 나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것인 즉,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히려 평화를 느꼈을 법하다.


이 정자는 고산선생이 가꾼 별장 정원으로서 그 아름다움이 빼어난 곳으로 역시 듣던 바대로 뛰어난 아름다움이 간직된 곳이었다. 잘 생긴 3칸X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된 정자건물 하나가 중심에 서 있는데 정자의 창문은 모두 들어올려져 있어서 그 공간이 참으로 자유스럽게 느껴졌다.


건물 주변은 암청색 빛깔의 물이 채워진 연못이 둘러싸고 있다. 연못으로는 근처의 시내를 끌어들여 물이 썩지 않도록 하고 커다란 바위들과 수목으로 정원을 꾸며 놓았다. 정자옆의 큰 소나무는 제법 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선생이 지은 오우가의 첫 수를 떠올려 본다.


‘내 버디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머엇 하리.‘


이 정원의 어딘가에 선생이 벗삼은 다섯 자연물(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의 자태가 있을 듯하여 찾아 본다. 달은 밤이면 뜰 것이고 물과 바위와 소나무는 세연정을 구성하는 중요요소임을 한 눈에 알겠는데 대나무는 웬일인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오는 길에 어디서 대를 보긴 하였는데 사진들을 뒤져보아도 찍힌 게 없다.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멀리 떠나온 지금 손쓸 길이 없다.


정자를 한바퀴 돌며 고산선생의 미학을 연구하며 사진을 찍고 났는데 배시간이 다 되어가니 청별항구로 빨리 오라는 회장의 전갈이 왔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름다운 장소를 한 번에 다 감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다음 기회를 엿보기로 한다.  


세연정 일곽은 한마디로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그 옛날 고산선생은 보길도에 자신의 왕국을 구축하고 이곳 세연정에서 음풍영월하며 신선놀음을 하셨으리라. 선생이 말년에 30년이나 머물던 곳에 고작 다섯시간 밖에 머무르지 못하는 초라한 나그네는 선생의 여유가 부럽다.


언제나 나는 양수리같은 곳에 한옥 한 채를 짓고 청산을 논할 것이냐? 갈 길은 아득하고 바닷바람이 갑자기 선뜻하다.


아는 것이 많으면 먹고 싶은 거도 많은 법. 그래도 하루를 바쳐 보길도를 찾은 것은 잘 한 것 같다. 나름대로의 추억과 느낌은 가지고 왔으니 말이다. 구글어스를 이용하여 산행경로를 되밟아 보고 사진을 늘어놓아 본다.

 

서해안고속도로->달마산 입구->땅끝->보길도

 

그 길을 공중에서 보다.

 

바다를 건너고 섬을 돈다.

 

붉은 실선은 버스타고 간 길, 푸른 실선이 걸은 길

 

 

 

 

 

 

정상을 걸었는데 구글어스와 GPS가 매치가 되지 않는다. 능선의 남쪽으로 트랙이 나 있어 불일치를 들어낸다. 이 넘들이 장난을 치는 건가?

 

 

선상에서 보는 일출

 

일출

 

선상에서 땅끝을 보고 바다에 취하다.

 

노화도와 보길도 사이에서.

 

공룡알 해변

 

산행 들머리

 

망월봉

 

능선에서 바라본 뾰족봉(그 옆이 공룡알 해변)

 

누럭바위(훌륭한 전망처이다)

 

격자산과 주변 산세

 

산과 바다

 

격자봉(격자산, 적자봉이라고도 함)

 

산님들

 

낙서재

 

봄날은 이렇게 한가하게 흘러간다.

 

벌판엔 봄, 봄.

 

앞산과 염소막

 

벚나무 한 그루가 봄을 확인. 

 

동백 1

 

동백 2

 

세연정 1

 

세연정 2

 

세연정 3

 

보길도의 나무들

 

섬마을 풍경.

 

-후기-


답사를 다녀와서 산행기도 쓸 겸 보길도의 사진들과 구글어스에서 만든 그림들을 뒤적이며 보길도의 추억을 되씹는다. 실제도 그랬지만 이미지들로 보아도 보길도의 풍광은 역시 시원하고 사람을 끌어당긴다.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인 게 틀림없다. 멋진 경치를 본 후라 기분이 좋아진 이 넘, 그 분을 시험한다.


‘이 땅에 태어나길 잘 했지요. 이렇게 좋은 경치도 보고?’


‘무식한 녀석, 그걸 이제 알았냐?’


‘근데 저에게는 언제 별장을 주십니까?’


‘영생 가지고는 안 되냐?’

.

.

.

.

(그 분은 너무 짜십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