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소설 지리산) 소설을 쓰다.

2007. 11. 16. 09:17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구약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로 야곱이 신과 씨름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 32장(25-32절)을 필요한 만큼만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이스라엘이다.’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 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었다.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야곱이란 누굽니까? 잘먹고 잘 살던 믿음의 아버지들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이름의 원조이자 많은 가족과 재산을 거느리고 잘 나가던 야곱이었습니다. 늘 패기만만했기에 누구와 씨름하더라도 지지 않을 만큼 힘이 세었고 이길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은 마침 그분이 야곱에게 들렀다가 씨름판에 끌려들게 되고 야곱의 힘이 워낙 완강한지라 거의 항복하게 되어 할 수 없이 복을 빌어주고 풀려났다는 믿기 어렵지만 믿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힘이 장사였던 야곱은 그분이 하느님인 줄도 모르고 도전을 해서 거의 다 이겼고, 그분이 놓아달라기에 그 대가로 축복을 강요했고 결국 소원을 이루어 복을 받습니다. 그분이 다녀간 것을 나중에야 감지한 그는 자기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음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낍니다. 구약 어딘가에 써있는 것을 보면 ‘하느님을 직접 보는 자는 죽는다.’ 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외는 성경에도 있는 법입니다. 야곱은 이미 그분께서 선택한 주인공이기에 죽일 수도 없을뿐더러 고의로 그분에게 도전한 것은 아니기에 쉽게 용서받을 수 있었고 결국 덤으로 축복이라는 보너스까지 거머쥐게 되는 것입니다.

10월 25일 밤, 지리산 연하천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저는 혹시 그분과 씨름할 기회는 없을까? 하고 기대했었습니다. 고도가 해발 1,500m 나 되는 높은 지대인지라 하늘에 가까웠고 일상을 떠난 신비스러운 분위기에다 전기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기에 그분이 오시기에 적당한 환경이라고도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물리적인 환경은 열악했었지요.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비에 젖은 옷과 신발들이 내뿜는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눅눅하고도 답답했고, 여기저기서 코를 고는 풀무질소리와 잠꼬대하는 신음소리, 심지어는 이를 가는 소리에 만약 그분이 오셨다면 어쩌면 대피소 밖에서 면담했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전편에서 얘기한대로 그분께서는 직접 제게 오시지 않고 인생이란 녀석을 대신 보내셔서 저와 입씨름하게 하셨고 인생이란 녀석은 저의 인생관에 대해 점잖게 꾸짖었던 것입니다. 인생이란 녀석에게 복을 빌어달라고 부탁하고 싶기도 했지만 ‘제가 제게 복을 빌어준다는 것’ 이 말이 안 되었기에 그냥 보냈었고, 아침이 오자 그분을 다시 만나 볼 계획을 마음 속으로 궁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야곱처럼 그분에게 떼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통보합니다. ‘반야봉에서 만납시다. 아침 9시. 제가 정합니다. 축복할 준비도 하셔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10월 26일 새벽 5시 10분에 연하천 대피소를 떠나 약 20분 후 잠시 쉬며 서쪽의 달을 촬영하였습니다. 거기서 얼마를 가니 600개의 계단을 연속해서 올라가야 하는 삼도봉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언덕을 만나게 됩니다. 오전 8시,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서 무사히 삼도봉에 도착해 보니 반야봉은 지척인데도 구름에 덮여서 그 모습을 들어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삼도봉에서 약 20분을 쉰 다음 백두대간길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반야봉으로 향했습니다. 이 길은 제법 경사가 져 있어 힘이 듭니다.

9시 15분 드디어 반야봉에 도착했습니다. 반야봉의 펑퍼짐한 정상은 평범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분과의 약속시간에서 15분 늦었습니다. 주위엔 안개가 자욱하고 정상석과 주변의 구상나무만이 보일 뿐입니다. 그분이 오셨다면 있을 만한 곳이 짐작되었기에 저는 나무기둥에 밧줄로 매어놓은 울타리를 넘어 안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오셨습니까?’ 저는 보이지 않는 그분께 외쳤습니다.

안개 속에서 그 분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그 분도 떼를 쓰면 오시는구나. 구약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나?)

나 : 어제 인생이란 자는 당신께서 보내셨습니까?
신 : 그렇다.
나 : 무슨 뜻이옵니까?
신 : 너의 흐트러진 자세를 추스르라는 뜻이다.

나 : 자세가 잘 못 되었나요?
신 : 그럼, 한참이다.
나 :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신 : 어제 그가 내 대신 말했다. 물같이 자연스럽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하며 소망을 가지고 살라고.

나 : 도덕 교과선 싫습니다. 전 생긴대로 살렵니다. 진흙탕에 딩굴더라도 개성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명품 와인도 거절 안 할 겁니다.
신 : 개성같은 얘기 한심하구나. 아직도 철이 덜 들었구나. 정말 안 변할래?
나 : 변하고는 싶습니다. 그래도 무슨 대가라도 있어야겠지요.
신 : 영생 가지고는 안 되냐? 영세 때 이미 네게 주었지.

나 : 저보고 죽으라고요? 영생은 죽은 후에야 받는 것인데...
신 : 그렇다면 단기처방을 주마. 보너스로 네게 희망을 주겠다.
나 : 어떤 종류입니까?
신 : 간절히 희망하고 기다리도록 해라. 이루어 주겠다.

나 :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 주셔야 합니다. 오늘 산행은 무사할거죠?
신 : 물론이다.
나 : 같이 온 동료들은 성인인가요? 아주 맘에 듭니다.
신 : 아직은 아니다. 가능성은 다 있다.

나 : 전 부자가 되나요?
신 : 오브 코스다.
나 : 얼마큼입니까?
신 :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부자.

나 : 안분지족? 공자님 식입니까?
신 : 일체유심조니라.
나 : 불자의 진리라? 서있는 이 땅이 누구의 땅인지 알겠습니다.
신 : 누구의 땅?

나 : 반야의 땅, 부다의 땅이 아닌가요?
신 : 알고보면 다 비슷한 이야기이다. 진리는 서로 통한다.
나 : 아참, 근데 반야용선은 오늘 안 떠납니까?
신 : 15분 전에 이미 떠났다. 그러나 내년에도 또 온다. 후년에도. 그 담에도. 그때도 오거라.

나 : 그땐 타야 합니까?
신 : 타기 싫으냐?
나 : 꼭 타야만 구원 받나요?
너 : 타기 싫으면 안 타도 그만이다. 구원은 네 속에 있고 가까운 곳에 있다.

퍼뜩 그분이 가시기 전, 이참에 씨름을 해서 그분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 요 근처에 복권 파는 데는 없나요?
신 : 왜 그러느냐? 이 산속엔 물론 없지.
나 : 일등 번호 알고 계시죠. 번호를 불러 주십시오. 적겠습니다.(난 노트와 펜을 꺼낸다.)
신 : 이 놈이! 언제부터 네가 그런 속물이 되었느냐?
나 : 당신을 알고 부텁니다.
신 : 이 노옴!(그분이 스틱으로 나를 후려치는 순간 용케도 나는 그 스틱을 오른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손이 뻐근했다.)

나 : 정말 이러시깁니까? 헛된 희망보단 현금이 낫지 않겠습니까?
신 : 뼛속까지 버렸구나. 그래도 넌 내가 선택한 놈이니 어쩔 수도 없고...
나 : 복권 번호 모르시면 제게 축복이나 해 주십시오. 나머지 세 사람에게도.
신 : 이름을 대라.
나 : 이규성, 우명길, 서중원, 정병기 이옵니다.
신 : 내가 너희에게 복을 내려 주겠다. 그리고 보너스로 너희들 가슴 속에 희망을 심어주마.

그분의 축복을 받고서야 저는 그분을 놓아 드렸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알고도 덤볐으니 저는 야곱보다도 더 무모한 자였나 봅니다. 그분이 축복한 후 제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세례명인 대건 안드레아로.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건, 전 언제나 희망에 들떠 있다는 야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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