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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너머로...."
볼 것 많고 먹을 것 많은 남도로의 여행은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겠다. 우리나라에도 독일의 유명한 로맨틱가도처럼 로맨틱한 길이 있다면 바로 남도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전주로 해서 광주로 해서 목포로? 그렇게 큰 도시만을 가는게 아니라 진안 담양 강진 영암 이라면 더욱 낭만적일 것은 불문가지....
오랜만에 동기들과 함께 1박2일의 남도여행을 할 수 있었다. 서울을 떠나 진안의 마이산을 거쳐 담양의 소쇄원을 감상하고 강진으로 가서 남도 정식을 맛본 다음, 영암의 월출산 근처 민박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은 월출산을 산행하였다. 산행에 참여하지 않은 동기와 부인들은 남도출신이며 광주에 거주하는 박혁 동기의 안내로 강진의 백련사와 다산초당 등 남도 명소를 견학할 수 있었다.
2009년 10월 31일 토요일 아침, 설레는 마음에 일찍 잠이 깨어 옆지기인 하마부인을 대동하고 잠실운동장역에서 전철을 내렸다. 차멀미를 하기에 앞좌석에 앉기를 원하는 하마부인에게 내가 그랬다. 앞자리에 앉는 비결은 남보다 빨리 가는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한시간전 집을 떠났고 운동장역의 7번 출구를 나가니 출발시간인 7시반에서 10분 이상이나 남았다.
이번 여행의 주최자이자 동산회 회장인 이달헌 동기가 와 있었고, 아직 한두명의 친구밖에 더 오지 않았으니 앞자리 공략은 이렇게 해서 성공. 동기들이 차차 모여들면서 주변엔 이야기 꽃이 피어 난다. 호주에서 장희재동기가 부인과 같이 나타났고 자주 못보던 오창선동기가 오고, 특기할 일은 미국에서 온 주원국동기와 임길성 동기가 나타난 것이다. 모두에게 반갑게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7시 40분쯤 전세버스는 목적지인 남도를 향해 출발했다. 수지 죽전에 사는 몇 사람은 경부선의 죽전정류소에서 픽업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얼마 후 도착한 약속장소에서 5-6 사람을 더 태우고 버스는 고고 싱...
차가 제법 많은 고속도로를 헤치며 남진하는데 중론이 가까운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자는 거다. 배가 고프다는 야그. 그래서 버스는 안성휴게소에서 20분간을 머물게 되고 이넘도 우동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램. 살의 공포에 시달리는 하마부인은 식욕을 참곘다고 하며 패스.
남행하는 버스는 천안에서 천안-논산 민자고속도로로 접어들고 목적지인 전라북도 진안의 마이산을 향해 달려 간다. 무슨 휴게소인가에서 다시 한번 쉬고 전주근처에서 고속도로를 나온 버스는 한두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이산 남쪽 주차장을 찾아간다.
나는 버스에 앉아 옆자리의 고형봉동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창밖의 경치도 구경하며 재미있게 여행하는데 내옆의 하마부인은 계속 잠에 취해서 간다. 새벽까지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느라고 잠을 별로 못 잤다고 한다. 오랜만에 못다한 이야기를(그런게 있다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아쉽기만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숙면의 자유를 주어야겠지.
(그날 일행 중 가장 짭잘한 여행을 즐긴 사람은 어쩌면 하마부인이었을 것. 자기를 지켜주는 주인 옆에서 좋아하는 잠을 실컷 잘 수 있었으니.)
길을 찾느라 버스가 한 두번의 유턴을 더 한 다음, 서울을 떠난지 꼭 4시간이 지난 11시 40분 드디어 마이산입구의 남쪽 주차장에 도착했다. 모두들 내려서 산행준비를 한다. 마이산은 산행준비래야 별로 할 필요가 없는 산이었다. 왜냐하면 이쪽 남부주차장에서 저쪽 진안읍쪽에 있는 북부 주차장으로 넘어가는 언덕을 넘는 길만이 통행할 수 있고 본격적인 산행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몇년전 왔을 때에는 암마이산으로는 산행길이 열려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닫혀 있으니 답답한 일이었다. 물론 언덕을 넘어 두 주차장을 연결하는 통로에 이갑용처사가 쌓은 돌탑 80여기와 사찰 세 곳(금당사, 탑사 및 은수사)은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가는 데까지는 가보기 위해 천천히 산쪽을 향해 걸었다.
마이산의 초입엔 단풍나무 두그루가 정말 고운 빛으로 붉게 물들고 있어 그중 한그루를 카메라에 넣어 본다. 서서히 높아지는 길은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약간의 흠이었다.
12시 35분경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숫마이산 쪽에 있는 화엄굴의 바로 밑에 도착했다. 화엄굴도 낙석의 우려로 접근이 금지되어 있었다. 아쉽지만 단체사진, 개인사진 및 경치사진을 찍은 다음 천천히 내려올 차례이다.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동료들과 천천히 내려왔다.
마이산을 구성하는 돌은 마치 자갈에 시멘트를 부어 만든 콘크리트처럼 보이는데 수성암의 일종인 담수성 역암으로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두 봉우리로 된 산을 가까이서 보면 군데군데 크고 작은 구멍들이 벌집같이 뚫려 있기도 하다.
짧은 산행이 끝나고 중식시간인지라 일행은 산밑의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구운 돼지갈비와 막걸리가 나온 다음 산채비빔밥을 먹고나니 포식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남도길은 먹는 길인지라 초장부터 음식이 입에 달라 붙는 것 같다.
먹고 났으니 이제 길을 떠나야한다. 버스가 마이산 찾느라 버벅거리고 점심시간도 넉넉히 취한 터라 또 하나의 목적지인 전남 담양에 있다는 죽림원은 생략하고 같은 고당 담양의 소쇄원으로 직행하기로 이달헌회장이 결정.
오후 4시 40분경, 소쇄원에 도착하였다. 소쇄원은 조선시대 이곳에 살던 양산보라는 선비가 만든 정원으로 건축인들에게는 아주 잘 알려진 곳이라서 나는 진작에 몇번 방문한 곳이다. 옛날과 다른 점은 천원(단체는 800원)의 입장료를 받는 점이었다.
대나무 숲을 양옆으로 두고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정원이 나온다. 이 정원의 핵심은 정원 가운데를 동서로 흐르는 계류(시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을 정원에 끌어들여 옆길로 작은 폭포를 만들고(이번엔 물이 부족해서인지 안보임) 정원 한가운데 지어 놓은 작은 정자(광풍정)에 앉아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과 계류에 흐르는 물을 눈과 귀로 감상하는 것이 디자인의 키포인트인 것 같다.
물론 달이 뜨는 저녁이면 광풍각에서 약간 떨어져서 뒷쪽 언덕위에 지어놓은 제월당(역시 정자건물)의 마루에 앉아 달을 감상하는 것 또한 중요한 행위였을 것이다. 중심건물인 광풍각은 1칸짜리 정자로서 규모는 작지만 툇마루로 면적을 넓혔고 창문은 모두 들어열개로 하여 날개처럼 들어올려져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었기에 동기들이 앉아서 포즈를 취하는 중요장소가 되었다.
또한 정원을 살펴보면 보면 넓지는 않지만 소나무와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이 바위, 흙과 조화를 이루며 오밀조밀하게 꾸며져 있어 보는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하마부인은 처음으로 보는 멋진 우리의 전통정원에 퍽 끌리는 듯 했다.
사실 요번에 하마부인이 나를 따라서 남도기행에 기꺼이 참여한 데에는 이곳 담양의 소쇄원과 강진의 다산초당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 둘은 그녀가 늘 가고 싶은 리스트의 윗쪽에 있던 장소들이었기 때문이다. 내일 다산초당만 보면 그미의 소원은 만땅으로 성취될 것 같다.(앞선 이야기이지만 물론 다산초당도 관람하였슴.)
정원을 한참 더 감상하고 싶었지만 또 갈길이 먼지라 회장이 재촉한다. 어섯시 반까지는 강진의 한정식집에 도착해야 한단다. 이미 거한 한정식을 예약해 놓았고 우리 친구인 박혁 군이 거기서 기다린다고 한다. 그래서 5시 10분쯤 모두 버스에 탑승하고 다음 목적지인 강진으로 향했다.
강진을 가기 위해서는 우선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해서 광주까지 간 다음 고속도로를 나와서 국도로 나주로 간 다음 영산포와 영암을 거쳐야 한다. 제법 먼길인지라 서둘러야 했다. 그럭저럭 영암까지는 잘 갔는데 강진을 코앞에 두고 버스가 한참을 헤매었다. 기사분이 내비(내비게이션)를 너무 믿었나 보다. 어쨌든 몇번의 유턴 끝에 강진에 도착한 시각은 약 6시 50분인 것으로 기억된다.
거기서 동기인 박혁군을 만났다. 박혁 동기는 제가 졸업후 처음 만나보는 동기로 사실상 처음 인사를 한 처지였다. 이곳 남도의 중심인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가 구사하는 오리지널 호남사투리가 구수하였고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만한 인재였다.
우선 박혁 동기가 소개하고 예약하고 흥정(?)한 한정식집이 아주 좋았다. 홍어를 주제로 한 삼합, 갈비, 불고기, 잡채, 회, 나물 등 남도의 풍미를 뽑내는 음식들이 푸짐하게 올라왔고 잎새주였던가 이 고장의 소주가 잔을 가득가득 채웠다. 나는 친구들이 주는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서 꿀꺽꿀꺽 목으로 넘겼다. 온갖 시름을 잊고 즐거운 환담속에 마시는 술은 취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부인들은 따로 상을 차려 저쪽에 있었기에 하마부인이 절식을 했는지 포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도정식의 맛에 흠뻑 취했으리라 상상해 본다. 먹고 마시는 동안 멀리서 온 친구들이 일어나서 인사말과 건배제의를 하였는데 나도 멀리 울산에서 왔다 하여 한마디 인사말과 건배제의을 하게 해 주었다.
이렇게 풍성한 만찬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영암땅으로 와야 했다. 민박을 정한 곳이 월출산에서 가까운 영암땅이기 때문이다. 또 다시 기사께서 한두번의 시행착오를 한 끝에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였는데 시골마을에 있는 펜션같은 곳인데 몇채의 건물이 넓은 대지에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방을 네개 빌렸는데 작은 방이 세개, 큰방이 하나였다.
작은방 두개에 여성분들 9분을 쉬게하고 나머지 작은 방 하나는 급조된 고우회(고돌이를 좋아하는 벗들의 모임) 회원들(약 7-8인)에게 할애하고 큰방에는 나머지 남성들(12-13인)을 수용하기로 하였다. 전체 29명이기에 나온 산수이다.
방에다 짐을 푼 다음 자연스럽게 마당에 있는 평상으로 남성들 모두가 모였고 회장이 준비한 막걸리가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이야기꽃과 술꽃이 남도의 캄캄한 밤을 밝게 빛나게 했다. 다들 고양된 목소리로 왁자지껄 정담을 나누다가 열한시인지 열두시인지 잠자리를 찾아들었다.
나는 고우회가 아닌지라 당연히 큰방으로 들었다.(하마부인에게 굿나잇 인사라도 해주고 싶은데 아마도 이미 잠든 것 같다. 늘 잘 주무시니까.) 황의천동기와 장용진동기가 내 주변에서 누운게 보였다. 불을 끄고 보니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되는데 누군가 들어오더니 덮고 있던 얇은 이불을 두 채나 벗겨 간다. 답답해서 밖의 평상(지붕은 있음)에서 자겠다나. 그래서 나는 졸지에 이불도 없이 자게 되었다.
초저녁부터 마신 술이 제법 되었기에 몸에선 열이 나고 해서 겉옷을 벗고 누었더니 초장엔 쉽게 잠들었는데 추위에 깨어보니 새벽 세시 밖에 안되었다. 비가 좀 온 듯한데 밖의 날씨도 꾸물꾸물하여 내일 산행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큰방의 여기저기에 쓰러져 자고 있는 친구들의 코고는 소리가 제법 다정하게 들려오는데 그 소리 때문에 다시 잠이 들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비몽사몽간에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나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평소의 습관처럼 옆으로 팔을 뻗어서 손으로 더듬어 본다. 옆지기를 찾는 것이다. 따뜻한 손이 하나 만져진다. 그런데 그 손이 두꺼비 만하게 컸다. 하마부인의 자그마한 손이 아닌 걸 금방 알아채고 나는 급히 팔을 오무렸다. 대각국사로 통하는 황의천 동기의 손이었나 보다.
한참 후 누군가 화장실에 가려는지 문을 열고 나갔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 온다. 그후 또 한사람이 같은 식으로 어둠속에서 조심스레 내 다리를 더듬으며 타고 넘더니 밖으로 나간다.
나도 이제 요의를 느낀지라 누워만 있을 수가 없다.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네시가 좀 넘었다. 밖으로 나가 화장실을 다녀왔다. 이제는 추워서 잠을 청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옆의 이불속으로 내 다리를 집어넣을 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그곳에는 약간의 공간이 있어 추위는 면하게 되고 기상시간인 6시를 기다린다.
아침 7시에 민박집에서 끓인 닭죽으로 식사를 하고 8시에 산행들머리인 천황사 입구로 떠났다. 그런데 다시 버스가 유턴하는 착오가 발생한다. 그래서 9시 25분이 되어서야 월출산 입구(천황사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월출산을 산행한 이야기는 다른 꼭지에서 사진 위주로 다루었기에 여기서는 생략함. 산행인원은 전체인원 29명 중 15명이었기에 나머지 14사람은 버스를 이용하여 강진주변의 명소를 탐방하기로 했다. 물론 이곳 사정을 잘 아는 박혁 동기가 안내를 맡았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백련사와 다산초당 등을 잘 둘러 보았다고 한다.
부부가 같이 여행한 것 또한 오래 전 일인데 동기모임 산악회에서 남도 산행 겸 여행을 준비해 주어서 잘 다녀 온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