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판타지 수필 - 무무무영영탑

2010. 10. 4. 18:13MISCE.

[한 번 더 양해를 구하며 알려 드립니다. 이 글도 경동24기 홈페이지 '여행이야기'란에 올린 것을 그대로 퍼 온 것입니다. 원작자 역시 저입니다. 판타지 수필이라 하였으니 생각이 멋대로 춤추었다는 야그입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동 24기 가을 포항-경주여행에 저는 코스의 반만 참석하였지만 동문들의 환대로 구경 잘 하고 울산으로 '백'하였습니다. 1000년 동안이나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가면 여러 가지 옛이야기들이 생각나고 그 이야기들은 다시 우리의 머릿속에서 와일드한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게 됩니다. 울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고 비몽사몽에 깨어나 있는 새벽, 오늘은 무영탑 이야기를 해 보렵니다. 매우 슬픈 사랑 야그입니다.

포항 -경주여행 둘째날, 우리들은 불국사 대웅전 앞의 두 탑을 구경했습니다. 동쪽에 있는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탑이 다보탑이었고, 그 서쪽에 서있는 수수하고 남성적인 탑이 석가탑임은 다들 아실터이고. 이 탑 이름이 무영탑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는 뜻이지요. 그림자 없는 탑이라 신기하지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천년도 더 전, 신라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은 불국사 대웅전앞에 멋진 탑을 짓기 위해 널리 인재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기에 응모한 이가 백제 땅의 석공 아사달이었지요. 그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는데 마침 갓 결혼한 새신랑이었다고 하네요. 김대성의 부름을 받은 그는 갓 결혼한 아름다운 아내 아사녀를 백제 땅에 두고 천리가 넘는 먼 곳인 이곳 서라벌에 와서 탑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아사달은 신혼의 달콤함을 막 지나서 무르익어 가는 아사녀에 대한 그리움도 참고 오로지 탑의 조성에만 전념하였는데, 백제 땅에 홀로 남은 아사녀는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천리도 넘는 길을 걸어서 서라벌까지 와서 불국사의 공사현장까지 찾아 갑니다.

불국사 신축현장에 도착한 그녀는 장막이 쳐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안쪽에서 일하고 있는 아사달을 면회하기를 신청했지만 탑이 다 지어지기 전에 여인은 경내에 들일 수 없으며 설사 들일 수 있더라도 지금은 일이 바빠서 면회가 안 된다고 거절을 당합니다. 울면서 돌아가가기를 거부하는 그녀를 안 되었다고 생각한 경비대장은 그녀에게 하나의 제안을 합니다. 여기서 십리쯤 서쪽에 떨어져 있는 영지(影地)를 가르쳐 주며, 탑이 완성되면 그 연못에 탑의 그림자가 비칠 것이며, 탑이 완성되면 당신의 남편도 곧 당신에게 돌아갈 것이니 그리로 가서 기다리라고 한참이나 달래서 그녀를 돌려 보냅니다.

지엄한 국가의 법인지라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서쪽 10리의 영지로 돌아온 아사녀는 연못 옆에 텐트를 치고 이제나 저제나 완성된 탑의 그림자가 비치길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고대하던 탑의 그림자는 비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인물이 잘 생긴 아사달이 마침 다보탑 준공식에 왔던 고관의 딸인 구슬아기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만 들려 왔습니다.

아사달이 그리워 실성할 지경인 아사녀는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웠습니다. 그녀는 그날도 우두커니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연못 속에 그리운 아사달의 모습이 비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만 그 모습에 홀려 연못 속으로 뛰어들고 말았습니다. 오호 통재라!

이러한 저간 사정도 모르는 아사달은 일구월심 탑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 예술혼과 상상력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어 석가탑이라는 마스터피스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구슬아기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은 헛소문에 불과한 것이, 한 시도 석가탑조영이라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은 그에게 있어서 틈을 내어 여인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는다는 것이 사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속성을 그대로 타고난 사람이었습니다.

두둑한 보수를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그는 불국사 경비대장이 일러준 대로 아사녀를 만나기 위해 허위단신 영지로 달려갔습니다. 그랬더니 어땠습니까? 오, 마이 갓! 아사녀는 비단 신발 한 켤레만을 연못가에 남겨둔 채 이미 불귀의 객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슬픔이 어땠을까요? 예술의 완성 때문에 지어미를 지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그는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며칠 전 현장에서 예술혼에 불붙어 있을 때만 하여도 석가탑이라는 걸작을 완성하기만 하면 여인 따윈 아무 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막상 아사녀의 죽음을 당하고 보니 여인을 위해선 석가탑 같은 건 몇 개라도 물속에 집어던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결국 그도 연못에 비치는 아사녀의 환영을 보게 되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세상을 버린다는 비극적 스토리입니다. 이리하여 석가탑은 백제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와의 애달픈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탑으로 무영탑이라고 불렸던 것입니다.


영지에 비치지 않는 석가탑은 ‘그림자가 없다’ 해서 무영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였는데, 그후 천년도 더 흘러 21세기인 현재에, ‘역사는 반복된다’는 서양속담 하나가 떠오를 정도의 슬픈 이야기가 또 하나 존재한다는 겁니다.

지금부터 약 60년전 아사달과 아사녀는 20세기의 한국 땅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넘과 저의 아내를 말함이지요. 태어났을 때 저의 이름은 서동, 아내의 이름은 선화공주였습니다. 둘은 중부지방의 모처에서 각각 태어났다가 스물의 중간 쯤 서로 눈이 맞아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곳 서라벌 가까운 곳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그때가 1980년이니까 벌써 30년전 야그네요.

서동이란 놈이 선화공주를 꼬신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잘 쓰여 있으니 다들 아실 터이니 생략하고. 지극히 높은 자리에 있던 공주를 제가 모시느라 혼 좀 났지요.(여보, 지금 내 야그 사실은 반대라는 거 자기도 알지?) 그럼 제가 왜 이 남쪽으로 오게 되었느냐구요? 국가의 동량이 될 인재를 키운다는 대의를 위해서였지요.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청어람(靑於藍)’이라는 야그가 있지요. 무슨 말씀이냐구요? 왜 이러십니까? 아마추어처럼. 쪽이란 풀에서 나온 청색물감이란 놈이 원래의 쪽보다도 더 시퍼렇더라는 야그지요.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나는 바담 풍해도 너는 바람 풍해라.’

이런 야그가 다 스승보다 나은 제자를 길러 그 제자들이 사회를 받치는 기둥이 될 때 가르치는 이의 보람이 아주 크더라 하는 야그이지요. 오죽하면 맹자께서 인생삼락의 하나를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겠습니까?

위와 같이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저의 신라땅에서의 생활이 그러저러 쏜살같이 흘러, 20년이나 화살같이 흘렀습니다. 영광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고 넘어지기도 했고 겨우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저의 마이웨이였지요. 그러는 중, 행여 천사같은 선화공주가 하늘나라로 날아올라가지 못하도록 저는 자녀를 셋이나 생산했습니다. 그러던 10년전 어느날 밤, 아내가 갑자기 정색하더니 제게 묻는 겁니다.

‘서방님, 당신의 석가탑은 언제나 완성되는 겁니까? 여기 온지도 20년. 당신의 청춘어람은 보이지가 않는군요’ (그녀는 여기서 이미 20년이나 청춘을 억울하게 바쳐서 인지, 청출어람을 청춘어람으로 잘못 알았나 봅니다. 여보, 미안혀.)

사실은 제가 이곳에 와서 무언가 변화를 일으키고 제자들을 잘 가르침은 물론 제 자신도 국가의 큰 인물이 되리라고 호언장담했었기에 그녀의 뜬금없지만 의도된 질문은 제게 큰 짐이 되었습니다.

그날밤 깊은 생각을 마친 저는 여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공기연장을 요청했습니다.
‘선화! 기필코 나의 석가탑을 완성하리다. 당신은 애들 데리고 서울로 가서 계시오. 이 학교를 10년안에 전국 10위 안에 꼽히는 명문으로 올려 놓겠소. 나 이제 당신과 식구도 없으니 밤이고 낮이고 공부 밖에 할 것이 없소. 작심하고 노력하겠소.’

그리하여 그날 밤 저의 멋진 설득에 그녀는 동의를 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서 성스러운 제사터라는 제기동에 자리잡게 되었고 저는 주말부부로 서울을 오르내리며 낮이나 밤이나 이 학교의 발전을 위해 애를 썼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초지일관하겠다던 이넘의 의지는 아침이슬에 옷 젖듯이 차차 약해져 갔습니다. 옆에 하마부인도 없겠다 긴긴 저녁에 공부가 되었겠습니까? ‘술은 가깝고 글은 멀다’는 말이 있을 것 같네요. 학교에 오기 전 국내와 해외 건설현장에 굴러다니던 습성이 어느 샌가 살아나서 남들 못지않게 노략질과 주지육림에 물들어 가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또한 그 동안 산이 좋은 건 알아서 100대명산이다, 백두대간이다 뻔질나게 오르내리다 보니 공부할 시간이 적어졌다는 야그지요.

아참, 하마부인이란 칭호 말인가요? 설명 드리지요. 저는 아내의 이름을 선화공주에서 하마부인으로 바꿨습니다. 40이 넘어가며 통통해져 가는 그녀의 모습에 대한 간접적인 압박이기도 하지만, 원체 아름다운 그녀를 멀리 떼어 놓고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막 지은 이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왜 귀한 애를 ‘돼지’니 ‘개똥이’니 하고 부르는 그런 습관 말입니다. 저는 제게도 별명을 하나 지어서 약간 하이칼라한 멋을 낸다고 ‘하이맛’(Heimat)이라는, 고향을 뜻하는 독일어를 하나. 이름으로 붙여서 하마부인 몰래 사이버 공간을 휘젓고 다녔답니다.

무뤂을 꿇고 하마부인 앞에서 약속한 그 후, 저는 늘 조마조마하게 캥기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이 학교를 발전시킬 구상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명에 늘 주눅들어 있었던 거지요. 자나깨나 아사달처럼 치열한 예술정신을 추구해야 했거늘, 예술작업보다는 놀이에 빠져 힘든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마시는 한잔술을 너무 탐했나 봅니다.

꿈은 멀고 현실은 가까웠습니다. 남한테 뒤질세라 산행과 산해진미와 가라오케에 빠져 세월을 보내며, 백두대간과 100 명산을 자기 집 뒤뜰처럼 드나드니 교육과 연구에는 쌓인 게 없으니 우스개소리와 허튼 소리만 늘었소이다. 그런데 약속한 10년은 왜 이리도 빨리 가는 겁니까? 올해 벌써 10년이 넘어가네요.

하마부인에게 솔직한 고백편지라도 보내야할 시점이 온 것입니다. 왜 여러분도 아시는 그런 솔직담백한 고백편지 있잖습니까? 군대에 간 돌쇠가 시골에 있는 영자에게 고백편지를 보내는 그런 것 말입니다.
‘영자야, 사실 이 오빠는 장교가 아니란다. 기라면 기고 까라면 까는 졸병이란다.’

저는 잠 못 이루는 밤에 하마부인을 향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약속한 10년이 되었구려. 이제 여길 떠날 때도 다 되어 가는 가 본데 사실은, 사실은…….' 저는 써내려가던 편지를 찢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차마 나의 탑을 완성하지 못 했다고 고백을 하기엔 저의 알량한 자존심이 그걸 막고 있었던 겁니다. 저의 청춘어람을 논하기에 청춘은커녕 이빨 빠진 독거노인에 불과한 초라한 현실을 직시하며 눈물을 훔쳐야 했습니다.

최근 중앙일보는 전국대학을 평가하고 그들의 전국 랭킹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주말인지라 KTX를 타고 서울로 가며 그 기사를 자세히 읽은 저는 실망감에 얼굴에 근심을 띠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올 것이 온 것 같았습니다. 저를 옥죄어 오는 불안감에 6호선 전철 안에서도 저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집에 도착하여 아파트현관에 설치된 번호 자물쇠의 번호판에서 네 개의 숫자를 겨우 기억을 떠올려 누르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하마부인, 내가 왔소.’

그러나 집은 텅 비어 있었고 아무도 없는데 그녀의 옷장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걸려 있던 날개옷이 없어진 걸 저는 금방 알아챘습니다. 그녀가 떠난 것입니다. 애들도 이제 다 컸겠다! 애들 없이도 떠날 수 있다는 걸 저는 왜 눈치 못 챘을까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침대 옆 탁자위에 하얀 봉투가 하나 열린 채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알맹이를 꺼내들었습니다. 거기 쓰여 있기를,
‘서방님, 당신의 석가탑은 그림자가 없다는 무영탑이네요. 전국 20등도 못했군요. 그리고 그 주제에 구슬아기 스캔들은 무슨 일입니까? 저는 먼저 갑니다.’

거실 탁자 위에는 중앙일보 9월28일자 서울판이 놓여 있었는데 우리 대학교는 10위 안의 명문은커녕 20위 안에도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올 것이 왔고 밝혀질 것이 밝혀진 겁니다.
‘여보, 아직 몰라, 내년 조선일보 발표를 기다려 봐야 돼……’

그러나 그녀는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편지를 마저 읽었습니다.
‘가톨릭봉쇄수도회인 카르투지오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가 되겠습니다. 봉쇄수도원이니 찾아도 소용없을 거예요. 알프스산맥 1300m 고지라니 덥진 않을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수유리인지 부산인지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그런 수도원이 있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설마 그런 시설 중 알프스에 있는 카르투지오가 하마부인을 삼킬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망연자실한 채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신발 한 켤레 대신 묵주 하나를 남겨두고 저의 천사, 저의 선화공주는 속세를 아주 버리고 출가한 것이었습니다.
(덥지 않은 곳이라니 조금 위안은 되지만 말입니다.)
'여보, 오해요, 오해. 구슬아기 건은 루머였소,

낮엔 더운 바람, 밤엔 찬바람이 부는 계절입니다. 그래도 그 바람은 가을바람인 게 맞지요?

남쪽의 어느 대학교 교정, 시꺼먼 본관 뒷편 숲. 일진광풍에 진저리치는 것처럼 대숲이 흔들립니다. 그리고선 한줄기 가을바람 속에 동기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하마부인을 구출하라. 그럴 순 없다.'

그런데 또 다른 동기의 목소리가 저를 비난하네요.(SF의 홍성모군인가 봅니다.)
'가정주부가 무신 수녀가 되냐? 너 그렇게 구라치다가 짤릴라!'

(끝)

출처 : 경동OB산악회
글쓴이 : 24이규성 원글보기
메모 : I wrote a fantasy Essay in Korean. The subject is 'A tower with no ref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