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12. 16:51ㆍ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어메이징 그레이스 하우 스윗 더 사운드...'
애잔하고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서러운 곡조가 제 마음속을 흐릅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중략)
(나같은 쓰레기를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나 한때 버려졌으나 이제 그분의 눈에 띄였네.
나 눈먼자였으나 이젠 볼 수 있다네.)
"놀라운 은총"은 한때 방탕한 노예상인이었던 죤 뉴턴(1725-1807)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분의 위대한 자비를 찬양한 노래라고 합니다. 원곡은 영국에서 이민온 미국의 청교도들 사이에서 불려지던 민요인데, 에드윈 오델로 엑셀이 수집하여 편곡한 곡에 뉴턴이 자신의 찬송시를 덧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신비스럽고 감동적인 영가는 기쁨에 가득찬 신앙간증이자 용서를 체험한 자의 가슴뭉클한 고백으로서 영어로 된 성가 중 가장 유명할 정도로 이 세상을 돌고 돌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수의 목소리로 들어도 좋지만 특히 금관악기로 연주되면 더욱 애잔한 선율이 저를 감동시킵니다.
지리산 산행을 반추하면서 뜬금없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떠올렸습니다. 지리산의 큰 가슴이 어쩌면 우리 산꾼들에게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아닐까하고 패러디해 봅니다.
지리산은 자주 모성의 산으로 생명을 잉태하는 산으로 서술되었습니다. 크고 푸짐하지만 부드러운 굴곡으로 닥아오는 품이 엄마품처럼 친근하고 아늑하여 귀소본능을 자극할 뿐 아니라 엄마품 속에서 순진무구한 아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정화의 작용을 가진 산은 아닐런지요?
지리산은 북쪽의 설악과 쌍벽을 이루며 비교되고 다같이 명산으로 이름이 높아 산꾼들을 불러들입니다. 이 산은 웅장한 산세가 유장한 능선들과 계곡들을 만들어 내어, 수려하지만 약간은 날카로운 설악과 구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저기 아름다운 경치가 자리잡고 있어 선인들은 이 경치들을 열 개로 압축하여 지리산 10경을 정하여 즐겼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고단하게 살며 민중의 고통에 함께 하는 참여시인인 이원규 시인은 이 지리산 10경에 현대적 해석을 붙여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라는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한 시, 한국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썼습니다.(거기에 안치환씨가 곡을 붙여 노래를 한 것을 우리가 들을 수 있습니다.)
이원규 시인의 이 시를 저는 한국판 '어메이징 그레이스'로도 해석해 보는 것입니다.
우선 시를 아래에 다시 써 봅니다. 비교적 긴 시이지만 시의 구성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천왕일출에서 연하선경까지의 10경을 들고 그 경치들을 보러 올 때의 마음가짐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연에서 대반전을 시도합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 이원규(곡 안치환 노래 안치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시라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던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 시를 재미있다고 제가 표현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지리산의 절경들을 즐기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를 음미하다 보면 우리가 과연 지리산에 갈 자격이 있는 자인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지리산 10경 중 첫 번째인 천왕일출을 보러 올 사람은 삼대를 적선해야만 일출을 볼 수 있다는군요. 우리 정서상 삼대가 적선을 못한 집안은 어디 있을 것이겠습니까 만은 삼대가 철저하게 적선으로 일관한 집안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우리 감정은 유장한 바람처럼 속박받지 않다가 필요할 땐 극한의 클라이막스로 치켜 올려질 정도로 순수하고도 치열해야 한답니다. 뼈를 깎는 회한을 가질 만큼 인생에 깊이가 있어야 하겠고 혁명가가 되어 불의를 척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지리산에 오려면 우리 마음이 나무꾼처럼 순진해야 하고 또한 모래처럼 겸허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자살을 꿈꿀 정도로 벽에 부딪힌 사람들만 오라고 절규합니다. 시인은 지리산의 자연치유력을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리산에 대한 아주 큰 신뢰이자 존경심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시인이 우리에게 주문하는 것은 치열한 정신과 순진한 마음을 가졌을 때만 지리산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면, 사실은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시인이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이들은 마음이 곧고 순수한지라 흙탕같은 삶에서는 오히려 상처받기 쉽고 어쩌면 극단으로 내몰려 자살을 꿈꿀지도 모른다고 걱정합니다. 지리산이야말로 그런 사람들의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때에 어머니같은 치유력으로 지리산은 그들의 상처를 감싸서 고쳐주고 감정을 순화시켜 다시금 굳세게 삶과 맞설 수 있게 해준다는 스토리, 소위 어메이징 그레이스 효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통의 우리들은 어쩌면 지리산에 갈 자격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자주 우리에게도 인생은 버겁고 씁쓸하고 될 일이 안 되기도 하지만 시인이 서술한 것처럼 우리 삶이 늘 극단의 벼랑에서 순수와 비순수의 판단을 요구 받고 여차하면 벼랑으로 뛰어내릴 정도로 아름답게 슬픈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지리산의 10경을 서술하고 난 마지막 쯤에서 반전을 시도합니다. 자격은 이제 불문합니다. 오고 싶으면 아무나 오라는군요. 우리의 생활이 변덕스럽고 어지러운지라 어차피 우리는 일관되게 감정을 유지하지 못할 사람들임을 시인이 눈치챈 것 같습니다. 그런 우리를 시인은 용서해 버리는군요. 시인은 이제 지리산을 모두에게 개방해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시인은 약간은 멋쩍은 듯 행여 현재의 삶이 견딜만 하면 오지 말라고 눙칩니다. 팍팍하고 신산한 삶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는 지리산의 치유력이 불필요할 정도로 현재 잘 먹고 잘사는, 소위 잘나가는 자들은 오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잘먹고 잘 입으며 잘 나가는 자들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따라서 시인은 우리 모두를 지리산으로 초대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모두 지리산에 와서 시인이 좋아하는, 감정에 충실하고 마음이 가난한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라는 것이 시인이 우리에게 보내는 궁극적 멧시지라고 저는 해석해 보았습니다.
‘너희는 지리산, 그 놀라운 품에서 다시 태어나라.’ 성경적으로 써 본다면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지리산으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가 아닐런지요.
하여 2006년 6월 18일 저는 송백호에 몸을 담고 지리산 천왕봉을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에서 오후 6시 30분까지였습니다. 험하고도 먼 길고도 지루한 길을 85kg이나 나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중산리매표소에서 시작하여 천왕봉 장터목 세석을 거쳐 8시간을 운행한 끝에 거림매표소로 내려설 수 있었습니다. 8시간의 산행시간은 지리산의 은총을 온몸으로 느끼고 제자신을 정화시켜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능선의 경치가 볼만하고 거기 부는 바람이 시원했다면 계곡엔 바람이 없어서 무더웠고 잡목속은 앞이 안 트여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지리산과 함께 한 소중한 하루였습니다.
그날 산행 후 그분께서 물어 보십니다.
‘하이맛아! 오늘 너는 정화되었느냐?’
저는 답합니다.
‘제겐 정화될 잘못이 없아옵니다. 그래도 조만간 살을 빼러 또 가야 합니다.’
‘예끼 이 몹쓸 놈!’
그날의 감흥을 살려 사진 3매만 실어 봅니다.
천왕봉 정상에서 중산리 계곡을 보다 - 놀라운 은총
그 은혜 달콤해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촛대봉에서 서쪽으로 조망하여 노고단(왼쪽)과 반야봉(오른쪽)을 보다 - 나 한 때 잊혀졌으나 지금은 그분께 구원되었네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촛대봉에서 북동쪽으로 천왕봉을 보다 - 한 때 눈멀었으나 이제 바로 보네 Was blind, but now I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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