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12. 16:46ㆍ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5월의 첫째 일요일 통안재에서 시작하여 매요마을을 지나고 고속도로를 넘어서 시리봉으로 해서 복성이재까지 약 14.8km에 달하는 대간길을 4시간 반가량 걸었습니다.(보너스로 치재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백두대간길 오늘만 같아라.’ 하는 말이 절로 나는 편안하고 온화한 길이었습니다. 연두빛 신록과 초록빛 상록수가 배경으로 깔리고 노랑색 노랑제비꽃과 푸른색 각시붓꽃의 앙증스러운 도열 속에 검은 복장의 산님들이 완만하게 굽은 낙엽깔려 푹신푹신한 산길을 물흐르듯이 흘러가고 산새소리와 산들바람이 하늘에서 주는 은총처럼 가는 길을 축복해 줍니다.
해님은 구름 속에 머물러 따가운 햇볕을 잠시 보류해 줍니다. 가끔 보이는 키가 큰 철쭉나무는 분홍색 꽃을 피워놓고 수줍은 미소를 선사합니다. 철지난 진달래가 다 자라난 잎과 함께 보이기도 합니다. 나무들은 비탈에 약간은 비켜서서 부드러운 능선을 오르는 산님들을 환영합니다. 여기저기 숲속엔 고사리와 취나물도 비죽이 고개를 내밀어 눈썰미있는 산님들을 유혹합니다.
연두색이라 해야 할지 옅은 초록이라 해야 할지 이제 피어나는 활엽수의 신록은 그 부드러운 잎을 바야흐로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 옆으론 먼저 피어나서 좀더 초록색을 띠는 활엽수와 늘푸른 소나무의 짙은 색깔들이 배경이 되어 줍니다. 같은 초록일지라도 옅음과 짙음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그 중의 압권은 물론 연약한 듯이 보이면서도 안정감을 주고, 부드럽고 순수하게 보이는 연두색 신록입니다. 자연히 색(빛깔)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지난 1월달 덕유산의 눈을 담은 BMW의 산행기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1월 9일자 산행기인데, ‘덕유산 산행기 -아름다운 빛깔은 어디에서...?’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가 주제로 삼은 빛깔은 과거 산행시 덕유산에서 봤던 붉은 단풍과 그날(1월 8일) 경험한 흰 눈이었는데 赤과 白 모두 아름다운 빛깔로서 그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색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유혹적인 제목으로 우리에게 묻습니다. ‘덕유에서 보는 이 아름다운 빛깔은 어디서 오는 거야?’
그리고 그는 우리가 답하기도 전에 자진해서 정답을 알려 줍니다. 그가 맺은 결론은 이성부 시인의 말을 빌어서 ‘아름다운 빛깔들 모두 우리나라 산천에서 온 것이다.’ 라고 산행기에 썼습니다.
아름다운 단풍의 붉은색과 순백의 눈에 덮힌 덕유산의 흰색을 찬양하는 그의 멋진 산행기는 우리를 감동시키고 한국산천의 아름다움을 좀 더 음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산천을 가노라면 이성부 시인이나 BMW의 말처럼 아름다운 빛깔들을 무수히 만나게 되고 그 중 빨간색과 흰색에 부치는 노래를 BMW가 덕유산 산행기로 절묘하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연두색에 부치는 노래를 써 봅니다.
‘신록이여, 연두색이여, 아님 옅은 초록이여!
아름다운 빛깔은 어디에서?
또한
아름다운 빛깔은 누굴 위해서 빚어 놓았니?’
라고 말입니다.
첫 번째 질문, 빛깔이 오는 소스는 우리나라 산천이라고 멋진 정답을 BMW가 써 놓았으니 저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아름다운 빛깔들이 누굴 위해 빚어졌나 물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빛깔아 넌 누굴 위한 거니?’
연두빛깔이 살짝 저에게 귀뜸해 줍니다.
‘그건 말야, 나를 알아보는 모든 산님들을 위한 있는 거야.’라고
계절의 여왕인 이 5월에 가장 아름답다는 5월의 신부가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면 그 배경은 생명의 약동이 꿈틀거리는 물푸레나무잎이나 떡갈나무 숲으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때 배경이 되는 연두색은 신부를 위한 빚어진 색이 되겠지요. 또한 공주를 품에 안는 왕자님을 위해 빚어진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들이 이 아름다운 빛깔을 의식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하늘로 죽죽 뻗은 낙엽송 곧은 가지에 열리는 신록의 물결에게 제가 물어 봅니다.
‘이 아름다운 색깔은 누굴 위해서니?’
‘그건 너 하이맛을 위해서야’
‘그건 또 너의 벗 BMW를 위해서지’
아막산성 가기 전 높은 봉우리에 홀로 떨어져서 다소곳이 피어있는 연분홍 진달래에게 물어 봅니다.
‘아름다운 빛깔은 누굴 위해서 있는 거니?’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서지’
연두빛 신록 1
연두빛 신록 2
연분홍 빛깔의 진달래는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핀다.
5월 7일 아침, 여느 때처럼 잠실을 향합니다. 오늘은 약간 일찍인 6시 35분에 도착한지라 너구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또 담아 봅니다. 이제는 조명없이도 너구리가 잘 보입니다. 낮이 길어진 때문이지요. 나뭇꾼님이 반기며 커피를 한 잔 권합니다.
2호차에 올라 오늘의 산행 들머리인 운봉읍 권포리 통안재로 향합니다. 9시 좀 전에 죽암휴게소에 들렀다가 멀고 먼 길을 가서 인월에서 고속도로를 나갑니다. 좁은 길을 헤치며 지난번 산행을 끝냈던 통안재 근방에 도착한 때는 이미 오전 11시 5분이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잠깐 거슬러 올라가서 11시 10분쯤 쉽게 대간길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높낮이 차이가 가장 적다고 할 정도로 쉬운 코스라고 여러분이 말씀합니다. 따라서 너무 서둘 필요가 없이 경치를 즐기며 산행합니다. 사진기도 밖으로 꺼내서 들고 자주 촬영을 합니다.
어제 온 비로 인해 길은 푹신하고 옅은 안개가 환상처럼 피어 오릅니다. 천천히 산님들을 따라 길을 갑니다. 간간히 카메라셧터를 누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의 길 중 가장 쉬운 길로 느껴질 정도로 경사가 완만한 길을 갑니다. 힘든 비탈길이 없으니 좀 싱겁긴 했지만 너무 여유가 있는 길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아 사치재에서 고속도로를 통과하기 전 처음의 반은 이렇게 쉬운 길의 연속이었습니다.
길은 바야흐로 신록이 우거진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자운영님은 지난주 황매산을 다녀오셔서 산행기를 쓰셨는데 첫머리가 연두색을 찬양하는 글이었습니다.
‘연두! 연두속으로’ 하고 외치시며 5월의 숲과 떡갈나무 새순의 이미지를 소개합니다. 신록이 가진 연두색은 생명의 색깔이자 평화, 희망, 새로움을 상징한다고 쓰셨습니다.
소나무가 주는 빛깔이 묵은 초록이라면 떡갈나무나 낙엽송, 철쭉이나 진달래가지 등 관목에 나는 새순은 새로운 초록, 신록입니다. 이 신록에 덥힌 대간길은 자운영님의 말씀대로 생명과 평화, 희망과 새로움의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늘 가는 길을 뒤덮고 대간길 전체를 물들이는 거대한 연두색 물감은 누가 공급하나요? 또한 이렇게 박동하는 생명의 약동은 도대체 누구의 희망인가요? 가슴 벅차게 연두빛에 취하고 이끌려 우린 대간길을 전진했습니다.
가는 길이 여유가 있는지라 그동안 낯을 익힌 산님들과 대화도 나누며 갈 수 있었습니다. 길이 너무나 푸근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아껴 먹듯이 천천히 가야 맛을 알 수 있는 길이라고 해석해 보았습니다. 한 시간쯤 지난 12시 10분경 매요리 마을을 지나갑니다. 백두대간길에 놓인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12시 15분경 일행들과 같이 마을 옆의 야산 어느 분의 산소 앞에서 중식을 펼쳐 놓습니다. 멀리 좌측으로 황산의 잘 생긴 봉우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20분 정도에 식사와 휴식을 한 다음 포장도로를 조금 지나 12시 35분 유치삼거리에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다음 목표지점은 고속도로입니다.
오후 1시 14분 고속도로가 횡단하는 사치재에 도착하였습니다. 무단횡단을 하지 말고 우측으로 난 지하통로로 가도록 송회장께서 일일이 안내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오늘 갈 길의 반은 온 셈이었습니다. 복성이재까지 7.2km라는 팻말이 고속도로 옆에 서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지나서 산길을 접어드니 아까보다는 급한 비탈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명의 고지 697봉을 넘어 새맥이재에 도착하니 오후 2시 10분이었습니다. 지도를 보니 약간 아래 쪽에 샘이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잇어, 우측 아래를 보니 정말로 샘이 있어서 나무에 플라스틱 바가지를 걸어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물병에 물도 보충하였습니다.
다시 비탈이 시작됩니다. 이제 약간은 지쳐서 속도가 붙질 않습니다. 2시 46분 해발 776.8m인 시리봉 바로 밑의 헬리포트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릅니다. 여기선 신록이 아닌 짙은 녹색의 소나무숲이 반겨줍니다. 조금만 더 가면 오늘 산행의 최고점인 781m 봉에 도착할 것입니다. 다시 완만해진 산길을 가니 능선에서 보이는 경치가 일품입니다. 지난 번에 지나온 고남산이 보이고 다음에 갈 봉화산이 그 뒤의 월경산과 함께 뚜렷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밑의 아막산성엔 철쭉이 한창인 것이 멀리서도 완연했습니다.
3시 10분쯤 781봉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781봉 아래 복성이재쪽으로는 수많은 철쭉나무들이 군집해 있었는데 꽃은 아직 피지 못하고 봉오리만 맺혀 있었습니다. 좀더 아래의 아막산성에 도착하니(3시 26분) 철쭉들이 피어서 저를 반겨줍니다. 조금만 더 가면 복성이재입니다. 야트막한 언덕을 두어개 넘어가니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복성이재였습니다. 그 시각이 오후 3시 45분. 4시간 35분 만에 여기까지 14.8km를 온 것입니다. 시속 3.23km의 적당한 속력이었습니다.
오늘의 대간길은 여기까지인데 꽃구경을 할 사람은 복성이재에서 북쪽으로 언덕을 하나 더 넘어야 했습니다. 저는 배낭을 버스에 놓고 치재를 향했습니다. 올 봄 꽃을 찾아 헤매던 여정을 오늘 완성하고 싶었습니다.
새로 대간에 참여한 세 분의 산님을 좇아서 가파른 비탈길을 허위단신 올랐습니다. 고개를 올라가자 마자 거기는 철쭉의 천국인 듯 했습니다. 고개위에서 치재까지의 100여미터는 넘을 것 같은 길 주위는 온통 붉은 자주빛 철쭉꽃으로 덮혀 있었습니다. 하나의 철쭉동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치재 언덕을 꽉 채우며 피어 있는 철쭉동산에서 들뜬 목소리로 저는 꽃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멀리 배경으로 깔린 봉화산의 잘 생긴 모습에 제법 흥분했나 봅니다. 내부로만 울리는 목소리이지만 그 소리가 크고 급했습니다.
‘이렇게 야하고 멋있는 진분홍색 빛깔은 대체 어디서 온 거야?’
‘자기도 알잖아. 여기 대간길에 늘 있던 색이야.’
‘그럼 아름다운 빛깔들은 누굴 위해서?’
저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백두대간을 오르는 모든 산님을 위해서지.’
철쭉의 답이 아름다운 메아리가 되어 들려옵니다. 서녘 태양이 여느 때보다 훨씬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진분홍 빛깔의 철쭉은 우리 모두를 위해 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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