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27. 11:02ㆍ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2007년 6월 24일(일) 백두대간을 한 구간 줄이기 위해 한솔산악회의 대간산행에 참여하였다. 떠나는 곳이 동대문이기에 나에게는 아주 편리하다. 집에서 30분내로 도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솔은 작년 4월 23일 백운-영취 구간을 가기 위해 한번 이용해 본 산악회여서 아주 낯설지는 않고 회장의 얼굴이 기억이 났다.
오늘은 호우주의보가 내렸다고 하는데 나는 듣지를 못하고 집을 나섰는데 그래서 그런지 손님이 적은 편이다. 집행부 포함 모두 28명이라고 한다. 7시 서울을 떠나 8시반 여주휴게소에서 본 하늘은 파란 하늘까지 보일 정도로 비와는 거리가 있어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남쪽으로 갈수록 하늘이 짙어지며 비와의 일전을 각오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버스는 내륙고소도로의 문경새재 나들목에서 나가 오늘의 산행시작점인 하늘재에 10시 20분에 도착하였다. 하늘재에서 바로 백두대간이 시작된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안개비가 내리는지 나뭇잎에 맺혔던 물방울들이 계속 떨어진다. 우비를 착용할까 생각하다가 좀 더 비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급경사길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 길은 지난해 여름(7월 30일) 월악산 만수봉을 올랐다가 포암산으로 해서 내려왔던 길이기에 아주 낯설지가 않고 곧 주상절리에 도착할 것을 예측하게 한다. 주상절리란 바위가 기둥모양으로 수직으로 길게 갈라져 있는 모습을 말하는데 가끔 볼 수 있는 바위의 모습이다.(사진 참조)
주상절리를 지나 비탈길을 올라가다가 못 견디고 비옷을 꺼내어 배낭위로 걸쳤다. 더 전진하니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어 길이 제법 험하다. 산행 후 50분 쯤 지난 11시 9분 해발 961.7m 의 포암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보통날이라면 경치를 볼 수 있겠지만 오늘은 안개비 속에 원경은 포기해야만 한다. 정상석만 카메라에 넣고 출발하는데 여기서부터 관음재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기에 힘이 덜 들 것 같다.
길은 제법 가파르게 아래를 향하다가 조금 내려가서부터는 비탈이 느슨해져서 걷기에 편했다. 그런데 포암산을 내려와 얼마 안 되는 급경사에서 밧줄을 오른손에 잡은 채 미끄러져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부상을 입을 정도의 낙상은 아니었으나 땅바닥이 질었기 때문에 검은흙에 바지와 배낭, 비옷을 버리고 말았다. 관목의 나뭇잎에 흙묻은 부분을 문질러 대강 흙을 털어낸 다음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갔다. 비오는 날의 미끄러움은 조심해야 할 위험 중의 하나이다.
11시 28분 월악산의 한 계곡인 만수동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대간에서 갈라지는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완경사의 언덕을 올랐다가 내려가며 한참을 가다보니 지도에 나와 있는 관음재는 어느새 지나쳐 버리고 오늘 가장 주의해야 하는 갈림길인 만수봉으로 가는 삼거리에 도착하였다.(12시 04분) 대간길은 이곳에서 언덕을 조금 올라가서 우측으로 90도만큼 꺾이게 되며 이곳에서 곧바로 왼쪽으로 90도 꺾으면 월악산의 한 봉우리인 만수봉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 세워져 있던 이정표는 쓰러져 있었는데 팻말을 주워서 누군가가 가지런히 땅에 눕혀 놓았다.(하늘재에서 포암산을 거쳐 여기까지는 국립공원인 월악산의 영역인지라 이정표가 잘 되어 있으나 이후로는 이정표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식별할만한 표시가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다.)
만수봉 삼거리에서는 다시 약간 가파른 언덕이 시작된다. 그 언덕을 힘겹게 치고 올라가니 938.3봉인 것 같은데 정확한 표지도 없고 안개비속에 전망도 시원치 않다.(12시 18분) 이러한 안개비속의 날씨는 산행 내내 계속되는데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안 오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인지라 몸의 열을 식히기 위해 비옷을 다시 벗고서 운행해 본다. 이렇게 비옷을 입었다가 벗는 행위는 산행의 끝까지 몇 번 반복되었다.
938.3봉을 내려가서 12시 반쯤 같이 왔던 사람들이 모여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말석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며 어느 분에게 청하여 술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오늘의 식사는 통조림과 떡인데 떡은 입맛이 없어 남겨서 배낭에 넣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길을 떠났다. 길은 다시 위를 향하고 897봉을 넘는다.
897봉을 내려가는데 앞에 가던 대장 한 사람이 되돌아 온다. 뒤에서 무전연락이 왔는데 어떤 이가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기에 그를 도우러 돌아간다고 하며 바로 내 앞에서 가고 있던 한 사람도 같이 도우러 가자고 하며 나와 또 한 사람보고는 계속 가던 길을 가라고 이야기한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정확한 상황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며 나라도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산행을 끝내는 것이 산악회를 돕는 길이리라. 깊은 산중에서 사고를 당한 그 사람은 꽤 고생을 할 것인데 다행히 회장과 몇사람이 그를 도울 것이니 불행 중 다행이다.
(그 동안 나는 수많은 산행을 안내산악회를 따라서 했지만 이번처럼 같이 간 일행중 한 사람이 크게 다친 경우는 다행히도 없었다. 오늘같이 여럿이 아니고 혼자 산행하다가 깊은 산속에서 다친다면 정말 어려워질 것 같다. 다행히 우리나라엔 119제도가 어느 정도 정비되어 있으니 거기에 우선 기대해야 할 것 같다.)
844봉을 넘어 1,032봉으로 가는 길은 또 하나의 고행이라 할 정도로 가파르고 길었다. 그 언덕의 증간쯤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야 했다. 앞에서 가던 사람은 이미 앞으로 더 나가서 따라잡을 수가 없다. 물을 마시고 잠시 쉰 후에 비탈길을 치고 올라가니 1,032봉이다.(오후 2시 14분) 특별한 표지는 없으나 여기부터는 완연하게 비탈이 느슨해짐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가는 길이 하나도 힘이 들지 않는 것 같다. 이곳이 1,000m 가 넘는 고지대인지라 날만 개였다면 가끔 나뭇가지 사이로 멋진 경치를 엿볼 수 있을 터인데 그렇지 못하여 아쉽다.
1,032봉에서 20여분을 완만한 경사를 내려갔다가 올라가니 오늘의 최고점 1,062봉에 도달한다.(오후 2시 36분) 정상은 봉우리라기 보다는 약간 평평한 공지였는데 관목이 우거져 발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길 바로 옆에서 운좋게도 삼각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터가 끝나고 숲이 시작되는 곳의 나뭇가지에 누군가가 1,062m 라고 써서 비닐로 코팅한 종이를 달아 놓았다. 그분의 수고가 고맙게 여겨졌다. 한 사람의 작은 정성이 산꾼들에게 이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어 매우 큰 일을 하고 있었다.
개념도보다 조금 큰 흑백지도를 들고 가는 대간길에선 리본(표지기)과 이정표가 큰 역할을 하게 되어 웬만하면 지도를 보지 않아도 산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길처럼 표지기만 달려있고 아무런 이정표가 없는 곳에선 길을 잃는다면 꽤 고생하게 될 것 같다. 지도상의 주요지점이 현실 세계에서 확인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1,062봉을 오르고 나면 이제 산을 오르는 힘든 오름길은 거의 끝이 난다. 부리기재까지는 얕은 언덕이 하나 있을 뿐 내리막길이고 부리기재에서 중평리까지도 내려가는 길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려가는 길에서 오히려 사고가 날 수 있기에 힘은 덜 들더라도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은 더 해야 한다.
오후 2시 53분 갈림길이 있는 안부에 도착하였다. 표지가 없다면 이곳이 부리기재로 오해할만한 곳이다. 부리기재는 작은 언덕을 하나 넘어야 했다. 7분후인 정각 오후 3시, 해발 881m(GPS상의 수치)의 부리기재에 도착하였다. 오늘의 대간길 운행은 여기까지다. 우측으로 틀어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부리기재에서 중평리로 내려가는 길이 초장은 제법 가팔랐다. 이러한 가파름은 수직으로 약 300m를 내려와서야 좀 진정이 되는 것 같다. 비탈길을 부지런히 내려오다가 키가 크고 곧은 나무들이 많기에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쉬었다. 비 때문에 배낭속에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꺼내어 몇 컷트 찍었다.
여기서부터는 급경사의 돌로 된 시내를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요란했다. 계류가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잠시 멈추어 바짓단에 묻은 흙을 물로 씻어 버리고 진행한다. 오솔길은 개울옆을 따라가다가 개울과 헤어질 때 쯤 넓은길로 변하고 곧 더 넓은 포장도로로 변하는데 저 멀리 아래에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오후 3시 51분 버스가 주차한 곳에 도착하여 산행을 끝냈다.(나의 산행시간은 5시간 30분이 걸렸다.) 아직 하산한 사람들이 많지는 않고 사고의 뒤처리에 대해서도 잘 알 수가 없었다. 마침 버스가 주차한 곳 아래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그리로 가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적셨다. 그 다음엔 옷을 윗도리만 갈아입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서 식사를 했다. 막걸리도 조금 마실 수 있었다.
오늘 산행의 주제는 안개비와 그 속에 젖은 채 서있는 나무숲이었다, 나무들이 만들어 낸 숲의 풍경은 험상궂기도 하고 한편으론 친밀하게도 느껴졌다.. 안개비속을 각자가 상념에 젖어 자기의 대간길을 한 구간 줄여간 산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차차 내려오면서 사고의 윤곽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다친 사람은 젊고 키가 큰 튼튼하게 생긴 사람인데 바위에서 슬쩍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였는데 다리를 싸쥐고 펄펄 뛰었다고 한다.(점촌의 병원에서 X선촬영을 한 결과 왼쪽 다리뼈가 골절되었다고 하는데 왼쪽 다리 아래쪽을 지탱하는 뼈 두개가 골절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경미하게 보였던 것이 그 분에겐 큰 사고가 된 것이었다.
그래서 119에 연락하여 대원 네 사람이 산으로 올라오고 회장이하 한솔관계자 3인과 합하여 7인이 수고를 하였는데, 부상자의 다리에 부목을 대고 들것에다 태워서 산아래로 후송중이라고 한다. 그분들의 노고가 감사하게 느껴지며 내가 그런 사고를 안 당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119제도가 정착된 것은 다행이나, 119의 응급구조후 환자의 치료비가 많이 나올 것이며 일을 못하는 데 대한 손실도 매우 클 터인데 여기에 대한 보상이 절대 필요하게 된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려운 문제로 대두될 염려가 있다. 현재 산행에 대한 보험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이용은 안 되고 있는 실정인 것 같다. 산악인들의 지혜가 모여져야 할 때이다.)
오늘 처음 대간길을 타 본다는 한 여자분의 지각 도착으로 산행과 식사가 다 끝난 시각은 오후 6시반 쯤이나 되어서였다. 버스는 문경을 거쳐 점촌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부상자는 X레이를 찍고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그분을 태우고 서울로 출발한 시각은 오후 8시반이었다. 회장이하 여러 사람이 수고를 했고 늦어짐에도 불평없이 묵묵히 기다려준 산님들도 나름대로 수고를 했다.
다친 이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산행사진
여주휴게소에서 본 하늘 1
여주휴게소에서 본 하늘 2
여주휴게소에서 본 하늘 3
여주휴게소 파노라마 사진(3장을 붙임)
주상절리의 바위
야생화
포암산 정상
정상석
안개비에 젖은 백두대간길 1
안개비에 젖은 백두대간길 2
안개비에 젖은 백두대간길 3
부리기재에서 중평리 내려오다가 찍은 곧은 나무들
하산길 1
하산길 2
산행이 끝난 중평리에서 산쪽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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