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반야용선을 찾아서

2007. 11. 16. 08:45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지리산엔 도대체 왜 갑니까? 반야봉이 있지 않나요? 거기서 떠나는 용선을 탈까 하구요.

인생! 그거, 맘대로 안되는 거는 다 알고 계시지요. 인생이 뜻대로 안 되는 기미가 보일 때는 저쪽 해안(피안)으로 먼저 건너가고 싶은 마음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드라마틱하게 배를 타고 피안으로 가는 상상은 누구나 한 번씩은 해 보았을 듯 합니다. 눈물도 헤어짐도 없고, 설레임이나 망설임도 다 잦아들며 평소에 소망하던 모든 희망들이 완벽하게 구현되는 곳. 그곳을 파라다이스(낙원)라고도 하고 극락이라고도 합니다. 한편으론 바다 건너라는 의미에서 피안이라고도 하지요. 제가 모시는 신에 의하면 죽게 되면 자연히 그곳에 가게 될 곳이니 너무 앞서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네요.

그러나 현실에선 일상에 찌들려서 숨쉬기가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쌓여갈 때 한 줄기 청명한 기운을 느끼고 파라다이스를 미리 맛봄으로서 다시 현실을 이겨 나갈 수 있는 그런 장치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극락과의 만남을 해탈한 다음의 사건으로 연기시키기는 하되 그전에라도, 극락이 그렇게도 멋지다니까, 잠시 그곳이 주는 평화와 위안, 그리고 향기로움을 맛 보려고 애쓰는 것도 그 때를 기다리기에는 너무도 지친 사람들에겐 품음직 한 소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신라나 고려 때부터 사람들은 우리네 산줄기를 희망의 이름으로 도배질했던 것입니다. 도솔봉, 비로봉, 문수봉, 나한봉, 제석봉, 그리고 지리산의 반야봉, 심지어는 해탈한 선배들의 이름인 원효봉, 의상봉도 있습니다. 이들 산 이름이야말로 일상으로 걸어 들어와 민초들과 함께 숨쉬는 낙원의 다른 이름이 아니겠습니까?

극락이 멀리 있는 게 아니요. 죽은 자나 해탈한 자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솟아있는 산줄기에 그 이름이 있는 셈이지요. 따라서 일상을 조금만 벗어나면 오를 수 있는 산봉우리에 오르면 그곳이 천국이요 서방정토라는 야그가 됩니다.

제가 오늘 찾아서 가고자 하는 지리산의 반야봉이란 무어겠습니까? 진리의 등불이자 중생을 이끄는 구원의 불빛입니다. 반야봉의 반야(般若)란  불교용어로 ‘진리를 깨달은 지혜’라고 한 답니다. 지혜로운 자들이 즐겨 가는 곳이 반야봉이고 더구나 지혜를 얻은 자들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배를 타고 해탈의 바다를 건너 저쪽 해안으로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지혜롭고자 함은 왜이겠습니까? ‘부우자 되세요, 이게 아닙니다. 진리를 깨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진리를 깨달으면 이제는 부자가 되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해탈하는 것입니다. 돈도 부자도 이제 화두가 안 되는 고차원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색이 공되고 공이 색되는, 구별도 차별도 없는 오성의 세계로 돌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통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드라마로 만든 것이 반야용선 이론입니다.

불교에서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 배는 중생들에게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지혜를 주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함으로 누구든지 반야용선에 승선하면 지혜를 깨달아 고통 없는 부처님나라로 갈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그 지혜의 배에는 용이 타고 배를 호위하기에 용선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반야용선이라는 말과 설명에서 느끼는 바는 집단적이고 극적인 구원의 역사가 기독교에서 처럼 불교에서도 추구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여기서 배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을 극락으로 데려다 주는 중요한 교통수단입니다. 보통 배에는 귀중한 물건들을 싣게 되도 그 규모가 매우 크기에 혼자 타기엔 너무 넓고 여러 사람을 태워야 제격입니다. 이것이 집단적인 구원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에 바쁜 민초들에게 구원이나 해탈은 먼 데 있는 사건이자 죽은 다음에나 극락에서 맛 볼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삶은 너무나도 신산하고 팍팍할 것입니다. 아득히 먼 곳에 있어 한참 후에나 나타날 극락이라면 그 의미가 아무리 좋더라도 실생활에서 쉽게 느낄 수도 없을뿐더러 그 의미도 별로이겠지요. 따라서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삶을 위무해 줄 그런 기능도 없는 셈이지요.

따라서 가시적인 거리에 천국의 열쇠를 묻어둘 필요가 생기는 겁니다. 지리산 서쪽에 펑퍼짐하게 자리잡은 제2봉인 반야봉에 ‘반야’라는 해탈로 가는 지혜의 이름을 붙인 데에는 이런 비밀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 봉우리에 올라라. 그러면 너희는 해탈할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 지혜가 먼 곳에 있지 않다. 반야가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을 왜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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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봉이 현실에 존재하기에 생기는 반야효과에 대하여]

그러한 즉, 가사 지리산 밑 '속소리 뜸'이라는 마을에 머슴살이하는 이름이 '댕이'라는 나뭇꾼이 있었다 합시다. 그의 머슴생활은 정말로 힘들고도 진력나는 인고의 삶이었겠지요. 여느날처럼 그는 지리산옆줄기 바래봉으로 낫을 들고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갔다고 칩시다. 죽어라하고 나뭇가지를 자르고 풀을 베어 보지만 한 지게를 다 채우려면 한나절을 다 보내도 될동 말동입니다. 땀을 흘리며 작업하던 댕이는 일이 너무 힘든 나머지 낫을 던지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는 자문합니다.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부모님도 안 계신데 이렇게 힘들게. 차라리 저 산아래 낭떨어지 밑으로 ....' 그때 그는 건너편의 반야봉이 자비롭게 그를 건너다 보고 있는 걸 문득 깨닫습니다.

'그래, 저 높지만 엄마젖같이 둥그렇게 생긴 산이 반야봉이랬지. 누구나 열심히 살면 큰배를 타고 극락에 간다고 옆동네인 '도돔물' 사는 안경끼고 먹물 좀 먹은 하이맛이란 아저씨가 그랬었어. 그리고 그 배는 저 산꼭대기에 매어 있댔어. 특히 나처럼 단순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했었지. 먼저 가신 부모님도 결국 그배를 타고 극락으로 가신 게 틀림없다고 그 아저씨가 말했지. 극락가는 정거장이 우리 마을 옆에 있는 게 난 너무 좋아. 그래서 난 여길 안 떠나고 열심히 살거야.'

그는 낫을 고쳐잡고 다시 키낮은 관목 덤불을 후려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제 현실의 고단함에 굴복하지 않고 극락을 지근거리에서 확인한 소망을 품은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천국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는 스토리입니다.

(근데 이 구라가 현실성이 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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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상궂게 솟은 지리산 제1봉인 천왕봉은 위엄있고 기개를 자랑하는 듯한 데 반해 20km나 서쪽에 둥그스럼하고도 부드럽게 솟은 제2봉 반야봉은 어머니의 따뜻함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길 뿐 아니라 한가지 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겁니다. 거기 오르는 사람들을 모두 정화해서 반야용선에 태우는 것입니다.

안개가 잔뜩 끼어 어스름한 반야봉 정상에 걸려 있는 저 플래카드는 무엇입니까? 눈이 흐려져서 안 보인다구요? 제가 읽어드리죠.

‘다 오라!,. 내가 너희를 피안으로 보내 주겠다.’

이번 산행에서 반야봉에 걸린 메시지를 저는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맑은 날 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


통도사 극락전 절집 흙벽 위에 그려진 반야용선의 그림(퍼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