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16. 08:47ㆍ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10월 24일 밤, 24기 동기이자 친구인 우명길, 서중원군과 경동후배 29기 정병기 사장 그리고 저, 넷이서는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서 10시 10분발 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리산 종주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지순례와도 같이 동경되는 지리산 종주인데 마침 여행의 끝에는 불교의 구원과 밀접하게 연관된 반야봉이 자리잡고 있기에 더욱 설레는 여행이었습니다.
그전 날 잠을 잘 못잔 탓에 진주까지의 네시간은 잠을 자두어야 하는 과제가 생겼습니다. 마침 같이 자리한 정(병기)사장이 약간의 음주를 하고 와서 곧 잠이 들었기에 저도 잠을 좀 자 둘 수 있었습니다. 2시간 달린 후에 금산의 인삼랜드휴게소에서 잠시 섰던 버스는 목적지인 진주를 향해 빠르게 달렸습니다. 다시 두 시간 동안에 저는 눈을 좀 더 붙일 수 있었습니다.
10월 25일 새벽 2시 우리는 진주시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렸습니다. 그곳엔 새벽에 열고 있는 음식점이 없기에 택시를 타고 해장국집이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 감자탕을 닮은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우명길군이 예약해 놓았던 택시를 불러 우리는 2시 반 쯤 중산리를 향했습니다. 택시는 안개가 낀 시가지를 벗어나 산청으로 가는 국도로 힘차게 달렸습니다. 시속 80km의 속도제한은 무시 당하고 100km가 넘게 달리느라 내비게이션에서는 속도를 줄이라는 고혹적인 여인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 나옵니다. 산청으로 가는 국도가 지리산쪽으로 갈라지는 원지까지는 이미 고속도로도 나있는 터이지만 국도가 잘 정비되었기에 국도로 가는 모양입니다.
경호강을 끼고 달리던 택시는 원지에서 좌로 꺾어서 서쪽을 향했습니다. 곧 문익점이 목화를 시험재배했던 곳을 지나고 민속마을인 남사를 거쳐 남명조식선생을 모신 덕산서원을 지나 안개낀 산악도로를 계속 달립니다.
저는 조수석에 앉아 무거운 배낭을 무릎 위에 무겁게 올려 놓은 채 달리는 택시가 기우뚱 대는데 따라 몸을 움츠리며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시원하게 달리는 속도감에 쾌감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무거운 배낭은 초장부터 주인의 다리에 부담을 줍니다. 트렁크에 넣고 싶었지만 요즘 택시에선 트렁크의 삼분의 일 정도를 가스통이 차지하고 있어서 뒷자리에 앉은 세사람의 배낭을 넣으니 제 배낭까지 들어갈 여지가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안고서 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안전벨트도 매지 못하고 약간은 엉거주춤하게 조수석에 앉아서 60km 거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배낭이 제법 무게가 나가서 택시에서는 물론 산행내내 저를 괴롭히고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에 가기 위해선 짐을 줄여야 하는 것이 상식이겠습니다. 그러나 장거리산행을 감행하며 산장에서 하루 자려면 버너와 코펠같은 취사도구도 필요하고 식량과 옷가지 기타 간식이나 과일도 필요하기에 보통 때보다는 훨씬 무거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집을 나서며 배낭무게를 재기 위해 전자저울에 올랐습니다.
우선 제 몸무게를 재니 86kg이 되는군요. 다시 배낭을 메고 저울에 올라서니 103kg에 조금 못 미칩니다. 배낭만 무려 17kg에 육박하는 것입니다. 저는 10kg 정도를 예상했는데 이건 너무 하다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동료들과 저를 먹일 식량과 간식거리를 줄일 수도 없기에 산행초기에 빨리 먹어치우면 된다는 생각 속에 그냥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게가 좀 나가는 것들을 첵크해 보니 1.5kg이 되는 카메라와 우유 1리터짜리 1병, 1리터짜리 물통, 복숭아통조림 두개, 사과 4개, 소주 한 병, 맥주 한 캔, 다음날 점심식사 등이었고 거기다가 소소하지만 GPS와 소형 카메라와 아이젠, 선글라스, 해드랜턴과 플래시, 칼과 수저, 우의와 우산, 필기도구와 여벌 옷 등이 55리터짜리 배낭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 동기들과 설악산을 갈 때 짐이 15kg이 되어 고생하다가 공룡능선 가는 아침엔 햇반을 비롯해 소주와 통조림, 라면 등을 모두 산장에서 같이 묵던 사람에게 준 기억이 났습니다. 올해는 작년에 없던 DSLR 카메라 때문에 2kg이 늘어난 것 같았습니다. 여하튼 부지런히 먹고 마셔서 짐을 빨리 줄이되 작년처럼 타인에게 양도하는 일은 없게 하리라고 다짐합니다.
새벽 세시 쯤 되어 택시는 중산리 마을과 주차장을 지나 더 위의 탐방안내소 앞에 우리를 내려 놓았습니다. 헤드랜턴을 머리에 고정하고 신발끈을 다시 매는 등 산행준비를 하고 있는데 탐방안내소 건물의 창문이 열리며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직원이 얼굴을 내밉니다. 그러더니 일출(6시 40분 예정) 두 시간 전인 4시 반에야 산행이 허가되고 그 전에는 산행을 못 한다고 말합니다.
난감합니다. 이때 정사장이 나서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공단직원을 설득합니다. 날도 좋은데 정상에 빨리 올라가서 일출을 보는 게 좋을 것 아니냐고,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합니다. 그러자 그 직원도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이해한 듯 한 번만 봐주기로 합니다. 우리는 고마워 하며 랜턴불을 켜고 아스팔트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때가 3시 25분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날씨는 아직 좋은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부옇게 안개가 낀 오리무중입니다. 시작점이 약 530m의 고도라는 게 GPS에 나타납니다. 1,915m 높이인 천왕봉까지는 수직거리로 약 1,400m 나 올라가야 하는 한국 최고의 표고차입니다.
조금 오르다보니 체온이 상승하여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습니다. 위에 짝어 누르는 짐의 무게를 견디는 동시에 길에 깔아 놓은 거친 돌을 조심스레 딛으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서중원군과 제가 앞서고 우명길군과 정병기군이 뒤로 쳐집니다.
우명길군으로 말하면 이번 산행의 코스와 일정을 정하고 모든 결정을 한 산행대장으로서 이번 여행의 주최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실행을 지휘하느라 몸과 맘이 분주할 터인데도 제 짐 못지 않게 무거운 짐을 지고 저희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우명길군에게 산을 열심히 오르는 사람에게 내리는 제 자신이 정한 Mt. 라는 칭호를 내린 바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지금 Mt. Woo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Mt. 는 마운틴의 약자인데 St.(기독교의 성인)에 필적하는 용어가 되겠습니다. 산을 사랑하고 산행을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Mt. 인증을 실시하려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Mt. 인증의 요건으로는 백두대간종주와 100명산 등정 정도는 끝냈어야 하겠고 거기에 덧 부쳐서 불굴의 산행실천과 탐구가 있어야 하며 산행의 반 이상을 단독산행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산행에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선 자신과의 대화가 중요한 데 그것은 단독산행에서 보다 더 용이하게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중원군과 둘이서 돌길을 헤치며 나가다 보니 철제 구름다리를 건너게 되고 장터목 대피소와 천왕봉이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휴식하는 중에 물을 마시며 일행을 기다리는데 10여분이 되어도 두 사람이 오지를 않습니다. 할 수없이 길을 거슬러 내려가 보니 천하의 Mt. Woo도 어둠 속에서 길을 찾으며 더듬거리고 있었습니다.
빨치산 아지트로 가는 길을 등산로로 잘 못 알고 따라 갔다고 합니다. 두사람을 만나서 옳은 길로 오다가 장터목 삼거리에서 다시 좀 더 쉬었습니다. 한 20분이 흘러가 버렸는데 시각은 4시 37분이었습니다. 6시 40분의 일출까지는 약 두 시간이 남았습니다. 가능하면 일출을 천왕봉 정상에서 보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는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비탈진 오솔길을 따라 정상을 향했습니다. 여기부터는 제법 구배가 심하여 힘이 배로 듭니다. 설상가상으로 조금 올라가니 철계단이 설치되고 길이 가팔라졌습니다.
그러다보니 MT. Woo, 정사장과는 다시 거리가 멀어지고 서군과 저는 헉헉대며 전진합니다. 앞쪽을 보니 저 위로 불빛이 보이는데 아마도 로타리산장과 법계사의 불빛인 것 같습니다. 철계단을 다시 한번 통과하고 한참을 더 올라가니 드디어 6시 5분경 법계사앞에 도착하였습니다. 해발이 1,300m가 넘는 곳으로 우리나라 절들 중에서 가장 고도가 높다고 하는 곳입니다. 샘에서 물로 목을 축인 다음 서사장은 법계사 경내를 잠시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는 다시 천왕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이제 600m 가까이 올라가야 하는데 일출시간인 6시 40분까지는 30여분 밖에 남아있지 않아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에는 어려운 시각입니다. 좀 더 올라가다가 전망이 트인 곳에서 일출을 보기로 하고 속도를 내어 위로 올라갑니다.
6시 39분 전망이 트인 바위 위에서 서군과 저, 둘은 일출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흐려서 선명한 일출은 보지 못하고 구름속에서 반 이상이나 숨어서 뜨는 해를 구경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일출을 보더니 서군은 힘이 솟는지 이제는 저를 두고 횡하니 정상을 향해 가버립니다. 저도 헐레벌떡 뒤를 좇아서 길을 서두릅니다. 얼마 안가니 개선문 바위가 나오고 천왕샘도 나왔습니다. 돌로 된 가파른 길을 힘들게 올라가니 드디어 지리산의 제1봉인 천왕봉의 정상입니다. 7시 43분 중산리에서 산행시작후 4시간 20분 가량이나 흐른 시각이었습니다. 아마도 무거운 짐 때문에 한 시간은 늦어진 것 같았습니다. 정상석 옆에서 서중원군이 웃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상에서 보니 날은 잔뜩 흐려 있는데 오늘따라 일행을 기다린다는 한 아주머니 외에는 사람이 없고 정상은 조용합니다. 저는 배낭에서 DSLR 카메라를 꺼내어 우선 정상석의 사진을 찍고 그 다음엔 서중원군을 정상석 배경으로 찍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부탁하여 제 사진도 하나 찰칵. 그 다음엔 내려다 보이는 경치를 한 20장 찍어 봅니다. 예정 시각보다는 늦었지만 오늘의 최고봉에 무사히 오르니 다행일 뿐 아니라 남은 여정도 무사할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이제 목표는 우리가 묵을 숙소인 대피소(산장)가 있는 연하천입니다. 둘이는 밑에 펼쳐진 경치를 즐기며 느긋하게 일행인 Mt. Woo와 정사장을 기다립니다.

산행시작 약 한 시간 후 찍은 어둠 속의 3인

지리산의 일출, 맑고 투명하진 못해도 가슴은 설렌다.
그날따라 사람이 없어 한가한 지리산 정상

정상에 선 2인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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