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2. 06:53ㆍMISCE.
잠 못 이루는 울산의 새벽, 4시만 되면 잠에서 깨어난다. 아무도 곁에 없다. 일찍 일어나 오랜만에 일기를 써 본다.
어제(6/11) 회의 중인데 서울의 아내에게서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마침 중요한 걸 토의하는 중은 아니길래 전화길 들고 황급히 복도로 나갔다. '명숙이 남편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가 조문을 간다는 이야기인데 너무나 안스러운 소식이라 울산에 있는 나한테도 황급히 전했나 보다. 짧은 순간이지만 내 머릿속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나서 살다가 죽고....
'그래, 안됐군' 아내의 전화를 무덤덤하게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회의 중이라 깊은 생각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분을 만난 게 1984년인가 한 번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그이를 잘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 반년 전부터 그이가 간암에 걸려 고생한다는 이야기는 죽 들어왔기 때문에 그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나만의 착각을 하고는 있었다.
이름은 이선호, 방학중에 서울에 갔다가 압구정동에서 그이를 가족들과 처음 만났을 때 그이는 호쾌한 타입의 자신만만한 사장님이었다. 스페인에 가서 가죽장사를 해서 돈도 벌었고 한국에 돌아 와서도 사업이 제법 잘 나가는 듯 했다. 우리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갈비집에 가서 포식을 시켜주었다. 그때 유행하던 네모진 병의 관광소주로 건배를 하며, '열심히 일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갈비 정도야 못 먹겠습니까?' 하고 말씀한 것이 그후로도 오래 기억속에 남아 있었고 우리 가족은 그 집과 별 교류도 없이 울산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1999년 3월 울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가면서 아내는 대학동창인 명숙씨를 다시 찾게 되고 동창회 등에서 교류를 하게 되니 자연 그 집 소식을 나도 듣게 되었다. 명숙씨 남편은 IMF의 여파에 사업을 접고 이미 집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벌어 놓은 것과 형이 도와주는 외에 빌딩을 하나 소유하고 있어 생활의 걱정은 없다고 아내가 말해줬다.
'좋은 팔자로구먼' 하고 내가 부러운 듯 이야기 하니, 아내는 그게 그렇지도 않다고 이야기 해 준다. 그이는 사업을 접은 후로는 남들과 어울리는데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두문블출하는 버릇이 생겨, 동창들의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전화를 받지 않음은 물론 자기 자신의 전화를 따로 가설하여 자기를 집에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고지식하다 할까, 자존심이 세다 할까 그런 타입인가 보다 생각하고, 내가 그이를 한번이라도 만나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 했다. 아내 친구들의 남편들과 나와는 거의 왕래가 없다 겨우 두 사람과 인사를 했다. 하나는 명숙씨 남편이고 다른 한 사람은 큰처형의 시동생인데 아내가 제 친구를 중매해 준 사람이다. 아내와 사돈인 셈이라서 두어번 만난 적이 있으나 지금은 별 왕래가 없다.
우리가 20년을 울산에 내려와서 생활하며 아이들을 다 키운 뒤에야 서울로 올라가는 바람에, 울산사는 동안 서울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나 아내나 사람들 사귀기를 힘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척이나 내 친구를 만나기에도 나는 별로 시간이 없다. 내가 울산에서 홀아비 생활하며 주말에만 서울에 갈 뿐 아니라, 매주 산으로만 내빼니 사람들 만날 기회가 아주 줄어든 것도 이유이다. 물론 주말엔 한번은 성당에 가야하는 것도 내가 사람을 사귈 시간이 없다는 핑계거리중 하나다.
그러던 중 반년 전 쯤인가 보다. 명숙씨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아내가 나에게 전해준다. 간암인데 의사말로는 3-4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단다. 나는 '안됐다'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내의 말인 즉, 그분의 태도가 너무나 의연하다고 한다. '60 넘게 살았으니 됐지 뭐, 남은 세월 짧지만 애들 결혼이나 시키고 즐겁게 가겠소' 라고 부인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아들 둘은 좋은 데 취직해서 다니고 있는데 아직 미혼이다.)
동갑인 우리부부와는 달리, 부인과 나이차가 있어 나보다는 몇살 위 형님뻘인 그분의 말씀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과연, 용감한 분이거나 달관한 분이구나. 기독교의 힘인가?'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죽음 앞에서 나도 저렇게 의연했으면 좋겠다' 하고 나는 그이의 용기를 부러워 하였다.
그런데 얼마 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이의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는데 통증이 너무 심하여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남편이 심한 고통에 시달리는데 부인의 마음은 얼마나 안스러웠을까? 아내는 병문안이라도 가려고 했지만 친구가 한사코 오지 말라고 했단다. 병자의 어려운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 싫은 마음이리라. 드디어 병원에서도 손을들고 어쩔 수 없으니 퇴원을 종용했다는 소식을 들은지가 열흘 쯤 전이었다.
일상의 소소한 잡일들에 휘둘리며 지난 주말에는 집에도 못 가고 울산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어제는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데 아내의 전화가 왔던 것이다. '그이가 결국 돌아가셨다고...' 참으로 안 되었다. 아내가 친구를 사랑하고 내가 아내를 사랑하니 죽은 그이는 나와는 너무나 가깝게 엮이어 있었다는 생각이 오늘 아침 불현 듯 든다. 나의 이 이기심이랄까 헛된 자존심이, 그이가 떠나기 전에 그이를 한 번이라도 만나 보았어야 하는 마음을 막았나 보다. 성호를 그으며 명복을 빌 뿐이다.
난 여태까지 인생이 긴 줄 알고 살았다. 손윗동서가 몇년전 암으로 돌아가시고 친구들이 턱턱 죽고 해도 나 혼자는 오래 오래 살고 늘 좀더 높은 곳을 향해서 발전해 나갈 줄 알았다. 몸의 쇠잔함도 아직은 별로 느끼지 않기에 산과 들로 힘차게 쏘다녔다. 그러한 발전철학을 지탱하는 것이 바로 나의 자존심이었고 나의 체력이었고 꺾이지 않는 오기였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이 자꾸 죽어간다. 나라고 겪지 않을건가? 하는 생각을 이 아침에 해 본다.
[생각컨대 인생 드럽게 짧다. 네 인생이나 내 인생이나!
내 인생은 아주 길어서 끝이 없을 줄 알았었다.
이 아침 어린애같은 이 넘의 깨우침인가? 반항인가?]
이선호님, 잘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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