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산악인 추모비의 미진함

2008. 7. 17. 11:17MISCE.

7월6일 북한산 무당골에서 산악인추모비의 제막식이 있었고 동료 2인과 그 자리에 참여하였다. 먼저 간 우리 산악회 회원들도  5인이나 모셔지기에 우리에겐 중요한 행사였다. 그날은 미리 정해진 날짜라서 상단에 돌로 새긴 명단을 붙이지 못하고 적당히 늘어놓은 채, 하단의 동판들도 붙이지 못한 채로 조형물이 준공도 안되었지만 제막식이 진행되었다.

 

추모비가 세워진 장소의 원이름이 무당골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옛적에 무당들이 한적한 이곳에서 굿을 하거나 제를 올렸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음직 하다. 산악인들의 영혼이 쉬는 곳으로 바뀐 지금 새로운 이름이 아쉽다. 무당골이라는 이름이 미진함으로 밀려 온다.

  

7월 16일 완성된 조형물의 모습을 보기 위해 다시 무당골을 홀로 방문하였다. 이곳이 막다른 골목길의 외진 장소인데다가 비가 오려는 궂은 날씨 때문인지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어 호젓한 분위기에서 찬찬히 비석을 들여다 보았다.

 

경사진 원판으로 된 상단에는 북한산에서 발견된 비석들의 임자들을 오석(검은 돌)판에 새겨서 붙여 놓았고 원통모양의 하단에는 북한산에 설치되었던 동판들을 원주위에 붙여 놓아 명단의 등재가 상과 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상단에는 우리 산악회의 유재원, 정순영, 송석인 회원의 돌판이 다른 이름들에 섞여서 적당한 간격으로 붙여져 있었다. 유재원형의 경우는 개인의 비석이 북한산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건립위원회에서 그의 산사랑과 업적을 인정했기에 허락된 일이었다.

 

그런데 상단의 명단중에 특이한 명패가 하나 눈에 띄였다. 돌판에는 '고 도봉산 할머니, 산악인 일동, 1990.07.'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60-70년대 도봉산에 있던 할머니가게의 주인을 추모하는 비가 틀림없었다. 비문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은 그 할머니가 1990년 7월에 돌아가셨으며 산악인들이 그분을 추모하여 북한산 어딘가에 비석을 남겼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분도 산악인의 반열에서그들과 나란히 잠들어 있다. 고단한 시절 할머니께서 산악인들을 위해 고맙게 음식을 제공하고 어울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준 점이 인정되어 산악인으로 추모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러나 내겐 그이를 더 알고 싶은 욕심이 생겨 명패만을 보고는 미진함이 짙게 남는다. 그분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없는 것일까?

 

할머니라는 보통명사 비슷한 이름 말고 O순, O자 처럼 촌스러운 이름일 수도 있지만 그분의 이름을 알 수는 없을까? 그리고 언제 태어났는지? 더 욕심을 부린다면 태어난 곳과 업적이 써있었다면 금상첨화이리라. 그러나 한정된 노력과 시간으로는 어려웠으리라고 지레 짐작해 본다.

 

상단의 할머니 명패에서 미진함을 품었다면, 하단으로 가면 내게 더 큰 미진함이 남는다. 경동동문산악회에서 제공한 동판의 문구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동판에 정명환 선배와 김선택 동문 두 사람의 이름을 새겼다. 그 중 정명환선배의 경우 '21기 정명환' 이라고 밖에는 표기하지 못한 점이 너무나 아쉽다. 그분이 작고한 날짜와 장소를 알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그분이 미국으로 이민가서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만 있을 뿐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다는 확실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만날 수가 없었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 그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우리들의 무관심이 그렇게 과소한 정보의 표시로 끝나게 된 것이다. 언젠가 동판을 수정할 수 있는 날이 있다면 수정할 수 있도록 그분에 대해 더 알고 준비해야겠다.

 

한 사람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류 전체의 손실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도 홀로 존재하는 섬일 수는 없다. 그는 인류전체라는 대륙과 연대하여 존재한다. 그의 죽음은 인류전체의 손실이자 대륙의 줄어듬 아니겠는가?

 

정명환 선배의 사라짐은 무엇인가? 우리 동문산악회의 줄어듬 아니겠는가? 그를 추모하는 마당에 그이의 정보가 과소함은 무엇인가? 우리들 존재의 부정확함 아니겠는가?

 

새벽같이 어머니 몰래 등산화도 신지 못하고 인수나 선인으로 도망와서, 신사화를 신고 담배를 물고 후배들 몸에 자일을 묶어주며 유유히 바위를 오르내리던 명환형의 낙천적인 모습이 오늘따라 왜 이리 그리워지는가? 미인 박명인가? 아님 천재단명인가? 

출처 : 경동OB산악회
글쓴이 : 24이규성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