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1 한강 따라 걷기에 2번째(하장중고 ~ 문래1리) 참가해서 오지를 걷다

2022. 4. 15. 09:43포토DOCUMENTARY

   2주 전에 새로 만난 친구 두 사람(L교수, Y)과 M, 나, 합해서 4인이 2주 만에 만나서 한강 상류를 따라서 다시 걸었다. 결과를 보니 GPS상 16km를 5시간 정도 걸었다. 따가운 햇볕에 더위를 느끼는 날씨였다.

 

   아침 일찍 서둘러 청량리역으로 나갔다. 7:22 KTX로 출발, 평창역엔 08:37 도착으로 예정되었으나 5분 정도 늦게 도착하였다. 같은 열차이나 각자 다른 자리에 앉아 역에 도착한 3인과, 마중 나온 L교수가 다시 반갑게 만났다. L교수는 승용차를 가지고 3인을 마중 나왔는데 이 차로 오늘 걷기의 시작점인 하장중고교까지 가기로 하였다.

 

   L교수는 우선 우리를 평창강의 시작점이라는 삼형제바위가 있는 작은 강가로 안내한다. 평창역에서 10분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이다. 주소가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2리인데 흥정천과 속사천이 만나서 평창강이 되는 곳이라고 한다. 강은 상류에서 하류로 가면서 여러 개의 지류가 합쳐서 흘러내려 가는데 대개는 합수점에서 명칭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이름이 자주 바뀌니 외우기에 어려움이 있다. 여기서부터 하류가 평창강인데 결국 이 강은 주천강을 만나서 서강이 되고 영월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이 된다.(우리가 현재 따라서 걷고 있는 골지천은 동강의 상류이다. 합수점 아래로 강의 명칭이 변경되는 것이 절대적 법칙은 아닌 것 같고 대개 그렇다는 것인데, 지금 따라가고 있는 골지천의 경우는 한강의 최상류로서 한강의 발원지라는 검룡소 부근에서 시작하여 작은 지류들을 여러 번 만나서 합수하고 있음에도 꽤 오래 이름이 변하지 않고 골지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르다가 북평에서 오대천과 만나 조양강이 된다.

 

   水系를 족보식으로 도표화 해놓은 것을 보면 강의 명명에 어떤 법칙이 나오지 않을까? 재미있는 사실은 합수점 아래에 붙은 강의 이름은 상류의 강 이름으로도 쓸 수 있는 것 같다. 골지천을 조양강으로 부를 수 있고 한강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상류쪽 강의 이름은 하류 쪽 강의 이름으로는 쓰지 못하는 것 같다. 양수리 아래의 한강을 남한강이나 북한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강의 또 다른 지류인 평창강을 보았으니 부지런히 오늘의 시작점으로 가야 한다. 차로 가지만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좋이 100km는 되는 거리이다.

 

   오늘의 들머리로 가는 중에 있는, 약 40km 거리의 인공폭포인 백석폭포(정선군 북평면 나정리)에서 차를 세우고 잠시 경치를 즐겼다. 차는 다시 떠나서 계곡을 따라가더니 아우라지를 통과한다. 골지천이 송천과 합수하는 아우라지(정선군 여량면 여량리)는 익히 들었던 유명 장소로 양평의 두물머리와 함께 합수점 이름으로 자주 거론되는 지명이다. 아우른다는 말이 합한다는 뜻이겠다. 차는 고개를 몇 개 넘더니 임계면소재지에 잠시 머물렀다. 터미널에서 버스시간표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걷기가 끝난 후 승용차를 세워 놓은 곳으로 움직일 때 가격이 저렴한 버스를 이용해 볼까 해서이다. M이 버스시간을 체크해 보니 우리가 걷기를 끝낸 후 이용하기에는 맞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결국 걸은 후에 택시를 이용했다.)

 

   12시가 조금 안 되어 차는 지난 번 걷기를 끝낸 하장고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비어 있는 버스정류소 안의 벤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걷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소주 한 병을 가져갔는데 L교수와 내가 조금 마시고 반을 남겼다. 떡과 샌드위치, 라면이 각자의 주식이다. 식사를 끝내고 걷기를 시작한 것이 12시 7분이었다. 차는 학교 앞에 세워 놓았다.

 

   지난번처럼 35번 국도를 따라간다. 강과 차도는 나란히 가지만 강이 자주 굽어지기 때문에 강과 도로간 간격이 생기게 된다. 이때에 큰길을 버리고 강을 따라서 가는 다른 길이 없는가에 대해서 촉각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발견한 길이 대개는 흙길이고 차가 다니지 않아 걷기에 더 알맞기 때문이다. 거리를 단축하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이번 걷기에선 겨우 한 번 정도 그런 길을 만난 것 같다). 고도가 높은 산골이라 그런지 서울이나 근교에서 활짝 핀 것을 보고 온 꽃이 여긴 아직 피지 않았는지 보이지 않아 섭섭했다. 산에는 진달래가 있을 법 한데 붉은 색을 찾지 못했다.(마지막쯤에 작은 무더기를 보기는 했다.)

 

   길은 넓은데 걸어 다니는 사람은 우리들뿐이다. 차들이 가끔 속도를 내서 다니는데 트럭도 자주 보였다. 갈전리 당숲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당집이 있고 나이가 몇 백 년은 되었을 큰 나무들 몇 그루가 서있는데 한 나무는 플라스틱 같은 재료로 속이 빈 공간을 채워서 치료를 해 놓았다. 자주 보는 시멘트가 아니었다. 나무가 늙어서 죽어갈 때 인공적인 생명연장이 필요 없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누군가가 피력했다. 동감이다. 안내판이 이 당숲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사진 참조)

 

   이 마을이 16세기 중엽인 500년 전에 성립되었다 하니 놀랄 만한데 그 증거가 이 나무들이다. 역사 속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하나 안타까운 점은 집 근처에도 인적이 없어 인구가 과소한 지역에서 과연 역사의 계승이 잘 되고 있을까 하는 염려가 일었다. 주위는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만큼 이 지역은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라고 할 수 있다. 골짜기를 따라 길이 나고 마을이 생김에 따라 산지가 많고 농사지을 벌판이 별로 안 보이는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오늘도 L교수와 걷는 중의 대화에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한 수 배운다고 해야겠다. 비교적 단조로운 길을 갈  때에 친구와 대화를 하며 간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대화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 새 먼 거리를 힘들이지 않고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L교수와의 대화는 지난번처럼 즐거웠다. 대화 뿐 아니라 글도 흥미로웠다. 그가 쓴 글이 어느 카페에 있다고 가르쳐 주어서 10여 꼭지를 읽어보니 글에 조리가 있고 깊이가 있었다.(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는 후기에 썼다.)

 

   산자락 옆에 난 터널의 바깥길을 따라서 걷고 들판에서 큰 길을 버리고 강 옆길을 걸었다. 다리를 건너고 가다가 다시 터널 옆길을 걸었다. 문래1리, 목적지가 가까워지는데 조금은 지루하고 더위를 느꼈다. 강을 따라 가는 강 길의 단점은 햇빛을 가려줄 나무가 없어서 따가운 볕을 피할 수 없는 점이다. 거기 비해 산길은 숲속을 걷는 경우가 많은데 나무가 직사광선을 가려주는 장점이 있다. 오늘 같은 날 강 길에 차가 별로 없어 다행이지만 숲길엔 아예 차가 없어 조용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길을 걷다보니 행정구역이 달라졌다. 삼척시 하장면 토산리에서 행정구역이 바뀜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정선군 임계면 문래리로 들어갔다.

 

   토산리 쯤인 것 같았는데 길을 가는데 길옆 밭에 높이 2m 정도의 가는 쇠파이프들을 가지런히 꽂아 놓고 작물은 아직 심지 않은 곳을 지나다가 마침 현장에 온 밭주인을 볼 수 있어서 무슨 작물을 재배하느냐고 물으니 대추를 심을 예정이라고 한다. 쇠파이프는 대추의 지지주인 셈이다. 목적지인 문래1리에 도착해서도 여기저기 쇠파이프가 많이 서 있었다. 파이프만 서 있고 나무는 아직 심지 않은 밭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는 묘목이 1.5m 가량 자란 밭(나중엔 과수원이 되겠지만)도 있었는데 나무 모양을 살펴보니 사과나무였다. 최근 이곳의 관심사로 과수재배가 시작된 것 같았다. 부디 소득을 올려서 잘 살기를 바란다.

 

   16:58, 문래1리의 문래분교에 도착하여 걷기를 끝냈다.(문래분교의 본교 이름은 모르겠다.) 지도에는 분교가 있는 곳이 “아리아리 정선 캠핑장”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캠핑장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분교에 그런 시설이 있었다가 코로나 사태로 없어진 것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다. 폐교가 된 학교의 텅 빈 운동장 한편에는 붉은 빛 2층 교사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는데 교정 한 구석에 돌로 된 송덕비가 두 개 서 있어서 읽어보니 그 중 하나는 이 학교에 교지를 기증한 사람에 대한 감사비였다.

 

   문래1리에는 입구에 장승이 서 있고 경로당, 교회, 보건진료소가 있다. 국도 35번을 따라 길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근처에선 중요한 마을로 보였다. 그리고 앞의 이야기처럼 이곳 사람들이 과수원을 단정하게 가꾸어 놓은 데에서 잘 살아보려는 의지에 믿음이 갔다. 취학인구 감소로 초등학교가 폐교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L교수와 Y는 임계(송계리)에서 온 택시(택시비 4만원)를 타고 승용차를 회수하러 갔다. M과 나는 보건진료소 앞 정자에 앉아 쉬면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차가 도착하여 아침에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장평으로 갔다. 한참을 걸어서인지 승용차의 뒷자리에 편하게 앉아서도 차가 흔들림에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지도로 보니 문래1리에서 장평까지 83km나 된다. 먼 거리이다. 왕복 운전을 해 준 L교수도 피곤했을 것 같다. 오늘 걷기는 보통이 넘는 무리한 계획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저녁으로는 내가 주장하여 장평의 막국수집으로 갔다. 시인이 오후 7시 45분에 장평에서 군포로 가는 고속버스가 있어 그걸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저녁을 서둘러 들었다. Y와 나는 밤 8시 9분 KTX가 있어 L교수의 차로 인근 평창역으로 갔다. L교수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역사로 들어가 KTX에 탑승, 청량리 도착, 전철로 집으로 왔다.

 

- 후기 -

 

   1. 천주교의 순교에 대해 더 알아보아야

   강줄기를 따라 걸으며 L교수에게서 들은 중요한 이야기 하나가 천주교 순교자 이야기였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만 명 이상이나 희생된 데에는 천주교인들이 조상의 제사를 거부한데에 큰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초기 예수회에서 마테오 리치 등이 중국에서 전교할 때에는 제사를 허용하다가 후에 도미니크회에서 동양전교의 책임을 맡게 되자 교리 해석을 바꾸어 제사를 금지시키고 위패를 버리도록 지도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L교수는 본인이 썼던 글을 보내주겠다고 한다.(그 글을 읽고 공감했지만 천주교를 희생시키려는 당쟁의 부작용 등 다른 요인들도 있었을 것 같다. 제사금지가 순교를 야기한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맞겠으나 단순하게 그것만은 아니고 다른 요인들도 부추긴 게 아닌가 생각되어 천주교 전교사를 공부해 볼 필요를 느낀다.

 

   2. 멀고도 가까운 강원도

   나는 늘 강원도가 나와 아주 가까울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다. 산이 좋고 강이 좋을 뿐 아니라 사람이 좋고 경치가 좋고 막국수와 감자전이 좋다. 강원도가 다른 지방보다 살기 좋은 곳일 거라는 믿음, 즉 환상이 있다. 처가가 강원도였기 때문에 받은 영향도 있을 것이다. 강원도에 살고 있는 L교수가 부럽다. 한강상류를 걸을 수 있는 이번 기회에 강원도를 좀 더 알고 싶었다.

실제의 강원도는 멀었다. 아침 6시 반에 서울의 집을 나가서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 왔는데 강줄기를 따라 걸은 거리는 고작 16km에 불과했다. 강원도는 멀고도 또한 넓은 곳이다. 두 번의 걷기를 위해서 태백, 정선, 평창을 버스와 택시, 승용차로 가로질러 다녀 보았다. 그러나 그 넓이가 원체 넓으니 어디가 어디인지 아직도 감이 잘 안 잡힌다.

 

   평창을 지나는 영동고속도로에는 나들목(I.C.)만 해도 면온, 평창, 속사, 진부, 대관령의 5개나 있다. 평창IC에서 가까운 장평은 버스교통의 중심지이다. 장평역에서 4km 밖에 안 되는 가까운 곳에 강릉선 KTX의 평창역이 있다. 군청이 있는 평창읍은 역에서 25km나 남쪽으로 떨어져 있다. 봉평면 창동리의 이효석 문학관은 역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져 있다. 이렇게 중요 지점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외부인의 지역에 대한 이해를 더디게 한다.

 

   산으로 눈을 돌리면 산악지역답게 해발 1,500m부터 1,000m 내외의 명산들이 아주 많은데 우선 꼽아보니 계방산, 오대산, 태기산, 발왕산, 백덕산, 백병산, 금당산, 거문산, 고두산, 금대봉, 대덕산, 매봉산, 문수봉, 박지산, 백적산, 선자령, 연화산, 청옥산 청태산, 회령봉으로 20개나 되는 산들이 동서남북에 우뚝 솟아있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땅이다.(8개 정도는 올라 본 산들이다.)

 

   그런데 내가 평창까지 오려면 아직 멀었다. 태백시에서 걷기 시작하여 이제 겨우 정선군에 발을 들여 놓았다. 정선군 역시 넓고 이런저런 산이 많아서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정선 다음이 평창이다. 정선도 마음이 끌리는 고장이다. 정선의 아우라지 가까운 곳 어느 경치 좋은 강변에 별장을 하나 지어 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별장과 애인은 소유하는 순간부터 골칫거리라고 하는 말도 있다. 게다가 내 나이를 보아도 이제 꿈을 접을 나이다. 주어진 대로 살다 가야지 무슨 일을 벌일 나이는 지난 것 같다.

 

   한강상류의 강줄기를 찾아가 걷는 김에 강원도를 더 체험하여 가슴으로 느끼고 더 알아야하겠다. 물리적으로 내게서 먼 강원도를 심리적으로는 가까운 강원도로 만들어보고 싶다.

 

지도의 (3)번을 걸었다. 지난 번에 걸은 구간이 (2)번이고 (1)번은 같이 못함. 다행히 검룡소는 이전에 두번 방문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