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6. 10:16ㆍ포토DOCUMENTARY
지난 번 한강 따라 골지천을 따라 걸은 것이 4월 26일이었으니 약 한 달, 4주가 지났다. 중간(2주 전)에 동료들은 앞 구간(낙천리 ~ 봉정리)을 이어갔지만 나는 여건이 안 되어 한 구간을 건너뛰고 이 번 걷기에 합류한 것이다.(한강 줄기를 빈틈없이 모두 걷는다는 것은 엄청난 프로젝트이기에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들의 계획을 따라 모든 구간을 완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한강 상류의 풍광과 인정을 4구간에 걸쳐 조금이나마 엿보았다는 데에 만족해야겠다.)
청량리에서 7시 22분에 떠나는 KTX 열차에 타고 8시 37분, 평창역에 도착하여 같은 차로 온 2인과 합류하였다. 이상훈교수가 역으로 마중 나와 그의 승용차를 타고 여량으로 향하였다. 31번 국도를 타고 서울대 평창캠퍼스를 우측으로 보며 남쪽으로 가다가 좌로 꺾어 모릿재를 향한다. 길은 상승하여 모릿재 터널을 지나서부터 계속해서 내려가다가 59번 국도를 만나 우측(남쪽)으로 꺾어 북평을 향했다. 막동계곡과 숙암계곡 입구를 지나서 백석폭포에서 잠시 쉬었다. 올 때마다 백석폭포 앞에서 멈추는 게 관행이 되었다. 59번 국도는 오대천을 따라 내려가는데 오대천은 북평 인근에서 골지천과 합한 뒤 조양강으로 이름을 바꾸어 정선을 향해 흐른다.
오대천과 골지천이 합류하는 지점(나전교)까지 가서 차에서 내려 지형을 잠깐 살펴 본 후에 42번 국도를 타고 북동쪽으로 조금 가서 아우라지가 있는 여량에 도착하였다. 여량면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옆에 있는 여량 버스터미널로 갔다. 조금 기다려서 10시 20분 발 임계행 미니버스에 탑승하여 오늘 걷기가 시작되는 발면동 버스정류장까지 쉽게 도착하였다.(10:31) 발면동은 장선군 여량면 봉정리의 딴 이름이다.
걷기를 시작하는데 아침에 보이던 안개가 걷히고 날이 맑은데 대신 햇빛이 강하다. 스카프를 꺼내서 모자 밑으로 늘어뜨려 목을 가렸다. 초장의 길은 강을 곁에서 따라가지 못하고 산을 넘게 되어 있는데 산이 험하지는 않아 다행이다. 찻길을 따라 산을 넘다가 아래쪽을 보니 발면동 마을이 보이는데 그 입지가 아주 맘에 든다. 큰길에서 가지 친 작은 길이 강을 건너 마을로 가는데 강은 S자로 굽어 있어 동네와 어우러져 아늑하게 보였다. 교통이 어떨지 몰라도 살고 싶은 마을이다. 산길을 내려가 강을 다시 만나고 다리를 건너는데 소수력 발전소가 보였다.(사진) 발전을 위한 낙차를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보던 작은 수력발전소들이 생각났다. 모습은 매우 다른 것으로 기억한다.
길 옆으로 아카시아꽃이 한창이다. 길에는 걷는 사람이 우리 뿐인데 조금 떨어진 밭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하고 있다. 모종을 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십중팔구 외국인 노동자들일 것이라고 이교수가 설명해 준다. 밭 옆에는 그들을 실어 온 듯한 미니버스도 보였다.(길과 밭이 거리가 있어 노동자들이 외국인임을 확인하지는 못 했다.) 길 옆에 녹색의 한글 글자로 “휴”라고 크게 써서 세워놓았다. 정선군의 상징구호(?)라고 역시 이교수가 가르쳐 준다. 정선은 관광객들이 와서 “푹 쉴 수 있는 고장“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듯하다. 과연 그러할지? 정선을 더 살펴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길이 완만하게 상승하고 후미진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떡과 김밥이 보였는데 나는 컵라면이었다.
여량면소재지인 여량리 입구에 오니 천주교 성당이 보이는데 “아우라지” 성당이다. 붉은 벽돌로 탑형의 건물인데 1층 처마 위에 흰색의 예수상을 올려 놓았다. 성당의 위치는 여량 마을의 중심이 아니고 변두리로 보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성당을 만나니 아무튼 반가웠다. 길은 반월상이 가운데 서 있는 다리를 통해 골지천을 건너 정자(여송정)와 아우라지 처녀상이 세워진 곳으로 인도하더니 징검다리로 송천을 건너 아우라지입구로 연결된다. 아우라지 전체는 제법 넓은 구역인데 관광객이 안 보여 을씨년스러웠다. 또한 강물도 얕아서 바닥에 붙어있는 듯하여 흥이 솟아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우라지라는 이름이 주는 호감은 마음 속에서 그대로였다.
길은 골지천의 북쪽 제방을 따라 가다가 아우라지교의 북단에서 42번 국도를 만나 찻길 옆을 햇빛 속에서 걸어야 했다. 강이 크게 휘어지고 국도도 같이 휘어지는데 오고가는 차를 대면하며 걸어야 했다. 장열리에서 길은 차도와 헤어져 숲으로 들어가니 숲속 쉼터에서 잠시 쉴 수가 있었다. 숲을 나와서 다시 국도를 걷게 되고 북평동 마을의 입구까지 조금은 지루한 걷기가 되고 있었다. 이때 소나무 숲이 보이는 길을 올라가니 왼쪽으로 색깔이 짙은 초등학교가 보이는데 북평초등학교였다. 나무숲에 차단되어 아직 북평동 마을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전진하니 좌측 아래로 나전역의 간판과 건물이 보였다.
나전역에 도착하였다. 나전역은 폐역으로 관광지로 변신한 듯하였다. 역사 건물 안에는 카페가 차려져 있었고 역 앞에는 사진을 찍는 포인트로 사각 프레임이 세워져 있었다. 지나가는 이에게 부탁하여 프레임 뒤에 4인이 서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역을 나와 버스터미널 옆 가게에서 음료수와 아이스케키를 사서 먹었다. 더운 날씨라서 찬 음료가 당기는 날이다. 가게를 나와 북평동 마을을 가로질러 강변을 향하는데 십자가가 올려진 교회 건물이 또 나왔다. 카카오맵 지도에서 건물 명칭을 찾아보니 ‘정선성당 북평공소’라고 나온다.
오늘의 최종목적지인 나전교로 가는 데에는 42번 국도로 계속 진행하는 방법과, 먼저 북평교를 건너 강의 남쪽길로 가다가 남평대교를 건너 42번 국도에 있는 나전교로 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후자를 택하였다. 강의 남쪽길은 1km 가량 직선으로 뻗은 길인데 차도와 인도가 분리되어 있고 노변공원으로 잘 꾸며 놓은 길이었다. 길의 끝에서 우측으로 틀어 남평대교를 건넌 다음 좌측으로 내려가니 곧 아침에 왔던 나전교이다. 다리를 건너서 버스정류장까지 가서 걷기를 끝냈다.(16:48) 약 18.6km, 6시간 17분의 걷기가 끝났다.
버스정류장에서 조금 기다려서 버스를 타고 여량면사무소로 갔다. 거기서 승용차를 타고 평창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대천변에 있는 청심대에 들렀다. 작은 암반으로 된 동산이 청심대인데 조선 태종 때 청심이란 기생이 순절 산화한 곳이며 풍류객들이 많이 다녀간 명승이라고 한다. 차는 모릿재를 넘어 평창군 대화의 한 막국수집에 가서 닿았고 막국수와 막걸리, 맥주로 저녁식사를 한 다음 평창역으로 오니 밤 8시가 채 안 되었다. 이 교수와 한 주 후에 보기로 하고 작별한 다음 20시 09분 열차를 타고 서울로 쉽게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루를 한강 상류 걷기에 바친 날이다. 강물의 양이 적어서 풍성한 아름다움은 조금 부족하지만 아우라지라는 명소를 돌아본 행복한 하루였다.
- 후기 -
1. 발면동 마을을 보며 전원생활을 상상해 보다.
큰길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작은 길을 택하여 다리로 강을 건너면 이 마을이 나온다. 구부러진 강변을 따라 듬성듬성 들어서 있는 집들을 키가 큰 나무들이 가려주고 있다. 실제로 마을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마을보다 높이 난 큰길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니 아주 아늑하고 평화롭다. 힐끗 보고 지나가는 마을이기는 하다.
그러나 꿈속에서 그리던 마을과 꼭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붉은 벽돌과 푸른 지붕, 나무들의 녹색과 강의 푸른 색, 땅의 갈색 등 파스텔 톤으로 된 색깔이 부드러운 마을의 이미지를 상상해 본다. 적당한 경작지와 과수원, 적당한 노동, 자연 속의 휴식과 학습, 이런 것들이 상상된다.
그러나 꿈일 뿐이다. 더 디테일로 상상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도시를 떠날 엄두가 나지 않으니.....
2. 아우라지가 주는 아우라가 안타깝다.
참으로 멋있는 이름이다. 아우라지는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송천과 골지천이 어우러지는 합수점을 말한다. 남한강으로 띄우는 뗏목의 출발지여서 상업적으로도 활발한 곳이었다고 한다. 또한 정선아리랑의 ‘애정편’의 배경으로, 여량리의 한 처녀와 유천리의 한 총각이 간밤에 내린 폭우로 만나지 못하게 된 안타까움을 노래했다고 한다. 양평의 양수리처럼 물이 만나는 곳은 경치가 좋고 나룻배가 움직이고 사람들의 이합집산에 따른 사연이 많은 곳이다.
아우라지는 충분히 사람들의 주목을 글 하드웨어(자연)와 소프트웨어(인문)가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 특히 내게 어필하는 것은 그 이름이다. 아우라지라는 이름에서 아우라를 느낄 지경이다. 민둥산역에서 정선을 거쳐 구절리역까지 가는 정선선 철도가 지금은 제 역할을 못 하지만 아우라지를 지나고 있어 한 때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모여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 현지를 답사하고 보니 강물의 양이 적다는 사실이다. 장마철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현재의 수량은 인간의 깊은 원초적 정서를 자극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댐을 막아야 할까? 어떤 해결책을 가져와 정선의 상징구호인 “휴”를 실현할 것인지?
3. 청심대의 청심은 또 하나의 희생양인가?
골지천 따라걷기 한 구간을 끝내고 오대천변의 작은 바위산을 찾았다. 청심대이다. 동산 위에 청심대(1927년 신축, 1986년 중건)를 지어놓았는데 다시 그 앞 정상에 예기암 바위가 있다. 동산의 아래에는 청심사당과 열녀비가 세워져 있었다. 경치가 좋은 곳으로 시인묵객이 많이 오던 곳이다.
조선 태종 때 강릉부사가 임지를 떠나 서울로 돌아오다가 현지에서 애인으로 지내던 관기 청심을 이곳까지 와서 작별하려 하였는데 청심은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버렸다고 한다.(이곳이 강릉과 서울 간의 교통로에 자리해 있었음을 알겠다.)
안내문에는 청심을 副室이라고 미화해 놓았다. 부실, 측실, 소실 등이 모두 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정실이 아닌 한에서 이들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 藝妓巖이라는 바위 이름에서 보듯이 청심은 기생으로 강릉도호부 소속의 관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심은 강릉부사를 만나 잠시의 정인으로 사랑을 받았으나 그의 임기가 끝나게 되니 더 이상 그와 지낼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여 목숨을 끊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녀가 느꼈던 사랑은 지금의 눈으로 볼 때 건강한 사랑은 아니고 봉건적 가치에 예속된 사랑으로 보인다. 크게 보아 관기라는 것이 노예에 다름없으니 청심도 노예제도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노예제도에 항거해야 했지만 시대가 그걸 용납하지 않았고 연약한 여성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을 터이다. 비극이다.
그 시절의 문인 과객들은 청심의 희생을 정절의 표상으로 해석하여 칭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보니 이 또한 비극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본주의에서는 이런 희생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는 있겠지만 여성이 돈이 없을 경우 빚어질 수도 있는 비극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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