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30 한강따라 걷기(정선군청 ~ 귤암교)에서 지극히 즐거운 대화

2023. 12. 3. 23:36포토DOCUMENTARY

   보통날인 목요일, 11월 30일, 한참 던져두었던 정선군의 한강따라 걷기를 한 칸 더 나아갔다. 지난 번 같이 움직이던 여러 사람이 11월 7일날 탐방한 곳인데 사정상 참가를 못했기에 같은 처지인 이상훈교수와 같이 걷기로 했다. 아침 새벽미사를 거르고 걷기 준비에 나서는데 어제 저녁까지 모임에 다녀오느라 준비해 놓은 게 아무 것도 없다. 컵라면도 없이 집을 나섰다. 옥수역에서 오뎅을 두 꼭지 사서 먹고 청량리에 가서 기차를 타기 전에 역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점심으로 준비하고 7시 22분 기차를 탔다.

 

   08:37, 정각보다 조금 늦게 평창역에 도착하니 이교수가 마중 나와 있다.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서 차가 발동이 안 걸려서 부인의 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서울에서 영하 6도였는데 평창은 더 춥다고 한다. 우선 이교수 집으로 가서 차를 바꾸어 타야 했다. 집에 가니 차는 서비스맨이 와서 발동을 걸어놓고 간 후였다. 부인과 인사를 나누고 현지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친지가 열고 있는 부동산 사무소에 가서 봉지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귤도 얻어서 정선으로 향했다.

 

   자주 오던 곳이라 산천을 잘 알 것 같은데 그렇지가 못하다. 조수석에 앉아서 스마트폰의 앱을 열어 지도와 현장을 비교해 가면서 갔다. 10시 40분이 채 안 되어 정선군청 근처 노상에 주차를 했다. 10:41, 길을 나서서 곧 나오는 정선제1교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 큰길을 따르지 않고 강 쪽으로 난 소로를 걸었다. 소로는 곧 끝나고 큰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큰길을 따라가야 했다. 이 큰길은 조금 더 진행하니 더 큰길(42번 국도)과 교차하는데 그길 밑을 지나서 산쪽으로 올라간다.

 

   “한강따라 걷기”이니 명색처럼 길도 강을 따라 가야 하는데 지형 때문에 길이 강 옆으로 붙지 못하고 강을 떠나서 산(언덕)을 넘어야 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나 강과 길이 따로 가는 구간이 지도로 가늠해 보니 4-5km는 되는 것 같았다. 이 언덕 구간에서 이교수가 아끼던 머플러를 잃어버려서 이를 찾으려고 잠시 뒤로 가 보았으나 보이지 않아 찾지 못하고 다시 전진하였다.(다행히도 걷기가 끝나고 머플러 찾기에 나섰는데, 차를 타고 분실이 짐작되는 곳으로 갔더니 마침 그 곳에 있어서 머플러를 회수할 수 있었다.)

 

   날씨가 춥다고 몸이 움츠려 들었었는데 막상 한참을 걸은 데에다가 햇빛마저 밝게 비추니 추위는 다 사라지고 몸속에서는 약하게 땀까지 스며 나오는 지경이었다. 길이 산을 내려와서 다시 강과 가까워졌을 때 “광하탐방안내소”라는 작은 콘크리트 건물과 맞닥뜨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난방장치가 켜져 있고 전등도 켜 있는 작은 전시공간이자 휴게실 겸 사무실인데 근무자는 잠깐 부재중이었다. 마침 12시가 조금 넘었기에(12:20경) 점심시간이기도 하여 따뜻한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 하였다. 나는 뎅그러니 김밥 한 줄인데 이 교수는 3층으로 된 도시락에서 밥과 국, 김치를 내놓는다. 염치 없지만 같이 점심을 즐겼다.(식사후 방문자에게 제공하는 봉지 커피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고 있는데 근무자가 돌아왔다. 양해를 해 주고 코로나 시절에 근처 래프팅 업체가 망했다는 소식도 전해준다.) 

 

   길은 이제 강 옆으로 강과 나란히 뻗어 얌전하게 평평한 셈이다.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는 점입가경이다. 이 교수와 나의 정치적 견해는 거의 일치했다.(정치적 견해가 같은 사람끼리의 대화가 얼마나 즐거운지 경험이 있다면 상상해 보시라.) 다만 변희재가 주장하는 태블릿PC의 조작설에 대해서는 나와 달리 이 교수는 믿지 않고 있었다. 즐거운 담화가 계속되는 동안 할미꽃 서식지에 들어온 듯하였다. 여기저기 동강 할미꽃을 설명하는 간판이 나오고 마을 이름도 “할미꽃 마을”이다.(예전에 본 적이 있었는데 동강 할미꽃은 사진작가들의 멋진 촬영 대상인데 어떤 진사들은 꽃을 찍은 후 다른 사람들이 촬영하지 못하도록 꽃을 짓밟아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여하튼 동강 할미꽃은 그만큼 유명세를 탔었다.)

 

   이곳은 아직 동강은 아닌데 동강이 원체 한 때 댐건설 계획과 환경단체의 저지로 유명했던지라 여기는 아직 조양강 구간인데 몇 km 앞, 지장천과 합류하는 곳에서 시작되는 동강이란 이름을 쓰고 있었다. 우측을 보니 강 건너 산이 심상치 않았다. 강과 나란하게 봉우리들이 연속해서 서 있는데 강에 바짝 붙어서 그 봉우리들이 길게 연결되고 있어서 그 경치가 볼만 하였다. 강과 산, 길이 삼위일체를 이룬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 완성의 징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교수는 경치에 홀렸는지 계속 사진을 찍으며 뒤에서 따라 오고 있었다.(나는 마음이 급한지 계속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귤암리 캠핑장 앞 버스 정류장이 나오면서 걷기는 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귤암리 캠핑장으로 가는 귤암교가 앞에 놓여 있는 정류장에서 걷기가 끝났다.(14:25) 마침 잠겨있는 정류장 안을 유리창을 통해서 들여다 보니 벽에 붙어있는 종이에 버스가 14:39에 있다고 쓰여 있었다. 약속대로 제 시간에 버스가 나타나서 탈 수 있었고 정선읍까지 쉽게 도달하였다.

 

   이 교수의 차는 아까 걸어갔던 길을 되짚어 머플러를 찾은 다음 계속 달려 평창역 인근의 CAFE921로 갔다. 생귤차를 마시며 여주인과 자승 스님의 자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등 담화를 나누다가 이 교수 집에 가서 사모님을 태우고 피닉스 스키장 근처 샤부샤부집에서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그 후 밤 8시 9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짧은 여행이었고 정선의 강을 지음(知音)과 같이 걸어 본 하루였다.

 

2023-11-30 겨울의 한강 따라서 걷다

 

기록적인 추위

겁을 주지만

정해 놓은 날짜 어길 수 없어

먼길 달려갔다

 

강원도 한 가운데

정선에도 한강이 있어 따라 걷는다

여기서의 이름은 조양강이고

조금 더 내려가면 동강이 된다

 

강 따라 걷는다지만

강 옆의 길을 가는 것이다

강은 수평으로 흐르는데

길은 산을 넘으려 솟구쳤다 내려간다

사람은 강 대신

길을 따라야 하니 고행이다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봉.....”

정선 아리랑이 들려온다

나뭇가지 사이로 윤슬이 반짝이고

강에 다가온 산은 절벽이 되었다

 

무릉도원 정선 땅에

살던 사람들 다 어디 갔나

빈 공간을 단 둘이서 걷는다

 

사람은 가고 경치만 있는데

남은 경치 절경이니 더욱 애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