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12. 16:45ㆍ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희망과 꿈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짜 봄의 계절, 4월이 왔습니다. 너무나 하얘서 백합처럼 순결한 목련과 연분홍 진달래와 노오란 개나리, 풍성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나뭇가지에선 신록이 연두빛 새싹을 내밀고 있음을 대간길을 가는 우리들은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봄의 소망을 가슴 가득히 품고 마음이 부요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봄의 따스한 기운이 우리를 열에 들뜨게 하는 하루였습니다. 꽃과 나무와 산에 만연한 봄의 기운은 우리 가슴 속에서도 봄의 싹이 자라게 하고 그 싹은 우리를 달뜨게 하는 실마리가 되고 더 큰 꿈을 이루어줄 듯 유혹하는 듯 합니다. 그 유혹을 따라서 행해지는 산행이 카타르시스로 이어지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사람, 훼방꾼이 나타났군요. ‘4월은 잔인하다’고 오래 전에 선언해 버린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이라는 이입니다. 그가 1922년에 쓴 장편시 황무지(The Waste Land)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저와 같은 보통사람들이 4월에 가지는 꿈을 무정하게도 매도해 버리는 심술(?)로 인해 이 시는 유명했었지요. 그래서 저는 삶이 신산하고 팍팍하던 시절, 저의 20대엔 4월이 오면 언제나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의탁하여 역시 ‘4월은 잔인한 달’이구나 하고 머리를 끄덕이곤 했답니다. 그때는 이 시가 제 심상을 잘 표현했구나 하고 생각했었지요.(그러나 당연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이 다 중화되고 날아갔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시는 아주 복잡하고도 파격적인 시라고 합니다만 그래서 독일어로 써놓은 부분도 있는데 그 부분에서 저의 닉네임이 탄생하였답니다. 그 부분을 인용해 봅니다.(황무지에 관한 싯귀는 한글, 독일어 모두 인터넷에서 퍼 온 것입니다.)
Frisch weht der Wind
Der Heimat zu.
Mein Irisch Kind,
Wo weilest du?
(바람은 신선하게
고향으로 부는데
나의 아일랜드 님은
어디에 있느뇨?)
여하튼 엘리엇은 이 시에서 인생을 아주 아주 우울하게 보는 페시미스트입니다.
‘어차피 의미없는 인생인데 4월이 되었다고 너희들 부산떨고 약동하는 생명의 움직임이란 얼마나 우스운 것이냐? 차라리 죽음같이 조용한 겨울이 더 낫다고 하겠다.’
인생을 달관한 자이거나 우울증으로 아파하는 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시로 여겨집니다. 좀 더 읽어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 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나오는가?’
인생을 비관적으로 해석하는 이에게는 나름대로 숙명적인 비극의 종말로 가는 자의 아름다움이 있기도 할 것입니다.
그 시절 봄이 되면 또 하나, 제가 자주 읊어보던 시가 있었습니다. 고 신동엽 시인의 ‘나의 생월에’라는 시인데 여기로 한 번 옮겨봅니다.
‘나의 생월에
3월이 나의 고향이라면
어느 부토의 가슴안에서
시간은 조용히 실눈을 열고 있나
묻히인 그 날의 별의 종자여
수풀의 의지는 저 편 산록에
오늘도 부딪는 잔풍과 맞서 있지만
사람은 여기 시의 밭을 갈면서
잃어버린 종자의 행방을 찾는다.
갈다보면 부서진 옛 기와도 나오리라
물오른 독사의 모가지도 튀어나리라
말속에 풀려오는 고향이 있다면
3월은 살에 스며 열이 되리라
그 날의 비애 희열은 삭아 부토로 변하고
살에 스민 3월의 순한 열이여
잃어버린 종자의 눈을 따수어라’
봄이 되자 무언가 나은 걸 준비하려고 현실에서 어떤 돌파구를 열려는 시인의 마음이 잘 표현된 시 같습니다. 지금 이 시를 읽으며 저도 시인처럼 백두대간의 밭을 갈면서 잃어버린 제 꿈의 종자를 찾으려고 노력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4월 16일 어제는 흐드러지게 꽃들이 피고 백두대간의 나무들도 기지개를 켜는 맑은 봄날이었습니다. 송백의 다섯 번째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출정식의 날이자 2006년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날이었습니다. 엘리엇의 시쯤은 우울증을 앓아 보았던 사람들에게나 의미가 있었을 그런 날, 저처럼 보통사람들에겐 아주 멋진 봄날이었답니다.
지난해 10월에 처음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를 계속하면서 새로운 사이클(5차 종주)로 갈아타는 날이기에 저는 마음의 각오를 다시하고 송백에서 마련한 출정식이자 시산제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은 물론 개인적으론 대간으로 출정하는 자의 출사표를 쓰는 날인 셈이었습니다.
아침 7시, 월반으로 대간을 조기 졸업한 BMW는 이제 송백골에선 안 보입니다. 그의 빈자리를 의식하며 2호차를 탄 저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끌려갑니다. 천호동 쯤에서 비어있던 옆자리에 아침햇살님이 앉으셨기에 산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긴 시간을 심심치 않게 갈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회장님의 산행설명이 있었고 인삼랜드 휴게소에 잠시 머무르고 산행 들머리를 향해 버스는 달립니다. 11시 15분쯤 버스에서 내린 곳이 노치마을이라는 동네였습니다. 동네 뒷동산의 잘생긴 소나무 몇그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11시 20분경 산행이 시작되었는데 처음부터 비탈인지라 제법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비탈은 끝이 있는지라 어느 정도 올라가면 완만하고 푹신한 산책길이 되고 다시 작은 비탈이 나타나곤 합니다. 한참 가다가 겉옷을 벗어서 배낭속에 넣었습니다. 땀이 나고 기온이 올라가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봄은 봄이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흰눈과 진흙탕들과 싸우며 봄을 기다렸는데 이제 봄은 정말 제 앞에 나타난 것 같았습니다.
멀리 소나무숲 사이로 평화롭게 마을들이 보이고 능선을 운행하는 도중엔 약간은 차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날은 맑게 개이고 나무사이로 가끔씩은 원경이 나타나 눈의 갈증을 덜어주었습니다. 산님들을 따라 생각에 젖어 능선을 오르내리다 보니 수정봉과 입망치도 지나치고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산님들에게 물어서 확인한 지명이 700봉이었는데 그 근처에서 먼 앞의 고남산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는데 그 때가 12시 44분이었습니다.
12시 59분 여원재를 가로지르는 국도를 건너다가 운성대장군(雲城大將軍)이라 쓰인 석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운봉에 성이 있다면 그 성을 지키는 장군을 만들어 놓은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면 알 수 있었겠지만 바쁘게 운행하는 제겐 그런 여유가 없었습니다.
국도를 건너고 나서 대간길은 얕은 동산으로 이어지는데 그 동산에 올라서니 많은 산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들고 계셨습니다. 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그분들을 떠나 조금 가다가 숲속에서 저의 행동식을 꺼내서 한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제가 가진 빈약한 행동식으론 동참이 불가할 듯 했습니다.) 저의 식사시간은 불과 5분여. 혼자서 다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오후 1시 12분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와 진달래를 감상하기 위해 잠시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바로 옆에 평화로운 마을이 보이는데 장교리 같았습니다. 또한 근처 밭둑에 커다란 목련나무가 멋지게 꽃을 달고 있었습니다. 저편에 자리한 마을과 가까이 있는 꽃들을 보며 잠시 평화로운 느낌을 즐겼습니다. 붉고 희고 노란 꽃들이 저로 하여금 몽롱하게 봄에 취하게 하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중얼거려 봅니다. ‘그래 봄날은 간다. 이렇게 꽃속에서...’
오늘 산행의 클라이맥스가 될 고남산이 저 앞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제 힘이 많이 빠진지라 걸음은 생각보다 빠르지가 못했습니다. 그러나 먼저 앞으로 달려가는 마음은 뒤쳐지려는 몸에게 쉬지 말고 빨리 가라고 명령합니다. ‘몸둥아리 너 좀더 빨리 가라. 네게 쉼은 없다.’ 정신의 육체에 대한 우위를 인정해서 육체를 다그쳐 보았습니다만 힘이 부치는 몸에게는 잔인한 일이었습니다.
(얼마 전 BMW는 산행기에서 자신과 인생을 둘로 나누어 대화하는 재미있고 눈물겨운 시를 소개하며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즉, 자기가 인생에게 술을 아주 많이 사주었는데 인생은 자기에게 해준 게 없고 그저 정신적으로 지탱이나 되었다 뭐 이런 얘기였나 봅니다. 그래서 저도 산행시 제 자신을 정신과 육체로 나누어 보고 정신이 육체를 엄히 독려하라고 해 보았습니다.)
얼마쯤의 힘든 시간이 지나고 오후 2시 42분 우직한 육체는 해발 846.5m의 고남산 정상에 섰습니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뻗은 대간능선이 오른쪽 시계방향으로 돌아 반야봉 뒤로 해서 정령치로 이어지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입니다. 이제 경치를 즐기는 희열에선 무임승차했던 정신이 육체를 앞서 갑니다. ‘아, 멋있다. 그래, 내가 해냈어. 이 굳센 정신이 드디어 해냈단 말이야!’
잠시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맛 본 다음 전파중계탑 옆으로 해서 하산합니다. 이제 내리막인지라 육체도 말을 잘 듣습니다. 약 20분후 오후 3시 2분 출정식 겸 시산제의 젯상이 차려진 통안재 아랫길 공터에 도착하였습니다. 중식시간을 절약했기에 다른 분들보다 제법 일찍 내려온 편이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있기에 주변을 30분쯤이나 천천히 산책하며 백두대간 기슭에 배달된 봄을 눈과 귀와 코로 더듬을 수 있었습니다. 시산제가 이루어지는 공터에서 조금 떨어진 아랫녘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한 쌍의 묘에는 봄볕이 무차별로 쏟아지고 돌로 된 상석에 새겨진 한문글자들의 의미는 나른하게 졸음을 부르는 듯 했습니다. ‘누구누구 부인과 함께 여기 잠들다.’
오후 3시34분쯤 시산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산제는 왁자지껄한 음주와 식사로 연결되었습니다. 봄기운에 더하여 운봉막걸리가 바닥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울로 오는 길이 길고 지루했지만 결국 대체로 평화로운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산행 내내 혼자만의 생각에 젖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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