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060402 제59차 백두대간 신선봉-마산-진부령구간 산행기 : 백두대간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2006. 10. 12. 16:44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마루금 다 밟기를 꿈꾸던 그대,

오늘 드디어 뜻을 이뤘네.

대간의 기슭에서 만난 우리들,

당신의 아름다운 성취를 대간 길 끝 길에서

우정의 잔을 들어 축하합니다.”


BMW님과 구름체님에게 각각 전해진 대간 완주패에 새겨진 글입니다. 그런데 이 패는 4월 2일 송회장께서 대간완주자에게 수여했던 송백의 정규 완주패는 아니고 주위의 산벗 9인이 임의로 만들어 전한 패였습니다. 글귀는 영광스럽게도 제가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백두대간 완주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뜻을 지니고 있을까요? 그것을 저는 우리들이 키워가는 꿈의 실현으로 풀어 보았습니다. 우리는 대간이라는 실체를 정연한 계획 속에 한발 한발 밟아 감으로서 꿈을 현실의 역사로 만들어 갑니다.


즐거운 산행이지만 매우 고달프기도 한 산행의 와중에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 만나서 벗이 되고 서로 의지가 됩니다. 드디어 우리들은 마지막 걸음을 끝내고 아름다운 결실을 기념하는 잔을 부딪힙니다. ‘쨍그랑’하고 울리는 크리스탈 유리잔의 여운과 함께 꿈꾸던 소년소녀는 현실을 힘차게 타개해 나가는 달인이 되고... 이런 스토리입니다. 주제는 우리가 늘 아름다운 꿈을 가져야 한다는 하이맛소년의 외침이라고나 할까요.


오늘 4월2일 대간을 완주하는 이에게는 신선상봉(1,239m)이나 마산(1,052m)의 정상에서 멀리 동서남북을 조망하며 꿈을 반추할 시간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때에 봄날 햇빛은 멋지게 빛나고 그의 눈길은 멀리 북녘 금강산에서 동해를 지나 설악과 오대산을 돌아 백두대간의 기다란 산줄기를 파란하늘 아래로 천천히 감상할 시간을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때 그이는 두눈을 지긋이 감고 그의 생각 속에서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회상에 젖을 때 그는 목이 메이고, 다시 뜬 그의 눈에선 영롱한 눈물이 몇 방울 굴러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의 최고봉인 신선상봉 위의 하늘은 맑고 푸르게 개어 있어야만 했습니다. 코발트빛 짙푸른 하늘아래 그는 주변 경관과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하늘 날씨는 기대와 동떨어져 돌아갔습니다. 낙엽속에 숨어있는 얼음과 눈이 녹아 진창이 된 길을 주어진 시간에 운행하려면 눈물이니 웃음이니 하는 알량한 감정은 다 개에게나 주어야 했을지도 몰랐습니다. 우선 이 기나긴 대간길을 주어진 시간에 다 가야했으니까요. 갯펄을 가듯이 옷에 진흙을 묻히면서 미시령에서 진부령구간을 우리 대간주자들은 힘겹게 가야했습니다.


보통 때의 두배는 걸릴 운행시간에 얽매여 조망지점들에서 시간을 내어 추억 회상을 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을 것입니다. 볼거리라고는 안개에 싸인 바위와 나무와 눈과 진흙탕 뿐. 하늘에선 비바람을 몰아치고 우박도 간간히 내려 줍니다.


신선상봉이나 병풍바위 또는 마산 등 원경을 조망할 수 있는 지점들에서 우리는 안개에 휩싸여 먼 곳을 조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진흙탕을 뚫고 전진하는 것만 해도 감사를 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등산복 바지의 아래 반쯤은 흙탕물에 더럽혀지고 가끔 진흙이나 얼음에 미끄러져 딩굴어야 했습니다. 泥田鬪狗(이전투구)와 같은 산행이었습니다. ‘개같은 날의 오후’라는 영화도 있었긴 합니다만 그런 오후였나 봅니다. 


의미심장한 날인지라 날씨도 거기에 맞추어 주리라는 우리들의 기대는 어이없게 무너지고 정해진 시간보다 길어진 고달픈 산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늘 산행의 전체적인 의미마저 훼손되는 것은 아닐 터였습니다. 진부령의 한 식당 홀에서 완주패를 받고 기뻐하시는 분들의 모습에 저도 덩달아 기뻤고 빨리 저도 완주의 잔치상을 받고 싶었습니다. 날씨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송백의 대간완주는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악천후와 진흙탕 얼음길은 백두대간이 결코 녹록치 않은 대상임을 알려주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듯 합니다. 특히 다음번(4월 16일) 대간산행에서 새로운 대간길이 시작되고 그 길을 계속 밟을 저와 같은 사람들에겐 오늘같은 어려움이 다시 닥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월2일은 송백의 대간산행이 한 획을 긋는 날입니다. 김준수(월인)님을 위시한 26분이 백두대간 마루금을 다 밟는 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6분중에는 목요대간산행과 병행하여 마치신 3분과 BMW나 구름체님처럼 우등생으로 월반한 분 2분을 빼면 21분이 소위 정규과정을 졸업하신 분들이 됩니다.


정규과정이라면 2003년 11월 16일 제1회 대간산행을 시작하여 2006년 4월 2일 제59회 대간산행까지 약 3년 5개월 매월 2번의 일요산행에 개근하여 종주를 마치신 분들을 말합니다. 개인의 영광이자 가문의 영광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뒤를 따르는 저희들의 귀감이 되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에게는 송백산악회 송회장께서 다음과 감은 글귀의 백두대간 종주 기념패를 드렸습니다.


“貴下는 松白山岳會 主催 우리나라 最初로 施行한 當日 白頭大幹 縱走 隊員으로 參加하시어 다음과 같이 全 區間 縱走 山行을 完了하였기에 이를 記念하고자 이 牌를 드립니다.”(이하 생략)


패를 받아들고 기념촬영하는 완주자들을 보면서 저도 가능하면 빨리 대간길을 다 밟으리라는 꿈을 속으로 다시 그려 보았습니다. 


4월 2일 아침 7시의 잠실, 저는 송백 2호차를 타고 미시령으로 향합니다. 두달만에 만나는 반가운 BMW와 그의 완주를 축하해 주기 위해 오신 두 동료, 넷이선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끌려 갑니다. 궂은 날씨 탓에 평소보다 어두운 차창 밖이 걱정되었지만 우리들의 결론은 일기예보대로 산행시작 쯤엔 날이 개일 거라는 이야기 결론도 잊지 않았습니다.


홍천의 클린턴휴게소와 인제의 내설악광장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10시 47분 미시령휴게소 뒷쪽에서 안개에 휩싸인 백두대간길로 들어갔습니다. 시작부터 된 비탈입니다. 숨이 턱에 닿지만 산님들이 만든 인간줄의 중간에 끼여서 올라갔습니다. 군데군데 얼음이 있는 흙길이 걸음을 더디게 하여서 지난 3월 19일 갔던 구룡령-신배령구간 때보다 길은 더 나빴습니다.


중간의 가파른 내리막길에선 바위 사이에 얼음이 있어 병목현상으로 길이 막히기도 하여 운행은 더욱 느려졌습니다. 한편으론 축하객인 동료 한 분이 95kg이나 나가는 과도한 몸무게로 힘겨워하기 시작했습니다.


12시 5분에서야 오늘의 최고봉이자 표고 1,239m라는 신선상봉에 도착했습니다. 몇장의 기념사진을 찍고 떠나는데 우리가 거의 꼴찌가 되었습니다. 예전같으면 혼자서 치고 나가서 지금쯤 제법 앞으로 갔을 터이나 오늘은 손님들이 온 관계로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특히 걸음이 느린 정사장이 낙오할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동료의 일에 마음이 쓰이고 길은 질어서 어디가 어딘지 살필 여가가 별로 없었습니다. 오직 빨리 이 길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빨리 산행이 끝나고 진부령에서 있을 산악회주최 잔치마당에 앉을 생각을 하며 가는 것이지요.


걸음이 늦어지니 점심식사를 할 마음의 여유도 없고 계속해서 길을 재촉합니다. 오후 1시 21분 군작전용 물자가 보관되었다고 쓰여진 캔버스천에 싸인 기다란 물체를 지나칩니다. 아무래도 식사는 해야겠기에 2시쯤 제법 넓은 헬기장 공터에서 점심식사를 BMW, 저와 동료 두명, 넷이서 들게 되었습니다. 식사 중에도 비바람이 불어제낍니다. 추위를 피하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선채로 후딱 점심을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오후 2시29분 황망한 중에 대간령이란 안부를 지납니다. 오늘 산행 중 중요한 이정표 붕의 하나입니다. 여기에서도 길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열악하게 되어 얼음과 진흙탕 길이 계속됩니다. 동료 정사장은 힘이 부치는지 자주 걸음을 멈추고 또 자주 미끄러져 흙탕속으로 넘어집니다. 일행의 걱정이 날씨만큼이나 어둡습니다.


한참 가는데 정사장이 왼손을 감싸쥐며 우리들을 부릅니다. 드디어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좀전에 넘어질 때는 몰랐었는데 지금 살펴보니 자기의 왼쪽 새끼손가락이 덜렁거린다고 합니다.(사후 연락해 보니 인대가 다쳤다고 합니다.) 약간의 통증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런 응급약품이나 붕대도 없기에 걱정을 나누며 해결책은 오직 산행을 마치는 길 밖에 없다고 말하며 길을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진창길은 왜 이리도 안 끝나는지 모르겠습니다.


3시53분 병풍바위까지 제가 먼저 언덕길을 치고 올라와 일행을 기다리나 한참 지나서야 BMW와 동료 한 사람이 나타나고 기다리는 정사장은 아주 늦어집니다. 이제 결단의 순간입니다. BMW에겐 A코스를 가서 오늘 대간을 끝내야 하니 먼저 떠나라고 하고 제가 정사장과 동행하기로 합니다. 저는 B코스로 만족하기로 하였습니다. 어쩌면 제가 송백 대간 참여한 후 최초로 B코스를 뛰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후 10여분이나 지나서 나타난 정사장을 독려하여 마산까지 어렵게 운행합니다. ‘조금만 가면 오아시스’라고 계속 희망의 말로 그를 격려합니다. 다행히 오후 4시 38분 마산에 무사히 도착했는데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나뭇꾼님을 만났습니다. 또한 그분이 준비했다가 내어준 붕대로 정사장의 왼손 손가락들을 묶어서 고정하였습니다. 그의 육체적인 아픔도 덜어졌겠지만 저나 그나 심리적인 안정을 얻게 되어 적이 안심이 되었습니다.(나뭇꾼님께 고마움을 전하라는 동료의 말씀입니다.)


이제 코스는 종반에 접어들었습니다. 여기부턴 내려가는 길이니 어쩌면 오늘 A코스를 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욕망이 제 마음속에서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생각을 말하지 못한 채 동료를 재촉합니다. ‘이젠 내리막길 뿐이야’하고 안심시킵니다. 약간의 오르막길이 끝나고 드디어 저 아래에 알프스스키장과 단정한 콘도 건물이 보입니다.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조바심이 나는 저는 계속 먼저 내려가며 뒤쳐진 동료를 부릅니다. 그도 이제는 그럭저럭 잘 좇아오는 듯 합니다.

 

오후 5시21분 콘도의 시계탑 앞에 섰는데 뒤쳐진 정사장이 다시 안 보입니다.

마침 이때 날씨가 요술을 부린듯이 하늘이 맑아지며 안개가 사라지고 강한 햇살이 구름을 뚫고 내려 쬡니다. 지금까지 안개속에서 헤쳐오던 마산 쪽 산의 윤곽이 황홀하게 나타나며 반대편 진부령 쪽도 밝아졌습니다. 제 마음도 밝아지며 갑자기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BMW가 얼마나 갔을까?’ 저는 느릿느릿 내려오는 정사장에게 빨리 내려오라고 계속 손짓하며 마음속으론 BMW와 합류할 각본을 생각합니다. 정사장이 궁금해하며 느릿느릿 닥아옵니다. B코스가 끝나는 지점에 다 왔는데 웬 성화냐고 묻는 듯 합니다.


제가 'A코스를 타겠다'고 하니 약간은 당황하는 그에게 저는 제 배낭을 주며 진부령행 송백차를 타라고 지시해 놓고 물병을 든 채 길을 건넙니다. 저는 길가에 매어 놓은 흰색 파란색, 노란색 대간 리본들을 따라 뛰기 시작했습니다. 곧 군부대가 나왔고 15분도 채 안되어 BMW와 다른 동료는 저에게 잡혔습니다. 너무나 싱거운 게임이었습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BMW의 것이지 저의 것은 아닐 것 같았습니다.  BMW는 꼴찌로 들어가더라도 언제나 위대한 A코스완주자로서 송백인들의 박수를 받을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한다면 주제넘게 욕심을 내서 서울로 가는 출발시간을 지연시킨 욕심쟁이로 비칠 것 같았습니다. 이젠 그런 걱정에선 해방된 셈이었습니다.(제가 라이벌을 너무 씹었나 봅니다.)

 

저는 진행하던 관성으로 걸음을 빨리했고 BMW는 그의 페이스대로 뒤에서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이 길은 대간길이라기엔 너무나 어이없을 정도로 보통의 시골 마을길에 닮아 있었습니다. 그 동안 대간길은 깊은 산이었는데 말입니다.   


마을의 한 집앞에선 꼬마 털복숭이 하얀 강아지가 멀리서 짖다가 다가가니 사람이 그리운지 곁으로 다가옵니다. 진흙에 더럽혀진 털이 아주 우스웠지만 귀여운 녀석이었습니다. 같이 놀 시간이 없기에 사탕을 하나 던져주고 작별하였습니다. 평화로움이 서린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마을을 통과하며 마을사람을 한 분도 만나지는 못 했습니다. 농번기라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가니 꿈향기님과 보비니님이 가고 계신데 저는 그분들을 앞서서 뛰다시피 걷습니다. 마음껏 달리고 싶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는지라 진행속도를 속보로 줄여봅니다. 

 

오후 6시 17분, 드디어 진부령에 도착하고 미술관건물이 저를 반겨줍니다. 이 시골에 미술관이 있는 것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아직 해는 남아있었습니다. 송백의 대간완주기념 잔치는 벌써 시작된 듯 하였습니다. 제 아랫바지와 신발이 너무 더러워졌기에 잔치참여를 잠시 보류하고 수도간으로 가서 한참을 진흙제거에 보냈습니다. 물호스로 신발 위를 닦다 보니 물이 등산화 속으로 밀려 들어가서 발이 젖고 말았습니다. 이래저래 축축했던 하루가 신발 속에서 다시 칩칩하게 계속됩니다.


송백에서 빌려 잔치를 벌인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잔치는 절정에 달하고 여러 회원들의 불콰한 얼굴이 잔치의 흥겨움을 나타내 주는 듯 합니다. 저는 말석에서 막걸리와 국밥을 축내고 있는데 BMW와 동료들이 들어왔습니다. 그가 환영을 받고 진짜보다 멋있는 사제 대간패를 받으며 기뻐합니다. 저도 축하의 잔을 권하였습니다. 그리고도 잔치는 잠시 더 계속되었습니다.


오후 7시쯤 어둠이 깔리는데 서울로 향하던 버스는 얼마 못가서 40분 정도나 교통사고에 막혀 지체되었습니다. 버스안에선 이야기꽃이 피는데 주제는 단연 오늘의 완주 이야기입니다. 잠실 도착이 11시나 되었기에 한잔 더 하려는 계획은 무산되고 뿔뿔이 헤어져야 했습니다. 잠실역 지하에서 BMW와 악수하며 아쉽게 헤어집니다. 그는 서쪽으로 저는 동쪽으로...

 

하루의 산행에 거는 의미 치고는 제법 큰 의미를 부여하고 참여한 4월 2일 산행이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대부분의 짐작들이 다 깨져 나갔지만 송백 대간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가는 그런 날이었나 봅니다.


(후기 : 제 인생도 여기저기서 자주 깨지더라도 큰 줄기는 건지는 그런 삶이 될 것 같은 어줍짢은 느낌을 그날 밤 꿈속에서 가져 보았답니다. 저도 꿈꾸는 자랍니다.)


출처 : 송백산악회
글쓴이 : 하이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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