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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행기는 京東 24기 동기들을 위해서 쓴 글입니다.
오늘 산행기는 먼저 생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대저 우리들이 가진 이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중력에 대한 저항으로 풀어 봅니다. 그렇다면 대저 설악의 중추를 이루는 공룡능선이란 무엇입니까? 나락에 이르는 것처럼 까무룩히 중력따라 내려갔다가 젖먹던 힘 짜내어 중력을 거슬러 다시 올라가는 것, 그걸 열 번 이상이나 반복하는 겁니다. 즉 공룡능선을 넘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슬픈 것입니까? 헛된 오르내림을 반복하다가 결국 스러지고 마니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은 슬프고도 유한한 겁니다.
내일 모레 60을 바라보는 저희들의 생명도 결국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스러져 갈 생명의 법칙에서 예외는 아닐 겁니다. 그러나 한 말씀 더 드린다면 그래서 생명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을 뚫고 어둠속에서 솟아 오르는 한 줄기 빛이자 허접스럽고 시들한 것들과는 반대방향으로 흐르는 긍정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 번밖에는 없는 아름다운 불꽃임에랴!
생명이 중력과 맞서는 역방향의 흐름이라면 중력의 흐름은 순방향 즉 사망의 방향입니다. 그래서 공룡능선에선 몇 번 쯤 죽었다 깨어나며 자기의 생명을 믿고 또한 의지하며 바위산들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생명을 확인하는 통과의례를 치른다는 얘깁니다. 통과의례는 아프지만 그 의례는 우리를 정화합니다. 산행을 통한 깨끗해짐이란 저희 생명에 대한 산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2006년 10월 22일날 저희 여섯, 김남진 김양미 부부, 이달헌, 서중원, 장광종과 저는 생명의 고갈과 재충전을 10여 번 거듭한 끝에 공룡능선의 암봉들을 무사히 넘어서 마등령에 설 수 있었습니다. 공룡을 넘는다 함은 우리를 까부러지게 해서 나락에 쳐넣으려는 중력에 대해 반역할 뿐 아니라 우리 생명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해 보는 행위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 곧 생명입니다. 저희 여섯의 생명은 공룡능선을 통과하며 아주 충만해야만 했습니다. 죽었다가 거듭나길 여러 번 하는 바람에 저희는 고난을 겪은 다음 더욱 용감하고 튼튼해져 해피엔딩 속으로 퇴장하는 동화 속의 멋진 왕자처럼-또한 공주처럼-행복을 맛보았습니다.
공룡능선을 넘은 이야기는 하루 전으로 돌아갑니다. 서중원, 이달헌군과 저 3인으로 구성된 선두대는 21일(토) 오후 2시 15분에 설악의 정상인 대청봉에 도착, 기념촬영을 마치고 흐뭇한 기분으로 소청산장을 향해 천천히 출발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내려갈 일만 남았으니 오늘은 사실상 고생끝, 행복시작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중청대피소에서 바라 본 대청봉(서중원군이 집으로 전화중입니다.)
사실 ‘고생끝 행복시작’이라는 멘트는 제가 이번 산행에서 너무 남발할 정도로 자주 써먹었습니다. 동료들에게 희망을 주고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의문이었습니다만 산행내내 부정적인 생각들을 배제하고 긍정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 저를 위해서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상황이 바뀌리라는 희망의 멘트였습니다. 조금만 가면 어려움이 완화되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희망은 어쩌면 무해한 거짓(White Lie)인지도 모릅니다만 희망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 결국 산행은 끝나게 마련입니다. 어떠한 시련도 결국은 끝나고 해피엔딩이 되리라는 저의 어리석은 믿음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오후 2시 33분 중청대피소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쉬거나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숙소에 가서 여분의 잠자리가 있는지 물어 보았으나 이곳은 인터넷으로만 예약을 받으며 오늘 자리는 물론 없다고 대답합니다. 예상되었던 결론이기에 우리는 소청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2시 47분경 소청봉부근에서 용아장성 쪽을 보고 경치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중청대피소
 중청에서 용아장성을 봅니다.
걷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돌길을 따라 2시 54분 소청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희운각, 공룡능선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꺾어지면 소청산장과 봉정암 쪽으로 가게 됩니다. 삼거리에는 이정표 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서 소청대피소는 0.4km, 봉정암은 1.1lm, 백담사까지는 11.7km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희운각은 1.3km, 양폭대피소는 1.3km, 비선대는 6.8km 거리에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셋은 언덕을 계속 내려가서 오후 3시 5분 소청산장(대피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미 사람들이여럿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관리자에게 이야기하여 2층의 12인용 방에 자리 8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4자리는 낯선 사람들로 채우겠다고 관리인이 말합니다. 8인이 한 방을 다 쓰면 좋겠지만 손님이 많이 오는 철인지라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1인당 하룻밤 숙박비는 난방을 하는 방인지라 방값 7,000원(난방 안하면 5,000원)과 모포값 2,000원으로 합이 9,000원이었습니다.
 소청산장(대피소)의 토요일 오후 3시경 풍경
시각이 이른지라 우리는 봉정암을 보기로 작정하고 후미팀을 기다렸습니다. 우선은 방안에서 기다리는 중에 이달헌군이 가져온 웅담술도 한 잔씩 홀짝거리며 기다려 보지만 후미팀은 연락이 없고 휴대전화도 불통입니다. 밖에 나와서 오고가거나 쉬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4시 45분, 이달헌군에게 후미를 맞이하도록 하고 서중원군과 저는 0.7km 아래의 봉정암을 관람하기 위해 산길을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구름 사이로 보이는 용아장성의 경치는 정말 험하고도 아름다웠습니다.
 봉정암을 보며 내려갑니다.
봉정암은 설악산의 대소사암 중 제일 먼저 창건된 백담사 부속 암자라고 합니다.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입당하여 부처님 사리를 얻어와서 오층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절을 창건했는데, 이름을 봉정암이라고한 것은 신라 애장왕 때 조사 봉정이 이곳에서 수도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 암자는 설악산 소청봉 서북쪽에 있는데, 전국 사찰 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봉정암에서 본 5형제봉
커다란 불전과 숙박건물이 있어서 많은 산객들이 하룻밤을 묵고 공양을 제공받기 위해 모여들 뿐 아니라 불교도들에게는 성스러운 곳으로 순례자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서군과 저는 경내의 샘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신다면 언덕을 올라가 사리탑을 관람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사리탑 앞에 놓인 평상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기좋고 조용한 곳에서 도를 닦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부처님의 가호가 그들에게 내리길 기원하며 다시 소청산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갔습니다.
 봉정암 사리탑과 그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멀리 사리탑을 배경으로 선 서중원군
5시 40분 쯤 소청산장으로 다시 올라오니 후미팀이 약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우명길군이 가져온 버너 두 개와 코펠로 벌써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제 버너와 코펠은 이미 소용이 없을 정도로 컵라면, 햇반, 라면이 요리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8인은 밥과 라면을 포식하며 축하주의 잔을 부딪혔습니다. 특히 오늘을 위해 이달헌군이 소지한 웅담주는 그 쓰기가 곰쓸개와 같았고 향기는 진로소주 그대로였습니다. 소청산장의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구름이 연출하는 봉우리들의 들고남을 감상하며 친구들과 한잔하는 기분은 저를 늘 가고 싶어하던 알프스 밑의 샤모니 산장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줍니다. 설악의 구름이 어둠속에 잠겨들고 선선란 바람이 약간은 추웠으나 어두워 가는 산장에서의 저녁은 적당하게 우리들의 기분을 고양시키고 속세를 떠난 해방감을 만끽하게 해주어 이야기 주제들은 더욱 흥미있어지고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언뜻 언뜻 구름 속으로 비치는 경치 - 소청산장 마당에서
우리가 내일의 산행에 대해서 의논한 결과 이기후군의 다리가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그는 천불동으로 해서 하산하고 그를 위해 우명길군이 동행하기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원대로 공룡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아침에 떠나는 시각은 최대한 빨리 하여 산행시간을 가능한 많이 확보하기로 합니다.
이제 회식자리를 방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밤 9시면 소등하기 때문에 술자리는 길게 가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공룡을 위해서는 내일 아침 4시에 출발하기로 하였기에 일찍 취침해야 했습니다. 방에 가니 일가족 4인이 같은 방을 쓰기 위해 앉아 잇기에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웅담주 남은 것을 다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거의 9시가 됩니다. 술자리를 파하고 자리에 누우니 9시가 되어 소등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피곤한지 잠이 들고 누군가의 가늘게 코고는 소리가 설악의 밤을 기념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김남진군은 미국에 유학보낸 딸과 전화통화를 위해서 1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한다며 추운 밖으로 나갔습니다. 외국에 나간 아이와의 통화는 타이밍이 중요하기에 꼭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지극할 수가 없었습니다.
 숙소에서의 포즈1
 숙소에서의 포즈2
시각은 밤 12시를 통과하여 이제 2006년 10월 22일이 되었습니다. 새벽 2시 쯤 잠이 깬 저는 이런저런 걱정에 다시 잠들지 못하고 가끔 랜턴불을 켜서 시계를 보며 새벽 4시가 되길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자는 방엔 불을 많이 때어서 땀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엊저녁 잘 때 추울까봐 입었던 웃옷을 두 겹 벗고 나니 좀 살 것 같았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어둠 속에서 뒤척이다가 시계를 보니 오전 3시 40분이었습니다. 저는 옆에서 자고 있는 우명길군을 깨웠습니다. ‘기상, 떠날 준비하자.’ 동료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납니다. 아침식사는 희운각에서 하기로 했기에 길을 떠나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햇반 1개와 라면 2개, 소주팩 3개, 병소주 3병, 오징어 두 마리 등 식료품을 같은 방을 쓰는 가족에게 주고 나왔습니다. 공룡을 가기 위해선 짐을 과감하게 줄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급히 준비하여 오전 4시 소청산장의 마당으로 모였습니다. 캄캄한 어둠속에 랜턴불을 밝힌 우리는 안전산행을 서로에게 빌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념사진을 한 장 찍은 다음 힘차게 희운각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우선 비탈길을 올라가서 0.4km 떨어진 소청 삼거리까지 가야 합니다. 개스가 산을 뒤덮고 있어서 랜턴 불빛에는 주변 공기에 떠있는 개스가 뿌옇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새벽 4시 소청산장 숙소에서 출발전 기념 촬영
오전 4시반쯤 캄캄한 어둠 속에 소청삼거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서 희운각까지는 1.3km 거리인데 급한 내리막길이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나 캄캄한 밤이기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물기에 젖어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내려갔습니다. 길이 급한 내리막길인데다 미끄러워서 속도가 붙지를 않습니다. 뒤쳐지는 동료를 기다리며 쉬기도 하고 먼저 떠나기도 하며 힘들게 언덕길을 내려갔습니다. 평소 한 시간이면 될 길인데 한없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철계단이 세 번이나 나오고 소청삼거리 떠난지 2시간이 다 된 오전 6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희운각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초장에 한 시간 정도의 계산착오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넉넉하기에 괘념치 앟고 아침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우명길군과 이기후군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오늘 아침엔 제 버너와 코펠을 꺼내서 사용합니다. 라면에 물을 넉넉히 넣어 끓인 다음 햇반 껍질을 벗기고 밥을 라면에 넣어 라면밥을 만들었습니다. 시장이 반찬인지라 잘 들 먹고 제게도 아주 맛이 있었습니다.
 희운각의 아침식사
우명길군과 이기후군이 약간 늦게 합류하여 식사를 끝낸 시각이 7시 20분 쯤이었는데 우리는 산행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곧 두 팀으로 갈라져 각자 산행을 하게 되는데 공룡팀 앞에는 공포의 능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짐을 줄이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았던 식료품을 우명길군에게 억지로 떠맡깁니다. 우명길군을 스카웃한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습니다. 쓰레기 봉지도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이제 소용이 없어진 버너와 코펠까지 맡기고 싶지만 차마 거기까지는 못 합니다. 이제 그의 배낭이 제 것보다 더 커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산행후 집에 와서 제 배낭 무게를 달아보니 10kg 정도로서 아직 무거웁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들 간이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본 다음 5분 거리의 무너미고개로 같이 올라갔습니다. 여기가 갈림길입니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어지기로 했기에 탐방안내라고 쓰여진 안내판앞에 8명이 나란히 섰습니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산객에게 부탁하여 기념사진을 1장 찍어 받았습니다. 우명길, 이기후군은 우리 공룡팀과 굳은 악수를 하며 경치가 좋은 천불동을 향해 떠납니다.
 무너미고개에서 서로의 안녕을 빌며 기념촬영
나머지 6명도 공룡능선을 향하였고 첫 번째 관문인 신선봉을 향해서 발걸음을 떼어 놓았습니다. 그 시각이 7시 36분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난코스입니다. 능선을 따라 조금 가니 곧 밧줄을 잡아야만 올라갈 수 있는 바윗길이 나왔습니다. 약간은 힘든 코스를 홍일점인 김양미여사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우리는 겉옷을 벗어서 배낭에 넣거나 매단 다음 신선봉을 향해서 전진하였습니다. 우리 말고도 많은 이들이 공룡능선으로 진입하였고 대개 우리를 추월하여 앞으로 가버렸습니다.
 첫번째 시련 - 바윗길
오전 8시 8분 우리는 경치를 조망하기에 아주 적합한 신선봉에 도착하였습니다. 날이 흐려있어 대청봉이나 중청봉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청봉까지는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공룡능선이 북쪽으로 위용을 드러내고 있어 이를 감상하기에는 아주 훌륭한 조망 포인트였습니다. 공룡의 초입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공룡을 일별해 볼 수 있고 환상적인 경치를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엇습니다. 다들 눈앞에 펼쳐지는 암봉과 구름이 엮어내는 경치에 넋을 잃고 칭찬 일색입니다. 물을 마시며 쉬던 우리는 멋진 경치를 배경으로 인물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이제 길은 다시 내리막길로 들어섭니다. 멀리 앞으로 우리가 다음으로 넘어야 할 1,275봉이 높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신선봉에서 1
 신선봉에서 2
 신선봉에서 3
 신선봉에서 4
 신선봉에서 5
 공룡을 닮은 바위(신선봉을 떠나 12분후인 8시 28분에 촬영)
이번엔 꽤 깊숙이 내려갔다가 하늘 높이 올라가야할 듯 한데 그 갈 길이 장난이 아니게 보입니다. 저 높은 1,275봉의 정상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니 미리 오금이 저리고 아예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비탈길을 아주 많이 내려갔습니다. 오전 9시 34분 드디어 길은 바닥을 치고 샘터 팻말이 나왔습니다. 샘을 찾아 물을 보충하려 하는데 샘은 황폐화되어 쓸 수가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어서 힘을 빼게 합니다. 가파른 길의 여러 곳에선 바위를 손으로 잡고 겨우 발을 올려가며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10시 12분 1,275봉 바로 밑 쉼터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포의 1,275봉
힘이 지친 우리는 여기서 한참을 쉬어야 했습니다. 이곳이 공룡능선에서는 가장 높은 곳인지라 우리는 장광종군이 가지고 온 소주를 가지고 역사적인 산행을 기념하며 정상주를 한 잔씩 하였습니다. 쉬면서 보니 그 다음 우리가 넘을 바위산이 또 하나 나타납니다. 이런 봉우리가 몇 개나 더 될는지 가늠이 안되었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가야만 되는 답답한 순간이었습니다. 마등령까지 2.1km이고 희운각에서는 3km 지난 지점이라는 팻말이 우리의 평면적 위치를 지시해 줄 뿐이었습니다. 입체적인 길의 생김새(봉우리 개수와 경사도의 상황)에 대해서 팻말은 어떤 설명도 해주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래도 주변의 경치는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우리의 눈을 유혹합니다.
 1,275봉 밑에서 휴식중입니다.
우리는 다시 비탈길을 오래 내려갔습니다. 그리곤 다시 길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줄을 잡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곳을 만납니다. 이런 곳에선 손에 든 스틱이 방해물이 될 뿐입니다. 스틱은 줄을 잡을 정도로 급한 경사가 아닌 곳에선 걷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막상 줄이 나오면 귀찮은 방해물이 되는 것입니다. 어젯밤 소청산장에서 몇 사람은 스틱을 구입하였고 그것이 오늘 아침 희운각 내려오는 길에서는 꽤 유용했다고 김남진군이 말합니다.
 외설악을 채운 구름
돌산의 위에 올라왔다고 느끼는 순간 길은 다시 급전직하 아래로 내려갑니다. 우리는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돌산을 올라갑니다. 11시가 가까워 옵니다. 우리는 어떤 봉우리 아래에서 지친 나머지 퍼질러 앉았습니다. 그 동안에 김남진군은 휴대전화로 미국의 딸과 다시 통화를 시도합니다. 한참을 애쓴 끝에 통화가 되고 부인까지 딸과 통화를 해서 ‘사랑한다.’는 인사말로 통화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돋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그 질긴 공룡능선도 거의 다 통과해 가는데 마지막으로 나한봉 가기 전의 밧줄이 매어진 힘든 구간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용을 쓰며 바위 비탈을 겨우 겨우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12시 15분 나한봉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마등령까지는 이제 0.5km 밖에 남지 않은 지점입니다.
 나한봉에서 1
 나한봉에서 2
 나한봉에서 3
곧 이어 너덜지대가 나오고 지긋지긋하던 돌길은 낙엽이 쌓인 보통의 산길로 변하고 곧 마등령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때 시각이 12시 38분이었는데, 무너미고개를 출발한 후 5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마등령에선 올 때마다 보는 나무로 깎아 만든 오리가 돌무더기 위에 앉아서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마등령의 오리
여기서 직진하면 비선대로 가는 길이고 좌로 틀면 오세암으로 가는 길이 되어 이곳은 삼거리였습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장광종군이 푸짐하게 싸 온 주먹밥과 무우 깍두기 김치가 주 메뉴였습니다. 약 20여분을 식사하며 휴식한 후 우리는 비선대로 가기 위해 경사가 덜 급한 언덕을 치고 올라갔습니다. 다시 미시령과 비선대가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하였는데 여기서 우측으로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오후 1시 10분 하루 종일 흐려있던 하늘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단비였습니다.
비가 반갑기는 하나 길이 미끄러워지기에 걱정이 늘어납니다. 조심해서 내려갈 뿐이었습니다. 어쨌던 오늘의 최난코스인 공룡능선은 통과했기에 마음은 개운했습니다. 저는 비옷을 걸치고 배낭커버를 꺼내어 배낭에 씌웠습니다. 비선대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이었습니다. 비는 약하게 내리는 듯 하더니 거의 오지 않습니다. 저는 비옷을 다시 벗어서 배낭 속에 넣었습니다.
이달헌군과 서중원군은 힘이 남아서 앞으로 내달려 뒷사람들과 점점 멀어집니다. 따라서 뒤를 따르는 사람들과는 운행시간이 큰 차이가 납니다. 저와 김남진 부부. 장광종 4인은 조심하며 그들의 뒤를 따릅니다. 바윗길을 한참 내려와 샘터에 와 보니 역시 물이 말라있어 실망하였습니다. 다행히 그 아래의 샘터에서는 나뭇잎을 타고 내려오는 샘물을 수통에 반 병 쯤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후 1시 40분경 비는 다시 쏟아집니다. 저도 다시 우의를 꺼내서 입었습니다.
이달헌, 서중원군이 앞장서서 내려간 후 김남진부부와 장광종, 그리고 저를 포함한 우리 4인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비선대로 향한 비탈진 돌길을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내려갔습니다. 가끔 쉬면서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험준한 능선을 돌아봅니다. 김남진군은 우리가 저렇게 험한 곳을 통과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제가 보아도 뒤의 암봉능선은 회색빛 옅은 구름에 싸여 공룡의 등짝처럼 높고도 날카로워 보였습니다. 물론 아름답기도 했습니다. 위험한 아름다움이라 할까요?
평소 같으면 2시간 이내면 마등령에서 출발, 비선대에 도착할 터인데 비바람 속에서 가려니 그 배의 시간이 걸리는 듯 합니다. 오후 4시 10분 길고도 지루한 돌길을 걸어서 비선대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제야 정말로 ‘고생끝, 행복시작’입니다.
비선대밑 와선대의 음식점에서 먼저 내려온 이달헌, 서중원군과 합류하고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누며 오늘의 등정을 마감하였습니다. 정말로 긴 여로였습니다.
잠시 후에는 잘 만들어진 넓고 운치있는 길을 따라 소공원의 좌불상까지 걸어갔습니다. 좌불상을 지나면 곧 매표소가 나오는데 매표소를 나온 시각이 오후 4시 57분이었습니다.
 신흥사앞의 대불상 - 부처님의 대자대비도 우리의 무사산행을 도왔습니다.
우리 6인은 곧 떠나는 속초행 시내버스를 타고 우명길, 이기후군이 기다리는 속초시 고속버스 터미널 인근의 사우나로 향하였고, 사우나에 입장, 이미 꽃단장을 끝낸 그들과 합류하여 멀고도 길었던 산행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후덕한 이기후군은 대청봉 등정기념으로 횟집에서 우리에게 한 턱을 썼습니다. 그가 사준 회와 그의 인심은 우리의 생명을 다시 충전시키는 청량제였습니다.
생명을 담보로 그 무시무시한 나락으로 전락하였다가 용솟음치는 생명의 약동으로 바위산을 넘기를 십여 차례, 우리 여섯의 몸과 마음은 공룡을 걸어서 넘으며 그 만큼 성숙하였고 그 만큼 소멸하는 아픔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산행이 인생역정과 닮은 것은 아닐런지요?
읽어주심에 감사하며. 울산 우거에서 올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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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 리 글 |
이기백 2006-10-25 |
공룡능선 5시간 주파 축하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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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후 2006-10-26 |
교수하기도 힘들텐데, 막 어려운 산행을 하고나서 언제 어떻게 이렇게 주옥같은 글들을 편집하였는지 너의 초인적인 능력이 부럽구나. 아무튼 이번 산행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게 지도해 준 너와 명길이에게 이 자리를 빌어 정중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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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낙중 2006-10-26 |
공룡능선 주파를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규성군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글이 두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안고치면 제가 고쳐드리구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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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기영 2006-10-26 |
코스모스의 저자 칼세이건이 말한 것 처럼 광대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속에서 만난 우리 동기들, 그 중에서도 이렇게 온힘을 다하고 마음을 합쳐 고되면서도 신나는 산행을 같이하는 즐거움을 맛본 이규성과 그 일당들 축하합니다. 그 우정 변함이 없기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