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21 고교 동창들과 대청봉에 오르다. : 올 가을의 네 번째 설악 기행(1편)

2006. 10. 24. 10:42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이 글과 다음 글, 산행기 두 편은 京東고 24기 동기들을 위해서 쓴 글입니다. 특히 이 산행기 두 편을 같이 산행했던 우명길군에게 헌정하는 바입니다. 동문이자 친구이자 선의의 라이벌인 그이의 산행에 전능하신 그분의 가호가 늘 있기를  기도합니다.)

 

10월 21일(토), 22일(일) 양일에 걸쳐서 설악산을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여행이라기 보다는 고된 산행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번 산행은 벌써 달 전부터 계획이 되어 있었습니다. 5반 동문인 서중원군이 경동 24기 몇 동문과 설악을 한 번 가자고 저와 의논하였고 저는 거기에 의기투합, 날짜를 10월 21-22일로 잡았습니다. 초기의 팀은 서중원, 김남진(김양미) 부부, 장광종, 이기후, 이달헌 군 및 저를 포함하여 7인으로 구성했는데, 떠나기 일주 전에 제가 우명길군을 강력 추천하고 그에게 참여를 권유하여 8인의 경동 24기 설악산 등산팀이 구성된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 이 팀은 환상의 등정팀으로 서로 양보하고 서로 격려하는 가운데 손발이 잘 맞아 떨어져 공룡능선을 주파하는 우수한 실적을 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산의 성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BMW(BMW는 우명길군의 필명으로 Book, Mountain, Work의 약자입니다.)를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정의 힘으로 스카웃한 것은 아주 잘 한 일이었습니다.(그 이유는 차차 설명드리겠습니다.) 저희 동기들 중 그보다 산을 많이 알고 그보다 산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드물다고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그래서 이번 산행의 성공도 전적으로 그의 판단과 실행에 힘입은 바 크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번 산행에서는 설악의 대청봉을 등정함은 물론 설악에서 가장 넘기 어렵다는 공룡능선을 걸어서 넘는 어쩌면 무리하고 어려운 산행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서중원, 장광종, 이달헌, 김남진 부부와 저 6인이 같이 합심하여 공룡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우명길, 이기후 두 동문은 공룡으로 가는 팀을 지원하기 위해서 천불동계곡으로 산행하는 쪽으로 양보하여 양쪽 산행이 성공리에 끝난 뒤 속초시내에서 합류, 같이 귀경할 수 있었습니다.

단합된 동기들의 힘과 홍일점이신 김여사까지 혼연일체가 되어 이룩한 쾌거라고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좋은 결과를 동문들에게 보고하게 되어 제 마음도 아주 기쁩니다.

2006년 10월 21일 새벽, 날씨가 걱정이 되지만 내일은 약간의 비가 내리겠지만 오늘만큼은 비가 없을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고무되어 4시에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어제 저녁 장도 보고 이런 저런 장비도 챙겨 두었기에 할 일은 없지만 산행의 기대에 대한 흥분인지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배낭을 완전히 싸서 등에 멘 다음 저울위에 서 봅니다. 99kg 정도입니다. 다시 배낭을 벗고 몸무게를 재어 보니 84kg였습니다. 배낭의 무게가 15kg이나 나가니 오늘의 운행이 걱정됩니다. 그러나 식품의 경우 빨리 없어질 터이니 걱정이 조금은 덜어집니다.

5시 30분 집을 나섭니다. 하마부인, 애견과 빠이빠이를 하고 저는 구의동 동서울터미널로 떠났습니다. 6시 10분경 매표창구에서 예약 입금했던 오색행 차표 8매(매당 \17,300)를 받았습니다. 맨먼저 김남진군이 어부인을 대동하고 반갑게 나타납니다. 남진군과 악수를 나누고 김양미여사께도 인사를 드리고 즐거운 산행을 다짐하였습니다.

곧 바로 장광종, 이기후, 이달헌, 서중원군이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우명길군이 4번 타는 곳에 나타나 우리는 속초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최종 목적지는 속초행이지만 우리가 가는 곳은 인제와 양양의 중간 쯤인 양양군 오색입니다.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르는 것이 설악정상에 오르는 최단코스이기에 미리 오색을 선택해 두었던 것입니다.

버스안은 여유가 있어 둘이 같이 앉거나 두자리에 혼자 앉아서 갈 수가 있었습니다. 날씨는 개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강줄기를 따라 버스는 산행의 들머리, 오색을 향해 동쪽으로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도 희망의 여로를 출발하는 데 대한 벅찬 감흥이 힘차게 용솟음치는 듯 했습니다. 또한 어렵게 성사된 동기들과의 여행이 무사히 마무리되도록 그분께 마음속으로 기도드리지 않을 수 없는 약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버스가 떠난지 30분 쯤 되었는데 24기 동문회의 재무부회장 이길호군의 격려 전화가 김남진 군에게 왔습니다. 마음으로 응원하는 격려 전화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감사히 그 뜻을 받아서 이번 산행을 꼭 성공시키고자 하는 결심을 더욱 굳히며 그이 자상한 배려에 감사했습니다. 이길호군은 우명길군과 저와 함께 1970년에서 71년까지 약 2년을 경동OB산악회에 들어서 열심히 산을 다니던 산친구이기도 했습니다. 길호군에게 이 지면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10시 20분경 버스는 홍천의 한 휴게소에 도착하여 잠시 쉬기에 저는 역사적인 한 컷을 동지들에게 주문하여 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잠깐 쉰 다음 확장공사가 한창인 홍천->인제 국도를 따라 어느 덧 인제를 지나갑니다. 김남진군이 20여년전 낚시왔던 곳이라고 감회를 말합니다.

홍천의 이름 잊은 휴게소에서 역사에 남을 한 컷을 : 왼편부터 이기후, 장광종, 서중원, 김남진, 우명길 군입니다.

거기서 북쪽으로 한참을 가니 미시령과 양양으로 갈리는 남설악휴게소 삼거리가 나오고 우리는 그곳에서 우측으로 꺾어 양양쪽으로 달려갑니다. 이제 설악의 관문인 한계령에 가까이 닥아 온 것입니다. 여기부터는 수해를 입었던 흔적이 개울을 덮은 돌과 떠 내려온 나무에 진하게 남아 있었고 버스길도 이제야 복구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연재해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처지가 빨리 좋아지길 빌 뿐이었습니다.

남설악광장 삼거리를 지나 약 20분 후 버스는 먼저 장수대에 정거해서 몇 분의 산행객을 내려 놓았습니다. 거기서 다시 10분 쯤 가니까 한계령휴게소가 나오고 버스는 다시 몇분의 산행객을 토해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인 오색도 지척인 곳입니다. 10분 쯤 후 우리는 오색에 도착하여 남설악매표소 앞에서 하차하였습니다. 시각은 오전 9시 38분입니다.

서중원군이 싸온 빵을 주식으로 다른 사람들도 먹을 것을 보태어 요기를 하며 짐을 줄이고 산행준비를 하며 오늘의 결의를 다짐합니다. 김남진군이 일행을 위해 싸온 점심용 김밥을 나누어 줍니다. 각자는 김밥을 자기의 배낭에 넣어 남진군의 짐을 덜어 줍니다.

9시 51분 기념촬영을 한 후 매표소를 통과 대망의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 남설악 매표소는 제가 올 가을에 이미 세 번이나 통과했던 곳인데 오늘은 낮에 통과하는 점이 전의 세 번과는 달랐습니다. 아침인지라 입장하는 사람들이 아주 적었습니다. 새벽에 안내산악회를 따라 온 사람들이 등정을 시작하는 피크시간대(새벽 1시반-2시반)에는 매우 혼잡하던 곳인데 지금은 한가합니다.

남설악 매표소 앞에서 : 좌에서 4번째가 이달헌군, 좌에서 5번째는 김남진군의 부인 김양미여사입니다.

비탈길을 천천히 올라가면서 저는 올 가을 네 번의 설악 산행이 제게 무엇을 가져다 줄지 궁금해 했습니다. 이번 설악 산행이 끝나면 저는 무엇을 얻게 될런지요? 아니면 무엇을 깨닫게 될런지요? 우선은 늘 그리워 하던 설악과 같이 오래 마주보며 그 속을 걸을 수 있었기에 행복했었던 기억은 확실합니다. 나머지는 차차 찾아 보렵니다.

산행은 초장부터 힘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져보는 15kg의 짐이 주는 중압감이 대단했습니다. 가방속의 내용을 일별해 봅니다. 버너, 가스통 2개, 코펠 3개 1조, 비상용 바람막이옷, 갈아입을 티셔츠와 양말, 우의, 우산, 칼, 나침반, 헤드랜턴, 플래시, 지도, 물을 채운 1리터짜리 수통, 물을 넣아 얼린 반리터짜리 수통, 과일통조림 2개, 햇반 3개, 라면 3개, 소주팩 3개, 1홉짜리 작은 병소주 3개, 오징어 두 마리, 휴지, 필기도구, 숟가락 포크 각각 1개, 배낭카버, 오이 3개, 떡 1팩, 달걀 3개, 비상용 약품, 사탕과 젤리 및 쵸코렛 등 45리터 배낭을 거의 꽉 채울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지고 산행한 경험은 1970년 여름 설악 장기산행시 20kg의 짐을 지고 몇일 간 산행했던 기억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15kg은 어쨌든 대단한 무게입니다. 배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게 저를 찍어 누릅니다. 동료들의 짐을 보니 저보다는 적을지 모르지만 다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무게에 고심하는 듯 하기에 누군가에게 짐을 떠맡길 처지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중에도 우명길군은 제가 부탁해서 가져온 버너 두 개와 코펠이 배낭속에 들어 있는 데에다가 다른 짐도 많아서 제 짐과 거의 같은 무게인 것 같았습니다. 그에게나 우리 모두에게나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짐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먹을 것을 부지런히 줄여서 짐을 가볍게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초장부터 시작되는 비탈길을 땀을 흘리며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때라면 1.3km 떨어진 제1쉼터(팻말이 있음)까지 단번에 오를 수 있겠지만 오늘은 짐의 무게 때문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반도 못가서 짐을 내려놓고 주저앉습니다. 다른 산행객들도 같이 산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젊은 외국인들도 보였습니다. 그들도 힘이 드는지 우리가 쉬는 옆에 주저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작은 짐을 가진 그 젊은이들이 힘들어 하는 걸 보니 우리가 힘들어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습니다.

휴식하는 모습

1km도 진행을 못 한 상태인데 일행은 선두와 후미, 둘로 쪼개지기 시작합니다. 저와 서중원, 이달헌군이 선두를 유지하고 김남진 부부, 장광종, 이기후군이 처지기 시작합니다. 우명길군은 후미를 맡아 그들과 같이 오고 있습니다. 특히 이기후군이 체력이 약간 달리는 듯 합니다. 다들 무사히 대청봉을 지나 오늘의 숙소인 소청산장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비탈길을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가파른 비탈은 가끔 완만하게 가다가 살짝 내려가기도 하는데 설악의 단풍은 잎이 말라 있어서 눈길을 줄 때마다 서운했지만 가끔은 괜찮게 물들은 붉은 단풍나무들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선두의 2인 : 이달헌군과 서중원군

아직 멋있는 단풍

10시 43분 출발점인 매표소를 떠난지 52분만에 1.3km 떨어진 제1쉼터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고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속도가 잘 나지 않아서 11시 8분에서야 1.7km 전진한 팻말이 서있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1시간 17분에 1.7km를 시속 1.33km의 속도로 온 것입니다. 이 지점의 제 과거 기록을 보니 48분에서 60분 사이였습니다. 오늘 그룹의 속도는 제 혼자 속도에 비하면 1.3-1.6배 느린 속도입니다.

우리는 선두와 후미의 속도차이를 감안하기로 하고 중간지점 정도에서 식사를 한 후 선두팀이 소청까지 먼저 가서 숙박을 신청하기로 하였습니다. 후미팀은 여유있게 경치를 즐기며 따라 오도록 했습니다. 소청산장은 숙박에 있어 예약을 받는 체제가 아니고 그날그날 먼저 오는 순서대로 잠자리를 주기에 산장에 빨리 도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산행은 어차피 소청산장에서 접어야 하지만 소청에 도착하여 시간여유가 있으면 그 아래의 봉정암을 구경하기로 계획을 세워 보았습니다.

서중원, 이달헌군과 저는 앞장 서서 한참을 가다가 후미를 기다립니다. 쉬는 동안 저는 복숭아 통조림 두 개를 꺼내서 나누어 먹고 후미를 기다렸습니다. 후미가 도착하자 그들에게도 복숭아를 나누어 주어서 짐을 줄였습니다. 깡통 두 개에 든 복숭아 통조림 무게는 500-600g에 불과한 무게이지만 휴식후 제가 집어든 배낭은 무게가 반은 줄은 듯 했습니다. 이제 좀 가볍게 걸을 수 잇을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더 올라가니 설악폭포에 접근합니다.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한참을 가니 2.5km 지점에서 작은 폭포가 돌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11시 38분이었습니다. 우리 선두팀은 사람들을 피해 폭포에서 조금 올라간 지점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려고 후미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10여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먼저 식사를 하고 소청봉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식사는 순식간에 끝나고 후미가 도착하면 먼저 간다는 말을 하고 가려는데 12시 5분이 넘어서야 후미가 나타납니다.

설악폭포

아래에서 잠시 쉬고 오느라 늦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후미의 식사장소까지만 동행한 후 먼저 떠나기로 하고 같이 움직입니다. 드디어 철계단 옆에 자리를 잡고 후미의 식사가 시작됩니다. 선두도 잠시 쉰 다음 먼저 대청봉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제 걸음엔 속도가 붙는 것 같습니다. 지루한 오르막의 계단과 완만한 비탈길을 지나 오후 2시 10분 대청봉 100m 전방 산행시작점에서 5.0km 떨어진 지점의 나무팻말에 도착하였습니다. 산행후 4시간 19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오후 2시 15분 세사람의 발자욱이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을 찍었습니다. 평소같으면 동해바다가 시원스럽게 펄쳐지고 주변의 경치가 황홀하게 닥아 올 지점이지만 날씨가 흐려있어 어렵게 정상에 도달했다는 감흥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대청봉 정상을 향해 돌길을 걸어갔습니다. 설악을 덮은 구름은 정상아래로 펼쳐진 비경을 수줍게 숨기고 있는데 언뜻 언뜻 나타나는 중청의 자태와 정상 주변의 경치감상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네시간 여만에 어려운 걸음 끝에 도달한 정상에서 저의 마음은 뛰고 있었습니다.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고 신령한 높이 1,708m의 명산, 설악산의 정상에 우뚝 서니 희열이 밀려왔습니다. 로마군의 사령관 쥴리어스 시저가 불란서를 정복하고 일갈했다던 구절을 동원해서 기분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Veni, Vidi, Vici!'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설악산 정상에선 선발대 3인

정상주는 준비 못 했지만 정상기도는 필수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분께 감사드리고 내일의 공룡능선 산행도 무사하게 보살펴 주시도록 부탁드렸습니다.

‘나머지 여정도 당신께 맡깁니다.’

(2편에서는 공룡능선이야기로 계속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