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설악산 대청봉, 화채봉, 설악동 산행코스 : 오색-대청봉-화채봉-칠성봉-1216봉-설악동 C-주차장 산행일자 및 시간 : 2006년 10월 8일 오전 1시15분-오전 11시 30분(10시간 15분)
S안내산악회의 안내로 금단의 구역(대청봉->화채봉->설악동)을 산행하고 돌아왔다. 추석연휴의 막바지인 토요일 10월 7일 저녁부터 10월 8일까지의 1박 2일 산행이었다.
저녁 7시 집을 나와 잠실로 출발했다. 잠실역에 도착, 롯데호텔 앞 산행의 출발지에 도착하니 시간이 7시 40분 밖에 안 되었는데 버스 3대가 기다리고 있다. S산악회는 추석연휴의 마지막을 특별기획으로 설악산 무박산행을 계획하였다. 인터넷엔 보통 설악산 산행으로 발표하였으나 입소문으론 입산금지된 화채능선에 간다고 발표한 바 있었다. 그래서 설악산 화채봉 무박산행은 금지된 장난에 대한 호기심인지 산객들의 흥미를 제법 발동시켜서 버스가 3대나 동원된 것 같다.
잠을 잘 사람들은 위해서 버스는 불을 끄고 하남시를 지나고 팔당대교를 건너 양평으로 가는 6번 국도로 접어드는데 초저녁부터 잠이 올 리가 없다. 어두운 창밖에서 반딧불처럼 빛나는 불빛을 보며 혼자의 생각에 젖을 수 밖에 없다.
6번국도는 어느 새 44번 국도로 바뀌고 유래를 알 수 없는 이름의 ‘클린턴’ 휴게소에서 20여분을 쉰다. 다시 떠난 버스안에서 회장이 산행설명을 한다. 오늘 출발시간을 일찍 앞당긴 이유는 첫째 오색으로 가는 길이 수해에서 아직 복구되지 않아서 양양으로 우회해야 할지 몰라서였고(길은 이미 복구되어 있었음), 둘째로는 설악을 찾는 많은 산행객들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금지된 구간이니만치 뭉쳐서 움직여야 하고 대청봉 바로 밑에서 오색출발 후 3시간내에 집결하라고 한다. 그래야만 같이 화채봉 능선을 갈 것이고 그때까지 못 온 사람들은 천불동으로 하산해야 한다고 한다. 가야할 길의 길이는 19km 인데 주파시간은 10시간으로 잡는다고 한다. 안내가 끝나고 차내는 소등하였지만 도통 잠을 잘 수가 없다. 또 잠이 안 오기 때문이다. 잠을 좀 자야한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이 된 것인지 잠을 잘 수가 없다. 몇시간 내로 고된 산행이 기다리고 있을 터인 즉 잠을 자두면 큰 도움이 되련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나이가 들어서인가? 불면증에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소등이 된 차속에선 엔진소리만이 약하게 들려오는데 산객들은 다 잠들었는지 조용하다. 11시 30분 경 내설악광장 휴게소에 도착한다. 오색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을 오전 1시로 잡았기에 시간이 이르다고 한다. 여기서 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한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나서 하릴없이 광장을 기웃거려 본다. 많은 이들이 버스안에서 잘도 자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식사를 매식하거나 맥주를 사서 마시고 있다. 이 밤에 산행을 앞두고 술을 마실 정도면 도사 아니면 바보이리라. 나에겐 맞지 않는 방법이다. 하늘엔 보름달이 떠있는데 날씨는 춥지가 않고 산행하기에 적당할 것 같이 보여 안심이 된다.
휴식한지 1시간이 지나고 12시 30분이 되어서 버스는 다시 오색을 향하여 출발한다. 캄캄한 길이 제법 멀게 느껴진다. 신발끈을 다시 매고 마음의 준비를 다진다. 오색 출발 후 속도를 내야만 회장이 이야기하는 3시간 내에 대청봉에 도착할 것 같아 긴장이 된다. 지난주 김관석씨와 같은 길을 갈 때는 대청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가는 바람에 4시간이 소요된 기록이 있다. 오늘은 쉬지말고 가능한 한 빨리 오르기로 마음 먹는다.
굽이굽이 난 길을 돌아서 버스는 1시 5분쯤 오색의 남설악매표소에 도착했다. 잠시 산행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10분 쯤 버스에 머무는데 GO 싸인이 난다.(보통 설악 야간산행은 오전 2시부터 허락되는 것으로 들었었다. 회장이 공단측과 교섭을 잘 했는지도 모르겠다.)
2시 15분 매표소를 통과한 110여명의 산객들은 헤드랜턴이나 손전등으로 불을 밝히며 줄을 지어 열심히 비탈길을 오른다. 보름의 만월을 하루 밖에 지나지 않은 달이 중천에 높이 떴으나 달빛만으론 돌부리를 피하기 힘들기에 랜턴이 필요하다. 나도 헤드랜턴을 켜고 사람들을 따라 차분히 뒤를 따른다. 각오를 단단히 해서인가 크게 힘든 것은 아니다. 20분쯤 가니 쉬어가는 사람들이 생긴다. 나 역시 힘이 들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제치고 제1쉼터까지는 지난 주처럼 쉬지 않고 가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가쁜 숨을 달래고 아파오는 다리도 추스르며 계속 걸어간다. 어쩌면 오기인지도 모르나 3시간 이내 대청봉 도달이라는 약속은 지키고 싶다. 다리가 아파 오는데 2시 3분 드디어 1.7km 진행했다는 나무팻말이 있는 제1쉼터에 도착한다. 48분만에 오색->대청봉 구간의 1/3 지점에 도착하였다. 지난 주에는 한 시간이 조금 못되게 걸렸던 구간인데 48분이면 지난 번 보다 15% 가량이나 향상된 속도이다.
물을 마시며 조금 쉰 다음 일어나 다시 전진이다. 길은 이제 아까보다는 약간 덜 가파르다. 조금 더 가서 제1쉼터에서 0.5km 가량 온 후부터는 개울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사방이 어두워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만 들려온다. 물소리는 어느새 폭포소리로 바뀌는데 설악폭포에 온 것이다. 2시 34분이다. 역시 폭포의 모습은 어둠에 가려 볼 수가 없다. 잠시 쉬며 안내판을 촬영한다. 조금 쉰 다음 계속 가다보니 많은 산객들을 제치고 나가게 된다. 길은 가팔라졌다 완만해졌다 하며 산위로 계속된다. 최소한으로 쉬고 물을 마시며 강행군을 한다.
3시 50분 매표소에서 5.0km 떨어진 지점, 정상에서 100m쯤 떨어진 팻말앞에 도착하였다. 바로 위에 옛날 대피소건물이 방치되어 있는 곳이 집결지이다. 화채봉 산행을 위해 모이는 곳이다. 집결지에서는 여성안내대장이 산객들을 모아서 화채봉쪽으로 보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난 우선 화채봉 가기 전에 정상을 다녀오기로 하고 지척에 있는 대청봉 정상으로 향한다.
3시 54분, 드디어 1,708m의 설악 정상에 섰다. 산행시작 후 2시간 39분 경과된 시간으로 시간관리는 양호한 편이다. 몸을 닦달한 보람이 있다. 회장이 말한 데드라인에서 21분이나 단축한 시간기록이다. 우선 정상석을 사진 찍는다. 달빛이 교교하게 비추고 정상석이 외롭게 서있는 정상엔 이 시각에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정상을 독차지 해 본다. 큰 행운이다. 설악에 여러번 왔지만 정상에 홀로 서 본 기억은 없었다. 설악이나 지리같이 유명한 산에 오르면 정상엔 언제나 사람들이 있는 것이 보통이었었다. 오늘은 3시 54분이라는 시각이 사람들이 오기엔 일러서 그런 것 같았다.
 대청봉의 정상석
멀리 속초시의 불빛이 보석처럼 빛나는데 오늘따라 정상은 바람도 불지 않고 조용해서 더욱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성스러운 곳에 도착했으니 그분께 기도가 없을 수 없었다.
‘주님, 제 마음을 설악처럼 맑고 깨끗하게 씻어 주시옵고 오늘 S산악회의 산행을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여느 때처럼 기도할 것은 많고 시간은 짧았다. 약 5분 가량을 정상에 홀로 서 있는데 멀리서 한 사람이 올라오기에 자리를 비켜주고 집결지로 합류하였다.
집결지인 옛날 대피소 건물은 콘크리트구조인데 버려져 있었다. 여기서 산행시각을 늦춘다는 이야기가 전달된다. 시각이 너무 일러서 화채봉으로 출발하는 것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한다. 낡은 대피소 안에서 사람들은 불을 자그마하게 피워 기다리는 시간이나마 따뜻하게 지내려고 한다. 나도 불을 조금 쬐는데 어떤 분이 막걸리 한잔을 주기에 달게 받아 마신다.
4시 25분 쯤 2진인지 3진인지 팀을 이루어 우리는 드디어 화채봉능선으로 진격하였다. 처음엔 관목이 나있어 길이 좁고 가기에 불편하였다. 그리고 길은 계속해서 하강한다. 한참을 정신없이 진행하는데 나와 연배가 비슷한 윤사장을 만났다. 그분께서 너무 빨리 가면 경치 구경을 못할 터이니 천천히 가자고 말씀한다. 그 말씀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두 번에 걸쳐 20분 이상을 쉬었다.
그러다가 집히는 것이 있었다. 오늘 일출을 보려면 화채봉까지 일출전에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이런 생각을 윤사장께 여쭈니 그분도 동의한다. 둘은 이제 쉬지 않고 계속 진행하는데 길이 결코 가까운 길은 아니다. 화채봉 전의 1,253봉도 가기 전인데 앞서가던 사람들이 여럿 길옆에 누워 쉬고 있다. 화채봉이 가까웠기에 일출전까지 한숨 자다가 일출 때에는 코앞의 화채봉에 가볍게 올라 일출을 볼 예정이라고 한다.(그들의 계산은 착오였다. 화채봉은 거기서도 1시간 이상이나 가야 했다. 그들은 화채봉 일출을 놓지고 만다.)
우리는 무언가 미심쩍어 확인을 해보기로 하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길은 계속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 붙어 그 길을 가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한참을 가니 봉우리가 하나 나오는데 화채봉인 것 같았는데 앞에 가던 산악회 안내대장같은 사람에게 물으니 이 봉우리는 화채봉이 아니라고 한다. 시각은 이미 6시 5분전으로 일출까지는 30분 정도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화채봉에서의 일출감상도 어쩌면 물 건너갈지 모른다는 절박성을 느꼈다.
나는 속도를 더하여 다음 봉우리인 화채봉으로 허겁지겁 닥아갔다. 그런데 이제 화채봉은 아주 높은 곳에 솟아 있어서 가파르게 닥아온다. 윤사장은 뒤에서 좇아오지 못하고 헉헉대신다. 나는 일출사진 촬영의 욕심에 있는 힘을 다 짜내어 가파른 화채봉으로 가는 험한 길을 기어 올라갔다. 윤사장도 버리고 우선 나부터 챙기는데 맘씨좋은 윤사장은 느긋하게 오는 것 같다. 마침 선두가 바위길 주위에 리본을 매어 놓아 길을 옳게 찾아갈 수 있었다.
6시 25분 나는 지친 몸으로 해발 1,320m인 화채봉 정상의 바윗돌위에 설 수 있었다. 해가 뜨기 전이라 천만다행이었다. 서쪽으론 아직 달이 지지 않고 공중에 걸려 있는데 공룡능선이하 수려한 암봉들이 옅은 스모그 때문에 약간은 덜 선명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장쾌한 스펙터클이 눈을 즐겁게 한다.
 아직 지지 않은 달님
 희미하게 나타난 공룡능선
화채봉위에 도착해서 한 10분쯤 있으니 6시 34분에 일출이 시작된다. 해뜨는 쪽 하늘의 아래쪽엔 스모그가 끼어서 해가 바다에서 직접 올라오는 그런 감동은 없었다. 그래도 설악 일출을 8일만에 한번 더 보게 되는 기분은 매우 좋았다. 일출을 사진찍은 다음엔 주변의 경치를 사진 찍었다.
 화채봉 일출의 시작
 좀 더 진행된 일출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고 그들 중 몇사람은 칠성봉에 가려고 하며 동행을 권유한다. 꾀가 나기도 했지만 이왕 온 것, 칠성봉까지는 가보기로 한다. 6시 40분에 출발, 가파른 길을 내려가서 막상 도착해 보니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다. 칠성봉에선 그 아래 집선봉까지 갈 수도 있으나 포기하고 다시 화채봉으로 돌아오는데 비탈을 올라오는 길이 만만치가 않아 가던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을 택했지만 역시 힘이 들었다. 수직거리로 240여m를 내려갔다 올라온 셈이었다. 7시 33분 화채봉으로 복귀하였다.
배가 고파서 여기서 아침식사를 한다. 산님 한 분과 떡을 꺼내서 식사를 한다. 식사 후 경치를 배경으로 인물사진 촬영도 하고 경치 자체를 촬영하기도 하였다. 설악의 수려한 바위들을 카메라에 넣어 보지만 스모그같은 뿌연 것이 끼어 선명한 사진이 되지 않는다. 8시 10분 쯤 하산길에 나섰다. 그런데 하산길도 예상처럼 쉬운 길은 아니었다. 다음 봉우리인 1,216.3m 봉을 넘는 것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였고 이제 나는 약 8시간의 산행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1,216.3봉 오기 전 내리막에서 낙엽에 미끄러져 땅에 뒤로 누우며 바위에 오른쪽 옆구리를 제법 세게 부딪혀 그 부분에 통증이 있는 상태이다. 별다른 대책이 없으니 통증이 완화되길 기대하며 길을 갈 뿐이다.
1,216.3m 봉을 넘어서 단풍이 괜찮게 보이는 나무들을 촬영해 본다. 오늘 설악의 단풍은 날이 가물어 많이 말라 있고 잎이 약간은 오그라들어 있어 아쉽다. 가끔 물기가 있어 붉은 빛이 선명한 단풍나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단풍의 모습이 좋지가 않다.
 단풍 - 최상은 아니나 아쉬운 대로
여기서부터의 산행은 약간 지루함의 연속이다. 계속해서 길을 따라 내려 가는데 가도 가도 길은 끝이 없다. 고도는 아주 서서히 낮아지는데 절반도 안 내려가서 단풍은 그치고 숲은 녹색으로 변한다. 설악산의 아래쪽엔 아직 단풍철이 아니었다. 길섶에서 야생화인 구름체꽃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나그네를 맞아 준다. 능선을 한없이 내려오고 마지막 질척한 늪을 지나 설악동의 C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11시 30분이었다. 장장 10시간 15분의 산행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야생화(구름체) - 그대 날 기다렸나?
(후기) 10월 8일 일요일, 이날 산행의 소득 중 하나는 대청봉 정상에서 홀로 그분을 찾아 기도를 올릴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산행의 클라이맥스는 아무래도 두번씩이나 오른 화채봉 정상에서의 경치 감상이었습니다. 날이 완전히 개이지 않아 사진이 잘 안 나온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으나 눈으로는 경치를 즐길 만 했습니다. 긴 시간 산행을 뒷받침한 제 다리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넘어져서 아프던 우측 옆구리가 지금은 다행히도 괜찮은 것 같군요.
그날 후미에 오던 사람들 몇이 결국 공단직원들에게 적발되고 산악회 회장은 대표자로 과태료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회장 혼자만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북한이 주위의 경고와 충고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저지른 날인지라 마음이 무거워 산행기가 잘 써지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8일전의 첫 번째 설악산행을 서술한 산행기 속에서 두번째 산행소식을 전한다고 약속한 일이 있었기에 잘 안 나가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보았습니다.
올 가을 세번째 설악산행을 준비중입니다. 이번에는 공룡능선을 타 볼 예정인데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읽어주심에 미리 감사드리며....10월 10일 새벽 4시. 울산에서 이규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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