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15 올 가을의 세 번째 설악 기행

2006. 10. 17. 17:55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산행지 : 설악산 대청봉, 천불동계곡, 화채봉, 설악동
산행코스 : 오색-대청봉-희운각-천불동계곡-비선대-소공원-설악동 C주차장
산행일자 및 시간 : 2006년 10월 15일 오전 2시20분-오후 13시 경(약 11시간)


지난 토요일밤과 일요일 낮을 이용하여 E안내산악회의 안내로 설악산을 한 번 더 무박 산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추석연휴의 전과 후에 한 번씩 두 번 설악산에 갔었고 이번이 올 가을 설악행으로는 세 번째입니다. 다음 주 말(21-22일) 동기들과 한 번 더 오를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게 있어 올 가을 설악행은 네 번이 되고 올 통산 5번이 될 것 같습니다.

설악을 이렇게 깊이 천착(씹음)함은 웬일인고? 하고 묻는 분이 계시겠지요. 별 뜻은 없었습니다. 욕심과 야심과 우정이 나은 짬뽕국물과도 같이 뒤섞이다 보니 그리 된 것입니다. 첫 번째 설악행은 ‘용아장성’이라고 하는 험준하고 경치가 좋지만 입산이 금지된 곳을 간다고 해서 따라 나섰으나 안내산악회가 지레 겁을 먹고 코스를 바꾸는 바람에 금지된 곳은 못 갔으나 그래도 가고 싶었던 봉정암과 구곡담, 수렴동계곡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설악행은 역시 안내산악회가 금단의 지역인 화채봉을 안내한다기에 따라 갔고 결과는 괜찮았습니다. 화채봉에서 좋은 경치를 보고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저의 욕심이 빚어낸 작품이었습니다. 설악에서 가장 힘든 코스 중 하나인 공룡능선을 저 혼자 일주일 먼저 넘고 와서 다음 주에 서중원 이하 동기들을 공룡으로 안전하고 확실하게 안내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저의 욕심은 결과적으론 충족되지 못하고 공룡능선을 굽어보는 봉우리(신선봉)에 잠깐 들렀다가 천불동을 거쳐 내려오는 산행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공룡능선은 네 번째 산행에서 갈 작정입니다.(다만 날씨가 받쳐 주지 못할 경우 다음 주 산행은 공룡 대신 쉬운 코스로 대치될 확률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산의 도사인 우명길군도 동참한다 하니 한결 든든합니다.)

저로서 공룡능선은 2004년 9월에 한 번 넘어 보았고 또 올해 1월 1일 새해맞이 산행으로 겨울철임에도 다녀왔기에 그리 낯선 곳은 아니었습니다.(우명길군도 역시 2번 완주) 다만 자꾸 노쇠해가는 몸을 어떻게든 달래서 공룡을 몇 번은 더 넘어 보고 싶은 것이 저의 욕심이자 지금의 심정입니다.

이러한 욕심을 마음 속에 숨긴 채 저는 10월 14일 토요일 울산공항에서 오후 4시 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씩씩하게 서울로 향했습니다. 오전서부터 시작한 2학기 수시 입학시험의 면접고사를 2시 40분 쯤 부랴부랴 끝내고 공항으로 간 것입니다.

5시쯤 김포공항 도착,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하마부인과 후치(우리집 시추 강아지)가 반겨 줍니다. '주말마다 산에 가요?' 올 가을 3주에 걸쳐 매주 무박산행으로 설악으로 가는 저를 보고 하마부인은 ‘애인이라도 산에 있느냐?’고 물어 봅니다. 제 대답이 ‘설악산이 애인’이라고 하니 하마부인 납득이 잘 안 가나 봅니다.

집을 떠날 때까지 남은 시간이 2시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밤 9시엔 배낭들고 집결지인 동대문시장 주차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선 저녁식사는 하마부인의 특별식 삼겹살입니다. 평소라면 다이어트 때문에 조심해서 적게 먹어야 하는데 오늘은 산에 가니 좀더 먹어도 됩니다. 영양을 보충하고 저울에 올라가 보니 몸무게가 83.3kg 이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일주일 전 화채봉 때에 몸무게를 쟀을 때에는 86kg이 넘어가서 하마부인이 추석연휴기간 동안 저를 사육한 결과가 나타났고 그날 살의 무게에 약간의 공포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요즈음 살에 좀 민감합니다. 3kg 정도의 몸무게 차이로도 산에서 운행하는데 차이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10시간 이상 걸으려면 몸무게는 80kg 이하가 저로선 적당하나 거기에는 못 미치고 83 정도만 되면 그래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것도 오늘은 저녁을 먹은 다음의 수치이기에 행복감을 느껴 봅니다.

식사후 남은 시간은 하마부인이 깎아 주는 사과를 먹으며 인터넷으로 산행기와 산행에 관한 소식을 뒤져 봅니다. 마지막으로 샤워와 머리감기, 다음에 내복 갈아입고 등산복 착용, 9시 10분 강아지에게도 안녕을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산악회를 좇아가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 운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친구라도 같이 가면 이야기 상대도 되고 덜 적적할 터이나 과분한 욕심이니 접어야 합니다. 그래도 혼자라도 산에 갈 수 있다는 행복감에 마음은 흡족한 데 한편으론 공룡능선이라는 어려운 코스를 앞에 두고 무사히 산행을 할 수 있을지 은근히 겁이 나고 긴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동대문을 떠난 버스는 양재와 복정에서 산객들을 꽉 채우고 홍천가는 7번국도로 들어설 때 쯤 등반대장이 산행에 대해 설명합니다. 오늘의 문제는 설악산에 사람이 많은 것이 문제가 된다고 합니다. 단풍을 찾는 등산객도 많지만 봉정암을 순례하는 연로한 보살님들도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교행이 안되는 좁은 길에서 그분들 뒤에 설 경우 추월을 할 수 없기에 예정보다 1-2시간 지체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공룡능선 등반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오색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3시간 정도에 대청봉에 올랐다가 1시간 반쯤 에 그 아래 중간지점인 희운각에 아침 7시정도 도착하면 거기서 공룡능선으로 들어서서 산행후 설악동 주차장 도착 요구시각인 오후 3시까지 갈 수가 있는데 오늘은 오색에서부터 사람에 막혀 시간이 많이 소비되니 공룡주파는 안 될 것 같다고 예언을 합니다.

그 이야길 듣고 저는 약간은 허탈했습니다. 10월의 설악산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이야기는 작년에도 들었었는데 제가 깜박했던 것입니다. 오늘이 10월의 꼭 중간, 사람들이 많이 오리라는 예측을 미리 했어야 했고 산행지를 다른 곳으로 했어야 했습니다. 이제 와서 후회해 보았자 할 수 없는 일, 저는 오늘 우선 최선을 다 해서 공룡능선을 타 보기로 결정하고 안 되면 다음 번에 공룡을 가면 되리라고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의 기회가 더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내일 만약 시간이 조금 남는다면 공룡은 통과 못하더라도 초입의 신선봉까지는 가서 사진을 찍어 올 생각도 해 봅니다.

‘여느 때처럼 설악산에 가서 혼자서 공룡을 넘는다’는 단순한 욕심에 젖어 있었던 저이기에 ‘지금은 사람이 많아 행동에 제약이 있을 거’라는 이성적 판단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산행설명후 버스안의 등은 꺼지고 잠을 자 둘 시간입니다. 그러나 오늘 역시 또 잠이 오질 않으니 어두운 창밖을 보며 상념에 젖습니다.

‘난 이 산행을 통해서 과연 무엇을 깨달으려 하는 것인가?’ 생각은 끝이 없는데 답은 안 나옵니다.

버스는 쉬지도 않고 운행하여 오전 1시 7분 지난 번처럼 내설악광장에 도착하니 휴게소엔 이미 십여대의 버스가 도착해 있고 우리 버스는 주차할 자리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길을 건너 광장 맞은 편 가게앞에 버스를 세우고 휴식하는데, 1시반쯤에 모이라고 합니다. 2시가 넘어야 오색의 남설악 매표소에서 산행이 허락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을밤답지 않게 기온이 제법 올라 있어 춥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지난주 만월로 둥그렇던 달은 많이 이지러져 반달이 되었는데 위가 직선이고 아래가 둥근 하현달이 되어서 하늘에 떠 있습니다. 별들도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1시 40분 쯤 휴게소를 떠난 버스는 한계령에 도착, 이곳에서 산행할 사람 10여명을 내리게 하고 매표소를 통해 입산시킨 다음 2시 10분 쯤 오색에 도착합니다. 이곳엔 이미 버스가 10여대 몰려 와서 길위에 서 있고 각 산악회에서는 자기네 산객들을 입장시키기에 바빴습니다. 시끄럽고 조금은 무질서한 듯 했습니다.

우리들도 이 틈에 동참하여 매표소를 통과했는데 그 시각이 2시 19분이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산객들이 3-4줄을 이루어 꽉차서 진행하는 형국입니다. 추월해서 간다는 것이 좀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줄이 위를 향해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줄 가운에 끼여서 헤드랜턴을 쓴 채 앞으로 계속 올라갔습니다. 속도를 네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지부진하게 올라가다 보니 3시 13분, 1.3km 지점인 제1쉼터에 도착했습니다. 1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보통 때 같으면 첫 번째 팻말이 설치된 1.7km는 갔을 시간이었습니다. 쉼터에서 잠깐 물을 마시고 조금 더 가다 보니 다행히 길이 좀 트이는 듯 합니다. 지친 싦들이 쉬며 길이 널어져서인지 약간의 틈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이때다 싶어 사람들을 추월하며 씩씩하게 지칠 줄 모르는 기계인간 터미네이터처럼 꿋꿋하게 전진합니다. 다행히 산행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한가닥 기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속도를 내다가 1.6km 쯤 지점에서 막히기 시작합니다. 이번의 지체는 거의 정지 수준으로 악성이었습니다. 산길이 아래로 내려가는 곳인데 약간 험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 한 번에 두사람씩 두 갈래로 천천히 통과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누군가 산행을 잘 하는 사람이 험한 곳 앞에서 정리를 해주며 봉사하고 있는데 ‘여기만 지나면 대청봉까지 괜찮을 거’라고 희망을 줍니다. 답답한 시간이 10분인지 20분인지 흐르고 겨우 막힌 곳을 통과하니 팻말이 서 있고 대청봉길 5km의 1/3 지점인 1.7km 지점이었습니다.
그 E의 시각이 이미 3시 49분, 산행후 1시간 30분이 지난 시각입니다. 보통은 1시간에 통과할 수 잇는 곳이니 50% 만큼 지체된 셈이었습니다.

오늘 일출이 6시 36분이라고 아까 누군가가 이야기 하는 걸 들었는데 일출시각 전에 대청봉까지 갈 수 있을지 가늠해 보았습니다. 남은 거리가 3.4km이므로 보통 속도라면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릴 것인데 일출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시간 50분이니까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하늘엔 반달이 빛나고 있어 아침 해돋이에 희망을 걸 만 했습니다.(그러나 짙은 안개로 이런 희망은 결국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맙니다.)

이제 길은 트여서 힘만 있으면 얼마든지 앞사람을 추월할 수 있는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산행의 리듬이 한 두 차례 깨지고 나니 남을 앞선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일출을 대청에서 맞겠다는 일념으로 꾸준히 올라가 봅니다.

그런데 또 한 두 군데에서 병목현상이 생깁니다. 아까같은 악성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조금씩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합니다. 물소리가 들리고 한참있어 오색과 대청봉 중간지점인 2.5km 상의 설악폭포에 도착했습니다. 시각은 4시 42분이었습니다. 갈길은 2.5km 인데 일출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50여분입니다. 시속 1.5km는 낼 수 있으므로 일출관찰이 가능한 시각입니다.

저는 혼신의 힘을 짜내어 사람들을 제치며 계속 올라갑니다. 대체로 길은 돌이 많고 가지런하지 않아서 운행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가끔 철계단을 설치하고 돌을 고르게 하여 길을 잘 내려고 애쓴 흔적은 보였습니다.

가끔 막히기도 하면서 산꾼들을 좇아 부지런히 올라가는데 먼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6시가 넘으니 헤드랜턴불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랜턴을 벗어서 주머니에 넣고 조금 더 가니 6시 19분 대청봉이 코앞인 5.0km 표시 팻말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서 대청봉은 2-3분 거리입니다. 설악폭포에서부터의 산행속도를 계산해 보면, 약 1시간 40분에 2.5km를 걸었으니 시속 1.5km인 셈입니다. 보통 때의 속도인 2.0km/hr에 한참 못미치는 기록이었으나 그날로선 인간 장애물에 의한 막힘과 제 산행 리듬의 깨어짐을 감안할 때 최선을 다한 속도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때 더 이상 빨리 가는 것은 제게 불가능했다고 말씀드릴 정도로 용을 쓰며 운행했습니다. 대청봉에서의 일출을 보겠다는 희망이 가장 큰 자극제였지만 주변에서 같이 산행하는 젊은이나 여성들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노부의 허영도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대청봉에 도착한 시각이 6시 21분, 일출시각인 6시 36분까지는 15분이 남은 적당한 시각입니다. 오색에서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4시간이 걸려 좀 늦은 편으로 시속 1.25km의 속력이었습니다. 지난번 화채봉 때의 1.87km/hr 의 속력에 비하면 2/3 밖에 안되는 속력입니다.

해발 1,708m의 대청봉 정상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일출을 희망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산 아래론 안개가 뒤덮고 있습니다. 바람이 별로 없어 꼭대기에서 기다리는데 지장은 없지만 동쪽바다엔 불그레한 기운만 돌 뿐 아무것도, 경치도 해도 없습니다. 세 번의 설악 산행 중 오늘 아침 시계(視界)가 최악입니다.

설악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인파

다시 힘들게 오른 정상에는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짝는 인파 때문에 정상석을 온전히 촬영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정상석에서 약간 떨어져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린 다음 희운각까지는 빨리 내려가기 위해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소청에서 희운각 사이에 사람들이 밀리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기에 가능하면 아침식사를 중청에서 하지 말고 좀더 내려간 희운각에서 하도록 전날 저녁 산행대장이 부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저로서는 희운각에 빨리 내려가서 공룡능선을 탈 수 있을지 첵크해 볼 마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청봉 정상석을 덮은 인파

공룡에 가기 위해 충분한 시각인 희운각 7시는 이미 물 건너갔고 신선봉이라도 들르려면 서둘러야 했습니다. 길은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진행은 그럭저럭 할 수 있었기에 6시 45분 중청대피소 도착, 6시 56분 소청봉을 지나고 7시 7분에는 소청대피소와 희운각이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제법 가파르게 내려갑니다. 2년전 9월에 내려갈 때보다는 돌길이지만 많이 정비가 되었고 또 정비하는 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제법 같이 내려가고 있어 가끔은 막히기도 했지만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새벽길에 비하면 아주 상황이 좋았습니다. 사람들의 줄을 따라 계속 내려간 결과 8시 2분 희운각 산장(원래는 대피소가 공식용어인 것 같은데 산장을 대피소라고도 부르며 두 용어는 서로 혼용되고 있었습니다.)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에는 개울에서 솟는 샘이 있는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물을 받으려고 대기중이었습니다. 저는 물이 충분하기에 물받기는 그만두고 산장마당으로 올라섰습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마땅한 자리가 보이지 않기에 저는 좀 더 가서 먹기로 하고 걸음을 앞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8시 10분 공룡길과 천불동길이 갈리는 무너미고개에 당도하였습니다.

희운각 밑 개울 샘에서 물을 뜨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희운각 산장의 아침 8시 풍경

우측 천불동 가는 길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제법 보이는데 공룡길 쪽은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 한가했습니다. 여기서 공룡을 따르면 설악동매표소까지 7시간은 걸릴 터인데 그러면 오후 3시 10분이 되고 C주차장에 가면 오후 4시 가까이 될 것 같았습니다. 오늘의 데드라인은 매표소에서 아래로 많이 떨어진 C주차장까지 15시까지 가는 것입니다. 천불동계곡을 따라가면 4시간이면 설악동매표소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두어시간 족히 시간이 남는 상황입니다.

저는 남는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대신 1-2시간을 공룡초입에 있는 신선봉까지 가서 경치사진을 찍고 돌아오기로 정하였습니다. 아침은 신선봉에서 먹기로 약간 뒤로 미루었습니다. 마침 공룡쪽으로 가는 산객들이 있기에 그들을 다라서 빠르게 왼쪽 능선을 따라 공룡길로 붙었습니다. 곧 이어 나오는 로프길을 따라 가파른 비탈을 오르고 다시 언덕을 허위단신 오르니 27분만인 8시 37분 신선봉 팻말이 있는 신선봉 봉우리 밑에 도달하였습니다.

맑은 날이면 여기서의 경치는 아주 훌륭해서 경치구경에 끝내주는 곳입니다만 오늘은 안개가 아직 벗어지지 않고 있어 먼 경치가 희미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래도 이곳이 고개마루인지라 오가는 사람들이 10명 정도 되는데 바위에 앉아 쉬면서 인물사진을 찍기도 하고 과일을 먹기도 합니다. 저도 배낭을 내려놓고 물과 떡을 꺼내어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의 아침식사를 위해 몇일 전 하마부인이 떡집에서 송편 20개를 사다가 냉동 보관했던 것을 싸주었는데(제가 좋아하는 인절미는 품절) 냉동했던 것이 아직 잘 녹지 않고 딱딱해서 아침식사로는 부적당했습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10개를 억지로 먹고 남은 열 개는 다시 싸서 배낭에 넣었습니다.

신선봉 쉼터에서 북서쪽을 보니 공룡능선 위로 힘차게 솟은 1,275봉이 안개 속에서도 뚜렷하고 능선위의 잘 생긴 바위들이 어서 오라는 듯 손짓하며 유혹하는 듯 합니다. 만약 친구라도 한 명 동행이 있다면 고(go)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둘이서 힘을 낸다면 이 까짓 공룡쯤은 4시간 이내로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보다는 엷어진 안개층을 보니까 좀 더 가다보면 시간이 가고 그에 따라 안개도 걷히고 멋진 경치도 나타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악회 데드라인에 늦으면 직행버스로 서울에 가면 될 터이니까요. 그러나 혼자서는 좀 무리일 듯 합니다.

신선봉에서 본 희미한 공룡능선 1

신선봉에서 본 희미한 공룡능선 2


누구에게서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제 처지가 갑자기 외로워집니다. 그러면서 제가 산밑에서도 이렇게 외롭게 사는 데 익숙해진 것은 아닌가 반성도 되었습니다. 자존심을 접고 좀 더 친구들에게 닥아가야 했던 것은 아닌지, 좀 더 제 것을 내놓고 나누어야 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이제 반쯤 개인 안개 속에서 경치를 찾아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댑니다. 2004년 9월 신선봉 바위를 기어 올라가서 멋진 경치를 찍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났습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목에 걸고 바위를 조심조심 오르려는데 혼자라서 인지 겁이 덜컥 나는 것이 올라가기가 두려워집니다. 나이탓인가요? 틀림없이 2년 전엔 가볍게 올라갔던 곳인데 못 올라가고 포기말았습니다. 오늘은 안개 때문에 바위위에서도 경치는 조망할 수 없을 것이기에 쉼터에서 잠시 머물며 상념에 잠겨 보았습니다. 오늘은 코앞의 대청봉도 그 자태가 희뿌연 안개속에서 겨우 윤곽만 가늠할 정도로 시계가 트이질 않습니다.

8시 55분 약 20분의 식사와 휴식후 저는 180도 돌아서서 무너미고개로 향했습니다. 천불동계곡으로 해서 하산할 예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가파른 비탈을 줄을 잡고 다시 내려와서 9시 13분 무너미고개에 도착하고 천불동으로 가는 내리막길로 들어섰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괜찮은 해라면 멋진 단풍이 풍부하게 있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을 곳입니다. 그러나 올해의 단풍은 가뭄으로 말라서 오그라진 잎들이 많고 온전한 잎이라도 색깔이 좀 칙칙했습니다. 그래도 그 중 나은 단풍을 볼 때면 카메라에 저장을 하면서 사람들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무너미고개에서 양폭산장까지는 2km로 약 1시간 거리인데 길이 제법 넓어서 마음만 먹으면 앞사람을 질러 갈 수도 있는 정도입니다. 공룡을 포기한 저는 이제 시간이 충분한지라 사람들의 뒤를 따르며 그들과 같은 속도로 내려갔습니다.

그 중 나은 단풍을 찍어 봅니다.

오늘 공룡능선은 못 갔지만 천불동계곡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덜 서운했습니다. 천불동계곡은 설악대청봉에서 하산할 때 겨우 두 번 밖에는 구경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멋진 경치에 감탄하느라 또한 그 감흥을 동료와 나누느라 사람들은 계속 시끄럽게 떠들며 돌길을 내려갑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이지만 그들의 뒤를 바짝 좇아갔습니다.

바위와 계류와 폭포, 그들 옆으로 난 돌길과 철계단, 그들을 가로지르는 철제 다리를 건너며 경치를 감상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내려오다 보니 10시 10분 양폭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산장앞 노천매점에서는 물을 채운 큰 통에 음료수 깡통을 담아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산장앞 계류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발을 담그거나 세수를 하며 쉬고 있기에 저도 잠시 거기 동참해 봅니다. 머리에 물을 끼얹고 세수를 한 다음 발을 시내에 담그니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양폭산장

양폭산장부터의 경치는 더욱 점입가경으로 좋아지는데 특히 계곡 양쪽으로 보이는 암봉들이 멋집니다. 사람들은 물가에 앉아서 쉬기도 하는데 이채로운 것은 삼발이를 가지고 온 사진촬영가들이 많이 눈에 뜨이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은 물가 근처에 포진하고 기다란 렌즈가 달린 커다란 카메라를 삼발이 위에 설치해 놓고 자연이 주는 최상의 경치를 포착하느라 애쓰고 있었습니다.

천불동 계곡 - 바위

천불동 계곡 - 폭포

천불동 계곡 - 철계단

천불동 계곡 - 仙界?

천불동 계곡 - 바위와 나무들의 조화

천불동 계곡 - 沼


저도 삼발이는 없지만 나름대로 경치를 담으며 12시 11분, 양폭산장에서 아래 쪽으로 3.5km 떨어진 비선대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산행의 어려운 부분은 이제 끝났습니다. 이곳 계곡엔 사람들이 위쪽보다 더 많았습니다. 바위를 흐르는 물에 반해서 많은 사람들이 물가에서 물을 만지며 쉬고 있었습니다. 비선대 위의 암봉에선 록크라이밍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보이기도 했습니다.

비선대 아래의 휴식 인파


비선대 위의 바위 - 록크라이밍 장소


비선대를 가로지르는 멋진 다리

비선대에서 5-6분 동안 조금만 내려가면 와선대라는 곳인데 그곳 인근 식당에서 저는 점심식사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매표소까지는 2.8km 정도입니다. 저는 20분간 식사를 하며 막걸리도 한 잔 한 다음 천천히 걸어서 매표소로 나왔습니다. 소공원의 대불이 온화한 미소로 맞아 줍니다.

나무아미타불?

13시 5분 매표소로 나오니 조금 아래에서 C주차장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기에 탑승합니다. 이 버스가 저를 안내산악회의 버스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 시각이 1시 28분, 산행이 실질적으로 끝난 시각이었습니다. 11시간 10분의 대장정이 끝난 것입니다.

(후기)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한 설악산행이 벌써 세 번 지났습니다. 이번 산행은 사람이 너무 많을 거라는 생각을 까맣게 잊고 갔다가 많은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히고 혼줄이 났던 산행이었습니다. 산행내내 외로움을 타며 제자신을 부끄러워 한 산행이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길 담다 보니 너무 길어졌습니다. 내용도 없는 글 읽어주심에 감사함을 올립니다.
 
꼬 리 글
김주홍
2006-10-17
설악기행을보니 감회가 새롭구만....예전엔 나도 거의 매년 정기적으로 설악산을 등반했는데(이번코스의 정반대로....)...
이번 동기들과 또 한번 등반 한다니 잘 안내해주어 추억에 남도록 해 주게나....특히 남진이는 처음 이라던데...
귀면봉밑의 계곡은 천하일품이니 다음에는 거기서 발을 담궈 보게나...같이 못가서 부럽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