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문의 절명시, 擊鼓催人命

2010. 12. 14. 15:45MISCE.

고등학교 시절의 어떤 가을날,

古文시간이었습니다. 키가 크신 고문 담당선생님이(성함은 잊었네요) 수업시간에 들어오시더니, 정해진 수업을 시작하시기 전에 칠판에 다음과 같이 한자로 5언절구를 일필휘지로 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더니 이 시를 해석할 사람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하시는 겁니다.

 

擊鼓催人命

回首日欲斜
黃泉無客舍

今夜宿誰家

 

저렇게 쉬운 시를 모르려고? 저는 속으로 생각하고 누군가 다른 학우들이 손을 들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한번 가르쳐 주신 적이 있어 저는 뜻을 이미 알고 있었고, 또한 이 시를 이루고 있는 한자가 그리 어려운 글짜들이 아니기었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약간의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기에 할 수 없이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 그 시의 뜻은 '북을 쳐서 사람의 명을 재촉하는데.....어쩌고 저쩌고'입니다."하고 끝까지 아는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선 아주 흡족하신 얼굴로 제게 "어디 産인가?"하고 물으셨습니다. 일본식 표현인 것 같은데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 학교에는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었기에 고향을 물어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요. 저는 평택산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잘 했다. 평택에도 인재가 있구나"하고 말씀하셔서 저를 기쁘게 해 주셨습니다. 

 

각설하옵고, 성삼문(1418~1456)님의 절명시라고도 알려져 있는 소위 臨死賦絶命詩(임사부절명시)를 감상해 보시지요.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 둥둥둥 북을 쳐 사람 목숨 재촉하고
回首日欲斜(회수일욕사) : 고개를 돌려보니 해가 서산으로 지는구나

黃泉無客舍(황천무객사) : 황천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 오늘 밤엔 대체 누구네 집에서 묵어야 하나?

 

(사족)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에 쓰여진 시라고 하는데, 시에서 드라이하고도 스산한 기운이 전해져 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충성을 극단까지 밀어부치는 시인에게 50점의 타협은 허용이 안됩니다.

 

한편, 이 5언절구가 중국어 발음으로 본다면 각운이 맞는다고 할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시인은 세조의 친국을 받을 때에 위의 시와 똑 같은 결의를 표하는 시조도 남겼다고 합니다.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때 독야청청하리라.

 

봉래산은 신선들이 살고 있는 가상의 산으로 중국 삼신산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시인은 죽어서 신선이 될 것으로 자신하였고, 천지에 흰눈이 가득 내린 어느 겨울날 가장 높은 봉우리의 큰 소나무가 되어 보란 듯이 푸르고 푸르게 서있겠다고 하는군요.

 

그의 자신감, 프라이드라고 하나요? 가장 높은 자리에서 "타협 안하는 나를 보라"고 외친다니, 그 기개가 서늘하지만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이에게 오는 고결함이겠지요.

 

곧 눈이 옵니다. 백설이 만건곤할 것입니다. 그때, 늘 타협 속에 사는 저의 프라이드는 어디에서 찾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