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6. 23:57ㆍ평화누리길
날이 아주 좋다. 조금 더운 감은 있으나 흰 구름이 푸른 하늘에 맞게 옅고 밝게 흘러간다. 오늘은 평화를 실천하고 평화를 맞으러 가는 길이다. 오늘 평화누리길 1코스 걷기에 동문 산우들 17인이나 참석한다고 카톡방이 알려준다.
아침 8시경 집을 떠나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 내리니 9시 반쯤 되었다. 60-3번 버스를 타고 대명항(종점)으로 가는데 토요일이라서 길이 막혀 지체가 된다. 토요일에 강화 쪽으로 나가는 차들이 많은 탓이다.
버스 종점에서 내린 다음 대명항의 상가 거리를 지나서 평화누리길의 입구에 도착하니 10:19이다. 동문 산우 두 분이 먼저 와 있다. 길이 막혀서 늦게 오는 산우들을 기다리며 입구 마당에 지어놓은 정자에 앉아 먼저 온 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막걸리 한잔씩 나누기로 하여 두어 잔을 시원하게 마셨다.
11시가 거의 다 되어 거의 마지막으로 도착한 우리 모임의 회장께서 긴급 제안을 하신다. 이왕 늦었으니 이곳 대명항에서 제철을 맞은 전어회를 안주로 한잔 한 다음 떠나자고 제안을 하니, 모두들 따르겠다고 답하여 인근의 횟집으로 들어갔다. 17인이 4,4,3,3,3으로 각각 테이블을 차지하고 전어회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전어회가 훌륭한 안주라면 소주와 막걸리 외에 김XX 산우께서 가져온 56도짜리 중국술이 훌륭한 술이었다. 나는 그 독한 액체를 몇 잔 들이켜고 막걸리와 소주를 주는 대로 마셨더니 정신이 몽롱했다. 다행히도 동료들에게 주정을 할 정도로 취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즐거운 주연이 끝나고 12시경 걷기를 시작했다. 길의 좌측에 철조망이 쳐 있고 그 너머로 물이 보이고 그 다음 너머로 땅이 보이는데 그 이름이 염하강이라고 한다.(염하강은 사실은 강이 아니고 육지와 강화도를 가르고 있는 길고 좁은 바다이다.) 길의 우측으로는 논, 밭과 숲이 펼쳐지는데 바다와 육지의 경계로 길이 잘 나있어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손돌묘, 부래도 쉼터, 전망대 등 주요 지점을 지나갔을 터인데 술의 위력에 눌렸는지 걸었던 길의 뚜렷한 이미지들은 떠오르는데 그 이미지들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촬영했던 사진들을 보아도 정확히 어디에서 찍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디쯤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한참 걷다가 어딘가 나무 덱크가 설치된 쉼터에 도착하여 덱크 위에 일행이 모여 앉아서 점심을 즐겼다. 컵라면에 물을 부어 점심식사를 했는데 거기서도 막걸리를 몇 잔 걸쳤다. 결국 그 후로 비몽사몽에 잠기는 지경이 되었는데 길의 반 정도를 지나서부터는 몸이 지쳐서 걷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동료들에게 짐이 될 새라 억지로 걸음을 옮기며 보행의 끝이 나오길 고대했다. 다행히 오후 5:20경 성동검문소 삼거리 근처 “대관령 황태해장국”집에 도착하여 걷기를 끝냈다.(1코스의 진짜 종점인 문수산성 남문은 다음 2코스 갈 때에 들르기로 한다.)
해장국집에서 나는 순대해장국을 시켜 식사를 하는데 아직도 몸이 술을 받아주기에 막걸리 두어 잔과 소주 몇 잔을 옆에 동석한 산우의 권유에 따라 더 마셨다. 하루 종일 술이 풍부했던지라 배낭 속에 싸가지고 간 와인은 집으로 모셨다가 다음 번 걷기에 다시 가져가기로 했다.
이제 길고 피곤한 귀가길이다. 6시가 조금 넘어서 성동검문소 삼거리에서 3000번 빨간 버스를 타고 풍무역에 와서 김포골드라인 전철로 김포공항에 도착, 다시 전철 9호선으로 고속터미널역 환승 3호선에 탑승, 3시간 정도 걸려서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긴 하루였다.
- 후기 -
팍스 마운티아(Pax Mountia: 산사람들의 평화)를 실천하러 간 날이 공교롭게도 팍스 바쿠스(Pax Bacchus : 주신 바카스의 평화)의 날이 되어 버렸다.
전쟁과 평화가 점철된 의미심장한 길을 걸으며 가슴에 한이 맺힌 평화를 깨어있는 정신으로 느껴보리라 했다. 작은 포구 이름의 유래도 알아보고, 양이와 대적했던 대포도 쓰다듬어 보며, 누른 벌판 벼 알의 디테일도 살펴보리라 다짐했건만 하루 종일 흐르는 술의 베일에 싸여 나는 몽롱하게만 평화로웠다.
이백의 시, “장진주”가 내 안에서 펼쳐졌다. 그가 말하길, “성인들 말씀 다 구라고 술만이 진실하네.”
막걸리 - 중국술 - 막걸리 - 소주로 흥건하게 젖어드니 술 바깥의 평화와는 담쌓은 하루가 되었다. 술 밖에선 산과 들과 강이 빛나고 그 강이 바다가 되면서 철조망에마저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한편, 술의 베일에 갇힌 내 안에도 평화 같은 게 흐르고 있었다. 이름하여 술이 가져다 주는 평화. 측량할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게 끝없이 내면에서 밀려오는 긍정의 물결, 아마 내안에서 이미 평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마누라가 보았다면 취했다고 자라고 하겠지!)
결국 그날 술의 힘에 눌려서 내안의 소망과 누리길의 평화를 조화시키지 못한 연유로 다시 한 번 그 길을 밟아야겠다. 누리길엔 필히 평화가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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