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0. 23:08ㆍ평화누리길
지난 번에 알콜 과다로 허술하게 걸었던 길(1코스)을 맨정신으로 다시 걸으려는 결심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기회가 왔다. 친구 고XX군이 친구 하XX군과 셋이서 1코스를 가자고 하기에 바로 OK를 하였다. 가 본지 5일만에 재탐방이 이루어진 것이다.
3인이 각자 출발하여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서 내린 다음에 버스정류장에서 10시에 만나기로 하였는데 시간 안에 셋이 다 모였다. 60-3번 버스를 탔는데 지난 토요일처럼 밀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대명항 종점에 내려서 해산물 가게와 횟집들이 있는 익숙한 길을 지나 평화누리길 입구로 갔다.(10:33) 흰구름이 흘러가는 가을 청명한 날이다. 숲길이 아닌 한길에선 햇빛이 강하여 스카프를 모자 안에 펼쳐 넣어 뒷목을 덮어 보았다.
덕포진에 거의 다 가니 길을 터널안으로 유도해 솜씨를 부린 곳이 나타나는데 지난 번에 본 기억이 난다. 곧 덕포진 터가 언덕위에 나타나고 대포가 있던 자리들과 파수청터를 샇펴 보았다. 박물관도 주변에 있는데 코로나로 닫고 있다고 한다. 덕포진에서 좁은 바다를 건너면 바로 맞은 편에 덕진진이 있는데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군과 싸운 전투지역이다. 미군은 덕지진 아래의 초지진을 먼저 점령하고 며칠 후 덕진진 위쪽 광성보에서 조선군과 큰 전투를 벌였다고 하는데 화력이 약한 조선군의 참패였다. 바다 건너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곳 덕포진의 사정은 어떠했는지 기록은 보지 못하였다. 미국 군함이 염하강을 오르내릴 때 조선군이 이곳에서 대포로 적함을 가격한 사실은 있을 것 같다.
덕포진에서 400m쯤 가니 손돌목이라는 지명을 낳게 한 뱃사공 손돌의 묘가 잘 정비되어 있다. 고려시대 몽골 침입시에 고종을 태우고 강화도로 모시던 뱃사공 손돌이 왕을 속였다는 죄목으로 억울하게 참수되었으나 죽은 뒤에도 바가지를 물에 띄워 배를 안내하고 왕을 제 길로 잘 모셨다는 일화가 있다. 왕은 자신의 잘못을 늬우치고 손돌을 후히 장례해 주었다고 한다. 바다로 툭 튀어나온 이곳 지명이 그래서 손돌목이다..
손돌목을 지나 언덕을 넘어가니 작은 섬이 하나 보이는데 부래도라고한다. 지도를 보니 바다 건너편에 신미양요 때 격전지 광성보가 있다. 한참을 가다보니 주택 위로 솟은 멋진나무 한 그루가 나타난다. 평화의 나무라고 불러줄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품이 넓어 보인다.
나무를 지나서 덕포진의 이름을 부여하게 된 덕포가 나오고 입간판에 20세기초 김포의 포구들 32개의 명칭과 위치를 수록한 지도를 표시해 놓았다. 김포반도의 동, 서, 북쪽에 포구가 32가 있었다니 해상활동이 매우 활발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반도의 북쪽이 적접지역이 되다보니 해상활동은 옛날 이야기이고 평화가 찾아와야만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석정천으로보이는 내를 건너는 지점에는 흔들림이 심한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보기에도 좋고 재미있는 율동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이렇게 낮은 높이의 출렁다리는 처음 보았다. 길 왼쪽의 철조망은 한결같이 적의 존재를 알려주는 듯한데 길은 계속된다. 마침 언덕을 넘어가자 정자 하나가 나오기에 그곳에 짐을 풀었다. 컵라면에 더운 물을 부었다. 하군이 막걸리를 꺼내고 고군이 외인을 꺼내어 목을 축였다.
우측으로 펼쳐진 들에는 벼가 누렇게 익는 중이다. 한참을 가니 연을 잔뜩 심어놓은 곳도 있다. 꽃은 이미 다 진 듯하다. 중간에 길옆으로 산이 하나 보여 문수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문수산은 그 산 옆을 지나야만 나타난다. 여기 쯤부터는 길이 마지막까지 직선으로 뻗어있고 그늘도 없으니 햇빝이 쏟아져 내리니 걷기에 조금은 힘들고 지루한 길이다.
부지런히 걸어서 48번 국도에 도착하여 오늘 걷기를 마쳤다.(15:44) 양평해장국집으로 들어가 간단한 식사를 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평화를 기원하며 걸은 하루였다.
- 후기 : Pax Troika -
"평화를 빕니다." 천주교의 미사가 끝날 때면 언제나 옆 사람과 나누어야 하는 인사이다. 카톨릭이 권하는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가 평화이다. 지난번에 내가 초래했지만 박카스 신의 훼방으로 몽롱하게만 감상했던 길을 다시 한 번 갔다. 이번엔 정신을 바짝 차린다고 했으나 생각만큼 평화의 길에 대한 감상이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친구 두 사람과 같이 트로이카를 이루어 걸은 것은 의미가 있었다. 대화를 통하여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동의하면서 우정을 쌓은 하루였다.
평화의 대척점엔 전쟁이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틀림없이 진정한 평화는 오지 않았다. 시종일관 뻗어있는 철조망 벽은 전쟁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하루 속히 우리나라에 평화를 회복하여 저 철조망을 걷어 내어야겠다.
조용한 길을 휘돌아가니 크고 잘 생긴 나무 한 그루가 우릴 반겨준다. 평화의 나무로 이름 지어 보았다. 걷는 중에 음악애호가인 고군이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누군가 부르는 가곡 "목련화"였는데 매우 신선하게 귀에 와서 꽂힌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 목련화는
새 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
평화의 노래가 작은 누리에 울려 퍼진다. 지금이 목련의 철인 4월초라면 노래가 더욱 절실했으리라 생각되었지만 지금 철에도 그 노래 소리가 한없이 감동적이다. 노래를 듣기 전에 평화의 나무를 만난 것은 목련화 연주의 전주곡으로 느껴졌다. 그 순간 목련화야말로 내가 필요한 때에 오묘하게 들려오는 평화로운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운 마음을 지닌 친구들과 평화로운 음악을 들으며 평화로운 경치가 가득한 길을 걸었다. 트로이카가 세 개의 다리로 균형을 잡고 든든하게 평화를 지지하는 하루였다. 철조망 앞에서 눈을 감고 기원하였다. 우리 후손들이 철조망을 녹여서 보습을 만들어 기름진 들을 갈며 평화를 노래하는 날을 그려 보았다.











































'평화누리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1-10-13 애기봉에서 이북을 보고 김포 명소를 탐방하다 (0) | 2021.10.15 |
|---|---|
| 2021-10-06 평화누리길_5코스 (0) | 2021.10.07 |
| 2021-09-14 평화누리길_4코스 (0) | 2021.09.28 |
| 2021-09-15 평화누리길_2코스 (0) | 2021.09.17 |
| 21010904 평화누리길_1코스 (0) | 2021.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