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0. 17:11ㆍ포토DOCUMENTARY
고교동문 산우들과 결성한 산우회의 산행이 300회에 도달했다고 한다. 대단한 업적이다. 300회 산행을 마침 삼성산에서 가져 3이란 숫자가 겹쳐져 의미를 더 해준 날이었다.
삼성산은 숫자 3과 연이 깊은 산이다. 세 명의 성인을 뜻하는 삼성산이란 이름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원효․의상․윤필 세 고승이 신라 문무왕 17년(677) 이곳에서 작은 암자(삼막사)를 짓고 수도하여 그때부터 이름이 유래한다는 설, 둘째,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삼성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명이 유래되었다는 설. 셋째 “여지도서”의 ‘무학․나옹․지공 세 큰 스님이 각각 절을 짓고 살았기에 유래한다는 설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산이나 봉우리들이 불교적 이름을 가진 것처럼 삼성산이 불교의 보살이나 스님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 새로운 설이 탄생하였는데 기해박해(1839) 당시 순교한 모방신부․앵베르주교․샤스탕신부의 유해가 이곳에 묻혔다. 이들 역시 세 명의 순교성인이어서 이 산이 삼성산이 되고 이곳 삼성산 자락에서 다시 세 성인이 날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원래 산 이름을 그대로 쓰되 삼성三聖의 해석을 천주교 성인들로 한 것인데 현재 삼성산의 세 신부 묘터에는 천주교 성지가 설정되어 있으며 인근 신림동에는 삼성산 천주교회가 있다.)
한국의 명산에 헤브라이즘적 명칭을 입히려는 천주교회의 노력이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호응을 받을지 두고 볼 일이다.
산우회의 18인은 300회 산행을 삼성산에서 행하였다. 성인들이 머물던 성스러운 장소로의 순례여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카톨릭인으로서 보건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세 불란서 신부의 깊은 신앙심이 돋보이고 목숨을 바친 순교가 애처롭다. 천주교를 탄압하는 관헌의 수색을 피해 민간에 숨었으나 외국인 신부의 행방을 대라고 신자들을 심문하는데 수색이 점점 더 심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로 고문당하는 등 조선 신자들에 대한 피해가 너무 커지자 신부님들은 관헌에 자수하기에 이르렀고 군문효수라는 극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내가 그러한 엄혹한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기꺼이 순교할 용기가 있었을까?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려웠을 것 같다.
같이 순교한 세 신부님의 유해는 삼성산 자락에 묻혔다가 1901년, 명동 대성당 지하실과 새남터 성당 소성당에 모시게 되었다. 1925년 로마교황청은 이들을 복자로 시복하였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즉, 한국 천주교회 103위 성인 중 세 분이 된 것이다.
서울대 정문 옆, 관악산입구에서 18인이 산행을 시작하였다.(9:44) 장군봉 쪽으로 가다가 원점으로 돌아올 요량이다. 초입부터 언덕길이 힘겨웠다. 그래도 조금 올라가 능선을 만나니 길의 경사가 죽어 한결 걷기가 쉬워진다. 숲을 헤치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이 이렇게 맑을 수가 없다. 여느 가을날의 맑은 그런 정도를 상회하는 맑음으로 오늘은 아주 혜택 받은 날이다.
숲속에 잠시 멈춰 서서 막걸리를 한잔씩 마셨다. 알코올 기운이 앞으로의 산행에 보탬은 안 될지 모르지만 당장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데는 신통한 묘약이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에는 목제 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다. 계단 수를 세지는 못 했지만 천 개는 능히 될 듯하다.
우리가 가는 곳이 칼바위 능선인데 약간 험한 곳이 있었지만 이름이 주는 만큼 짜릿한 곳은 경험하지 못하였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 나타나는 2-3개의 전망처에서 맑게 개인 하늘 밑에 깨끗하게 펼쳐지는 경치에 찬탄하며 기념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바위 옆으로 올라가는 길이 끝나고 완만한 숲길이 시작된다. 오늘 올라온 최고점이다. 근처의 소나무 숲 아래에서 적당한 점심식사 장소를 찾았다. 18인이 둘로 나뉘어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주요 술은 ‘금문도 고량주’ 두 병인데 두 분의 동료가 선사하였다. 각각 56도와 58도이다. 한 잔을 마시니 독한 기운이 몸 안으로 퍼진다. 내게 맞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두어 잔을 더 마셨다. 성스러운 산에서의 성스러운 액체인데 그분들이 흘린 피가 생각났다.
“그렇게 짙은 피와 이렇듯 독한 술이라니...”
나는 막걸리를 몇 잔 더 마셔 갈증을 달랬다. 장군봉으로 가지 않고 좌측으로 틀어 하산길로 나섰다. 한참을 가니 거대한 너럭바위가 보인다. 바위 위에서 잠시 쉬다가 길을 내려가 세족을 할 수 있는 계류에 도착하였다. 혹자는 반쯤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혹자는 발만 물에 담그어 산행의 피로를 풀었다. 어쩌면 300회 산행을 기념하는 세례식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세족 후 완만한 길을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 내려오니 아침에 떠났던 원점인 관악산 입구에 도착하였다.(15:50) 뒤풀이는 사당동의 “속초어시장(방배점)“에서 갖기로 하여 모두들 버스를 타고 음식점으로 갔다. 18인이 4,4,5,5로 각각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소주와 맥주로 진한 세례식을 치루고 일부는 회장님의 초청으로 생맥주집에 가서 2차 세례를 받았다.
삼성산에서 가진 300회 산행, 술과 산과 산 벗들이 어울러져 삼위일체를 이룬 의미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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