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6. 15:05ㆍ평화누리길
여느 때처럼 수요일에 가려 했으나 스케쥴 조정이 어려워 하루 앞당겨서 화요일에 평화누리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도 막상 그날이 되니 한 분이 못 오게 되었다.(장모님의 49제) 지난번처럼 문산역 10시에 모이는 것이라서 똑 같은 시간에 전철을 타고, 옥수역에서 환승하여 문산역에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넘었고 4인이 다 모였다. 날이 춥지만 견딜 만하다. 역에서 조금 걸어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적성행 92번 버스를 타고 지난 번 산행을 끝낸 율곡1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10:34)
오늘 시작하는 곳이 9코스의 시작점은 아니고 몇 백 미터 전진한 지점이다. 지난번에 8코스를 마친 지점이자 9코스의 시작점에 도착하여 9코스에 속한 율곡습지 부분은 미리 보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걷기를 시작하는 이곳 율곡1리 버스정류장에도 목제 아치 구조물(평화누리길 전부에 걸쳐 디자인이 거의 같다.)이 서 있어 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은 37번 국도의 왼쪽 아래로 낮게 난 포장도로를 따라가는데 그 왼쪽으론 한 단 높은 강둑인데 철조망이 쳐져 있고 2층 높이의 초소도 보였다.
얼마 가지 않아서 먼저 평화누리길을 걸었던 친구가 언급한 “강변살자”라는 카페를 통과했다. 겉에서 보기에 카페 같지 않고 창이 적어서 창고처럼 보였다. 근처 강변에 버드나무가 세 그루 누렇게 시든 잎을 달고 강변에 서있다. 겨울이라 경치가 쓸쓸해 보이지만 연두색이나 초록색이 살아나는 봄이라면 강과 같이 감상하는 주변의 경치가 좋을 것 같다.
길은 37번 국도의 우측으로 난 길로 이어가는데 길의 우측 편 떨어지 곳에 마을회관도 보였다. 한참 후 길은 국도와 헤어지더니 곧 언덕으로 이어진다. 서울에도 있는 고개 이름인데 여기도 박석고개라고 한다. 참나무 낙엽이 옅게 쌓인 비탈길이 나무들에 둘러싸여 정취를 돋운다. 역시 산길이 좋은 것 같다. 고개 위에서 쉬면서 음료를 마셨다. 멀리 지난번에 벌판을 걸으면서 보았던 파평산이 보였다. 평화누리길은 그 산 가까이 지나가지는 않지만 파주에 벌판이 많아서 멀리서도 자주 볼 수가 있다. 쉬고 있는 장소의 길 아래에 묘가 있고 깔끔한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과연 성씨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하여 내려가 보았더니 주인은 전주 이씨이고 부인은 평산 신씨이다. 한국의 평범한 성씨라고 할 수 있겠다.
박석고개를 내려가서 저온냉동창고 앞을 지나가니 현대식으로 보이는 파평면 행정복지센터 건물이 나왔다. 옛날이면 면사무소라고 불렀으리라. 따라서 여기가 파평면의 중심지인 모양이다. 12시가 넘었으니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지난 번 걷기를 끝내고 이번 걷기에는 점심을 싸오지 말고 식당에서 매식하기로 정했었다.) 건강원은 건너뛰고 해장국집을 발견하여 들어가 보기로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 근처에 식당은 적고 공장들이 있어서인가 보다. 좀 더 가면서 찾아보기로 했다.
길은 넓은 차도를 따라간다. 금파리로 가기위해 눌노천의 금파교를 건넜다. 다리를 건넌 뒤 길은 좌측으로 꺾여 임진강 쪽으로 향하여 가다가 37번 국도를 만나 굴다리 아래를 통과하여 우로 꺾어 임진강과 37번 국도 사이를 가게 된다. 아늑한 산책길로 근처에 붉은 벽이 있어서 이름이 적벽산책로이다. 마침 휴게소가 하나 있어서 벤치에 앉아 쉬면서 떡, 과일, 강냉이 등 간식거리를 먹으며 백세주를 한잔 씩 나누어 마셨다. 날씨가 예상보다 춥지 않아서 다행이다. 등산복 겉옷을 벗어서 허리에 두르고 왔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길에서의 경치가 아주 좋다.
저 앞에 강을 가로질러서 하얀 다리의 교각들이 보였다. 상판이 없고 아직 미완성이다. 길에서 만난 주민에게 물어보니 다리 이름이 “리비교(Libby Bridge)“라고 하는데 낡아서 헐고 다시 짓는 중이라고 한다. 6.25 참전 중이었던 미군, 리비 중사는 이 다리를 짓는 중에 적의 폭격에 물에 떨어져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를 기려 미군이 다리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다른 설에 의하면 리비 중사는 6.25 전쟁 초기에 대전 전투에서 동료를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 공이 있어 그의 이름이 이 다리 이름으로 채택되었다고 하는데 이 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리비교는 강의 남쪽인 파평면 장파리와 강의 북쪽인 진동면 용상리를 잇는 다리인데 전쟁후 1970년대 초기까지 미군이 강의 북쪽에 주둔했었다고 한다. 물자 수송을 위해 미군이 1953년 1월 31일 4개월 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 때 적성면 가월리와 백학면 노곡리 사이의 “틸교”도 같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이 장파리(長坡里)인데 장마루라고도 부른다.(“파”자가 “언덕파”자인데 “마루”가 높은 지형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장마루라는 이름을 들으면 장마루촌이란 이름이 나에게는 더 낯익은데 왜냐하면 1969년(?) 제작된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신성일, 김지미, 남정임이 주연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 그 영화를 보지는 못 하였으나 그런 영화 제목이 있었다는 것은 보고 들었던 생각이 났다.(1970년대에 내가 영화를 잘 보지 않기도 했고 이 영화 선전을 들었을 때 조금은 신파조의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보러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장파리는 인근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소위 기지촌으로서 번창하여 한 때 상주인구 5,000에 유동인구는 2-3만에 달하던 곳이라고 하며 미군을 위한 클럽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라스트 챤스“라는 술집으로 조용필, 윤항기 등이 미군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던 곳이라고도 한다.(내게는 장마루촌이라는 이름만 낯익을 뿐 이곳에 처음 와보기에 9코스의 걷기가 끝난 후에야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위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이제 리비교는 낡아서 헐린 채로 불통이다. 미군도 가고 달러도 사라지고 아가씨들의 분내음도 사라진 동네는 넓은 길만 횡뎅그레하다.“장마루 먹거리촌”이라는 입간판이 크게 만들어 세워져 있고 역시 다른 광고판에 음식점 이름들이 여럿 쓰여 있어 이 동네에 식당이 여럿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대부분 민물매운탕집이다. 오후 1시 반이 거의 다 되었으니 식당을 찾아야 했는데 민물매운탕이 아닌 다른 집을 찾으려 하였다. 이때 김선배께서 근처에서 이정표를 보았는지 여기가 두지리 근처이면 두지리에 유명한 두지리매운탕집이라는 집이 있으니 그리로 가야한다고 주장하신다. 지도로 검색해 보니 “원조두지리 매운탕”집이 나오는데 장파리에서 5-6km 떨어져있어 너무 멀다고 하니, 이왕 식사가 늦은 것, 가는 길에 있다면 그곳까지 가자고 제안하신다. 예전에 먹어 보았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고 강추하신다.
조금 전 임진강변 적벽산책로의 쉼터에서 간식을 충분히 먹었기에 크게 배가 고픈 것은 아니어서 다들“두지리매운탕“까지 가보자고 한다. 마을을 지나가는데 뾰족탑이 있는 교회건물이 보이는데 적성성당의 장파공소이다.(공소에는 주일에만 사제가 와서 미사를 집전한다.) 지붕 위에 평화를 나타내는 P.X.(PAX) 표지가 분명하다. 팍스 로마나(로마 카톨릭에 의한 평화)가 지역에 버티고 있는데 팍스 아메리카나(미군기지)는 70년대 중반에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당장 배가 고프지만 조금만 참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에 기대가 큰데 목적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좁혀지지 않는다. 큰길(37번 국도)을 따라가면 거리가 5km 남짓이지만 평화누리길은 작은 길로 빙 둘러 가기 때문에 7km는 좋이 되는 듯하였다. 길은 넓은 벌판의 논 가운데를 따라 가다가 낮은 산을 길게 넘어가는데 키가 높고 넓이는 50m x 30m는 됨직한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어 무슨 시설인지 궁금하였는데 모퉁이에 오니 인삼 냄새 비슷한 냄새가 났다. 사람이 안 보여 이게 무어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길은 다시 37번 국도를 만나려고 언덕을 치올라가서 국도 왼쪽 옆으로 국도와 나란하게 만들어 놓은 목제 덱크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언덕 사이로 임진강이 보이더니 국도는 고개를 깎아서 낮게 만든 길로 산을 넘는데 보도는 산을 그대로 넘게 되어 있다. 많이 걸은 차라 발길이 무거워지는데 산을 넘자 아늑한 쉼터가 하나 나온다. 자전거길과 보도가 겹친 곳이다. 모형 나무 두 그루의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쉰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려가는 길은 급한 비탈인데 낙엽이 깔려 있어 밟는 대로 사가사각하고 소리가 났다.
황포돛배를 타는 두지나루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서 임진강 강둑으로 올라섰다.(나중에 장남교 위에서 멀지만 볼 수 있었다.) 강둑에는 미완성의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서있는데 이 장소에서 강과 다리를 바라보는 경치가 좋았다. 우측 앞쪽으로 오늘 종착지인 장남교가 길게 보였다. 생각했던 것 보다 긴 다리였는데 상판이 이중으로 되어있어 튼튼해 보였다. 두지리매운탕집을 지도로 검색해 보니 바로 옆인데 굴다리를 통해 37번 국도를 통과해야 하기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매운탕촌에는 매운탕집이 여럿 있었는데 김선배가 추천하는 집은 초입의 원조매운탕집이다.(15:42)
드디어 고대하던 맛집에 도착하였다. 옥호는 길게 “원조두지리매운탕 본점”이다. 늦은 시각이라 손님이 많지 않고 대여섯 팀이 있었다. 빠가사리매운탕 3인분과 참게매운탕 1인분을 시켰더니 한 냄비에 4인분(80,000원)을 같이 담아서 끓이도록 해 준다. 고추장인지 고추가루인지 붉은 육수에 민물고기로는 빠가사리와 알이 밴 민물 게와 민물새우가 들어있고 야채로는 대파와 미나리를 넣었는데 무는 갈아서 넣은 탓으로 안 보이는 듯 했다. 한 숟가락 떠보니 맛이 시원한데 마늘을 듬뿍 넣은 것이어서 이집 맛의 비밀 중 하나가 마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게와 물고기의 건더기와 새우를 건져 먹으며 공기밥을 시켜서 국물에 말아 먹은 다음 딸려 나오는 수제비를 넣어서 익혔다. 배가 고파 맛이 있을 때도 되었지만 음식이 원체 맛이 좋다고 다들 칭찬한다. 세 시간 이상을 참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음식 값이 조금 비싼 듯 했는데 김선배께서 반을 부담해 주셨다. 본인이 적극 추천한 대가라고 하시는데 나머지 인원이 좋은 곳을 추천 받았으니 식대를 더 부담해야 하는데 거꾸로 된 고마운 말씀이다.(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장파리의 “장마루 먹거리촌”에도 역사가 있고 맛이 좋아서 추천하는 매운탕집이 몇 집 있었다. 꼭 여기 두지리가지 올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음에 온다면 장파리에서 매운탕을 먹어보고 싶다. 어느 지역을 가던지 가기 전에 미리 정보를 수집해서 연구를 해 볼 필요가 있음을 이번 걷기에서 절감하였다. 장파리 마을의 역사라든가 황포돛배 승선장의 위치, 괜찮은 매운탕집 등에 대한 정보 등을 전혀 알지 못하고 깜깜이로 걸음을 시작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아까 갔던 둑길로 돌아가서 강변을 걷다가 장남교를 만나 좌로 꺾어서 다리위로 올라섰다. 제법 긴 다리를 건너서 걸었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조금 떨어진 강변에 황포돛배 2척이 정박된 두지나루터가 잘 보이지 않는다.(다행히 카메라는 자동으로 밝기를 보정해서 찍으니까 사진은 밝게 나왔다.) 긴 다리를 건너서 드디어 9코스의 끝에 도착했다. 자주 만나는 목제 아치가 반겨준다. 이제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 경기버스 앱으로 버스 노선과 시간을 검색해 보았지만 잘 나오지가 않는다. 여기서는 적성에 가까우니 거기까지만 택시를 타고 가려고 114에 전화해서 파주 콜택시 번호를 받아서 전화를 해 보았으나 불통이다.
황포돛배 근처에 두지리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하여 다시 장남교 위로 강을 건너서 두지리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가 보았으나 정류장 표지판 위에 버스 번호는 두 개 있는데 버스가 오는지 안 오는지 알 수가 없다.(7700번 버스는 회사로 전화를 해 보니 주말에만 운행한다고 한다.) 정류장 바로 근처에 아까의 매운탕집이 있어 그곳으로 가서 택시를 어떻게 부르느냐고 물었더니, 여긴 버스가 안 와요. 1577-2030 적성택시로 전화하세요.”하고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그래서 교통편이 쉽게 해결이 되었다.
적성까지는 텍시로 금방이다. (운임은 콜비 1,000원 포함 5,800원) 적성 시장터에서 얼마 안 기다려 92번 버스를 탔다. 아침에 문산역에서 탔던 버스의 번호이다. 버스는 비교적 직선으로 문산을 향해 남으로 가는데 중간에 파평삼거리에서 갑자기 북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금파교를 넘어 장파리까지 가서 되돌아오며 손님을 태운다. 인구가 과소한 지역 시골버스의 운행 패턴인가 보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야 문산역에 도착하여 7시 16분 경의중앙선 전철을 탔다. 옥수역에서 환승하여 집에 도착하니 9시가 거의 다 되었다. 이렇게 하여 온화한 날씨에 길게 걸어서 평화누리길 9코스를 마쳤다.
여기까지 그날 하루 여행을 시간 순서대로 겪은 노정을 가능한 놓치지 않고 기록해 보았다. 지루한 감이 있을 수도 있으나 시간과 정력을 소비해서 어렵게 다녀온 여행을 복기하여 여정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어서 기록할 뿐이다. 기억의 미비로 빠진 게 있을까봐 걱정이 된다.
- 후기 -
평화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불사하는 용기와 결의가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리라. 따라서 평화의 유지를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군대의 무력이 필요하다. 이번에 걷다가 만난 중요한 마을이 장파리이다. 장마루라고도 부르는 이 마을 인근에는 미군기지가 있었다. 미군들이 마을에 와서 쓰는 돈이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고 그 돈을 따라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가 가져다 준 것이 역설적이게도 경제적 평화였다.
장파리는 PAX AMERICANA(팍스 아메리카나 : 미국의 주도에 의한 평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던 마을이었으나 지금 미군은 남쪽으로 한참 물러나 있다. 마을은 텅 비어가고 경제는 무기력해졌다. 이 지역은 새로운 경제적 평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미 먹거리촌을 만들어서 외지인을 끌어들이고 있고 앞으로는 미군 클럽을 재현해 보는 등 옛 추억을 자극하고 경치가 수려한 강변을 개발하고 다리를 다시 놓아서 관광수요를 창출하려고 하고 있다. 마을 천주교 공소의 지붕에 달려 있는 PAX(평화) 표지가 이 마을에 평화가 절실하게 필요함을 나타내 주고 있는 듯하다.

임진강변의 마을들은 민물매운탕의 고장인 듯하다. 오염이 덜 된 임진강에서 물고기가 잘 잡히니 이를 조리해서 내놓는 매운탕집이 여기저기 성황이다. 우리도 점심때를 건너뛰면서까지 한참을 걸어서 오후 4시경에 두지리의 유명한 매운탕집을 찾아갔다. 빠가사리와 참게, 민물새우를 넣고 미나리와 대파, 무를 넣은 다음 빨간 육수에 마늘을 듬뿍 넣어서 칼칼한 양념 맛이 특징이었는데 그런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입의 평화가 달성된 셈이다.
이번 걷기의 특징은 경치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평화누리길은 큰 도로의 옆을 지나가는가 하면 벌판의 논길을 가기도 한다. 어느새 산길이 나오고 산길은 내리막으로 변하며 풍경은 수시로 변했다. 멀리 중심을 잡고 있는 파평산을 빼고는 낮은 산들이 비산비야를 이루는데 산모퉁이 사이로 강이 보이는가 하면 비닐하우스가 나타나고 마을과 공장이 나타났다. 여행의 마지막 대미는 길게 수평으로 뻗은 장남교였다. 다양한 경치를 하나로 꿰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듯하였다. 이렇게 소소한 일들이 넘치다가 마지막에 대단원으로 평화가 우리 곁에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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