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4. 20:42ㆍ평화누리길
2주 만에 한 번씩 가는 평화누리길인데 이번엔 화요일에 갔다. 아침 9시반경 동두천중앙역에 도착하여 일행을 기다렸다. 전철을 타고 오는 4인이 모이고 9시 45분이 지나 양선배의 승용차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버스를 이용하면 시간이 지체되어 승용차를 동원하기로 했다.
승용차는 벌판을 가로질러 달려 가다가 임진강을 건너 10시 25분경 숭의전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수정의 바로 옆자리로 지난번 버스를 탔던 장소이다. 홍살문을 지나 언덕 위의 숭의전(사적 제 223호) 바깥마당으로 올라갔다. 마침 문화해설사가 한 분 계셔서 숭의전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원래 건물들은 6.25때 소실되고 1973~1976년에 복원되었다.)
이 사당은 고려 왕조에 대한 배려로 흩어진 민심을 얻기 위해 조선 태조가 지은 것(1397, 태조6년)이라고 한다. 경내로 들어가서 앙암재(仰巖齋), 전사청(典祀廳), 숭의전(崇義殿), 배신청(陪臣廳), 이안청(移安廳)의 순서로 움직이면서 해설을 듣고 천수문(天授門) 앞에 5인이 서서 해설사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하였다.(감사합니다) 숭의전과 강 사이에 다른 나무들보다 오래 되고(수령 600년) 키가 큰 보호수(느티나무) 2그루가 있는데 잎이 없이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나무들 가지 사이로 임진강이 보이는데 깊은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강물이 얼어있고 옅은 눈이 얼음을 덮고 있었다.
10:46, 11코스가 시작되는 파고라(아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걷기를 시작하려는데, 양선배는 차를 가지고 목적지인 선곡리로 가서 거꾸로 걸어오다가 중간에서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고 다시 목적지로 같이 가기로 하여 4인이 같이 걷는다. 계단을 올라가면 잠두봉 전망대가 있어 좀 더 나은 시점에서 강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잠두봉의 아래 절벽에는 암각문이 있는데 인근 마전군의 군수였던 한문홍이 1789년에 쓴 칠언절구 2수라고 하는데 접근이 현재에는 어렵다고 한다.
잠두봉에서 작은 산을 넘어가니 집이 두어채 나오고 큰길 만나기 전에 능참봉을 하던 왕씨 두 사람의 묘가 나왔다. 첫째 묘가 왕영두이고 두 번째 묘가 왕순례이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능참봉은 왕순례였다. 공주에서 숨어 지내던 사람을 달래서 데려왔다고 한다.
길은 넓은 아스팔트길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는데 곧 고구려 시절의 요새였던 당포성 표지가 나온다.(11:24) 잠시 길을 벗어나 들러가기로 했다. 강이 굽어져서 유속이 느려지매 건너기가 용이한 곳에 흙과 돌로 주변보다 높게 성을 쌓고 고구려 군사가 신라군을 저지했던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이다.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주변을 조망하고 동영상도 하나 찍어 두었다.
당포성을 나와서 평화누리길로 복귀하고 조금 밖에 전진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볼거리가 유혹한다. 가는 길에서 좌측으로 접어들면 100m 쯤 떨어져 가려진 장소에 UN군 화장장의 유구가 있었다. 6.25 전쟁 때 서부전선에서 전사한 연합군의 유해를 화장했던 곳으로 굴뚝과 벽의 일부만 남아있었다. 우리나라를 지켜주다가 전사한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들의 영면을 빌었다.
길은 동이리삼거리애서 배울마을 표지 안내석을 지난 후 90도 꺾여서 북동쪽을 향해서 갔다. 곧 멋진 사장교(현수교가 아니다)의 주탑이 나타나 언덕으로 올라가 살펴보았으나 다리만 나오고 강이 보이지 않아서 다시 내려왔다. 강변을 향해 조금 더 가니 동이대교의 강을 가로지르는 모습과 강의 맞은편 절벽에 주상절리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27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용암이 흘러 생긴 것이라고 하는데 임진강과 한탄강의 주상절리 둥 가장 규모가 큰데 해질녘에 햇빛이 직접 비추면 주상절리 전체가 황금색으로 변해 절경을 보여준다고 한다.(그래서 여기를 지나는 길을 임진적벽길이라고 부른다. 다른 설은 햇빛 때문이 아니고 절벽의 돌단풍이 가을에 벽을 붉게 물들여 적벽이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하나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가는 강변의 반대편에 주상절리가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볼 수 없는 점이었다.
주상절리를 멀리서나마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주상절리를 설명하는 여러 입간판이 있었다.(12:42) 한탄강과 임진강을 따라 형성된 주상절리와 폭포 등을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 공원”이라고 불리운다는 것을 안내판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마침 바로 옆에 벤치가 있어 쉬면서 간식을 먹고 다시 출발하였다.
길은 강둑에서 내려가서 강물에 바짝 붙어서 가게 되어있는데 자연스러운 흙길이다. 강과 가까워진 김에 임진강물을 손에 묻혀보려고 발로 내리쳐서 얼음을 깨어 보는데 가장자리의 얼음은 깨어졌지만 조금 안쪽으로 물이 있는 곳의 얼음은 발로 쳐도 깨어지지 않았다.(13:07) 강변에서 구한 돌로 안쪽의 얼음을 내려쳐보았으나 역시 깨어지지 않는다. 물과의 접촉은 포기하였다. 강 건너로 리조트(다이빙 리조트?)의 흰색 건물들이 보이는데 강의 반대편에 있어 내용을 살필 수가 없다. 길은 다시 돌계단을 통해 강둑으로 올라선다.
강둑에 올라서기 바로 전에 선곡리에 차를 세워두고 길을 거슬러 오는 양선배를 만났다. 4인이 7km 정도를 전진하였고 양선배는 12km 정도를 온 셈이다. 4인은 당포성과 화장장에 들르느라고 시간을 지체하였지만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양선배께서 걷는 사람을 위한 도보길 대신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택하는 바람에 도보 길을 따라 북삼교를 건너 산을 넘지 않고, 강의 동쪽편‘으로 자전거 길로 벌판을 지나 임진교를 건넜기에 좀 더 많이 전진하게 된 점도 있었던 것이다.
강둑으로 벌판에서 찬바람이 불어오니 조금 춥다. 우정리에서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해 지어진 수현재교를 건넜다.(13:36) 황공천이 흘러오다가 임진강과 합류하기 직전의 장소인데 난간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의 예쁜 펜던트들이 달려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 길은 강둑 위로 넓게 이어지는데 왼쪽의 논과 오른쪽의 임진강을 잘 보면서 걸을 수 있었다.. 좌측으로 꽤 큰 공원이 나타나서 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서 공원에 조성된 미로(Labyrinth)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컵라면에 더운물을 부어서 요기를 했다.
공원을 벗어나니 바로 캠핑장인데 “임진물 새롬랜드”라고 한다. 오토캠핑장이라고 하여 캐러반 차량은 여러 대 보이는데 추위 때문인지 인기척이 없어 쓸쓸하다. 11코스의 중간 지점(양쪽 끝까지 각각 9.2km라고 쓰여 있다)을 지나서 임진교를 만났다. 길은 임진교의 북쪽 끝을 다리 아래로 통과하여 강변길로 한참을 가니 왕징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마을을 통과한 다음 임진강 해돋이 펜션을 지나자 언덕을 올라가더니 제법 긴 산길로 이어진다.
산으로 들어서니 바람이 잦아들어 춥지가 않다. 발 밑에서 낙엽 밟히는 소리가 정겨운데 산길이라도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으니 걷기에 쾌적하여 강길이나 들길보다 산길을 더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산의 경계 요지에 세운 보루 두 개를 지나간다. 무등리 2보루(14:57)와 고성산 보루(15:32)가 그것인데 고구려군이 임진강을 건널지 모르는 신라군을 경계하기 위하여 고지에 세운 작은 요새를 "보루"라고 부르는데 고구려가 만든 보루가 연천군에서 10여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산을 다 넘고 내려오는 즈음에 “허브빌리지”라는 “체험형 에코 테마파크”가 있었다.(16:12) 한 때 전두환 대통령 장남 소유였다고 한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매입하였다고 하는데 코로나를 만나서인지 휴업하고 있었다. 지키는 이가 없는 본관 건물에 들어가서 잠시 안내문들을 살펴보았다.
허브빌리지를 지나 북삼리 나룻배 마을로 들어가서 평화누리길 이정표를 따라 임진강 둑방길로 올라가니 북삼교로 올라가는 철계단이 보였다. 북삼교로 올라가서 동쪽으로 향해서 다리를 건넜다. 다리 끝에서 P턴을 해서 강변길로 들어섰다. 멀리 군남 홍수조절지를 바라보며 툭 터진 공간을 걸어갔다.
드디어 홍수조절지 바로 아래에 도착하니 두루미 테마파크가 있다. 거기서 다시 비탈길을 올라가니 K-Water(수자원공사)에서 지어 놓은 멋진 화장실이 나오고 그 안에 들어가니 따뜻하게 난방을 해 놓았다. 전기충전기 2대가 있는 곳을 지나서 목적지인 11코스 끝 점이자 12코스 시작점인 파고라에 도착하였다.(17:04)
일행이 다 모이자 양선배가 세워 놓았던 승용차에 올라 지난 번 식사를 했던 동두천 중앙역 앞의 실비식당으로 가서 부대찌개로 식사를 하였다. 양선배는 홀로 승용차로 귀가하고 4인은 동두천 중앙역에서 19:09 전동차를 타고 서울을 향하였다. 내가 집에 도착하니 20:50 경이었다. 평화를 생각하며 20km 이상 걸은 긴 하루였다.
- 후기 -
왕순례는 왕건의 후손으로 공주에 숨어 살다가 문종 때인 1451년에 숭의전의 능참봉으로 발탁되어 초대 참봉이 되었고 그 묘가 실전되었다가 1988년에 발견되었다. 개경에 있던 원래의 정규 고려 종묘는 조선 왕조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불온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조선 태조의 정치에 의해 변방에 소규모로 복원되었다. 그러고 보니 조선이 이룩한 평화가 완전한 평화는 아니었나 보다.
임진강을 사이에 둔 고구려와 신라의 싱갱이는 제법 심했나 보다. 고구려는 임진강변을 따라 호루고루나 당포성 같은 성을 요지에 쌓고 그보다 작은 규모의 진지인 보루를 촘촘하게 배치하였다. 신라군의 도강을 막기 위한 전략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는 많은 전투가 있었으리라고 상상되는데 신라는 불국토설과 팔관회로 고구려나 백제와의 전쟁에 대처하였다.
불국토설은, 신라는 원래 먼 과거로부터 불교와 인연이 있는 성스러운 땅이므로 도리천․ 제석천․ 사천왕의 보살핌을 받아 서축천(西竺天:인도)에 못지않은 불국토 즉, 동축천(東竺天)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렇게 성스러운 땅은 꼭 지켜야 한다는 맥락이다. 불국토인 신라 영토는 현상을 지킬 뿐 아니라 더욱 크게 확장해야할 당위성을 “신라 불국토설”에서 엿볼 수 있다. 고구려군이 포진한 난공불락의 임진강 방어선을 돌파한 신라 병사의 용맹은 바로 이 불국토설을 굳게 믿은 데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삼국간의 쟁투는 수많은 전사자를 생산했을 것은 뻔한 일! 불국토를 지키기 위해 순직한 장병을 위한 행사가 팔관회라는 장엄한 의식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팔관회는 고구려의 승려 혜량이 신라에 귀화한 이후 진흥왕이 산천용신제와 10월의 제천행사 등 토속 신앙의 종교의식과 불교의식을 결합해서 죽은 장수와 병졸들을 위로하기 위해 개최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신앙심이 대단했던 신라의 장병들은 왕과 국토를 수호하기 위해 흔쾌히 죽어 갔으리라!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은 신앙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숭의전에서 고려에 대한 조선의 평화와, 당포성․ 무등리 2보루․ 고성산 보루에서 고구려에 대한 신라의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크리스챤으로서 그분이 이룩하려는 평화관을 생각해 본다. “네 원수를 사랑하여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생각하여라. 네 형제와 다투지 말아라.” 등 그분은 현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적이나 의견이 다른 이웃과 잘 잘못을 가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루하루의 일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대신 한 차원 높은 곳에서 화합하고 통합되는 그분의 왕국에 참여하라고 권하신다. 참 평화를 위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신다.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한 차원 높여서 그분의 왕국에 참여하게 되면 평화는 자연히 달성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어려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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