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7. 09:31ㆍ평화누리길
금방 3주가 지났다. 평화누리길의 경기도 부분 마지막 코스인 12코스의 후반부를 걸었다. 이번에도 승용차를 두 대 동원했다. 아침 10시경 동두천역에 4인이 모였고 1번 출구로 나가서 승용차 두 대(양, 원 두 분이 가져옴)에 3인씩 분승하여 우선 와초리 다목적회관으로 갔다. 오늘은 제법 추워서 아침 기온이 영하 5도 이하인 것 같다. 대신 하늘은 맑다.
지난번처럼 3인은 시작점에서 먼저 걷기를 시작하고 3인은 차 두 대를 타고 오늘 종착지인 역고드름으로 가서 차 한 대를 두고 시작점으로 돌아왔다.(11:20)
길은 차대천을 따라 가는데 기복이 없이 평평하다. 오늘은 산길이 없다. 양쪽에 기다랗게 산을 끼고 가운데 난 하천을 따라 역시 길게 곡저평야가 발달하였고 그 평야의 가운데를 도로와 철로와 평화누리길이 평행으로 길게 뻗어간다.
가는 방향의 우측으로 멀리 잘 생긴 산들이 나타났다.(마지막 나타나는 산이 고대산이다) 조금 높은 산들의 위에는 눈이 녹지 않고 있어 희끗희끗하게 보였다. 부지런히 앞에 가는 3인을 따라가는데 쉼터가 있는 곳에서 점심식사 준비를 하는 3인과 만날 수 있었다.(12:47)
목재 테이블과 긴 의자가 설치된 쉼터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컵라면과 떡 등 간편식이다. 소주 한 병을 꺼내 오징어 등을 안주로 하여 한 잔씩 나누었다. 길은 차탄천을 따라서 강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가다가 대광2리의 신탄리역으로 이어졌다. 경의선 복선화 공사로 역은 휴무상태인데 역사 안으로 들어가 철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역에 딸린 화장실은 훈훈하게 유지되고 있어서 추운 날씨에 좋은 피난처가 되었다. 바람도 있어 날이 추웠다.
신탄리역은 근처의 명산인 고대산에 가기 위해 왔던 곳인데 그때(봄과 가을이었음) 역의 안팎으로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오늘은 너무나 한가하다. 기차가 운행되지 않고 대신 대체 버스가 다니는 이유도 있지만 계절도 한 겨울이라 인적이 드물고, 평화누리길을 반대 방향으로 가는 노인 팀 하나 밖에 만난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한산하였다.
역을 떠나 길을 따라 조금 전진하니 “경원선 철도 중단점”을 만났다. 남북의 분단시대를 상기시키는 기념물이다. 철도는 앞으로 백마고지역까지 연장될 예정이라고 한다. 신탄리역에서 역고드름 까지는 4km 정도 남은 셈이라 마지막 걸음을 재촉하였다. 길은 철로 부지를 따라 곧게 뻗었는데 차탄천의 존재는 가늘고 깊게 희미해졌다.
드디어 역고드름이 있는 동굴 앞에 도착하였다.(15:13) 아침에 세워두었던 원형의 차가 텅 빈 주차장에 홀로 서 있다. 역고드름은 콘크리트 동굴의 깨어진 천정의 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닥부터 얼어서 자란 것으로 생각되는데 개수가 여러 개이고 그 크기가 커서 주목받는 듯 한데, 동굴 안으로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로 막아 놓고 있었다.
기념사진 촬영 후 200m 쯤 떨어진 12코스의 종착점으로 가서 걷기를 끝냈다.(15:28) 바로 옆이 강원도이고 여기서 평화누리길 13코스가 시작된다.(우선 경기도 지역의 평화누리길을 탐방하기로 계획하였기에 평화누리길 탐방은 여기서 끝내고 강원도 지역의 탐방은 사정이 허락함을 따라 계획을 세워서 차차 실행하기로 하였다.)
이른 시각에 탐방이 끝났기에 그 동안 숙제로 미루어 놓았던 임진강 주변의 고적 탐방에 나섰다. 우선 호로고루성으로 갔다. 신라와 백제가 120년간이나 대치할 때 고구려군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 그 다음엔 고랑포와 아주 가까운 경순왕릉으로 갔다. 그 옆에 조성된 경순왕의 아들과 7세손의 묘소도 주목해 보았다. 일제 때까지도 번성했다던 고랑포에는 기념공원과 기념관도 세워져 있는 것 같았으나 닫혀 있는 듯하여 견학을 생략하였다.
저녁으로 지난 번에 갔던 “원조 두지리매운탕”집에 가서 메기매운탕을 먹고 동두천중앙역을 통하여 전철로 돌아왔다. 환승역(회기역과 옥수역)에서는 열차 밖으로 나오니 추위를 느낄 정도로 저녁 기온이 낮았다. 집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은 시각이다. 계획했던 길의 마무리를 하고 고적까지 구경한 즐겁고 긴 하루였다.
- 후기 -
들길을 휘감는 차디찬 강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했다. 강추위 속에서도 평화의 도정은 계속되었고 드디어 결말을 볼 수 있었다. 평화누리길 경기도 지역 걷기를 무사히 끝냈다. 평화를 갈망하는 6인의 발걸음은 12코스의 나머지 반(와초리 --> 역고드름)을 누비고 개선할 수 있었다.(강원도 지역 탐방은 추후에 사정이 무르익는 대로 차차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번 길은 산길이 없어 걷기에 편한 길이었다. 길은 곧고 평탄하여 평화로웠다. 대신 산이 보여주는 장점(조용함과 다양한 경치)이 아쉬운 길이기도 했다.
1. 평화의 기원을 하다.
“도나 노비스 파쳄(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평화누리길 걷기를 끝내며 평화의 실현에 대해 그분께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도는 믿음을 기초로 할 터이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리서 11장 1절)”
기도의 목표는 위 말씀처럼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것들, 아직 나타나지 않은 실체인데 그에 대해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미리 보는 상상력을 발휘하라는 그분의 지시인데 내 상상력엔 한계가 있다.
“주님, 이 임진강변의 평화누리길은 그만 파하시고 대신 압록강변에 같은 길을 만들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평화의 실체에 관해 더 세련되고 더 깊은 뜻의 목표는 그분께로 미루었다.
2. 호로고루성에서 평화는 유보되었다.
평화누리길을 끝내고 근처의 유적을 보러 갔다.
고구려가 신흥세력인 신라의 팽창을 겨우 저지한 곳이 임진강이었고 그 소강상태는 120여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현대의 남북 대치 75년보다 더 길었다.) 임진강의 북쪽 강변에는 요지마다 고구려의 성들이 들어섰고 호로고루성은 그 중 대표적인 방어 기지였다. 시도 때도 없이 강을 건너 침범하려는 신라군과 싱갱이 하느라 고구려군은 꽤나 고심하였기에 이곳에 준수한 성을 쌓았다. 가서 보니 이곳은 사방을 경계하고 호령할 수 있는 지형과 지세이다.
평화는 그 시절에도 유보되고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아쉽다.
3, 경순왕릉을 보니 평화롭지만 착잡하다.
신라천년의 사직을 말아먹었지만 고려태조 왕건의 배려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서 묘 자리까지 좋은 곳에 얻었다. 옆에는 아들과 7세손 묘까지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경순왕의 고려귀순은 평화를 위한 그의 대승적 결단이었다고 인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사전에 다른 용어는 없었을까? “용기, 결기, 아니면 오기라도.....”











































▼ 호로고루성을 탐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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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순왕릉에 갔다




▼ 경순왕릉 입구에 그의 넷째 아들과 7세손의 묘소와 영단(제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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