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5 평화누리길 12코스➀에서 시간의 켜를 확인하다

2022. 1. 26. 21:28평화누리길

  2주가 지났다. 평화누리길의 경기도 부분 마지막 코스인데 거리가 28km나 되어 둘로 나누어서 가기로 했다. 12코스의 전반부를 이번엔도 화요일에 갔다. 길이 멀고 인원이 6인이 되어 이번엔 승용차를 두 대 동원한다. 아침 9시50분경 동두천역에 4인이 모였고 1번 출구로 나가서 승용차 두 대(양, 원 두 분이 가져옴)에 3인씩 분승했다. 기온이 0도 정도로 겨울 날씨로는 따뜻하나 하늘은 비가 올 듯 찌푸려 있어 으슬으슬한 기분이 들었다.

 

  우선, 걷기를 시작할 군남홍수조절지 부근 12코스 시작점으로 갔다. 3인은 먼저 걷기를 시작하고 3인은 차 두 대를 타고 오늘 종착지인 와초리 다목적회관으로 향했다.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회관 앞에 차 한 대를 주차해 둔 다음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 주차한 뒤 앞 팀을 좇아 걷기를 시작했다.(11:05)

 

  길은 임도를 따라 산으로 완만하게 올라간다. 조금 가니 좌측으로 전망대로 가는 길이 나왔는데 원길에서 300m 가량 벗어나 있지만 군남홍수조절지를 조망할 수 있어 다녀왔다. 전망대 옆에 “연강나룻길” 안내판이 있어 이곳이 인간의 정주지로서 적합하여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가 최초로 정착하게 된 연유와 경관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있었다. 연강이란 이름은 임진강이 연천을 지나는 부분에 부친 이름으로 짐작된다.

 

  전망대에서 돌아 나와 누리길로 가다보니 옥녀봉과 그리팅맨으로 가는 길 표시가 있어 가다가 길을 조금 잘못들어서 율무밭을 지나게 되었다. 율무를 베어낸 그루터기들이 조금 위험해 보였다. 율무밭을 벗어나 우회로로 가다보니 원 길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옥녀봉은 더 가야 갈림길이 나오는 것이었다. 근처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고지대의 옥녀봉을 놓칠 수 없어 삼거리에서 옥녀봉을 향했다.

 

  조금 힘을 들여 언덕길을 600m가량 올라가니 옥녀봉 정상이 나오는데 유영호 작가의 작품인 그리팅맨이 서 있었다. 크기가 제법 커서 멀리서도 보이는 남성의 나신상인데 이 길의 명물임에 틀림없다. 다만 영어로 그리팅맨이라고 하기보다 “반가이 인사하는 사람”이라든지 한글 이름으로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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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녀봉에서 원 길로 질러가는 길이 있었는데 이를 못 보고 왔던 길로 돌아가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렸으나 현무암지대를 볼 수 있었다. 검은 돌의 무더기들이 경사진 산기슭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곳이 현무암지대였다.

 

  현무암지대를 지나서 길은 약간 오르막이 되고 커다란 산소를 하나 만나는데 홍씨의 무덤이었다. 넓은 임도로 올라서자 옥녀봉에서 오는 길(발견하지 못했던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다. 평화누리길을 상징하는 아치가 세워져 있었다. 길은 좌측으로 평평하게 진행하는데 아래쪽으로 묘들이 보였다. 묘를 쓰기에 적당한 명당자리인지 계속해 근처에서 묘가 나타났다.

 

  먼저 갔던 3인이 기다리는 곳에서 6인이 합류하여 점심식사를 했다. 컵라면, 떡, 과일 명태포, 오징어포 등을 먹었다. 식사후 곧 나타나는 급한 경사길을 내려가는데 앞에 로하스라는 테마파크같은 단지가 나타난다. 언덕길을 다 내려가 보니 커다란 한옥 건물과 목제 휴게공간이 있고 생태공원도 보였는데 개장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기능을 알 수가 없었다.

 

  이어서 나타나는 마을이 옥계3리, 옥계마을이었다. 장승과 동물상들을 보고 들길로 들어서서 조금 가니 길은 다시 산으로 인도한다. 올라가는 길에 계단도 있고 제법 가팔라서 이제까지 길 중에서 제일 힘이 들었다. 계단 끝에 올라서니 안내판 두 개가 있고 넓은 임도가 능선을 따라 좌로 펼쳐졌다. 태종 이방원의 친구였다는 이양소에 대한 이야기와 이곳 지명의 유래에 대해 설명을 해 놓았다.(사진 참조)

 

  길은 넓은데 휘어져서 인상이 깊은 소나무들이 나타나고 쉼터에서 쉬다 보니 소나무 사이로 저 아래 마을이 정겹게 나타나기도 했다. 길은 아래로 내려가는데 자작나무가 나타나고 묘가 나타나더니 샘을 지나서는 길이 평평한 들길로 바뀌었다.

 

  들길을 가다보니 지금은 운행을 못하는 단선의 경원선 철로가 나타나더니 곧 작은 역이 나타났다. 신망리역이다. 경원선 복선공사가 진행되는 중이라 현재는 쉬고 있었다. 길은 철로를 따라 1차원적으로 곧게 가다가 건널목을 건너고 큰길을 건너 강쪽으로 접근하는데 드디어 강가에 도달했다. 차탄천이라는 하천이다.

 

  차탄천은 임진강에서 갈려나온 한탄강의 제1지류로 강의 규모를 지금까지 보면서 왔던 임진강과 비교하기엔 너무 작은 편이다. 계속해서 같은 간격으로 나타나는 맨홀시설을 보니 하천의 한쪽 편으로 오수관거가 묻혀 있는 것 같았다. 강은 부분적으로 얼어있고 얼음부분은 흰눈에 덮여있었다.

 

  아까 차를 두고 갔엇던 와초리의 교회 첨탑이 멀리 보였다. 거의 다 온 셈이다. 산길을 10km 정도 걸은 후 들길을 4km 정도 걸은 셈이다. 강둑을 떠나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서 와초리 다목적회관에 도착하여 걷기를 끝냈다.(15:50경) 코로나 때문이겠지만 회관에는 사람의 자취가 없었다. 4인은 주차되었던 차를 타고 시작점으로 떠나고 나를 포함하여 2인이 남았다. 25분 쯤 지나서 원형이 모는 소나타가 도착하여 3인은 동두천 지행역 부근의 불고기집으로 향했다. 앞 차는 먼저 떠나 그곳에서 만날 요량이었다.

 

  불고기집에 다시 6인이 모였다. 즐거운 식사를 끝내고 차량을 이용할 사람은 차량으로 가고 나를 포함 2인은 지행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큰 맘 먹고 차량 두 대를 동원하여 성공시킨 또 하나의 평화누리길 여행이었다.

 

- 후기 -

 

  회색의 겨울 하늘은 칙칙했다. 그래도 평화의 도정은 계속되었다. 평화를 갈망하는 6인의 발걸음은 12코스의 반(군남홍수조절지-->와초리)을 가볍게 누볐다.

 

  평화누리길에서 나타나는 길의 특성을 차원으로 구분해 보았다. 우선 1차원적 길이다. 이 길은 강이나 철길을 따라서 직선으로 가는 길을 들 수 있는데 앞만 보면서 일직선으로 진행하는 길이다. 다음은 2차원 길인데 들길이 여기에 해당된다. 앞으로도 전진하지만 좌우로도 움직이며 2차원 평면을 가는 길인데 논이나 밭의 한가운데로 난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3차원 길이 있다.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2차원 움직임에 더하여 상하로도 기복이 있는 길로 산길이 여기에 해당된다. 아래 위로도 오르내려야 하니 걷기에 가장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시선도 가장 변화가 많은 길인 셈이다. 길의 차원이 올라가면 체험의 폭도 넓어져 사람들은 대개 1, 2차원에 비해 3차원 길인 산길을 더 선호하게 되는 듯하다.

 

  3차원 길에 시간의 차원을 하나 더해서 4차원 길이 된다고 주장해 본다. 산길에 역사의 흔적을 입히면 그것이 4차원 길이 되는 것이다. 옥계리 마을을 지나서 짧은 들길을 지나면 길은 산으로 접어들며 고도를 갑자기 높이도록 계단을 만나게 된다. 계단을 힘들게 올라 청화산 능선에 서면 입간판 두 개가 나오는데 “이양소와 이방원의 연천 이야기”와 “도당골 천화동”의 두 제목의 설명문이다.

 

  이 고을 태생인 이양소는 태종과 막역한 사이였으나 고려가 무너진 후 자기는 “고려진사”라 하며 조선에 협조하지 않고 이 고장에 은거하였는데 이방원이 그를 회유하고자 다섯 번이나 연천에 왔으나 끝내 출사하지 않고 절개를 지켰다고 한다. 그래서 태종은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갔다고 한다. 눈물 흘린다는 연(漣)과 내가 많다는 천(川)에서 연천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고 한다. 한 고을의 이름이 이렇게 사사로운 사건에서 결정되었다는 것이 믿기 어렵지만 사실은 사실인 모양이다.

 

  태종이 이양소를 찾아 왔다가 수레가 빠졌던 하천이 차탄천(車灘川 : 수레여울)이 되었으며, 낚시하던 이양소를 기다리던 곳이 정자터이며, 그가 마시던 우물이 어수정이고, 그가 친히 왕림했다 하여 왕림리(王臨理 : 지금은 旺林里로 표기)라고 하였다 한다. 이 또한 사실이리라.

 

  또 하나의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다. 이양소가 죽은 후 태종은 무학대사를 시켜 좋은 묘 자리를 찾도록 했는데 연천에서는 명당을 찾지 못하고 철원에서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장지는 연천 땅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이양소의 유언이 있어 고민하다가 태종은 장지가 있는 철원 땅 십리를 베어 연천에 붙이도록 명했다고 한다. 태종의 이 큰 배려는 정말이었을까? 확인해 보고 싶다.

또한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절개가 꿋꿋한 이양소가 숨어 지내던 마을 이름이 도연명의 고사에서 따서 도당골(陶唐洞), 또는 이양소의 시호(태종이 내림)인 청화를 따서 청화동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사실일 게다.

 

  잠깐 주목해 보니 이렇게 많은 흥미 있는 사실들이 이 길에 묻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산길과 시간이 결합된 4차원 길을 가노라면 현재까지도 유효한 지명을 잉태한 예전의 사건과 거기 등장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시간의 다채로운 켜가 평화를 갈망하는 구도자 6인의 마음에도 전해지고 있었다.

 

  ▼ 승용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연천 시내 근처에서 본 교회와 조형물. 전곡이 최고(最古)의 역사를 가졌다고 하여 매머드와 다른 동물군, 원시인(호모 에렉투스?)의 형상을 조각해서 출입문 위에 배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