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5. 21:06ㆍ포토DOCUMENTARY
토요일이니 산요일이다. 오랜만에 고교 선후배들과 같이 남한산성에 갔다. 모두 10인이다. 9시 반 산성역에 모이기로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 모인 후 9-1번 버스를 타고 성안으로 들어가 종점인 산성로타리에서 내렸다.(10:10) 북문을 향해 가서 성벽길을 따라 동장대터까지 가서 제3암문으로 나가서 벌봉을 향했다.
이번 산행은 동문들이 여러 해 전에 가보고 철쭉꽃이 너무 좋아서 동문철쭉길로 명명한 곳을 찾아가는 길이다. 산길이 끝나는 곳에 유진오박사의 생가터가 있다고 한다.
벌봉 가기 직전에 남한산 정상석을 다녀오기로 했다. 해발 522m라는 표시가 정상석에 새겨져 있는데 정상의 위치는 조금 앞의 성벽 위이다. 편의상 넓은 공지에 설치해 놓았다. 산성로타리의 고도가 320m 정도이고 이곳의 고도가 522m이니 수직고도로 200m 정도만 올라온 셈으로 큰 힘은 들지 않았다.(11:17)
정상석에서 발길을 돌려 벌봉으로 향했다. 암문 밖에서 이 바위를 보면 벌처럼 생겼다 하여 벌봉이라고 불리웠는데 수어장대보다도 고도가 높아 성안을 공격하는데 유리한 곳인데 병자호란 때 청군이 이곳부터 차지하여 전쟁에 유리했다고 한다. 바위 위에 난 철쭉과 말발도리 꽃을 감상하고 북쪽으로 조금 더 가니 벤치에 등산객이 쉬고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평평한 장소가 나타나 12시 20분 전이지만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술로 유산균 막걸리인지 특수한 막걸리와 와인을 마셨다.
북쪽으로 뻗은 길을 가니 Y자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눈앞의 두 길을 가지 말고 우측으로 꺾어지는 희미한 길을 찾아서 가야 유진오박사 생가터로 갈 수 있다. 이 길을 동문철쭉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측으로 꺾어져서 동문철쭉길을 가기 전에 앞쪽의 전망바위에 가서 북쪽으로 터진 경치를 감상했다.(12:45 사진참조) 동문철쭉길을 가려면 서쪽으로 나무숲을 헤치며 나아가야 한다. 키가 큰 나무에 연분홍 산철쭉이 싱그럽게 피어서 보기에 좋다. 철쭉꽃은 빽빽하지 않고 약간 성글게 피어있는 편이다. 벌써 진 꽃들도 있었다. 갑자기 길이 희미해졌다. 어디선가 길을 잃은 것 같은데 급한 산비탈을 따라서 없는 길을 헤치며 아래로 내려갔더니 얼마 안 되어 제대로 된 길이 나왔다.
숲이 끝나고 유진오 박사의 생가터 앞에 도착했다.(14:05) 잠시 감상한 후 큰길가로 나와 예전에 갔던 “봉진막국수”를 찾으려 하는데 그 자리에 새 빌딩이 올라가고 있어 휴업중이었다. 길 건너 “봉평막국수”라는 집에 들어가 산행을 끝내고(14:18) 막국수와 소주, 수육으로 뒤풀이를 하였다. 뒤풀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버스를 타고 나가서 하남시내에서 내린 다음 한참을 걸어서 전부터 맛집으로 아주 유명하다는 “하남돼지집”으로 이어졌다.(2인 귀가, 8인 참석) 돼지고기와 소주를 흠뻑 먹고 마셨다. 대개의 경우처럼 이선배가 대금을 지불했다.(1차는 각자 1/n 지불)
그런데 3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남검단산역에서 전철로 귀가 중인데 동기인 김XX군에게서 가락시장에서 기다리니 꼭 오라고 전화가 왔다. 근처 결혼식에 왔다가 동료들이 보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한다. 두 이선배와 나, 3인만 호응하여 가락시장으로 갔다. 친구가 시장 입구의 횟집에서 매운탕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불러서 회는 주문하지 않았다. 넷이서 소주 두병을 마시고 일어섰다. 가락시장역에서 단 번에 집으로 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날도 맑았고 공기도 맑았다. 연달래라고도 부르는 븐홍색 산철쭉의 고혹적인 모습을 보며 행복하게 숲속을 걸은 하루였다. 술은 1차로 끝냈다면 100점이 될 수 있었던 하루였다. 아쉽다.
- 후기 -
“김교수와 T강사“, ”창랑정기“ 등을 써서 소설가로도 활동했던 현민 유진오박사의 생가터를 가 볼 수 있었다. 창랑정기는 옛날 고교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났다. 유진오박사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문학 활동을 하다가 해방 후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였으며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또 정치가로서 제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야당 당수로도 활약했다. 이렇게 유명한 분이지만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2005년 8월, “친일 3,090명 명단”속에 포함되어 친일파로 분류되는 등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안채가 경기도의 전형적인 ㄱ자형 초가집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는데 안내판이 서 있고 투시형 울타리안에 검은 색 돌비석이 서 있는데 “玄民兪鎭午先生遺墟碑”라고 한자로 적혀 있다. 이 집터가 하남시 향토유적 제10호라고 하는데 친일명단에 오른 인사의 유적지를 향토문화재로 지정한데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인터넷 검색에서)
친일인사로 낙인되었으니 생가가 복원될 희망은 없는 듯하여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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