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2 오대천 따라 걸으며 신록을 감상하다(막동계곡입구~백석폭포)

2023. 5. 6. 17:39포토DOCUMENTARY

   10인이 오대천을 따라 걸었다. 거의 1년만이다. 나를 빼고 9인(이상훈교수, 박인기교수, 최돈영교수, 오PD, 은곡, 우명길, 안승일, 서회장, 신진휴)인데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6인, 세 분(안승렬, 서회장, 신진휴)이 처음 뵙는 분들이다. 알고 보니 신진휴씨는 대학 1학년 때 만난 적이 있는 인사이다. 평창에 뿌리내려 살고 있는 이상훈교수를 중심으로 모인 인맥이다.

 

   오대산의 우통수에서 발원한 오대천을 따라 걸어오는 중인데 지난 번에 막동계곡입구에서 끝냈기에 오늘 그곳에서 시작한다. 평창역에서 11시에 만나서 차 3대(승용차 2대, 트럭 1대)로 장평의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현장으로 향했다. 차 2대를 목적지에 놓아두고 오기 위해 7인을 막동계곡 입구에 부려놓고(13:22) 차 3대는 3인의 기사와 함께 목적지인 백석폭포를 향해 떠났다가 한참 후 한 대의 차만 3인의 기사와 함께 출발지로 돌아왔다.(13:54)

 

   13:54, 10인이 다 같이 걷기를 시작하였다. 강물을 왼쪽에 두고 큰 길을 걷는다. 길이 강물보다 훨씬 높게 축대를 쌓아 만들어지고 직선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옛날 길의 구불구불한 형태를 많이 변형시켜 큰 재미가 없는 풍경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서회장의 말씀인데 설득력이 있다.) 조금 가다 보니 장전터널이란 터널이 나오는데 터널 쪽이 새 길이고 우측으로 옛길이 남아있어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이 옛 길은 경사로로 언덕을 넘어가서 한참 후 새 길과 합치게 되어 있었다. 옛길에는 차량이 통행하지 않아서 방해받지 않고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길옆에 버려진 벌통이 있어 이 길에서 벌을 쳤음을 알 수 있었다.

 

   새 길과 합쳐진 다음 우측을 보니 2018년 동계올림픽 대회 때 가리왕산에 설치된 알파인 경기장 아래에 지어진 숙소 건물 두동이 눈에 띄었다. 한참을 걸으니 장구목이에 도착하였다.(14:52) 장구목이는 가리왕산 정상에 올라갈 때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입구인데 2000년 대 초에 동료들과 버스를 대절하여 가리왕산을 올랐을 때 왔던 기억이 났다.

 

   장구목이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들었다.(내가 가져간 와인도 한 잔씩 돌렸다.) 길은 넓고 평범한데 좌우로 산 위에 펼쳐진 신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명씩 자연스레 같이 걸으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길이 힘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좋은 조건이다. 나는 1968년 대학 1학년 때 다른 과 친구들과 섞여서 교양과정을 이수하던 때, 理B11반에 속했는데 그 때 같은 반에 속해서 공부하던 친구를 오늘 만났다.(그는 그 때, 1968년 2학기부터 휴학을 했기에 한 학기만 같이 한 셈이 되었다.)

 

   그 사람이 신진휴씨인데 얼굴을 보니 그 옛날 보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났다. 이곳 평창에 정착한지 7-8년 되는 것 같았다. 나와는 달리 서울의 고교 친구들과 교류하지 않고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옛날 보았기에 더 반가운 나머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서로 공감하는 바도 많이 있었다. 오늘 전기차를 가지고 나와 우리들을 실어 나르는데 일조를 하게 되었고 꼭 있어야 할 인사가 된 것이다.

 

   강변에 정자가 있는 곳에서 잠시 쉬었는데 은곡의 트럭은 여기다 주차를 해 놓았다.(다리가 시원치 않아 여기까지만 걷고 서회장과 저녁식사 장소로 돌아갔다.) 정자를 떠나 다음 길을 계속 걸었다. 16:55, 드디어 목적지인 백석폭포 앞에 도착했다. 약 10km를 세 시간에 걸쳐서 걸은 셈이었다. 백석폭포에는 물이 흐르지 않아 서운했는데 모양으로 보아 인공폭포였다. 물이 흐르지 않고 앞 벽이 울퉁불퉁한 것으로 보아 인공으로 조성된 폭포임을 알 수 있는데 인공이 아니면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동안의 물의 침식작용으로 폭포 벽이 매끈하게 다듬어졌을 것이라고 한다.(오PD의 이야기) 폭포 앞 길 옆에는 우리들을 태우고 갈 차 한 대(신진휴씨 소유 전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명길씨는 골지천과 오대천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남은 약 4km의 길을 다 걸은 다음 상경하겠다고 혼자서 길을 떠났다. 남은 사람이 7인인데 4인이 신진휴씨 차를 타고 막동계곡 입구에 서 있는 이교수 차 앞에 이교수를 내려주고 대화쪽에 있는 식당(호남가든)으로 향했다.(이교수가 그 차로 종착점인 백석폭포로 다시 가서 3인을 태우고 음식점으로 오게 된다.) 전기차에 3인이 타고 가는 대화의 식당까지는 매우 먼 길이었다. 뒷 자리의 한 분(안승렬)은 졸고 앞자리 조수석의 나는 기사인 신씨와 많은 이야기를 하며 갈 수 있었다.

 

   대화 인근 호남가든에 9인이 다 모이자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는 한방 재료가 들어간 오리백숙인데 막걸리와 같이 먹었다.(웬일인지 음식이 당기지 않아 잘 들어가지가 않았다.) 식사가 끝날 때 쯤 보니 음식을 반 밖에 먹지 못 해서 둘로 포장을 해서 평창 분 들이 집으로 가지고 가도록 했다. 기차 시간이 넉넉하므로 평창역 부근에 있는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고 가기로 한다. “카페 921”이다.

 

   평창 주민인 은곡과 서회장은 각각 자기의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7인은 오후 7시 44분 쯤 카페에 도착하여 한 시간 못 미치게 차를 마시며 머물렀다. 여주인이 꽃과 사진에 취미가 있다고 하여 카페에 손수 찍은 사진을 걸어두고 정원에 꽃들을 심어 가꾸고 있었다. 평창역에서 20:53, KTX 열차에 탑승하여 청량리역에 내리고, 거기서 전철로 집으로 돌아왔다. 지성인들과 가볍게 강을 따라 걸어본 하루였다.

 

- 후기 -

 

   9인의 지성인과 같이 걸은 하루였다. 계곡을 따라서 난 강과 길에는 아스팔트가 주 경관이라서 별로 좋은 경치랄 건 없고 계곡 양쪽으로 솟은 산줄기에 봄을 맞아 피어나는 신록이 볼 만하였다. 옆으로 보이는 오대천의 강물은 과소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 양이 너무 적은 듯 보였다. 강바닥을 이룬 돌이 검은 색이라서 얕은 강물도 검게 보이는 것이 특이하였다.

 

   55년 만에 대학을 같이 다녔던 동급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것이 특별한 경험이었다. 정치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과묵하게 보이는 그였지만 솔직하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서울을 떠나 이곳에서 외롭게 사는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서 평창에 들어박혀 사는 은자의 풍모가 느껴졌다. 결코 내가 흉내낼 수 없는 생활이다. 짧은 하루의 대화였지만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귀중한 대화였다고 생각된다.

 

   오늘 걸은 구간은 같이 걸은 동료들에게는 더 큰 구간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 그림은 골지천, 오대천, 조양강, 동강, 서강으로 이어지고 남한강, 북한강까지 그리고 한강으로 완성될 터이다. 그들은 더 큰 그림(그랜드 디자인, Grand Design)을 완성하기 위해 부분을 걷는 중이다. 나는 늦게 합류하여 그 큰 그림까지는 기대하지 않고 같이 동행하는 재미에 예까지 끌려 온 셈이다. 오대산 우통수에서 시작하여 정선군 북평면에서 골지천과 만나는 합수점까지가 오대천인데 나는 한번인가 빠졌지만 이교수 이하 동료들은 거의 다 걸어서 채운 듯하였다. 한강의 주류인 골지천은 작년에 나를 포함한 4인이 몇 구간을 같이 걸은 적이 있다.(거기서도 나는 한번인가 두 번인가 빠졌다.)

 

   한강이라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완성하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완성에 집착하게 되면 생각이 거기에 매이게 될 것 같다. 수동적으로 동료들의 걷기에 참가하여 풍광을 즐길 수는 있지만 억지로 매달려 부담을 가지기 싫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 매달 가고 있는 낙동정맥 종주가 주는 압박도 은근히 심적 부담을 주는데 더 부담을 느끼고 싶지 않다. 돌아와서 시를 하나 써보았다.

 

[오대천을 걸으며]

 

계곡 따라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 길이 간다

시멘트로 쌓고 아스팔트가 깔린

강고한 길이다

 

큰길이 주인이고 강은 덤이다

옛날 구불구불 멋이 있던

강과 길은 다 사라지고

일직선으로 뻗은 광로에

차들만 신이 났다

 

그나마 손이 안 탄

양쪽 산줄기 산언덕에

막 피어난 신록이

나그네 눈길을 끌어당긴다

 

장구목이에 도착해서

한참을 쉬는데

여기가 정상 가는

지름길의 입구로다

 

산불이 날까봐서

지금은 출입 금지

5월 15일에야

금족령이 풀린다고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산길이 강길 보다

낫다고 하는데

산을 가려 했다면

초장에서 막혔겠군

 

목적지 백석폭포

물도 없는데 폭포라니

인공의 어색함이

누굴 닮은 허세로다

 

더 큰 그랜드 디자인 위해

한 분은 더 걷는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마감하고

남은 친구들과 어울려

한 잔 술을 즐기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