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060205 제55차 구간 백두대간 산행기 * 해는 다시 떠 오른다(1) : 야간산행

2006. 10. 12. 16:41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금번의 대간공략은 야음을 틈 타 적진에 잠입하여 3개의 암벽을 넘어 점봉산 정상(1424.2m)에 깃발을 꽂고 단목령을 거쳐 조침령으로 내려오는 어려운 작전이었습니다.


결국 완강한 적군의 저항은 없었지만 악천후로 인하여 원래 계획은 작전상 바뀌어 반대편 들머리인 조침령에서 시작하여 단목령까지 겨우 예정의 반을 산행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때 느끼지 못하던 자연의 위력을 새삼 느껴 본 산행이었습니다. 춥고 바람부는 밤이었습니다. 


2월 4일 토요일

오늘 무박산행이 있는 날, 즐거운 날인지라 아침부터 산행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하마부인이 원하기에 백화점까지 차를 몰아서 갔다와 주고 책이나 뒤적거리면서도 오늘 산행에 대해 예상을 해 봅니다. 가장 어려운 구간이라고 듣기도 했는데 어쩐지 무사히 마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결국 이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사실 지금껏 산행하면서 원래의 계획과 실행이 달라진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요일 성당에 못 갈 것이니 우선 토요 특전미사를 다녀오기로 합니다. 산에 다니면서 토요 특전 미사 참여가 거의 정례화되었기에 낯설 것은 없었습니다. 저녁 6시 성당에 차를 몰고 혼자 도착, 일상화되어서인지 별 자극도 없이 반은 졸면서 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조금은 무성의한 미사 참여 후 집으로 오다가 시장 근처의 떡집에서 떡을 사는데 인절미가 다 팔려서 술떡으로 낙착, 사가지고 집에 옵니다. 얼른 저녁을 먹고 산행 보따리를 꾸리기 시작하는데 오늘의 주제는 짐줄이기입니다. 지난 번 선자령 산행 때는 10kg이 넘어서 좀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이번 산행엔 잘 쓰일 것 같지 않은 우산, 칼, 옷가지 등을 빼놓았습니다.


먼저 산행복장으로 저울에 올라가 보니 80여kg, 배낭을 지고 올라가 보니 90여kg으로 그 차이가 8kg입니다. 지난번 보다는 2kg이상 가벼워진 것 같아 좀 안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카메라는 작은 것과 큰 것 두 개를 다 넣었습니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큰 카메라를 배낭에서 꺼낼 심산이었습니다. 작은 카메라로는 좋은 경치를 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은 금방 흘러 밤 9시가 되었습니다. 하마부인과 작별을 하며,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무언가 섭섭해 하는 우리 집 강아지, ‘후치’를 쓰다듬어 주고 작별, 잠실로 향합니다. 버스에서 전철로 환승, 9시45분경 잠실역 3번출구 밖 도착하니, 못 보던 간판이 너구리그림 앞에 보입니다. 아마도 골프장 선전 같았습니다. 너구리그림과 겹쳐서 사진에 담아보는데 BMW의 전화가 옵니다. 바로 뒤에 오고 있었습니다.(풍경사진 모음방의 ‘잠실 : 출발 장소’를 참조하십시오. 사진은 너구리그림과 골프장 선전간판)


2대의 버스 중 여느 때처럼 1호차 뒷편에 BMW와 같이 앉을 수 있었습니다. 버스가 떠나고 김대장께서 오늘 산행에 대해 설명하는데 1157봉 오르기 전에 3군데의 암벽을 넘는데 이것이 힘들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론 회장께서 오늘 등산의 다른 어려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자연휴식구간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2월 5일 오전 1시 40분경

산행 들머리에 도착합니다. 스패츠는 원하는 사람 착용, 아이젠은 필수 착용하고 산님들이 열을 지어 랜턴도 끈 채 약간 급한 비탈을 오르는데 눈에 발이 미끌어지고 추위가 엄습합니다. 오싹 한기가 느껴지는 추운 날씨에 서북풍까지 불어 제낍니다. 영하 20도는 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앞사람을 의지하여 첫 번째 난관인 보이지 않는 암벽을 향하여 1시간 이상 어둠 속을 전진하였습니다.


저는 얼굴을 머플러로 감싸고 모자를 쓰고 모자를 펴서 귀를 가린 다음 윈드자켓의 머리가리개를 뒤집어 쓰고 추위를 막아보려고 애썼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찬공기에 닿아 안경과 머플러에 얼어붙는 것이 꽤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했습니다. 아이젠을 했지만 가루눈이 두껍게 쌓인 언덕에서는 발이 눈에 자꾸 미끄러져 헛발질을 해야했고 자주 넘어지곤 합니다. 오른손으로는 눈에 뜨이는 나무줄기를 잡고 겨우겨우 전진하였습니다.


이렇게 추위 속을 힘들게 전진하는데 행렬이 한참 멈춰서더니 앞쪽에서 전진이 불가하니 뒤로 돌아서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돌아서는데 다시 행렬에 막혀 서있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문제는 발이 얼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걸음을 떼어 놓을 때에는 그래도 발이 시린 줄 몰랐는데 쉬는 시간이 오히려 고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뒤로 돌아서라도 혈로를 뚫으려던 선두그룹은 철수를 결정, 아까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라는 부탁이 전달되었고 우리들은 묵묵히 그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안타까운 소리가 들린 것 같았습니다. ‘오늘의 계획은 실현 불가능이다.’라는 말이었을 겁니다. 계획이 뜻대로 안될 때의 실망감, 포기할 때의 안도감 또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해야 하는 귀찮음, 아니면 오늘은 쉬고 다음에 하려는 각오 등, 추위 속에서도 몇 가지의 상념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제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묵묵히 상황을 따르는 수 밖에...


작은 카메라로 무언가 표지가 될 만한 것을 촬영하여 시각을 기록하고자 하였으나 이 녀석이 꽁꽁 얼어붙어서 멍텅구리가 되었기에 정확한 시각은 알기 어려웠지만 새벽 3시쯤 길을 되돌아선 것 같았습니다. 날이 추워 배낭속의 큰 카메라를 꺼내기는 싫었습니다. 대략 3시 40분쯤 출발점으로 돌아오고, 제자리에 멈추면 발과 몸이 얼기에 서남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40분쯤 버스를 기다리며 계속 걸었습니다. 4시20분, 산님들을 위해 원래의 상행 종점인 진동리에 갔다가 돌아온 버스에 승차하여 50분 정도를 남쪽으로 달렸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대간산행의 구룡령-갈전곡봉-조침령 산행시 왔었던 장소에 하차, 다시 반대방향으로 2차 산행을 할 채비를 하였습니다. 그때 시각이 5시 10분, 아직 바람이 불고 추운 아침이었습니다.


춥고 어려운 산행이라면 빨리 끝내자는 마음에 서두르기로 했습니다. 선두를 따라잡을 기세로 쉬지 않고 앞으로 빨리 진행했습니다. 추풍낙엽처럼 뒤로 쳐지는 산님들. 눈이 쌓인 넓은 포장길을 조금 올라가니 지난 번 보았던 ‘조침령’이라고 가로 새긴 돌비석에 도착합니다. 산님 두 분이 사진을 찍고 계십니다. 그분들을 두고 계속 전진, 드디어 큰 길을 벗어나 약간 왼쪽으로 단목령가는 산길로 들어섭니다. 지금은 눈이 덮혀 있지만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던 것을 지난 11월 산행시 확인했던 곳입니다. 길 왼쪽 캄캄한 어둠 속에 경고문이 써 있는 표지판이 서 있었습니다.


단목령-한계령구간이 휴식구간이라는 설명과 엄중한 경고문이 10km나(단목령은 이 지점에서 10km 북서쪽) 남쪽에 서 있는 것은 무슨 사무착오 같았습니다. 아마도 이곳부터 산행이 금지되는 듯 하였습니다. 이제 작은 카메라가 따뜻한 버스에서 덥혀져서 밧데리가 살아났기에 그 경고문을 촬영해 봅니다. 산행후 살펴본 카메라 시각은 5시 46분이었습니다. 버스에 내려서 산행시작 후 36분 뒤인 셈이었습니다.


추위와 바람은 아직 그 세력이 줄지 않았기에 빨리 걸어서 이 추위속의 고통을 빨리 끝내는 것이 나을 듯 했습니다. 좁은 길 옆에 서서 몸을 굽히고 강추위 속에서 아이젠을 장착하거나 스패츠를 착용하려는 산님들이 몇 분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젠은 찼으나 스패츠는 생략하였고 스패츠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은 드는데 멈추어 서서 추위 속에서 고통스럽게 착용할 엄두를 못내고 그냥 진행하기로 하였기에, 그분들을 앞서서 앞으로 힘차게 나아갔습니다.


지금의 추위를 가늠해 보니 체감기온은 영하 25도 쯤 되는 추위였고, 바람은 초속 10m 이상되는 강풍인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이런 때 여러 생각은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앞을 향해 무조건 전진하는 행동만이 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타개할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저는 두 번째 그룹 쯤에 낀 것 같았습니다. 그분들을 따라 ‘산행기계’가 되어 기계적으로 움직입니다. 한번도 쉬지 않았고, 생각같아서는 한 번도 쉬지 않아도 단목령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이 훤하게 밝아 옵니다. 헤드랜턴의 스위치를 껐습니다. 이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 날이 밝아옵니다. 7시 18분 양수발전소의 저수지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팻말이 나오기에 이걸 촬영하기로 하고 처음으로 멈춰 섭니다. 그리고 배낭 속의 큰 카메라를 꺼냅니다. 이제부터 사진을 찍어야 하니 저의 산행속도는 느려집니다. 두 번째 그룹은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셧터를 누르기 위해 오른 쪽 손의 장갑을 벗어야 하니 손도 시립니다.


‘저수지내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촬영할 때 쯤 바람은 거의 그친 듯 했습니다. 양수발전소가 이 근처에 있다고 지도에서 본 것 같았습니다. 주위가 밝아오니 해오름이 기다려졌습니다. 어쩌면 오늘 일출 사진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마음 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카메라를 오른손으로 든 채(왼손은 스틱을 잡고) 이정표와 눈밭과 눈밭을 헤치는 산님들을 찍어가며 일출사진을 찍을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허둥지둥 움직입니다. 동해바다에는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데 나무들이 전망을 가려서 마음을 급하게 합니다.


7시 25분, 더 이상 전진하면 해오름을 놓칠 급박한 시간입니다. 길에서 약간 벗어나 바다 쪽으로 전망이 트인 눈이 쌓인 비탈 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발은 50cm 쯤 눈 속에 집어 넣은 채였습니다. 약간 위쪽 5-6m 쯤 저와 떨어진 언덕에도 두 분의 산님이 카메라를 꺼내들고 붉은 동쪽바다를 응시합니다. 7시 26분 02초, 첫 번째 일출사진을 촬영한 시각입니다. 올해 1월 1일 설악산 무박산행에서는 흐린 날씨로 해오름을 보지 못하였기에 오늘의 일출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산행계획을 변경한데 대한 보상이기도 하였습니다.


7시28분까지 2분 사이에 16컷을 촬영하였습니다. 사진의 질은 알 수도 없었고 그저 여러 장을 해가 더 뜨기 전에 촬영할 뿐이었습니다. 촬영 중엔 줌을 당겼다가 다시 밀었다가 하며 촬영하였습니다.(결과적으론 이러한 줌인과 줌아웃은 쓸 데 없는 짓이었습니다. 연속된 사진으로 해오름의 변화를  비교하기 위해선 초점거리가 고정된 사진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찍힌 사진을 사후에 검토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묶어놓고 렌즈의 초점은 고정한 채 50장 쯤 찍었으면 하는 욕심입니다. 다음 기회가 오겠지요.)


광대한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 작고 붉은 점이 차차 밝아지는 불덩어리 해가 되고 이 해는 흰눈에 덮힌 대간을 붉게 물들입니다. 바다와 산이 태양을 매개로 하나가 되는 순간입니다. 아무리 어둠이 짙더라도 결국 해는 다시 떠오르는 평범한 진리가 오늘 아침따라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이 아름다운 순간 감사합니다. 오늘 송백 산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시고...’ 기도할 것은 너무나 많았습니다.(씨리즈로 연속해서 찍은 사진들 만으로 산행기 2편을 구성해 보았습니다.)


수평선에서 오를 듯 오를 듯 하던 해는 그 모습을 보인지 불과 3분도 안되어 공중으로 치솟고 말았습니다. 저는 황홀한 꿈에서 깨어나서 아쉬운 마음을 접은 채 다시 북암령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카메라를 목에 건 채 눈밭을 헤치며 나아갔습니다. 8시쯤 되었는데 앞에 가시던 분들이 식사를 하고 가자고 하십니다. 저는 사진 욕심에 그냥 가겠다고 하고 왼쪽 주머니에서 쵸코렛 3쪽과 사탕 3개를 꺼내어 입에 넣습니다. 사실 가방을 열면 떡과 귤과 커피와 사과가 있었지만 다 사절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간절약 욕심과 시간이 있으면 사진을 한 장이라도 찍으려는 욕심이었습니다.


배가 고파 약간은 고통스러웠는데 사탕으로 달래고 나니 약간은 나아졌기에 떡은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산행을 마치면 따뜻한 밥과 국이 있을 것이기에 참기로 했습니다. 배낭옆 주머니에 넣어둔 플라스틱 생수는 꽁꽁 얼었기에 수분 보충을 위해서는 눈을 조금씩 집어 먹으며 전진합니다.


8시 57분 북암령에 도착하였습니다. 조침령에서 여기까지는 7km를 왔고 앞으로 단목령까지는 2.9km 남았습니다. 오늘 산행의 어려운 고비는 넘어간 듯 하니 마음은 가벼워지는데 나무를 짚고 카메라를 찍고 스틱을 짚는 둥 맹활약을 하던 오른쪽 팔이 약간 아파오기 시작합니다.(무리한 탓인지 산행기를 쓰는 지금 이 시각까지 팔이 아픕니다.)


큰 고개를 하나 넘다보니 멀리 반가운 대청봉의 모습이 보입니다. 카메라앵글을 잡아 멋진 사진을 찍으려다 나무 때문에 주저하다가 그만 놓치고 그 언덕을 다 넘으니 설악은 안 보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언덕을 올라가니 다시 대청봉이 반갑게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그 모습을 놓칠 수 없는지라 몇 번 멈추어 서서 설악의 대청봉과 중청을 카메라 속에 넣어 봅니다. 그때가 9시 42분 쯤.


10시 2분, 드디어 단목령 팻말이 30m 전방에 보입니다. 단목령 이정표 앞에서 산님 한 분이 사진을 부탁하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한 장 찍어드리고 저도 오랜만에 저의 사진을 하나 부탁하여 찍어 받았습니다. 여기서 강선리->진동리로 가기 위해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새벽 2시쯤 사투를 벌이던 암벽쪽으로 향해 전진하던 걸음이 이제 왼쪽으로 빗겨 갑니다. 어정쩡한 화해라고나 할까요. 나머지 대간길을 언제 쯤 갈지, 꼭 가기로 다짐하며 몸과 걸음이 동네쪽을 향합니다.


10시 17분 눈이 덮힌 예쁜 2층집 앞에 서서 그 집을 사진으로 갈무리합니다. 조금 더 가니 한식기와로 새로 지은 ‘풍경소리’라는 음식점이 나오고 좀더 걸어가니 10시 47분 진동2리 마을회관 앞에 서게 됩니다. 10시 52분 눈덮힌 포장길을 거슬러 올라온 버스를 만나서 산님들과 같이 타고 약 10분 내려가니 11시 2분 지난번 11월 대간산행 때 식사하던 별장 마당에 도착합니다.


총무님이 요리하는 냄새가 구수하게 나는데 산도깨비님 이하 선두그룹과 인사를 합니다. 친구를 기다리며 한 시간여나 술과 안주를 축내다가 1호차에 오릅니다.(1편 끝)


일출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2편이라고 이름붙여 순서대로 실어 봅니다.

출처 : 송백산악회
글쓴이 : 하이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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