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051218 제52차 백두대간 닭목령-대관령구간에서 알바의 추억

2006. 10. 12. 16:32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삼국지연의에서 제갈공명이 제출했다는 명문의 출사표와 같이 백두대간 산행에 나설 때는 무언가 세상에 대해 공표를 하고 백두대간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저희 직장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출사표같은 명문장은 커녕 신고도 제대로 못한채 송백의 백두대간 산행에 뛰어들었고 지금까지 5번 참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백두대간은 저에게 무엇일지 반추해 보아야겠습니다. 백두대간이 저에게 주는 가장 큰 기쁨은 제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저 산행이라는 것이 다 그렇겠지만 계획과 실행, 평가가 있게 되는데 그 과정이 다 즐겁다는게 솔직한 저의 고백입니다. 백두대간을 오르며 내리며 제 능력을 저울질해 보고 저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저의 노력을 평가해 보고 동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사진 이미지를 모으고 하는 중에 저의 온갖 상상력이 동원되고 그 결과는 적지 않은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상상력의 확장을 통해 저의 생활은 정화되고 질서를 부여받고 활기를 찾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소위 카타르시스라는 것일 것입니다.

 

산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아픔이랄까 아쉬움을 늘 느낍니다. 솔직히 돌아오기 싫었습니다. 산밑의 생활로 돌아오면 그 동안 밀린 일도 있고 할 일도 많으니 여유있게 산행기라도 쓰며 주말의 산행을 반추하고 싶으나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시간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저의 바램이라면 산행생활도 완벽하고 산밑의 세속생활도 퍼펙트한 소위 99.9의 모범생을 꿈꾸고 있답니다. 그 목표를 향해서 매진하자고 늘 다짐을 해 봅니다만 그분이 다스리는 영역에 들어가면 그분의 불가항력적인 작용인지, 저의 불찰인지 자주 실수를 하게 되고 산위와 산밑, 양쪽 다 보통 점수인 60점-60점 정도의 결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산에서의 우등생이 산밑에서의 우등생은 될 수 없을까요? 제가 늘 되씹어 보고 저를 일깨우게 하는 질문입니다. 산의 우등생은 아니지만 산에만 가면 저는 무언가 확실한 것을 성취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산밑에선 꼭 그렇지는 못하군요. 생활전선에선 히트아닌 범타밖에 못날리고 가끔은 동료들에게, 후배들에게마저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지만 속으론 씁쓸함을 씹으며 어떤 자리들을 양보해야 했었지요. 저는 '현실에선 잘 안맞는 사람'이라는 변명을 했었지요. 그 말의 바탕에 깔린 건, 저는 이상적인 상태에선 유능하다는 말씀인데, 산에선 저도 잘난 사람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이렇게 불을 짚힐 때면 눈가에 이슬이 맺히지만 이제는 회한도 거의 다 스러져 재가 되어가니 넉넉한 산의 가슴에 안겨 잊어야 하겠지요.

 

지금 모처럼 시간을 내어 지난 주말의 주요한 사건, 고루포기에서 제가 길을 잘못들어 알바한 경위에 대해 산님들께 보고하려 하니 컴퓨터가 버벅거립니다. 마음은 급한데 초벌을 써서 옮기려고 아래한글 프로그램을 동원해 보지만 이마저 버벅거립니다. 이때 쓸 수 있는 방법은 산행기를 미완성이나마 올려 놓고 차차 늘려가는 방법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난번 썼던 산행기들도 그런 방법에 의해 쓰여졌음을 고백합니다. 처음의 글은 짧고 보잘 것 없으나  저 나름대로 시간 나는대로 늘이고 다듬어 가는 방법이지요. 글을 읽는 분들에겐 감질나는 일이겠습니다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주말(12월 18일) 송백의 제52차 백두대간 닭목령-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구간 산행에 참가하였습니다. 그 산행은 저에게 부끄러운 기억을 하나 더 갖게 했고 저의 산행습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1시간 반 정도의 헤매기(알바)를 했습니다. 고루포기산 정상을 지나서 이삼백미터 임도를 따라가다가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그대로 임도를 따라 내려갔었고, 결과적으로 귀중한 1시간반의 시간을 썼답니다. 다행히 다시 발길을 돌려 무사히 목적한 길을 갈 수 있기는 했습니다.

 

그날의 산행은 어쩐지 초장부터 버벅거렸습니다. 대관령에 일찌감치 도착하여 능경봉을 향하려는데 산불의 우려로 능경봉으로의 산행이 막히는 바람에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산행은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회장님의 판단으로 남쪽 닭목령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하고 다시 버스에 탑승 동해안쪽으로 돌아 닭목재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이왕에 시작한 백두대간 계획대로 전진하고 싶은 마음에 혹 한 구간이라도 잘못될까 아까 아침부터 조바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11시 15분 쯤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어 약간 어려운 산행이 되리라고 저 혼자 생각했으나 의외로 산행은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오늘도 시작은 친구인 BMW와 함께입니다. 그는 동상이 무섭다며 얼굴을 다 가리고 눈만 보이는 두건형 모자를 쓰고 옷을 많이 입었는지 퉁퉁하게 보여서 드라마 토지에서 산돼지를 잡으러 가는 강포수같이 보였습니다. 약간의 거리와 시간을 둘이서 같이 하는데 마음좋은 그가 저에게 먼저 가라는 뜻으로 손을 내젓습니다.

 

'답답하지? 먼저 가라. 어차피 헤어질터인데...'

저는 못 이기는 척하며 그를 떼어놓고 앞으로 진군합니다.

'그래, 먼저 가마. 지가 무슨 이순신장군이라고. 지 산행속도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얘기렸다. 자기는 오늘 너무 무거워 보인다. 산돼지가 포수야 나 잡아보라고 놀리겠다. 얼굴을 가리니까 오페라의 유령같구먼. . .정말 웃겨'

저는 약간 꼬부라진 마음으로 친구를 속으로만 희화하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습니다.

 

11시 15분 쯤 닭목령을 지나서 송백식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가니 20여분 가니 오른쪽으로 목장이 나타났습니다. '71일간의 백두대간'이라는 대간산행기를 쓴 길춘일씨가 몇일 묵었었다는 목장이 어디 쯤일까 궁금해 하며 걷다보니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가게 되고 12시 4분 왕산제1쉼터에 도달하였습니다. 쉼터이지만 걸음을 계속하기로 하고 계속해서 걸어가보니  12시 37분 왕산제2쉼터에 도착하였습니다.

 

산행후 1시간여가 지난 터이라 많은 분들이 도시락을 꺼내 식사를 할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제겐 행동식으로 쵸코렛과 사탕, 캬라멜 그리고 비스켓 약간만 준비해 온지라  걸음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송년기념으로 잘 먹여 주신다는 멘트와 도시락이 필요없다는 말씀도 지난 51차에서 들었기 때문에 저의 간결한 준비는 부끄러울 것은 없었습니다.

 

곧 나오는 된비탈을 남들에게 뒤떨어질세라 10여분 헉헉대며 오르다 보니 시간은 13시 1분,  고루포기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 드시는 분들을 뒤로 두고 온지라 정상엔 저 혼자였습니다. 멀리 전개되는 경치들을 보며 잠시나마 상념에 젖어 보았습니다. 신성한 백두대간의 마루터기 1238.3m 고지 고루포기에 도착한 것입니다. 오늘 산행의 크라이막스이자 가장 신령한 곳인지라 마음 속으로 성호를 그어보았습니다. 한편으론 술술 잘 풀려가는 백두대간 산행에 마음은 붕 뜨는 듯 했습니다. 

'그분의 인도인가? 벌써 여기 이 봉우리에 서게 되다니?'

 

사진을 몇장 찍고 있는데 산우 한 분이 오십니다. 그분의 사진을 그분의 디카로 이정표와 함께 찍어드렸는데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 것 같아 한장을 더 찍어 드리고 임도를 따라 5.4km 떨어져 있다는 능경봉을 향했습니다. 고루포기 정상을 벗어난 시각이 약 1시 5분경, 임도가 아래를 향해  뻗어 있었습니다. 저는 고루포기 산정에서 꺼내 든 사진기의 액정만 들여다 보면서 걸작사진을 남기려는 욕심에 젖어 앞으로 걸어나갔고 연상 셧터를 눌러댔습니다.

 

'여긴 참나무들이 옷을 다 벗었군. 그래 이걸 찍어봐야지. 제목은 뭘로 하지. 그래 나목이야 나목, 박경리선생의 소설제목인데 괜찮군, 아 참! 나무들 비탈에 서다 라고 하면 어떨까? 근데 여긴 비탈이 아닌데...' 

 

임도 양옆에 도열하여 알몸으로 서서 이 꿈많은 사진사의 셧터세례에 인사를 하고 있는 참나무 무리들과 거기 기생하는 겨우살이와 다 썩어가는 고목나무를 카메라에 담으며 저는 낙엽이 날리는 비탈을 개선장군처럼 내려갔습니다. 조금 진행하다가 카메라액정에서 눈을 떼고  길을 살펴보니 철탑이 있는 곳인데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길은 넓은 임도인데 사람들이 오지 않을 뿐더러 표지기도 눈에 띠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로 하고 고루포기산쪽으로 향해서 비탈길을 100여미터쯤 빠르게 올라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송백산우로 보이는 여성 두분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나중에 들어난 사실인데, 들꽃님과 엽기토끼님) 반가운 마음에 길을 물었습니다.

 

'이 길이 맞습니까"

'예. 곧 가면 고루포기산이예요' (저를 반대쪽으로 산행하는 것으로 착각하심)

'그게 아니고 저도 반대로 능경봉으로 가는데요. 길을 잘 못 든 것 같아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걱정하실 것 없어요. 고루포기부터 이 길 밖엔 없었으니까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그래도 미심쩍어서 그분들 뒤로 처져서 산쪽으로 길을 찾아보았으나 다른 길은 없어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뒤를 따라 내려가기로 하고 송전탑까지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 내려갔습니다. 그분들을 따라잡을 무렵 두분이 갑자기 송전탑옆에 앉으시더니 식사를 하고 가자고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싸온 것도 없을 뿐더러 송백에서 준비한 잔치를 상기하며 이렇게 대답하고 길을 서둘렀습니다.

'송백 산행 좇아가려면 식사시간도 아껴야 한대요.'

 

룰루랄라 룰루랄라 길은 내리막이겠다 고속도로같이 넓직한  임도로 낙엽마저 푹신하게 쌓여있고 양쪽에선 나무들이 호위합니다. 저는 한 마리 사슴이 된 기분으로 뛰다싶이 짝퉁 백두대간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백두대간은 다른 산길에 비해 고속도로라더니, BMW 말이 맞구먼. 그런데 BMW는 어딨지? 오늘도 좀 늦겠지. 이런 고속도로라면 자기도 속도좀 내고 나랑 같이 2호차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간다는 생각에 빠져, 내려가는 중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 카메라를 가지고 하는 유희는 계속되었습니다. 눈이 희끗희끗한 곳에 가까이 카메라를 대고 '눈이 많이 온 풍경'을 연출해서 찍어 보거나 옆으로 보이는 산줄기를 찍기도 하며 길을 선도하는 자의 여유같은 걸 즐겼습니다. 조금 더 가니 왼쪽(서쪽)으로 멋진 강(하천)도 하나 보이기에 또 찰칵, '오늘은 산과 바다와 강을 보니까, 삼위일체로 갖추는군'하며 흐뭇하게 푹신한 낙엽길을 따라갔습니다. 저의 삼위일체 신을 위해선 이미 어제 토요 미사를 바치고 오늘 주일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느새 고속도로 같던 임도가 좁은 산길로 변해서 가늘게 이어지는데 길에 쌓인 낙엽의 두께는 더욱 두꺼워집니다. 대간길임을 나타내 주는 것 같은 붉은 리본들이 드문드문 나타나는데 길은 나무가지들에 막히기도 하며 사람다닌 흔적이 없는 채 어느 작은 봉우리 앞(사후 살펴 본 지도상 위치로 독가촌옆 983.4 m봉)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주변에 매달린 리본을 손으로 펴서 살펴보니 대간 리본이 아니고 어느 산악회에서 매어놓은 보통의 산행 리본이었습니다. '백두대간종주' 라는 수식어가 써있지 않은 보통의 리본, 즉, 짝퉁 백두대간 표지기였습니다. 낭패였습니다.

 

배낭을 벗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지도를 살펴보나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흑백으로 된지도로서 등고선에 채색이 안되어 있어 골짜기와 능선이 헷갈리는데다 마음이 급하니 제 위치를 지도에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엔 나침반을 꺼냈습니다. 바늘을 보고 북쪽을 확인하니 저는 지금 북서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지도로 볼 때 능경봉은 고루포기산에서 북동쪽으로 가야 했습니다. 방향이 틀린 걸 보니 옳은 길이 아닌 것은 확실했습니다. 카메라 뒤 액정만 살피며 마스터피스(걸작)를 건지겠다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 여기까지 잘 못 내려 온 것입니다. 백두대간에선 처음 만난 알바였습니다. 제가 있는 지점의 동쪽으로 산밑으로 내려가는 작은 길이 나 있고 그길 끝쯤 약 1-2km 가면 되는 가까운 곳에 마른 흙길이 보이고 건물도 보이는 것이 목장 같이 보였습니다. 그리 가고 싶은 강렬한 유혹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리 빠지면 오늘의 계획은 모두 망가가 될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저리로 내려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행히도 극단의 공포는 덜 수 있었습니다. 하산하여 대간을 포기할 것인가, 잘못 온 길을 돌아가서 대간을 완주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 시각은 13시 45분 산행시작후 약 2시간 반이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예정했던 4시간에 산행을 끝내기는 어차피 틀렸고, 송백에서 준 5시간에 될 수 있을지 계산해 보았습니다. 길을 잘못 든 곳까지 30분안에 간다면 나머지 구간(고루포기-대관령)을 두시간에 가면 되니까 가능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잘못된 길을 얼마의 거리를 얼마의 시간을 왔는지가 가늠이 안되었습니다. 거리계산보다 시간계산이 중요했습니다. 머리가 혼란되어서 계산이 안되지만 일단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눈앞의 표지기를 디카에 담아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그 시각이 13시 47분. 이제부터는 힘을 빼는 오르막길입니다.    

 

내려올 때는 룰루랄라 가볍게 내려오던 길이 이제는 고통의 오르막길로 변했습니다. 나뭇가지가 가로막으며 낙엽이 두껍게 쌓인 소로를 거슬러 강이 보여서 사진을 찍으며 감흥을 노래하던 지점에 덤덤히 다시 서게 되고 송전탑을 몇개인가 지나다 보니 14시 5분쯤 다시 삼거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엔 동쪽으로 빠지는 소로가 아래를 향하고 있고 저를 다시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그길의 입구에는 노란색의 표지기마저 달려있어 진짜 좋은  길처럼 보였습니다. 더 이상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 말고 적당히 타협해서 아래로 오라고 저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표지기를 보니 '산울림산악회'라는 글만 써있고 백두대간 표지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원래의 길을 찾아 남쪽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기로 하고 유혹을 떨친재 비탈길을 힘들게 진행했습니다. 순간의 잘못이 이렇게 힘든 작업으로 돌아올 줄이야 생각도 못했었지요. 길은 왼쪽으로 굽어드는데 더욱 가팔라지고 철사울타리 옆을 지나는데, 아까와는 다른 길인 듯이 생각도 되어 불현듯 공포가 일기도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앞으로 빨리 전진하여 돌아가는 길 뿐입니다. 하늘에선 약간의  눈발도 흩날리며 기상악화도 우려되었습니다. 

 

비탈길을 허둥지둥 올라가려는데 숨은 가쁘고 온몸이 땀에 젖는데 설상가상으로 다리가 아프다 보니 더 이상 못 가고 낙엽 위에 털석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항복입니다. 포기한 사람에게서 풍기는 여유 같은 거 있잖습니까? 고귀한 밋션을 달성하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악한의 총에 맞아 비장하게 쓰러져가는 영화의 주인공이 풍기는 아름다움 같은 거 말입니다. 바로 저였습니다.

 

농담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BMW보다 골인지점에 늦게 간 탓에 1호차마저 놓친다든가, 송년잔치가 끝나서 잔칫상에 오르기로 되어 있는 홍어회와 오삼불고기를 포기해야 한다든가 하는 그런 불행도 아닌 불행은 오히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상투적 아픔이겠지요.

 

다리가 아파서 의지를 거스르며 쉬게 되니 갑자기 겁이 나고 이 난관을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을지 회의도 생기며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비슷한 예를 떠올리며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화악산에서, 삼악산에서, 방장산에서... 여기 저기서 길을 잃고 헤매었습니다. 그때에도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는데 보통땐 다정하던 나무들도 그땐 화가 난듯이 시커멓게 저를 둘러싸서 가두려 하는데 길은 보이지 않고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많이 내려온 시각,  썩은 나뭇가지를 붙잡았다가 가지가 부러지며 앞으로 넘어져 비탈을 구르고 안경이 벗겨져 달아나고 팔에 상처가 날 때도 있었지요.

 

그때마다 그분의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분의 임재를 요청하고 제 의지를 믿지 말아야 했습니다. 철저한 항복입니다. 몇 분인가 지나갔습니다. 저는 불현듯 꿈에서 깬듯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분이 이 순간 정말 저와 함께 한다는 느낌은 확실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진정되고 저는 다시 일어나서 비탈을 올라갈 수 있었고 드디어 아까 두 분이 식사하던 송전탑앞을 지나, 길을 잘 못 들었던 지점에 도달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가 보니 나뭇가지 하나가 임도를 1/3쯤 막고 있고 산길쪽으로 표지기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걸 못보고 임도를 좇아 잘 못 갔던 것이었습니다. 그 시각이 14시 46분, 알바를 시작한 시각이 고루포기 정상을 지난 후 10분 쯤 뒤로 보면 1시 15분쯤이 되고 알바의 총시간은 1시간 31분이 되었습니다.(물론 사후 계산입니다. 현장에선 당황해서 계산이 안되더군요.) 

  

비극은 끝났습니다. 저는 짝퉁 백두대간의 함정에서 가볍게(사실은 무겁게)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누구이겠습니까? '그분이 그토록 사랑하는 하이맛' 아니겠습니까. 그분이 저를 그토록 사랑하사 백두대간으로 인도하시고...그리고 알바하라면 해야죠. 그러나 다시는 하기 싫군요. 그분과 짜고 치는 고스톱일지라도 사양하렵니다. 간만에 너무 혼났어요.

 

이제는 웃어도 되는 시간입니다. 조금 아까 2시 20분에서 30분쯤 사이 심각하게 그분의 임재를 요청했던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지금은 기도의 시간이 아니라 행동의 시간 아니겠습니까? 지금부터 2시간 후인 오후 4시 46분까진 버스에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꼴찌로 도착하여 BMW보다도 늦는 불명예입니다. 아까 20분전 쯤의 생각으론 의미도 없고 관심도 없던 오삼불고기가 다 없어지는 것도 이제는 문제가 됩니다. 걸음을 빨리 해야겠습니다. 바람같이(사실은 보통 속도로) 눈썹을 휘날리며  달렸습니다. (이 자는 어디 쯤 갔을까? 잡히기만 해봐라. 죽이진 않을꺼야. 대신 앞질러 가 버려야지!)

 

그런 결과  14시 50분 능경봉 4.9km 전이라는 이정표가 있는 공터를 지나고, 14시 58분 능경봉 4.3km 전 이정표에 도착하고 송백의 종이 표지에 그려진 화살표를 발견하게 되니 고생이 끝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또한 쓰였으되 011-399-5986 이라고 선명히도 적혀있었습니다.

'그려, 저게 하늘로 가는 직통전화여. 필요하면 걸거야. 지금은 아녀'

 

아까 길을 되돌아 오기 전 회장님께 제가 취할 방도를 상의하기 위해 전화를 걸까 생각도 했었습니다만 안 받으실 것 같고, 전화가 산중에서 통할지도 의심스러워서 그만두었습니다.(앞으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전화는 여느 때의 산행 때처럼 꺼져 있었고 아직 비상시가 아니기에 배낭 뒷주머니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능경봉까지 부지런히 간 다음 늦었다는 보고를 전화로 하기로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여기선 영동고속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였습니다. 제가 늦은 나머지 산님들의 자취는 아직 요원합니다.

 

15시 11분, 제법 온 것 같은데 길은 멀고 능경봉 3.1km전이라는 이정표에 도착합니다. 15시 23분에 만난 이정표는 능경봉까지 2.8km로 좁혀 줍니다. 능경봉이 눈앞에 나타난지도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잡힐 듯 잡힐 듯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뒤로 물러나는 듯 합니다. 힘이 빠져옴을 느끼고 가벼운 사탕나부랭이 밖엔 별로 먹은 것도 없는지라 배도 고파옵니다.

 

15시 27분 산언덕을 오르는데 산불이 났던 곳이 나오고 자작나무를 조림해 놓은 곳에 도달하였습니다. 반가웠습니다. BMW가 보면 아주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그가 쓴 산행기 어딘가에 '자작나무 예찬'이 있던 것이 기억 났습니다. 그는 자작나무를 정말 사랑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금새 저는 심술궂어졌습니다.

 

'자작나무 얘기라. 여긴 BMW에게 맡겨야겠군. 그가 쓴 어느 산행기엔 자작나무 얘기가 나올 터이니 거기서 읽어보지 뭐. 근데 사실 난 시베리아 갔을 때 자기보다 자작나물 더 많이 봤다는 걸 모를거야. 겨우 어린 나무 몇그루 가지고 또 그럴듯하게 쓰겠지. 사람의 감정은 절제하라고 있는 건데. 그래, 감정은 브레이크를 걸 때 멋있는 건데, 나처럼 말야. BMW는 감정에 취하면 액셀을 마구 밟는단 말야. 고물차라 그런가? 자작나무를 또 단군하고 바이칼호수하고 섞어서 팔아 먹을지도 몰라. 감정의 꿀을 잔뜩 발라서 말이야.'

 

다리가 꼬부라져 펴지지 않으니 마음도 휘어지나 봅니다. 15시 38분 제2쉼터라는 팻말이 있는 곳에 도착, 능경봉이 빤히 보이고 구절초(들국화)를 설명해 놓은 설명판도 보였습니다. 더 이상 못 갈 같습니다.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길가에 주저앉아 배낭속의 보온병을 꺼내어 둥글레차를 두 잔 따라서 마셨습니다. 비스켓도 한 조각 우적우적 씹으며 이제는 가까워진 능경봉을 노려 보았습니다.

 

16시 10분 돌로 된 탑에 도착하였는데 무언가 전방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습니다. 멀리 산위로 검은색 하의가 움직이는 것을 순간적으로 힐끗 볼 수 있었는데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BMW니? 불러볼까? 아. 나하고 같이 골인할 사람이 있구나.'

 

안도감에 젖은 채 미완성의 돌탑에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얼른 던져두고 그분을 찾아 능경봉 정상으로 서둘러 올라갔습니다. 이제 다리가 아픈 것도 배고픈 것도 다 잊었습니다. 허위단신 오직 정상을 향하여 전진합니다. 16시 19분 드디어 능경봉이라고 세로로 쓰여진 돌로 된 표석이 반겨주는 1,123.1m의 정상에 섰습니다. 송백에서 오신 한 분이 반가히 맞아주십니다.(용해님) 그분께 제가 늦은 사정을  말씀드리고 이 사실을 주최측에 알려야 하는지를 여쭈어 보니 너무 늦지는 않았으니 전화를 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더 이상의 대화도, 그분이 왜 늦었는지 여쭈어 볼 생각도 못한 채 저는 산아래로 신들린듯이 뛰어내려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이것 저것 정황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보다 불행했던 사람 나와 보란 말이야'하는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며 행동이 제멋대로인 경우 같은 겁니다.

 

16시 44분 광장에 도착하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고 버스안에는 반가운 BMW가 10분전에 도착했다고 하며 반겨주었습니다. 오늘의 산행시간은 5시간 30분 걸렸고 송백에서 준 시간의 10%를 더 썼습니다. 이 앞의 산도깨비님 산행기를 보니 산도깨비님(3시간 5분) 대비 178%, BMW 대비 103% 이로군요. 꼴찌를 한 셈이지요.

 

한 순간의 방심으로 알바를 하게 되었고 그 교훈은 너무나 뼈아팠습니다. 그래도 겨우 제길로 돌아와 분투한 끝에 겨우 말석에서나마 오삼불고기도 대접받고 소주도 큰 잔으로 두잔이나, 막걸리는 한잔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차인 1호차를 타게 되었고 BMW와 저, 둘은 옆자리에 다정하게 앉아서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알바는 BMW를 너무나 즐겁게 해 준 것 같았습니다. 자기보다 제가 늦은 것이 처음인데 물색없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지난 몇번의 산행에  일부러라도 늦어서 그를 즐겁게 해주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였습니다.

'BMW! 나의 오늘 알바는 진짜였어. 자기를 즐겁게 해주려고 자기랑 짜고치는 포카는 아니었단 말이야.'

 

1호차에 타고 보니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회장님 이하 중요한 인물들이 다 모였기에 말석에서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자운영님, 대모산님, 연꽃님, 행복샘물님, 들꽃님, 엽기토끼님, 싹쓸이님, 무이님, 특히 나뭇꾼처럼 순박하게 여겨지는 나뭇꾼님 등등인데 술이 몇 순배 도는지라 저의 목소리는 커지고 기분은 고양되었습니다.(안면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 알바에서 돌아온 것 때문인지 아니면 고수들과 같이 1호차에 타고 산얘기를 나눌수 있어서인지, 제가 무슨 벼슬이나 한 듯한, 전선에서 무사생환한 듯한 기분에 젖기도 하였습니다.

 

버스는 서을을 향해 서쪽으로 달리다가 역시나 원주 쯤에서 버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산님들이 권하는 술이 달고 곁들여지는 이야기가 재미있어 지루하지 않게 정체구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날의 수확이었습니다. BMW는 소주 정도의 술도 독하다고 못하고 맥주만 좋아하기에 제가 휴게소에서 한 깡 사서 갖다 주니 잘 마셨고, 옆에서 조용히 제가 무슨 얘길 하던지 들어줄 태세로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불꺼진 버스의 안은 캄캄한데 창밖도 어둠에 덮혀 있어 그의 잘 생긴 얼굴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스스로도 기분이 좋아진 저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나지막하게 독백 반 대화반의 말투로 이야길 건넸습니다.

 

'그래 비 엠 따블류 대쯔 잍That's it. 이거야, 오늘 모처럼 둘이서 같은 차 타고 오니까 너무 좋다. 우리 꼴찌라고 비웃으면 어때. 꼴찌면 어때. 내가 자길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줄께. 친구끼린 같이 다녀야 하는거야. 우리 앞으로 오늘처럼 늘 같은 차 타고 헤어지지 말자구. 있쟎아 우리 우정은 오늘로 더 끈끈해지는거야. BMW야 고맙다. 나 오늘 기분좋아 조금 마셨다. 응. 오늘 난 자기가 옆에 있어 너무 든든하다. 아까 내가 조난당했다면 자긴 날 구하러 왔을거야. 날 어둠 속에 버려두진 않았을거야. 그렇지? 난 미안해서 전화를 안 했지만 말이야.'

 

창가쪽 자리에 앉아 있는 그이 쪽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저의 눈가에 어느덧 이슬이 맺혔습니다. 친구가 옆에 든든하게 있어 주었기에 저는 그 저녁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진정한 우정은 어둠 속에서도 등불처럼 빛나는 보석이랍니다. 고교시절 시작된 40년의 우정이 극적으로 빛을 발하여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되려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BMW는 제곁에 곰처럼 튼실하게 버티고 앉아서 제 얘길 듣는게 아니라 조용히 자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코를 골지는 않았지만 잠든지가 꽤 되었다는 사실과 그의 얼굴이 결코 제가 어둠속에서 상상하던 만큼 잘 생기진 않았다는 걸 제가 깨닫는데에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끝)

출처 : 송백산악회
글쓴이 : 하이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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