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060806 제5차 백두대간 지리산 반야봉 산행기 : 한 여름밤에 반야용선 타는 꿈을 꾸다

2006. 10. 12. 16:55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산행지 : 백두대간 지리산[성삼재-노고단-임걸령-화개재] 구간

코스 : 성삼재-노고단-돼지령-임걸령-반야봉(1,733.5m)-삼도봉-화개재-뱀사골-반선

산행시간 : 11:05-17:40(6시간 35분)

 

8월 6일 오전 11시52분 성삼재까지 차로 오는 바람에 너무나도 쉽게 해발 1,507m의 노고단에 섰습니다. 물론 진짜노고단은 울타리를 쳐놓아서 갈 수가 없고 제가 선 곳은 신노고단으로 새로운 돌탑이 서있는 곳입니다. 생태계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 원래의 노고단은 출입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허용되고, 새노고단이 산악인들의 휴게 겸 조망포인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신노고단에 서서도 지리산과 두 눈으로 만나는 저의 감흥은 진짜 그대로였습니다. 가까이에는 둥글고도 후덕하게 보이는 반야봉을 위시하여 멀리서 손짓하는 푸른빛의 천왕봉과 또 다른 여러 봉우리들을 조망하며 주변을 둘러있는 연봉들을 감상하며 느끼는 벅찬 감흥은 그대로 진짜였습니다.


어머니 같은, 아버지 같은, 아니면 연인같은 지리산! 노고단에 설 때의 경치와 느낌을 저는 매우 좋아합니다. 멀리서 부르는 푸른 자태의 천왕봉도 반갑지만 가까이서 오라고 손짓하는 어머니같은 반야봉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또한 산에서 시작하여 산으로 이어지는 무수한 산그림자들, 산의 프로필이 중첩되는 광경은 머무는 시간은 짧았지만 그 시간 만큼이나마 저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아침 6시 30분 잠실벌의 역사는 너구리신사의 ‘웰컴’과 함께 시작됩니다. 언제나 웃으며 백화점과 호텔로 대표되는 쇼핑과 레저의 낙원으로 우리를 넌지시 안내하지만 송백인들은 언제나 너구리의 바램과는 아주 다른 자연 속으로 내뺀답니다. 도시의 즐거움에 돈을 쓰라는 너구리의 호소를 등지고 자연속으로만 내달리는 송백님들, 그러면서도 너구리 입상을 만남의 표지로 쓰는데에는 오묘한 모순이 깃들어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은 또 지리산 가는 날입니다. 6번의 지리산산행 중 3번째입니다. 두 대의 버스는 만선이 되고 여느 때처럼 고속도로를 달려 남으로 내닫다가 금산의 인삼랜드휴게소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랜만에 보는 산님들과 인사를 합니다.


웰컴 투 쇼핑월드 : 나를 이정표 삼아 모이는 이들이여, 도시에 거하라. 도시에 파라다이스가 있다.

 

88고속도로의 지리산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내려온 버스는 국도로 지리산으로 갑니다. 뱀사골 입구에서 이끼폭포를 보실 분들을 내려주고 버스는 다시 떠나 행락객들의 차를 헤치고 성삼재로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11시 5분 성삼재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대간길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원래의 대간길은 종석대로 올라가서 코재로 해서 노고단으로 이어지지만 종석대 가는 길은 휴식기간으로 가지 못하기에 아래쪽의 넓은 대로로 노고단까지 산행이 이어집니다.

 

돌이 깔린 이 길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지만 한여름철인지라 걷기에 힘이 듭니다. 10여분을 허위단신 올라가니 곧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비탈길과 만나는 코재에 도착합니다. 잠시 쉬며 저멀리 섬진강과 화엄사를 조망해 보며 겨울과 봄에 걸었던 그길을 떠올려 봅니다. 5월의 봄날 화엄사로 내려가는 그 길은 봄의 신록에 싸여 꽤나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여름철의 뭉게구름 속에 가리워져 신비스러운 기운만이 전해올 뿐입니다.


코재에서 바라본 여름의 화엄계곡 : 맑은 날엔 섬진강도 보여야 하는데...

 

(그길이 끝나는 화엄사 경내로 가면 일곽의 뒤편에 구층암이라는 절집이 있는데 그 건물 뒤의 기둥 두 개는 모과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가지를 다 쳐내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운 특이한 기둥이었습니다.) 


코재에서 발걸음을 다시 옮겨 넓은 길을 따라가다가 우측으로 꺾어 큰길을 버리고 경사진 좁은 돌길을 다시 10여분 올라가니 노고단 대피소가 나오는데 많은 송백인들이 쉬며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취사장에 잠시 들러 물을 마시고 저도 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노고단으로 가는 넓은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12시 8분전 지리산전체를 가장 조망하기 좋은 노고단 위에 서게 된 것입니다. 멀리 천왕봉의 자태는 구름 속에서 보일락 말락하며 눈속을 넘나드는데 오늘 가려는 목적지인 반야봉은 바로 앞에서 손짓합니다. ‘나의 연인 지리산, 그래, 나 또 여기에 서게 된 거야. 지리산의 연가를 소리높이 부를 곳은 바로 여기지.’


노고단에서 줌인해서 바라본 천왕봉(5월 14일 촬영) : 지리산연가를 부르리까?

 


노고단에서 마주보는 반야봉 : 봉우리의 펑퍼짐함이 은총일 줄이야! 

 

연가라 해서 무슨 정해진 노래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혼자서 느끼는 지리산에 대한 그리움을 연가라고 표현해 본 것 뿐입니다. 지리산을 그리는 마음은 나름대로의 운율이 되어 제 마음속에서 홀로 연주될 뿐입니다. 시로 말하면 소위 내재율이라는 것일 겁니다. 남들과 리듬을 맞추고 가사를 맞추는 정해진 노래는 아니지만 저의 지리산에 대한 그리움은 노래가 되고 시가 되어 자연스럽게 제 마음속을 흐른다는 말씀입니다.


신노고단의 정상에 서서 저는 지리산 제2의 봉이자 낙조가 아름답다는 반야봉과 대면하였습니다. 오늘의 주목적지입니다. 반야봉의 반야(般若)란  불교용어로 ‘진리를 깨달은 지혜’라고 한 답니다. 저같이 둔한 자에겐 감이 잘 안오는 어려운 뜻일 뿐입니다.


어쨌든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기리기 위해 그 옛날 신라나 백제의 어느 분이 그런 이름을 지리산 제2봉에 갖다 붙인 것이고 저는 알듯 모를 듯한 그 뜻을 붙잡고 여기 노고단에서 반야봉과 맞서 있습니다. 반야봉에 오른다면 부처님의 도우심으로 거기 오른자에게 밝은 지혜가 생길 거라고 이름붙인 그분은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저도 그렇게만 생각하고 거기에 올라 세상살이를 좀더 지혜롭게 하리라고 조금은 수지맞는 목표를 세워봅니다.


노고단에서 돼지평전과 임걸령으로 가는 길은 순탄한 길인지라 부드러운 흙을 밟는 멋진 산행길이 되었고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는 여유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12시 13분 돼지평전을 지나고 12시 40분 피아골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천왕봉이 22.3km 앞에 있다고 팻말에 적혀 있습니다. 7분후인 12시 47분엔 임걸령에 도착합니다. 자주 주요지점들이 나오게 되니 산행이 지루하지 않고 전진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임걸령샘터엔 시원한 물이 철철 흘러 물을 마시고 수통에 물을 보충하였습니다. 식사시간이 가까운지라 식사를 하려 했으나 앞에 있는 언덕을 올라가서 들자는 산님들의 제안을 따라 1,432 봉을 부지런히 오릅니다.


정상을 지나 드디어 식사장소를 잡았습니다. 장소에 모여 식사하는 대부분의 송백님들의 얼굴과 별명을 알 수 있어 식사시간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거듭되는 산행에 차츰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고 한분 한분 인사를 하며 지내게 되니 제 송백의 역사도 제법 무르익어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반야봉 삼거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30분이었습니다. 여기서 직행하면 삼도봉이고 좌측 언덕으로 올라가면 반야봉 가는 길입니다. 오늘의 주목적지 반야봉을 가기 위해 산님들과 같이 왼쪽 언덕을 올라갑니다. 조금 더 가니 반야봉과 뱀사골이 갈리는 또 하나의 삼거리가 나오는데 반야봉까지는 0.8km라고 적혀 있습니다. 식사를 한 직후인지라 약간은 힘이 들어 쉬엄쉬엄 반야봉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깁니다.


오후 2시 4분 드디어 해발 1,733.5m의 반야봉 정상에 설 수 있었습니다. 오늘 산행의 클라이맥스입니다. 맑은날이면 이곳에서의 전망이 끝내줄 터인데 여름하늘은 시정을 평소의 반 이하로 줄여 놓았습니다. 좋은 경치는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사진도 찍고 경치도 구경하고픈 큰 기대를 품고 오른 반야봉인지라 서성거리며 10여분을 보냈습니다. 반야봉 정상에서도 제 내부는 지리산연가의 불길로 계속 타오릅니다. 오늘의 빈약한 경관은 다음 번에 보상받으면 될 거라고 마음을 위로합니다.


‘그래, 반야! 어느 개인 날 저녁 당신의 품안에서 저쪽 서녘으로 지는 해를 꼭 보고야 말거야. 그래서 서방정토로 떠나가는 반야용선을 놓지진 않을거라구.’


반야봉에 서서 ‘반야’라는 이름을 반추하던 저는 더 나아가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배가 뜻하는 구원 네지는 해탈을 떠올렸습니다. 불교에서 반야용선은 사바세계에서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상상의 배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 배는 중생들에게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지혜를 주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함으로 누구든지 반야용선에 승선하면 지혜를 깨달아 고통 없는 부처님나라로 갈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퍼온 이야기) 또한 그 지혜의 배에는 용이 타고 배를 호위하기에 용선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통도사 극락전 절집 흙벽 위에 그려진 반야용선의 그림(퍼온 사진) : 둥근 오라(Aura)를 머리에 단 사람은 송 보스?

 

현실의 반야봉 정상은 펑퍼짐한데 그 가운데에 케른(돌탑)이 하나 서 있고 회색의 멋없이 커다란 정상석엔 한글 세로글씨로 반야봉이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정상주변은 인근으로의 출입을 막는 밧줄과 그를 지탱하는 말뚝들이 서있고, 산 위엔 바위가 널려 있는 평범한 봉우리였습니다. 반야용선이라는 근사한 이름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는 평범하고 촌스러운 봉우리였습니다.


제가 불교는 잘 모르지만 반야용선이라는 말과 설명에서 느끼는 바는 집단적이고 극적인 구원의 역사가 기독교에서 처럼 불교에서도 추구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배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을 극락으로 데려다 주는 중요한 교통수단입니다. 보통 배는 매우 크기에 혼자 타기엔 너무 넓고 여러 사람을 태워야 제격입니다. 이것이 제게는 집단적인 깨달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한편 어떤 이가 배에 타고 안타고는 매우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배에 타면 구원받고 타지 못하면 사바세계의 오욕속에 묻혀 버리고 맙니다. ‘자전거를 타겠다  비행기를 타고 개인적으로 피안으로 건너가겠다.’이런 의견은 잘 안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극적입니다. 서쪽을 향해 항해하는 배위에는 구원받은 자들만이 가득 타고 있는데 여기저기 좌초된 개인 교통기관들은 피안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바람과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갑니다. 목에 힘주고 반야 배를 호위하는 용의 기세등등한 모습 또한 극적입니다. 보통 때 보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피안으로 출범하는 반야용선을 매어 둔다면 어디가 적당할지 가늠해 보느라 저는 반야봉 정상부근을 한 동안 눈으로 더듬어 보고 머릿속에 그 이미지를 기억해 두려고 애써 보았습니다. 다행히도 정상 옆 구상나무 두어그루가 실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닻줄을 거기 매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오후 2시 15분이 지나고 있고 저는 꿈을 깨어야 했습니다.이제 제 마음속의 화려한 상상을 끝내고 실제 산행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제 마음속에서 항해하던 화려하고 날렵한 반야용선은 사라지고, 초라한 현실속의 저는 그 배에서 내려서 하산길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반야봉 오는 길에 모자를 잃어버려 더욱 초라해진 저는 그걸 찾으러 길을 돌아서 가야했습니다. 아마도 식사후 모자를 놓고 온 듯 한데 식사장소까지 거슬러 내려갈 순 없어도 아랫삼거리까지는 가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부지런히 아랫삼거리까지 가보나 엊그제 새로 산 모자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찾기를 포기하고 직진하여 삼도봉으로 향했습니다.


2시 55분 경남, 전북, 전남 삼도가 만나는 삼도봉에 도착했습니다. 낮은 키의 삼각형 표지가 서있고 이곳에서의 경치가 아주 좋았습니다. 멀리 노고단과 가까이 반야봉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다음 뱀사골과 토끼봉으로 대간길이 갈라지는 화개재로 향했습니다. 


삼도봉에서 바라본 노고단 : 꽤 정리된 모습이 우리 마음을 정리하게 하다.

오후 3시 13분 화개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뱀사골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조금 내려가니 뱀사골 산장이 나오고 거기엔 샘이 콸콸 흐르고 있어 다시 물을 마시고 수통에 물을 보충하였습니다. 이제 계곡길 9km만 가면 반선에 도착하여 오늘의 산행은 끝입니다. 그러나 너덜지대가 있어 산행이 쉽지 않으리라는 이야길 들었기에 갈길이 아직은 먼듯했습니다.


뱀사골 대피소에서 쉬는 송백님들에게서 술까지 한잔 얻어 마시고 3시 20분쯤 너덜길로 나서 하산을 시작하였습니다.  너덜길의 돌들은 습기를 머금고 미끄러운데다가 날씨가 더워 운행은 아주 유쾌한 것은 아니었으나 평상심을 블러 일으키며 애써 즐거운 기분을 내어 봅니다.


조금 내려가니 드디어 쏴아하고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지남 번 한신계곡의 물소리보다는 약한 듯하였고 길도 경사가 덜 급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여기저기 물이 흐르다가 쉬어가는 ‘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뱀사골계곡에는 간장소, 병풍소를 비롯하여 많은 소들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며 내려가기엔 시간이 촉박합니다. 다만 가끔 아름다운 경치를 이름은 모르는 곳이지만 카메라에 담으면서 부지런히 내려갑니다.


한시간 쯤 내려간 4시 26분 스님이 제를 올렸다는 제승대에 도착하였습니다. 바위절벽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내려가는 절경이었습니다. 4시 42분에는 팻말이 있어 이름을 쉽게 알 수 있는 병소에 도착하여 동행한 산님 두분과 사진을 찍으며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병소에 도착하기 전에도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뿌리며 비가 올 듯한 날씨이기는 했으나 이렇게 본격적으로 쏟아질 줄 짐작은 못했었습니다.


제승대 ; 물의 유혹, 통로의 유혹

 

후두둑거리며 쏟아지는 소낙비에 배낭커버를 씌우고 얼른 비옷을 꺼내어 입었습니다. 그후론 빗속의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변은 컴컴해지며 비가 들이치는데 무릎아래는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으며 운행을 계속하였습니다. 얼마나 더 가야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에 갈 수 있을지 가늠이 잘 안되어 무조건 쉬지도 않고 빗속을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비와 대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비옷도 벗어버리고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운행하고 싶은 유혹도 있을 정도로 빗줄기는 시원하게 내립니다만 배낭속의 카메라와 옷이 젖을까봐 비옷을 벗지는 못했습니다. 주위의 산님 중 두어 분은 비옷도 없이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가시는데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드디어 빗물이 신발속까지 다 들어왔습니다.


계속 우중에서도 용케 길을 따라 진행하지만 목적지인 매표소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다 빗줄기는 더 굵어지니까 이제 길에도 물이 흐르고 개울의 물은 점차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5시 반쯤 드디어 매표소와 마을이 나타나고 아스팔트 길로 나왔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주차장이었고 송백호가 기다리는 본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40분경이었습니다.


앗, 비가 내려 어둑어둑한 주차장에는 반야용선이 두 척이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이 그날, 마지막 날인가? 벌써.’


그러나 그것은 배가 아니고 송백 1, 2호 버스였습니다. 2호차는 제가 도착하자마자 곧 떠났습니다만 맛있는 닭죽과 중요한 분들을 태우고 갈 1호차는 저를 기다려 줍니다. 그래서 오후 7시가 좀 안되어 1호차도 서울로 떠나며 오늘 산행은 또 무사히 끝나게 되었습니다.


(한 여름밤의 꿈)

그날밤 꿈을 꾸었습니다. 세상의 마지막날 쯤이라고 합니다. 비바람이 치고 큰 홍수가 나서 반야봉꼭대기까지 물이 차오르는데 송백호라고 명명된 반야용선 한 척이 불을 밝힌 채 반야봉 위에 정박해 있고 진리를 깨달은 송백식구들이 줄을 서서 배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물이 차올랐지만 반야봉의 정상이 펑퍼짐하여 배를 대고 사람을 태우기에 조금은 나았습니다.

 

다 승선하면 저쪽 바닷가라는 피안으로 떠난다 합니다. 저도 서둘러서 대열의 끝에 서서 배타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다 있었는데 금북정맥을 뛰고 있는 BMW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텔레파시 전화를 쳤습니다. '자기. 지금 빨리 타고 극락으로 떠나야 돼. 이게 마지막 배이고 다들 기다린다고.'

 

'금북정맥 말고 극락이 또 있다고? 여기가 극락이야. 난 남을테야. 안녕!'하고 답하며 그가 텔레파시 전화를 꺼버립니다. 그 순간 구상나무줄기에 매어있던 닻줄이 보스의 명령에 따라 나뭇꾼의 손으로 풀어집니다. 크고도 날렵한 송백용선은 바닷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서서히 서쪽을 향했습니다. 배가 제몸을 추스리며 갈길을 시작하는데 저는 소스라쳐서 꿈을 깼습니다.

 

'하마부인! 하마부인은?'

 

(후기)

이렇게 그날 일어난 일 전체를 서술해 가면서 노고단과 반야봉에서의 단상을 약간 길게 써 보았더니 너무 길고도 지루한 산행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진도 용량제한에 줄이고 말았습니다. 읽어준 분들에겐 죄송합니다. 사실은 반야용선을 타고 피안(극락)으로 가는 불교의 구원관을 주제로 해서 좀더 재미있게 써보고 싶었습니다만 역불급이었습니다. 우선은 산행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서 시간의 순서대로 산행을 기록하느라 많이 힘이 빠졌고 반야봉을 중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상상해 보는 허구의 소설적 이야기는 사실위주의 기록에 밀리고 말았습니다. 여느 때처럼 아쉬움이 남습니다.

출처 : 송백산악회
글쓴이 : 하이맛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