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060917 제5차 백두대간 지리산 만복대구간 : 하산길에 道 내놓으라고 떼를 쓰다.(사진 15매 포함)

2006. 10. 12. 16:57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일자 및 산행지 : 2006년 9월 17일 백두대간 지리산 만복대, 고리봉


코스 : 성삼재-작은고리봉-묘봉치-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고기리-노치마을


산행시간 : 11:52 - 16:45(4시간 53분)

 

'가을날이란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 것이냐?'하고 외쳐야 할 때입니다. 코발트 빛깔 높은 하늘 밑에 조금 지나면 적갈색의 단풍으로 갈아입을 참나무 잎사귀들이 긴장하며 햇빛에 반짝이고, 마지막 푸르름을 뽐내는 소나무들은 선선한 바람에 점잖게 흔들리며 도열하고...... 이런 날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9월 17일은 철늦은 태풍 '산산'때문에 험상궂게 망가져 가는 가을날이었습니다. 이 날 송백식구들과 같이 지리산 만복대에 올랐습니다. 혼자라면 포기했을지도 모르지만 팀이기에 가능했던, 폭풍우를 뚫고 감행한 용기있는 산행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론 힘이 좀 들었지만 산행을 무사히 끝냈습니다.


태풍 ‘산산’의 예고속에 ‘오늘 갈 것이냐 말 것이냐?’로 고민도 했습니다만 ‘우천불구 산행실시’라는 송백의 ‘예외 불인정’의 강한 선언(?)앞에 여느 때처럼 가볍게 설득 당한 저는 잠실행 지하철에 앉아서 졸고 있었습니다.


철로를 구르는 쇠바퀴의 굉음에 소스라치게 깨어보니 다행히 잠실역입니다. 잘못했다간 신천역까지 한 정거장 더 갈 뻔했습니다. 잠실벌의 빌딩군을 덮은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오늘도 피와 땀과 눈물만을 바쳐야 하는 어려운 산행을 예감했음인지 2호차엔 자리가 제법 비었습니다.


상일동까지 가면서 송백님들을 몇 분 더 채우지만 자리는 만선에서 10자리도 넘게 빠지는 듯 했습니다. 우리는 예전의 그 길로 다시 지리산을 향합니다. 늘 가던 인삼랜드가 아닌 죽전휴게소에서 9시쯤 휴식을 취합니다. 저는 오늘의 점심으로 호두과자를 사고 몇몇 분과 반가이 인사를 합니다. 오랜만에 뵈는 천사님, 어울마당과 카우보이님, 들꽃님, 언제나 명랑한 들국화 대장님.(반가웠습니다.)

 

거기다가 지난 번 다리 때문에 고생하신 대모산님, 소리내서 흐르는 물소리님, 안개와 비를 또 몰고 오신 안개 비님, 나무하러 가시는 나뭇꾼님. 열매찾아 산을 헤매는 블루베리님들과 이름은 모르지만 자주 보아서 얼굴을 익힌 분들과 인사하며 날씨 때문에 무거웠던 제 마음은 차차 밝아 옵니다.

  

더불어 무이님과 MJ님, 거기에다 평화님, 삼총사처럼 의자에 앉아 계시기에 닥아가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회장님과는 목례로 인사합니다. 모처로 전화를 하시던 회장님 말씀이 오늘 산행은 예정대로 가능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적이 마음이 놓였습니다. 오늘로서 지리산 산행에 화이날 터치를 가하고 작은 매듭을 지으며 지리산을 하산하고픈 심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오늘 지리산 입산이 안 되고 다음에 갈 지기재->백학산->회룡재 구간을 가게 된다면 지리산을 멋지게 마무리한다는 감정이 훼손될 뿐 아니라 마음의 준비없이 백학산을 만나서 어정쩡하게 대간의 한 구간을 끝내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비는 약하게 이슬비가 내릴 뿐이어서 우리는 예정대로 함양 교차로에서 우회하여 지리산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나가고 뱀사골의 입구인 반선을 지나 성삼재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밖에는 부슬비가 오기에 산행준비를 하기 위해 비닐로 등산화를 덮고 우의를 꺼내었습니다. 호두과자를 꺼내서 이른 점심으로 대신해 봅니다.


오늘따라 성묘객이 많아서인지 고속도로에서 교통이 막혀 약간은 늦은 시각인 오전 11시 52분에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온 버스가 성삼재 조금 못 미쳐 산님들을 토해 냅니다. 바로 옆의 울타리의 틈새를 지나 작은 고리봉 쪽으로 우의를 입은 산님들이 빠르게 사라집니다.

 

성삼재 못미쳐 버스가 서고 산행이 시작된다. 사진의 앞쪽으로 산행이 시작되며, 나무 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성삼재 휴게소입니다.

 

저는 커다란 카메라를 가죽 케이스에 넣어 목에 건 다음 우의 속에 여민 채 운행을 시작합니다. 작은 카메라는 먼 곳에 두어 사정상 쓸 수가 없기에 큰 놈을 가져왔는데 이게 무게(알맹이만 660g)도 만만치 않고 비에 젖지 않도록 우의 속에 넣은 채 걸으려니 덜렁거리며 흔들려서 운행에 제법 지장을 줍니다. 그러나 사진을 촬영하여 기록을 수집하고 나중에 도착과 출발시각을 사진의 데이터에서 추출해 온 저이기에 이 방법을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여름 일요대간의 대부분은 지리산 종주에 쓰인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달 수로 세 달,  오늘이 지리산 대간길을 밟는 여섯 번 째입니다. 천왕봉에서 세석을 거쳐 벽소령 연하천으로 해서 노고단까지 그리고 성삼재까지 대간길을 끈질기게 연결시켰고 덤으로 웅석봉까지 갔으니 오늘 쯤은 지리산을 하산하며 작은 매듭이라도 지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지리산에 오는 사람은 지혜로워져서 산을 내려간다는 말에서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합니다. 신라 때에 지리산에 올랐다는 최치원같은 이는 이미 지혜로운 이였을 것이니 지리산에 왔다가 지혜말고 무엇을 얻어 가셨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저같은 무지한 자가 송회장님의 안내로 열심히 지리산을 올랐으니 오늘따라 한가지 깨달음은 얻지 않을까 하는 보상심리가 발동하나 봅니다.


‘그래, 오늘 지리산에서 도(道)를 하나 받아 가는 거야. 이렇게 고생하는데 도 하나 안 주실라고?’


‘도만 받으면 난 수지맞는 거지!’


태풍의 영향권 속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비에 젖은 길은 질고 미끄러웠습니다. 눈앞의 난관을 돌파하느라 고상한 도는 멀고 여차하면 저를 넘어뜨릴 진흙탕은 가까웠습니다.  작은 고리봉은 길옆으로 우회해서 갔다와야 한다는데 안경에 서리는 김을 닦아가며 앞사람을 좇다 보니 갈 생각도 못한 채 작은 고리봉은 통과해 버린 것 같습니다. 고리봉을 넘었으니 다음 목표는 묘봉치입니다. 내려가는 길이 급경사여서 아주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바람은 무섭게 불고 빗속엔 우박까지 섞여서 얼굴을 때립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힘든 산행입니다. 먼저 첫 번 째 미끄러짐이 옵니다. 진흙에 미끄러져 바지와 우의를 버립니다. 길섶의 풀을 뜯어 대강 씻어내고 전진합니다.


어디 쯤인가 다시 한번 미끄러져 넘어지는데 오른손에 쥔 스틱을 세게 짚는데 그게 휘어지면서 부러져 버립니다. 그 결에 다시 뒤로 넘어져 옷을 더 버립니다.(그후 산행 내내 여러 번의 넘어짐이 더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선물로 받았던 스틱인데 허무하게 부러지고 마니 아까웠습니다. 저는 스틱을 하나만 사용했었는데 이번 것은 외제라서 튼튼할 줄 알았는데 국산처럼 약했습니다.(전 이미 국산 스틱을 하나 넘어지면서 부러뜨렸습니다.)   


작은 고개를 몇 개 넘으니 12시 57분 산행시작 후 약 한 시간 걸려서 헬기장이 있고 평평한 묘봉치에 도착했습니다. 성삼재에서 3.6km 지점입니다. 맑은 날이면 쉬어가기가 아주 좋은 넓직한 곳인데 비바람 속에 신산하여 잠시만 쉬며 빗속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몇 장 찍은 후 다음 목표인 만복대를 향합니다.

묘봉치

 

묘봉치에서 만복대 쪽으로 가야 함.

 

만복대는 오늘 산행에서 가장 높은 지점으로 해발 1,433m나 되는 곳입니다. 만복대의 뜻이 무언지 한자로 쓴 것을 보지 못했지만 만복이라는 말에서 ‘만가지 복’을 비는 곳이 아닐까  제 나름대로 편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곳에 빨리 가서 복을 비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습니다. 늘상 하던 기도를 오늘의 최고지점에서 그분께 올릴 수 있다면 작은 행복이 될 것 같았기에 걸음을 2.2km 앞쪽의 만복대로 향했습니다.


동쪽에서 센 바람이 몰려 옵니다. 가는 방향의 오른 편입니다. 만복대로 오르는 이 근처가 큰 나무가 없고 관목들과 풀로 낮게 깔린 것을 보니 바람이 센 곳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만 오늘의 바람은 한 술 더 뜨는 것처럼 질기고 세게 불어 옵니다. 나무들과 풀들은 세찬 바람의 공격에 징징 우는 듯 합니다. 제 비옷이 펄럭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삼라만상이 다 바람에 따라 울고 있습니다. 제 몸이 제법 무겁고 비대해서 바람에 날아갈 염려는 없으니 뚱뚱하길 오히려 다행이라는 엉뚱한 발상까지 나올 정도로 바람은 세차고 가끔은 저를 거의 넘어뜨릴 뻔 하고 저는 기우뚱거렸습니다.  


오늘은 제 나름대로의 상념을 즐긴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산님들과 일부러 떨어져서 혼자 산행을 즐깁니다. 점심을 간단히 호두과자로 버스에서 해결했기에 식사중인 산님들을 제끼고 점심시간도 아끼며 홀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너무 했나요?)


사실 홀로 산행하면서 확보한 귀중한 시간을 저는 여러 가지 용도로 이용합니다. 우선은 산밑에서 일어난 일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 해결책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다음으론 제 기억에 있었던 아름다운 과거로 돌아가 보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그밖에도 산행하면서 수많은 공상과 몽상과 생각 속을 헤매이는데 아무리 산행시간이 길어도 생각하고 느낄 거리(재료)는 끝나는 법이 없었습니다.

 

 

만복대를 1km 쯤 남겨 놓은 산행길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세찬 바람에 우박이 섞인 비가 우측 앞쪽에서 들이치고 걸음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점차 바람이 셀 것 같은 높은 쪽으로 계속 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약간의 공포마저도 느낄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앞에 푸른 우의를 입은 산님과 앞서거니 뒤서가니 정상에 오릅니다. 비닐을 대 보았지만 신발 속은 어느 때부터인지 이미 빗물로 질척거립니다. 짧은 우의로 가리지 못한 아랫도리는 빗물에 젖고, 윗도리는 몸에서 나온 땀에 젖어 온몸이 다 젖은 상태인데 바람은 비옷속을 거세게 파고 듭니다.


푸른 우의를 입은 산님(방울아찌님으로 확인됨) -성자의 순례?

 

 

얼핏 원망하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오늘같은 날, 산행은 미친 짓이다.’


그러나 오후 1시 45분 그분께 기도드릴 장소에 도달하였기에 제 마음은 일단 차분해졌습니다. 세찬 바람도 조금은 잦아든 듯이 느껴졌습니다.

만복대 정상의 정상석

 

만복대 정상의 케른

 

누군가의 소원들이 돌로 쌓여 케른이 되어 있고 그옆에 세워진 이정표의 막대기가 흡사 십자가처럼 서있습니다. 제가 정상에서  조금 북쪽으로  비켜서서 윗쪽을 다시 보니 이정표는 나무십자가로 보이고 케른은 마치 무덤처럼 보여서 어둑어둑한 만복대 정상에 성스러운 장소가  하나 저를 위해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도 여겨졌습니다. 저는 성호를 긋고 그분께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사실 어제 토요 특전미사도 빼먹었었기에 약간은 캥기는 바가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장소로 - 만복대 정상

 

‘오늘 미사에 참석 못한 것 양해해 주시옵고. 저와 가족들 살펴 주시옵고, 오늘 송백 산행 무사히 끝내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남북통일과 세계평화. 마지막으로 제 친구에게도 복을 주옵소서.’


여느 때처럼 기도할 것은 많고 간구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짙게 덮힌 구름 속 어디 쯤에서 그분이 기도를 들으실 거라고 제 편한대로 생각했습니다. 기도 후 저는 사진을 여러 컷 찍고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풀과 나무가 인상적인지라 동영상 촬영도 몇 개 시도해 봅니다.


오늘의 최고봉에 오른지라 어려운 시간은 지난 것 같습니다만 옷과 신발이 젖어있어 칩칩한 기분을 떨치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래도 오길 잘했다고 마음을 달래 봅니다.

‘이렇게 험상궂은 날 좋은 경험이쟎아, 그렇지?’


이제 다음 목표인 정령치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내려가는 길이기에 힘은 덜 들지만 길이 질고 미끄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약간은 지루해지는가 했는데 오후 2시 37분 드디어 정령치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시작 후 2시간 45분이 지난 시각입니다.


만복대->정령치 사이의 진흙탕길

 

정령치 휴게소

 

장실에 잠시 들러 용변을 본 후, 휴게소안으로 들어가니 송회장께서 무전기를 들고 산행지휘를 하고 계십니다. 잠시 쉬고 요기는 포기한 채 갈길을 빨리 가기 위해 비가 내리는 휴게소 바깥으로 나옵니다. 노치마을에 갔다가 2호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았습니다.

 

다시 휴게소 윗편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오른쪽에서 큰고리봉길을 찾았습니다. 조금 전 정령치휴게소에 도착할 때 휴게소앞을 통과하는 아스팔트길을 보는 순간 차를 타고 그냥 고기리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었습니다만, 지금은 가야할 길이라면 완주해야 한다는 모범생적 생각에 우측 산길로 접어 듭니다. 다음 목표는 1.6km 떨어지고 높이가 1,304.5m인 큰고리봉입니다.


숲길을 지나고 돌길을 지나며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데 고리봉에 접근하는 마지막 길은 바윗길이었습니다. 바위위로 바람이 다시 한번 위력을 보여주는데 저의 몸은 다시 한번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겁을 느낄 정도로 세차게 바람이 불어 댔습니다. 시각은 정각 오후 3시였습니다. 저는 사진 몇 컷을 얼른 찍고 동영상으로 바람의 움직임과 소리를 기록한 다음 좌측으로 90도 회전하여 산그늘 속으로 잽싸게 몸을 피했습니다. 산정의 아래쪽으로도 바람소리는 (잡아 먹을 듯이) 세차게 윙윙거렸지만 몸에 부딪는 바람은 한결 약했습니다. 이제 센바람에 의한 고생은 끝이라는 예고였습니다.


큰고리봉 정상

 

이제부턴 쳐올라가는 길이 없이 진짜로 하산하는 길입니다. 위대한 산에서의 하산은 클라이막스를 지나 대단원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엔 가파른 길인지라 제법 미끄러워 바위위로 매어 있는 밧줄을 잡기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경사가 완만해지고 몸서리쳐지던 검은색 진흙탕도 조금은 갈색의 마사토로 변해 갑니다. 좋은 조짐이었습니다.


이제 산행길도 많이 쉬워진 터이라 제마음은 제법 여유를 갖고 좀더 고상한 생각과 좀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었습니다. 생각을 깨는 사건 하나는 송백의 아마조네스들 몇분이 저를 추월하여 횡하니 언덕 아래로 내려간 사건 뿐이었습니다. 제가 늦는 것은 목에 매달려 품안에 간직한 카메라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어 봅니다.(그날의 이미지 수집은 스틸사진 76장에 동영상 5개였습니다. 날이 좋은 평소보다는 갯수가 적은 편입니다.)


이제 길은 점점 좋아집니다. 진흙길은 거의 사라지고 솔잎이 깔린 우아한 길로 변했는데  소나무들이 많이 눈에 뜨이기 시작합니다. 산행안내시 송회장님께서 여기 길이 카펫같은 길이라고 설명하셨는데 비에 젖어 약간 미끄럽지만 않았다면 정말로 맞는 말이 될 뻔 했습니다. 사실 이 길은 보통 때라면 백두대간의 가장 걷기 좋은 길들 중의 하나가 됨직 했습니다.


소나무로 싸여진 길옆으로 묘들이 점점이 나타나서 좋은 길임을 다시 한 번 암시합니다. 저는 고기리를 1lm 쯤 앞둔 어디 쯤에선가 무언가 달라진 풍경에 취해 우뚝 섰습니다. 나지막한 언덕위로 키큰 소나무들이 비에 젖어 검붉은 빛으로 엉성하게 숲을 이루며 서있고 땅속에서 비죽이 내밀은 검은 바위 하나, 그 건너편엔 묘등이 자리잡은 그런 동산을 마주한 것이었습니다. 바닥엔 멋대로 자라던 풀들이 비에 젖어 쓰러져 있습니다. 높고 고고하던 지리산이 평범한 동네산으로 변모하는 지점에 도착한 것입니다. 제게는 향수를 자아내는 참으로 정겨운 풍경이었습니다.


고향언덕을 생각케 하는 고기리 1km 전 쯤의 풍경

 

불현듯 어렸을 적 고향의 뒷동산에 올라온 듯이 느껴졌습니다. 준수하게 높은 산은 없고 큰 들판의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소나무 동산들이 옹기옹기 모여 있던 곳, 제 고향마을이었습니다. 비산비야의 소나무밭, 제 어릴 적의 원풍경입니다. 거기서 동무들과 어울려 울고 웃었던 그 곳... 저는 망연히 서서 동무들을 불러 봅니다. 온화한 경치를 지닌 곳이지만 땅도 좁고 인물도 없다하여 척박했던 그 고장, 저와 동무들은 야심을 품고 다 서울로 떠났었고 극소수를 제외하곤 아직 저도,그 들도, 고향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사실은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거기 누구 없니? 나 규성이야. 우스꽝스런 서양이름 하이맛이 아니고, 나, 뒷동산에 소나무랑 참나무랑 많던 마을, '새나리' 살던 ‘규성’이란 말이야.”

 

바람이 실어오는 소리는 아직 그들의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빈 바람소리 뿐이었습니다. 다시 외치는 제 목소리는 바람과 어울려 울먹거리고 눈에선 빗물과 눈물이 섞여서 흘러 내립니다.(지리산! 너, 나 슬프게 할래?) 


‘거기 정말 누구 없니? 백두대간 길같은 거창한 얘기 하지 말고, 우리동네 뒷동산에서 전쟁놀이하고 콩사리하던 그런 얘기, 송화 따먹다가 선생님한테 회초리 맞은 이야기 할 그런 누구 없니?’


한참을 서서 저는 소나무숲에 부는 바람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여 봅니다. 이번엔 옛 동무들의 목소리가 그속에서 들려올 듯 합니다. 그러자 드디어 많은 이야기들이 바람소리 속에 두런두런 들려왔고 속 시원한 얘기는 적고 모두 애처럽고 슬픈 이야기들 뿐이었습니다.


지리산의 하산길은 이렇게 고향의 산천을 생각게 했고 이제는 소통이 안되고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 생각에 조금은 슬펐습니다.(그들 중엔 죽은 이도 벌써 여럿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들을 지리산에 부쳐서 위로받으려는 심사의 발로였나 봅니다.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이는 그 슬픔이 사실은 저를 조금은 진실되게 하는 것만 같습니다. 위대한 산에 기대어 티없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조금은 닥아가니까 그렇습니다.


소나무 숲 아래에서 문득 꿈에서 깨어난 저는 고기리를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떼어 놓았습니다. 언덕을 내려가니 아스팔트 지방도가 나오고 송백 1,2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확한 시각은 오후 3시 59분, 대강으론 오후 4시였습니다.  산행시작 후 정확히 4시간 7분이 걸렸고 물 한모금, 음식 한 입 공급하지 않고 오직 걷고 사진찍는데만 바친 어쩌면 저의 고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위대한 산에 바치는 단식이었나 봅니다.

 

저는 욕심스럽게도 2호차의 뒤편에 배낭을 던져 둔 채, 카메라위에 비옷을 입은 상태로 부지런하게도 노치마을을 향했습니다. 청승맞은 비는 계속 내립니다. 조금 가니 멀리 노치마을이 보이고 지난 봄 산행을 시작하던 언덕의 커다란 5-6그루의 잘 생긴 소나무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길을 가다 보니 송학모텔이라는 간판이 길옆에 서있고 왼편으로(서쪽편으로) 길에서 약간 떨어져서 3층의 핑크빛 모텔이 서 있었습니다. 모텔을 발견한 저는 매우 반가웠습니다. 2년전인가 BMW가 백두대간을 종주하다가 묵었던 모텔이름이 송학이라고 그의 산행기에 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지순례는 아니지만 그가 간 길을 뒤따라 가다 보니 여지없이 그가 지난 곳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송백 모텔

 

이제 가늘게 내리는 빗속을 바삐 걸어 노치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때의 플래카드 길게 늘여 출정을 기념하던 그리운 언덕과 그위에 잘 자란 소나무들과 기념으로 한모금씩 머금어 보던 노치샘, 그리고 마을에서 자랑하던 백두대간 기념석물과 돌로 된 지도모형, 사진을 잘 찍으면 그림엽서에 나올 풍경들인데 모두 다 잘 있었습니다.

플래카드 길게 늘여 기념사진 찍으며 대간 시작하던 언덕의 푸르른 솔

 

노치샘 - 이상 무!

 

백두대간 기념 조형물

 

이제 노치마을을 떠나 U턴하여 버스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멀리 제가 지나온 지리산 능선이 정면에 있지만 그 자태는 구름에 싸여 제게 보여주질 않습니다.


지리산을 하산하는 지금, 힘들었던 산행을 여러 번 했었기에 무슨 상이라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무언가 하나, 사실은 ‘도’가 받고 싶었습니다. (범생이들에게 옹냐옹냐하면 꼭 이런 요구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지리산을 향해 외쳐 보았습니다.

 

‘산신령님, 도 왜 안 줍니까? 도 도, 도 도...’(경상도 말로 하면 '도 도')


그때 반야봉 방향의 구름 속에서 지리산 산신령께서 저에게 무언가 길쭉한 것을 던지며 외치는 걸 저는 보고 들었습니다.

 

‘자, 여기 도 간다. 도 받아라.’


저는 오른손을 뻗어 길쭉한 도의 두루마리를 받았습니다. 오십견에서 회복 중인 오른 쪽 어깨가 움찔합니다.


순식간, 얼결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오른팔의 통증을 참아내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 손에는 3분의 2쯤 길이에서 부러져 약간은 구부러진 아까의 티타늄 스틱이 들려 있었습니다. 지팡이 위에 쓰여있는 ‘Made in Austria’라는 꼬부랑 글씨가 부끄러운 듯이 저를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후기)

오후 4시 45분 버스에 도착하니 2호차가 떠나려는 참이었습니다. 제 배낭이 점령한 자리는  아직 제 것이었습니다. 저는 식사도 과감히 생략하고 빨리 갈 욕심으로 2호차를 고수했습니다. 식사니 알탕이니, 월요일 아침이 바쁜 제게는 배부른 노름인지라 웃옷만 간신히 갈아입고 질척거리는 신발 그대로 2호차 버스를 탔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불꺼진 버스 속에서 6시간 동안 갇힌 저는 배낭속에서 꺼낸 비상식을 씹으며 (수통의 물도 마시며) 만복대 산행을 반추하며 지금 보여드리는 산행기를 어느 정도 구상할 수 있었습니다. 동굴에서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던 단군의 어머니인 곰처럼 긴 시간이었나 봅니다. 그 시간 동안을 잘근잘근 씹고 또 씹었기에 오늘의 글이 탄생했나 봅니다.


6시간 동안 홀로 앉아서 도를 닦는 지루한 상경시간, 불꺼진 창가에서 굴리고 굴리던 생각들도 잦아들고 오늘의 어려웠던 산행을 생각하니 불현 듯 그분께 시비를 걸고 싶어집니다.


‘오늘 산행은 미친 짓이었지요?’

 

그분의 냉정하지만 균형잡힌 시각,

‘넌 속으로는 산행을 즐기고 있었어.

출처 : 송백산악회
글쓴이 : 하이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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