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 12. 17:00ㆍ명산산행기 Famous mountains
산행지 : 월악산 국립공원 만수봉(983.2m), 포암산(961.7m)
코스 : 만수휴게소-만수교-820봉-용암봉-만수봉-마골치-관음재-
포암산-하늘재-미륵사지-주차장
산행시간 : 10:15-16:30(6시간 15분)
기다란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의 한 가운데입니다. 7월 30일 일요일에 송백은 두 개의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호남정맥 종주와 명산탐방의 둘입니다. 저는 명산탐방에 지원하여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의 월악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만수봉을 등정하기로 하였습니다. 명산탐방에 힘쓰고 있는 BMW에 같이 가자고 전화해보니 금북정맥을 계속 쪼아야 하기에 금주는 명산가기가 불가하다고 합니다.
기다란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의 한 가운데입니다. 7월 30일 일요일에 송백은 두 개의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호남정맥 종주와 명산탐방의 둘입니다. 저는 명산탐방에 지원하여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의 월악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만수봉을 등정하기로 하였습니다. 명산탐방에 힘쓰고 있는 BMW에 같이 가자고 전화해보니 금북정맥을 계속 쪼아야 하기에 금주는 명산가기가 불가하다고 합니다.
대간과 정맥 그리고 명산 산행 모두 평범하게 보이는 하루의 산행이지만 매번하는 산행이련만 하나 하나가 모두 송백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나 봅니다. 그것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서정주님의 시 '국화옆에서'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노래합니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과정의 어려움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7월 30일 송백의 명산산행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소쩍새 한 마리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송백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요구되었고 의지와 결단이 시험당하는 하루였습니다.
오랜만에 잠실에 나가니 반가운 얼굴들의 님들이 반겨줍니다. 어제까지 내리던 비는 그치고 오늘은 비가 그만 내린다고 하여 다행인데 하늘은 찌푸려 있었습니다. 버스는 언제나처럼 잠실벌을 떠나 남쪽으로 내달리다가 하남 만남의 광장과 충주휴게소를 들러 월악산 국립공원의 팔랑소휴게소에 도착한 것이 10시쯤이었습니다. 도착 전 버스 안에서 김대장 말씀이 있었는데 어쩌면 계곡물이 불게 되면 예정된 코스인 팔랑소-만수봉-관음재-만수골의 산행을 예비해 놓은 능선코스로 바꾸어야 할지 모른다고 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우측편으로 산행을 하려는데 역시 이곳부터 산행불가라고 현수막이 붙어있어 제지가 됩니다.
이제 예비코스를 타는 쪽으로 결정됩니다. 능선코스를 타면 원래대로 만수골계곡의 계류룰 감상하며 내려오는 산행은 못 하게 되겠으나 백두대간에 있는 포암산과 하늘재를 덤으로 가게 되어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버스에 다시 올라타고 약간 남쪽의 만수휴게소에 내려 다시 산행을 시작하는데 그 시각이 10시 15분 쯤이었습니다. 우선 멀리 산중턱에서 폭포가 반겨줍니다. 한장 찰칵...
중턱에서 손짓하는 폭포
비는 내리지 않으나 구름이 낀 약간은 무더운 날씨에 초장부터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가느라 구슬땀을 흘립니다. 산님들의 뒤를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10시 42분 지나온 만수교까지 0.9km, 앞으로 갈 만수봉까지는 2,0km라고 적혀있는 이정표 앞에 섭니다. 그 앞에는 키가 작은 위치표시말뚝(월악 06-12)도 서 있었습니다.
경사가 약간은 느슨해지는가 했더니 다시 급해지고 숨이 가빠집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며 다리가 안 떨어지는지라 배낭을 내려놓고 물병을 꺼내 물을 마시며 잠시 쉽니다. 산주변엔 구름이 끼어 좋은 경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산님들의 뒤를 좇아 힘들게 올라가니 11시 38분 해발 892m의 용암봉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용암봉이라는 네모진 팻말이 소나무에 걸려 있습니다. 오는 길에 용암봉에 관한 표시는 전혀 없는지라 용암봉을 찾으려는 분들은 용암봉 오기전 아래쪽 약 50-60m 밑에 있는 용암봉과 만수봉의 갈림길(표시없음)에서 능선을 따라 올라와야만 했습니다. 실제로 여러 산님들이 우측길로 가는 바람에 용암봉을 보지 못하고 만수봉으로 직행하였습니다.
용암봉이라는 이름은 멋이 있었지만 봉우리의 생김새로 볼 때 그 연유를 붙이기에 미흡하였고 다만 봉우리 약간 밑에 바위가 있기는 하였습니다. 만수봉으로 가는 길은 봉우리를 약간 내려서서 조금은 평탄해지다가 다시 치켜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입니다. 저는 허위단신 산님들을 따라 구슬땀을 흘려가며 12시 5분 오늘의 최고봉 해발 983.2m의 만수봉에 도착하였습니다.
만수봉 정상
멀리 북쪽으로 있는 월악산의 최고봉 영봉을 조망해 봅니다만 구름에 휩싸여 그리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몇해전 날이 맑은 여름 날 혼자서 영봉을 힘들여 오른 적이 있었기에 다시 그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동안 낯을 익힌 분들과 같이 바위 위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점심으로 가져온 떡 네 조각 중 두 조각을 먹고 다른 분들이 주는 음식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몇일동안 다이어트한다고 점심식사를 거르다 시피 했는데 오늘은 좀 과하게 섭취한 듯하여 다시 운행을 시작하는데 소화가 안 되고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제게 있어서 오늘 시련의 시작이었습니다.
김대장은 앞으로 산님들을 이끌고 쏜살같이 가는데 이거 참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겨우겨우 뒤를 좇아갑니다. 한 여름 무더위 속의 산행이 정말 힘들다는 것이 실감되었습니다.
12시 30분 914m봉 쯤의 봉우리인데 사방이 터진 곳에 도착하여 구름에 싸인 영봉쪽을 조망하며 카메라 속에 이미지를 담아 봅니다만 그 모습은 아직 구름 속에 싸여 신비스러울 뿐입니다. 월악산 영봉은 비행기속 하늘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바위 봉우리라는데 신령스런 봉우리라는 이름도 매우 좋아서 기대가 가는 산입니다.
12시 31분 영봉바라기 : 그리운 영봉 쪽을 조망하지만 아직... 입니다.
오후 1시 12분 백두대간길과 만나는 삼거리(마골치)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부터 명산 산행이 대간산행으로 연결되어 두배로 수지맞는 날입니다. 대간길은 부드럽고 푹신하지만 몸에서는 열기가 나고 배가 당깁니다. 멋진 자연속에서 상한 배를 안고 님들을 따라갑니다. 자연은 완전한데 인간은 불완전하군요.
한참을 힘들여 가니 관음재에 도착하는데 문경에서 온 산님들이 식사를 하고 계신데 소주 한잔 들고 가라고 하기에 몸의 상태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뜻 한잔을 받아 마시고 잠깐 쉬어가라는 말씀에 따릅니다. 이제 조금만 가면 포암산인데 길은 계속 하늘쪽으로 올라가기만 합니다. 혼자서 몇번이고 쉬며 몸을 추스리지만 여의치가 않습니다.
두분(자운영, 대모산)의 산님과 걸음을 같이 하려 해 보지만 오늘은 안될 것 같습니다. 결국 뒤로 처져서 겨우 좇아만 갑니다. 혼자서 몇 번을 쉬어가며 포암산정상에 도착한 시각은 2시 47분이었습니다. 두분이 고맙게도 기다려 주십니다.
힘들게 도착한 포암산 정상
그런데 하나의 사건이자 시련이 포암산에서 잉태되고 있었습니다. 오늘 송백에 처음 오신 산님 한 분이 보이지 않는 답니다. 들국화님과 나뭇꾼님이 보이지 않는 그 분을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저희가 별 도움도 주지 못하겠기에 두분을 남긴채 하늘재로 하산하기로 하고 걸음을 옮깁니다.
내려오는 길도 제법 급합니다. 조심해서 내려오니 바위들이 재미있게 쪼개져 있는 지대가 나오고 조금 더 내려가니 원추리꽃이 피어 반겨줍니다. 자운영님을 따라 저도 사진을 몇장 찍었습니다. 곧 계곡의 물소리가 신선하게 들려왔습니다. 수통의 물이 다 떨어진지라 거기 가면 물을 마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수직의 금들, 주상절리가 특이합니다.
원추리꽃. 널 피우기 위해 여름날이 달아올랐나?
시원한 물을 머리와 얼굴에 끼얹고 물을 마십니다. 산행은 거의 끝나가는데 이제 배가 아픈 것도 사라지고 생기가 회복됩니다. 다행입니다. 조금 더 내려가니 하늘재입니다. 시각은 3시 40분경이었습니다. 저의 시련은 여기까지이나 한마리 잃은 양을 찾아야 하는 송백의 시련은 몇시간 더 지속됩니다.
여기부터는 우측으로 미륵리로 가는 제법 넓은 길이 나있습니다. 하늘재는 삼국시대에 백두대간을 넘던 최초의 고개로 그때 이름은 계립령이라고 했답니다. 지금도 차가 안다니는 호젓한 길로 걸어볼 만한 옛길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길을 세분의 산님들과 걸어내려오다가 미륵사지 옛절터에 들릅니다.
절터는 잘 정비가 되어있었고 맨 위쪽에는 머리에 관을 쓴 미륵이 서있는데 얼굴은 새로 만든 모양이었습니다. 미륵불이 직접 오셔서 이 생의 모든 부조리를 끝내고 극락세계를 건설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졌었다는 삼국시대의 조상님네들, 그분들의 믿음만큼을 오늘 송백에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송백! 네게 원만한 하루가 또 한번 있으라. 그래서 우리 떠날 때 아무 눈물도 없게 하라!'
조상들의 신앙심이 이루어놓은 성지를 천천히 감상하고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미륵사지의 미륵불 입상 : 미륵님 어서 오십시오. 와서 이 무질서에 끝을...
그런데 이때 멀리 영봉의 자태가 옅은 구름속으로 희미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산행내내 그리워하던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던 님의 얼굴을 본 듯 기뻤습니다. 또한 모두가 고대하는 희망의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드디어 나타나다. 가장 멀리에 가장 높은 희미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영봉.
저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영봉처럼 우리들 삶에서도 희망은 저 앞에서 우릴 기다리며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어둠과 고통과 혼돈을 그래도 참을 수 있는 것이지요. 희망을 만나면 이 어둠 눈녹듯 모두 스러질 거라는 기대 속에. 그래서 희망은 실현되지 않은 우리의 꿈이지요.
오후 4시 반경 주차장에 도착, 산행을 마감합니다. 언제나처럼 맛있는 식사와 한잔의 막걸리로 속을 채운 뒤 개울에 가서 시원하게 몸을 씻었습니다.
(후기) 그분은 제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어려움만 주시려는 것인지요? 오래간만에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제가 이제 ‘꼴찌에게 보내는 박수를 받던 송백의 BMW“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해보았습니다. 배가 당기는데다가 비오듯 쏟아지는 땀, 포암산 정상을 앞두고는 정말 힘들었었고 이런 적은 여태껏 거의 없었습니다. 주변의 여러분이 걱정해주신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또 하나의 해프닝은 처음 오신 그분이 오후 7시반 버스가 만수휴게소를 떠날 때까지 발견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비상조치로 몇분이 남고 버스는 서울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충주휴게소에서 그분이 구조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슴조렸겠지만 김대장, 이대장님, 총무님, 나뭇꾼님, 평화님 이하 여러분이 많이 고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하루의 산행을 무사히 마무리한다는 것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는 것처럼 힘들다는 것을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철부지 하이맛, 제 산행만 힘들고
그 많던 국화들... 소쩍새만 울면 다 쉽게 피는 줄 알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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