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6. 16:29ㆍ포토DOCUMENTARY
토요일, 산요일이니 산으로 간다. 동문들 18인이 아차산과 용마산을 가기로 했다. 조금 추운듯한 아침이다. 광나루역에 10시에 모였다. 보통 때 가던 완만한 중앙길로 가지 않고 아차산성길로 들어섰다. 등산길은 10:50, 성을 지나서 완만하게 내려가더니 다시 오르막이 되어 해맞이광장으로 올라갔다.(11:06) 잠시 쉬어가면서 한강변으로 펼쳐진 경치를 보는데 아쉽게도 하늘이 스모그에 싸여있어 맑지가 못하다.
아차산 정상(해발 295.7m)을 지나서 4보루까지 간 다음(11:46) 용마산으로 방향을 틀어 계단을 내려갔다. 긴고랑으로 내려가는 삼거리까지 내려갔다가 용마산 쪽으로 올라가다가 전망대 가기 전 아래쪽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했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다른 이들이 가져온 다채로운 술과 음식을 나누어 마시고 먹었다.
점심식사후 용마산(해발 348m)으로 올라갔다.(13:13) 단체사진을 찍고 서울에 둘 밖에 없다는 일등삼각점을 확인했다. 이제부터 하산이다. 아까 왔던 길로 돌아가다가 갈림길 삼거리까지 왔다. 막걸리를 파는 여인이 있어 소반에 두 팀으로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셨다. 회장님이 쏘셨다.
급한 깔딱고개를 계단으로 내려간 다음 숲길로 사가정역을 향했다. 뒤풀이를 하기 위해서 사가정역에서 조금 떨어진 해물찜집에 들어갔다.(15:06) 4,4,4,4,2로 뭉쳐서 흩어진 자리의 5 테이블에서 해물찜으로 소주를 마셨다. 뒤풀이가 끝나는 팀부터 음식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딴 날보다 일찍 끝나서 집에 오게 되었다. 비교적 가벼운 산행을 즐겁게 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 후기 -
1월 15일, 동문들과 아차산에서 용마산으로 올랐다. 참가한 인원이 18인이면 제법 규모가 큰 한 팀이다. 삼국시대 3국의 각축장이던 아차산을 오르며 한 가지 에피소드를 상기해 보았다. 온달장군 이야기이다.
바보 온달이라 불리던 온달장군은 평강공주를 아내로 맞은 후 부인의 도움으로 출세 사다리를 타고 상류사회에 발을 딛는다. 명품 와인을 마시고 디자이너가 손 본 맞춤양복을 입고 롤스로이스를 몰며 강남아파트에 거주하였다나.
평강공주의 과외 지도가 주효한 것도 있었지만 온달 자신도 열심히 실력을 연마하여 노력한 결과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웠다. 577년 대(對)북주 전쟁에서 대승을 함으로써 일약 고구려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고, 이후 10여 년간 평강왕의 신임과 총애를 받으며 영화와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평강왕이 세상을 떠나고 영양왕이 즉위한 후 그의 지위도 흔들리게 되었다. 새로 즉위한 영양왕은 온달의 높은 지위와 권세에 부담을 느끼게 되었고 어쩌면 온달은 조만간 제거될 위험에 빠져 있었다. 여기서 온달은 승부수를 띄우게 된다. 대(對)신라 정복을 자청한 것이다. “신라에게 빼앗긴 땅을 찾아올 터이니 군사를 내어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조령과 죽령 이북의 땅을 되찾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스스로 배수의 진을 쳤다. 그리하여 온달은 아차산으로 출정한다. 아차산성은 한강의 이북과 이남을 연결하는 요지였기 때문에 삼국시대에 이 지역은 세 나라 간에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치열한 격전장이 되어있었다.
온달장군은 이 아차산 전투에서 상당히 용감하게 싸웠다. 부마의 신분임에도 격전의 현장에 뛰어들어 분투했다. 그러나 날아오는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서 죽게 되었다. 신라 병사가 온달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 빗나간 화살에 우연히 맞아서 죽은 것이다.
죽는 순간 온달은 너무 억울하였다.
"아차! 한 방맞았구나."
“우연히 날아오는 화살 하나에 맞아서 내가 죽어야 하다니.....
왕에게 한 사나이로서의 약속은 어찌하며 평강공주는 어찌 할까? 나는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다. 아직 할 일이 많으니 지금 여기서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의 영혼의 깊은 속에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시쳇말로 깊은 빡침이 울려왔다.)
삼국사기 “온달조”에는 이 전쟁의 승자가 누구인지 기록하고 있지 않다. 공주가 와서 온달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기록에서 고구려군이 온달 장군의 전사 직후에도 아차산성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장한 병사들이 장사를 지내려고 온달의 관을 죽은 장소에서 옮기고자 움직이려 했으나 관은 꿈쩍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장군의 버티기였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없이 사람들은 평강공주를 모셔 와야 했다.
평강공주는 관을 어루만지며 나직이 달랬다.
"서방님, 당신의 울부짖음은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엄연히 다르거늘 아무도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이제 당신은 저승에 속한 분입니다. 그러니 떠나셔야 합니다. 나머지 일은 산 자들의 몫입니다.“
그제야 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590년, 장군이 죽은 해이다. 그 해에서 1432년이나 지난 2022년 정월, 아차산을 오르던 산객 하나이 남모르게 탄식을 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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