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2 광교산에서 산의 효용을 생각하다

2022. 1. 23. 23:04포토DOCUMENTARY

  새로운 토요일, 여느 때처럼 산으로 간다. 동문들 11인이 광교산을 가기로 했다. 날이 많이 풀렸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4도로 올라왔고 산행 시작하는 10시경엔 더 따뜻해졌다. 광교역에 10시 조금 지나 다 모였다. 큰길을 따라가다가 산길로 들어섰다. 눈이 왔었지만 다 녹고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경기대에서 올라오는 길이 광교역에서 우리가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쉬었다. 아곳엔 막걸리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도 나와 있다. 막걸리를 한잔씩 마셨다. 작은 잔인데 한 잔에 3,000원이나 받는다. 플라스틱통 하나면 4잔은 나올 듯 하니 수퍼 가격의 7-8배는 된다. 물가가 비싸지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지만 심한 것 같다. 막걸리 파는 장소가 오르기 힘이 든 산의 정상도 아니고 중턱도 아닌 낮은곳이니 더욱 그러하다.

 

  형제봉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팔라서 힘이 들었다. 계단을 여러 개 올라야 하는데 계단구간이 가장 힘든 구간이다. 형제봉에 도착하여(11:44) 후미를 기다렸다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형제봉에서 길은 아래로 향한다. 비로봉을 향해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데 계단이 나온다. 내려가는 길은 힘이 들지 않아 다행이다.

 

  형제봉에서 내려간 다음 길은 형평해 지는데 조금 전진하여 산소가 몇 개 있는 곳에서 어느 분의 묘 옆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했다. 여러 가지 술이 있었는데 중국술인 연태 고량주와 죽엽청주가 돋보였다. 컵라면에 더운물을 부어 식사를 대신했다.

다음 올라갈 봉우리인 비로봉을 향해Y다.다시 가파른 언덕인데 형제봉 오르기보다는 쉬운 것 같다. 비로봉에 오르니 정자가 있다. 계단을 따라 정자로 올라가 인방에 걸어놓은 나옹선사의 시를 읽어 보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많이 보던 시인데 저자가 나옹선사인 줄은 몰랐었다.

 

  비로봉을 떠나 토끼재를 거쳐서 촤고봉인 시루봉을 향했다. 고도차가 크지 않아서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도착하여(14:30) 주변을 돌아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구름이 끼고 미세먼지로 먼 경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수리봉을 통해서 고기리 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정해 놓은 음식점이 그 쪽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능선길로 해서 가까운 봉우리인 수리봉으로 가니 전망대를 잘 만들어 놓았고 사람도 었다. 나머지 알코올을 여기서 소비하기로 하였다. 백세주와 가양주가 나오고 치즈와 강냉이가 안주이다.

 

  휴식을 마치고 고기리로 향하는데 제법 가파른 길이지만 내려가는 길이기에 힘이 든 줄 모르고 내려간다. 숲지대가 끝나고 산을 깎아 만듬 주택지에 돌입하고 우리가 가려는 “황토방“이라는 버스정류장까지 내려왔다. 걷기는 여기서 끝이다.(16:17)

버스정류장에서 14번 버스를 타고 12개 정류장 떨어진 ”경일면옥”이라는 고기집으로 갔다. 수입쇠고기를 저렴하게 파는 집이다. 솨고기를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버스를 타고 미금역으로 와서 전철을 탔다. 동문들돠 즐긴 보통의 산행이었다.

 

- 후기 -

 

  서울근교의 멋진 산행지 광교산을 갔다. 인구가 많은 인근도시에 자연의 신선함을 불어넣어 주는 명산이다. 정상인 시루봉(해발 582m)에 가면 중학생의 시가 쓰인 입간판이 하나 서 있다.

 

"광교라 부른다(김정희_수일중 3의1)

 

눈을 감아라.

회색 같은 삶과는 달리

푸르름이 보이지 않는가?

 

귀를 열어라.

세상의 시끄러운 모든 소음과는 달리

맑은 음이 들리지 않는가?

 

두 팔을 벌려라.

답답한 세상에서 움츠러든 내 육체 속에

그 무언가가 탁 트이지 않는가?

 

때론 날지 못하는 새처럼,

음을 내지 못한 악기처럼,

삶에 지친 자신을 보았는가?

 

눈을 감아도 푸르름이 보이는 듯한

어디선가 맑은 음이 들리는 듯한

세상에 낙오되어 지쳐있던 내가

어느새 새처럼 나는 듯한 산

사람들은 이곳을 광교라 부른다."

 

  이 시가 광교산의 실상과 혜택을 보여주는 시가 아닌가 생각된다. 광교산을 품고 있는 수지, 대장동 신도시, 광교신도시는 서울에서 무언가 원대한 꿈을 안고 신천지로 옮겨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개척정신이 남보다 강하여 새로운 지역으로 과감하게 이주를 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좀 더 부유해지고 지위상승에 대한 욕구도 컸으리라고 볼 수 있다.

 

  시를 쓴 학생(시인)의 부모나 이웃들도 이러한 경향을 지닌 시민들이리라.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세상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세계에 어떤 희망을 품고 먼저 이주해 왔지만 예상했던 만큼 결과는 별로였을 수도 있고, 세상이라는 게 꼭 의도한대로 되지는 않는 것이 십중팔구 아니겠는가?

 

  이러한 어른들의 고민은 시인에게도 전해져 이들이 처한 답답한 상태를 언급하게 한다. “날지 못하는 새”, “음을 내지 못한 악기”처럼 삶에 지친 사람들로 표현되는 것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좌절도 컸을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희망적인 해결책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이러한 답답함을 광교산이 한 방에 풀어준다고 한다. 세상에서 낙오되어 우울한 상념에 잡혀있던 사람들이 광교산을 만나자 어느새 새처럼 가벼운 마음상태가 되어 해탈한다고 노래한다.

 

  여기서 How나 Why는 생략되었다. 어떻게 해서 광교산이 그들을 구원했는지, 왜 구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논리의 점프”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은 광교산의 치유효과는 꼭 집어서 말 안 해도 누구나 아는 자명한 이치이기에 언급을 안 했을 뿐이다.

 

  사철 변하는 경치가 있어 눈이 즐겁고, 소나무 숲의 맑은 공기와 피톤치드가 있어 건강에 좋고, 굴곡진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몸을 단련시킬 수 있는 명산이 광교산일진대 모두가 아는 광교산의 비밀을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었으리라. 하물며 말을 아껴야 하는 시에서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