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8 평해길 2회차 : 마재성지에서 매혹당하다

2022. 3. 10. 13:22포토DOCUMENTARY

   평해길 1회차 걷기를 한 후 정확히 2주가 흘렀다. 오늘 2회차 걷기이다. 아침 10시 19분에 덕소역에 도착한다는 열차를 탔으나 4분 가량 늦게 덕소역에 도착했다. 한 분이 조금 늦어서 맞이방(대합실)에서 조금 기다려서 6인이 다 모인 후 10시 37분경 걷기를 시작했다. 역에서 나와 조금 떨어진 강변으로 나갔다. 강을 따라서 단조롭게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길인데 자전거길과 보도가 같이 나 있다.

   강변에 여기저기 벤치가 놓여 있고 걷는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강 건너편으로는 하남시의 아파트들이 밀집해 서있는 것이 보이고 오른쪽 앞으로는 검단산의 자태가 뚜렷하였다. 강변을 따라가던 길이 강을 벗어나 산(예봉산) 쪽으로 가서 길을 따라 팔당역으로 이어졌다.(12:30) 평해길의 2길(2코스)이 팔당역을 지나가게 하느라 길이 조금 복잡해졌다. 팔당역에서 2길이 끝나고 3길이 시작된다.

   점심식사를 할 자리를 찾는데 역 바로 옆에 남양주 시립박물관이 보이는데 옥상에 자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건물 옥상으로 가보니 과연 좋은 자리가 있었다. 컵라면에 더운물을 붓고 떡과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술은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명태 조리해서 압축한 것을 지선배가 가져오셨다. 식사를 끝내고 남양주 시립박물관의 2층과 1층의 전시물을 간단히 돌아본 다음 길을 계속했다.

   길은 다시 강변으로 나가고 길고 곧게 뻗어 있다. 천사의 날개가 콘크리트 벽에 그려진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측으로 팔당댐을 지나갔다. 천주교 마재성지를 들른 다음 바로 운길산역으로 가기로 하고, 다산 생가와 실학박물관이 있는 다산유적지는 익히 보았으므로 가지 않기로 했다. 지도로 확인하니 강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재성지가 있었다.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성지라서 성당과 휴게소 및 기타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마당에는 인물상 조각도 있었다. “명례방”이라 이름이 쓰인 휴게건물 안에 들어가 차를 한잔씩 마셨다.

   성지를 나와서 운길산 역을 향했다. 강변을 떠났지만 길이 다시 일자로 쭉 뻗어있다. 조안1리에 오니 집들 사이의 우측으로 강을 볼 수가 있었다. 벤치가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들었다. 평해길 3길의 종점인 운길산역까지는 약 1.5km밖에 남지 않았다. 1km 쯤 전진하여 “돌미나리집”에서 잔치국수를 한 그릇씩 시켜서 먹고 역으로 갔다. 거기서 17:52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문 선후배와 같이 한 성공적인 하루걷기였다.

                                                                       - 후기 -

   1. 작고 앙증맞은 성지
   평해길을 가면서 이번에는 마재성지를 방문하는 행운을 가졌다. 마재성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라는 시골 마을에 있는 조용하고 작은 한옥 성당이다. 이 성당은 의정부 교구 성가정 성지로 다산 정약용 선생 가족의 생가터를 성당으로 개조한 곳이다. 마재성지란 마재(馬峴)마을이라는 지역 이름과 성지(聖地)의 합성어이다.

   정약용 선생의 가족은 모두가 천주교 신자였다. 그래서 가족이 순교를 당한 분도 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박해를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주변에 천주교 전파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세 분의 형님 중 셋째 형인 복자 정약종 아우그스티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그분의 첫째 아들 복자 정철상 가를로와 함께 순교하였다. 정약종 선생의 두 번째 부인 성녀 유조이 체칠리아는 고문과 형벌의 여독으로 옥사, 순교하였는데 103위 성인 가운데 최고령 순교자로 남아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인 성 정하상바오로 그리고 막내딸인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도 모두 박해로 순교하였다. 마재성지는 성가정을 이룬 정약종 가족을 추모하기 위해서 조성된 성지이다.

   성지에는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정면으로 정원이 하나 있고 이를 통과하면 또 다른 정원이 나온다. 바로 앞에 있는 정원에는 한복을 입고 있는 예수님이 보이고 다른 곳에는 한복 입고 있는 성모마리아 님이 계시다. 예수님과 성모마리아가 한복을 입어서 그런지 더 자애롭고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양쪽 벽에는 정약용 선생 가족을 그린 벽화가 있고 바깥 정원 한쪽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한옥으로 성당이 지어져 있는데 도마성전이라고 불린다. 그 옆 건물에는 명례방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데 휴게실이다. 명례방이란 명칭은 조선시대 서울시내의 동네 이름에서 따 온 것인데 지금 명동 인근의 지역을 칭한다. 그곳에서 초기 천주교인들이 이벽의 지휘 하에 최초의 정기적인 신앙집회를 열었다. 이곳이 작은 성지이긴 하지만 짜임새 있게 잘 구성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약용 형제가 들러서 교리를 공부했다는 천진암도 여기서 아주 멀지는 않다.(30km)

   2. 그분께 매료되다
   이벽과 정약용 무리는 여름날 새벽 산길을 걸었다. 아직 잠 깨지 않은 산이었다. 지금부터 약 240년 전이었다. 대부분 10대와 20대로 가소로운 나이였다. 그런 나이는 약간의 치기와 무모한 열정에 지배된다. 무엇보다 새로움에 대한 갈구가 피 속에 녹아 있었다. 이것이 이들 무리로 하여금 새벽 산길을 걷게 하였다. 이 새파란 유생들이 천진암에 숨어들어 서양 책을 읽었다. 주자학 시대가 낳은 이념운동권이었다. 이단의 학문은 위험할수록 매혹적이었다. 삶과 죽음, 별처럼 빛나고 강물처럼 흐르는 영혼의 문제에 이들은 목숨을 걸었다. 혹 허황했지만 그 때문에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 최보식 저, 매혹, 서문에서 전재 -

  서양책, 소위 서양 이념에 매혹되었다는 것은 이들이 신의 존재에 대해 납득하고 신의 손길에 귀의하는 것이었다. 정약용 형제와 동아리들은 조선 사람 중 그 분의 매력에 매혹당한 제1세대였다. 선구자였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당선자가 발표되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아슬아슬하게(0.7% 차이로) 탈락하였다. 허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