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3 절두산성지와 새남터성지를 연결해 걷고 회상에 떨다

2022. 3. 15. 14:33포토DOCUMENTARY

   어제 토요일엔 산엘 가지 못 했다. 선거 후유증으로 기분이 가라앉아 산행을 그만 두고 명동성당에 성지순례 책자를 구하러 갔는데 책자는 구하지 못 하였다.(3월 14일 새남터 성당에서 “한국천주교 성지순례”라는 책자를 구할 수 있었다.)

   일요일이지만 어제 못 한 걷기를 보충하고 책자도 구할 겸 절두산성지로 갔다. 성지를 돌아보고 옆의 외국인묘지에 들렀다가 한강변을 걸었다. 한강철교 가까이 왔는데 새남터성지 표시가 있었다. 이왕 예까지 왔으니 새남터 성지까지 가보았다. 절두산은 여러 번 갔지만 새남터는 처음이다. 용산역까지 걸어가서 집으로 돌아왔다.

 

                                                                     [절두산 설명]

 

   절두산의 원래 이름은 잠두봉으로 1866년 병인양요 때 방어기지로 이용되었으며,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한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회에서는 1966년 병인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잠두봉 정상에 순교자를 기리는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과 기념성당을 세웠다. 이 기념관에 순교 성인 28위의 유골을 비롯하여 각종 유물, 자료를 전시하여 순교사적지로 조성하였다.

 

   절두산은 본래 북악으로부터 뻗어 내려오는 산세가 한강을 만나 불쑥 솟아오른 모습이 누에가 머리를 든 모습과 같다하여 잠두봉이라고 불리웠다. 중국에서 사신들이 오면 빼놓지 않고 보고 갔을 만큼 경치가 아름답고 조선시대 풍류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잠두봉이 형장으로 변한 데에는 병인년 9월과 10월 프랑스 로즈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두 차례에 걸쳐 침입을 시도하면서 부터다.

 

   이때에 대원군은 “화친을 허락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척화문을 걸고 서양인에 의해 더럽혀진 양화진을 천주교인들의 피로 씻어내야 한다는 명목으로 천주교인의 처형장을 서소문밖 네거리와 새남터 등에서 양화진으로 옮기게 하였다. 절두산 첫 순교자는 이의송 프란치스코 일가족으로 1866년 10월 부인 김이뿐 마리아, 아들 이붕익 바오로와 함께 참수됐다. 이 일가족을 비롯하여 30여 명 만이 기록이 남아있고, 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다른 이들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천주교 금지령이 내려진 1866년(병인박해)부터 전국에서 8천여명, 이곳 절두산 위에서는 200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당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국교회사 연구소에 의하면 실제 처형이 이루어진 곳은 절두산보다는 산 아래의 양화나루터로 추정하고 있다. 절두산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을 처형할 만한 넓은 공간이 없었고,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양화나루터에서 형을 집행함으로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에서: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tarshine867&logNo=221282539485]

 

                                                                        - 후기 -

 

   천주교인들의 피로 물들었던 성지 두 곳을 하루에 다 순례할 수 있었다. 성지 순례를 위한 책자를 구할 의향도 있었는데 그날엔 못 구하고, 결국 다음 날(14일) 새남터성당에 다시 가서 구할 수 있엇다. 새남터에서 직접 책에다 스탬프를 찍었다.(먼저 들렀던 마재성지와 절두산성지는 백지에 받아 온 스탬프 그림을 오려 붙였다.) 그 분들의 강한 신앙심에 경탄하고 국가의 융통성 없음이 안타까웠다. 참수 당하는 그림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감상해 보니 그들이 겪었을 공포가 느껴졌다. 만약 내가  그 당시에 살고 있어 순교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반 반 쯤이 아닐까? 

 

   ▼ 절두산 성당

 

   건축가 이희태님의 설계로 한국의 유명 건축물 중 하나이다.

 

   ▼ 절두산성지 입구의 계단

   ▼ 마리아상 조각

   ▼ 성당으로 가는 길

   ▼ 돌 십자가

   ▼ 장독을 모아 놓았다.

   ▼ 마더 테레사 조각상

   ▼ 교황 여한 바오로 2세

   ▼ 김대건 신부 동상

   ▼ 마리아 동굴

   ▼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

   ▼ 강 건너로 여의도가 보인다. 

   ▼ 조금 떨어져서 본 성당

   ▼ 김대건 신부 좌상

   ▼ 14처 중 3처

   ▼ 103위 성인 중 한 분인 남종삼 요한의 기념 유적. 순교자 중 가장 높은 관직(승지)을 가졌었다고 한다.

   ▼ 순교한 불란서신부 3분(앵베르, 모방, 샤스탕)의 유해를 잘 모셨던 박순집 베드로 공적비와 묘소(다음 사진)

   ▼ 입구의 사무동 건물

 

   ▼ 순교기념비

   ▼ 절두산성지를 보고 바로 인근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로 갔다. 기념교획이다.

    ▼  한강변에 난 보도로 걸었다. 

   ▼ 강 건너 여의도의 국회의사당

   ▼ 한강철교에서 좌로 틀어 새남터성지로 갔다. 김대건 신부, 남종삼 요한,  불란서 3신부 등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