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051204 제51차 백두대간에서 라이벌을 버리고 온 이야기

2006. 10. 12. 16:27백두대간 산행기 Baekdu Trails

송백카페 회원님들, 안녕하세요?

 

오늘 송백카페에 초대받다 정규회원이 된 '하이맛'입니다. 친구인 BMW의 소개로 여기까지 흘러 왔는데, 그는 저의 수십년 친구이자 산의 고수이고, 저와 산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기도 합니다. 여러 방면(산 갯수 많이 오르기, 대간길 가기, 정맥길 가기, 송백회원되기 등)에서 그는 저보다 앞섰지만 한 두가지는 제가 낫답니다. 특히 몸길이 길기와 산에서의 걸음은 제가 앞선답니다. 그의 느린 걸음에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는 비밀을 카페의 글들에서 확인했습니다. 늦더라도 꼭 A코스를 하겠다는 그의 욕심에 불만인 분들도 있으리라고 짐작합니다. 그래서 12월 4일날 저도 그를 버리고 저 호자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한편, 생각해 보면 비엠더블유가 하산을 늦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잘 된 산행기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산행기를 잘 쓰기 위해선 정확한 기록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기에 중요지점에 도달하면 멈춰서서 그때의 정확한 시각과 아울러서 짧지만 인상에 남는 감회들을 잊기 전에 수첩에 적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확함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주요 지점마다 정확하게 시간과 분을 기록하는데에는 융통성의 결여가 엿보이기도 하고 여유로움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매사를 정확히 마무리하고 확고한 원칙을 지키려하는 친구의 황소고집에 저는 항복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답니다. 정확하면서 감정이 풍부한 그의 산행기가 회원들께 좋은 평을 받아서 느린 그의 걸음이 회원들에게 주는 답답함을 상쇄할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제가 이곳에 등업되어 첫번 째 한 일은 여러 회원님들이 써 놓은 산행기를 흥미있게 읽은 일입니다.

 

바람같이 달리는 산도깨비님의 산행기가 인상 깊었구요. 깔끔한 구름나그네님의 산행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사진이 들어간 천자봉님과 무이님의 산행기도 좋았습니다. 모두 한가지 특징들을 지닌 산행기였습니다. 기타 여러 산행기가 올라 있어 읽을거리의 풍성함에 매우 놀랐습니다. 특히 저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비엠더블유(왜 한글로 길게 쓰는지요? BMW나 B라고 간결하게 쓰면 안되나요?)의 글이 실려 있기에 서둘러서 거의 다 읽어 보았는데, 그가 산행기를 쓰는데에는 역시 저보다 한 수 위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얶습니다. 왜 그렇게 시간 기록에 철저하고 지명의 기록이나 지역의 설명이 자세한지요. 그리고 여성처럼, 정에 굶주린 사람처럼 감정은 왜 그리도 풍부한지요? 저는 그 보다는 조금 드라이하고자 합니다. 정에서도 한발짝 제가 졌습니다.

 

지난번 50차 산행(구룡령-갈전곡봉-쇠나드리-조침령-진동리 구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10월 16일 설악을 다녀온 후 11월의 20일이 되도록 한 달간 얕은 산에만 가면서 놀고 먹다가 갑자기 힘든 구룡령-조침령 구간 산행에 참여해서인가 봅니다. 오늘 등업된 기념으로 지난 일요일의 산행을 떠 올려 산행기 하나 써보려 하나, 이미 자세한 산행기들이 올라 있는지라 더 자세하고 풍요롭게 쓸 자신이 없을 뿐더러 제가 더 보탤 것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주마간산으로 횡설수설 몇 마디만 붙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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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가 친구 B를 버린 하루''

 

12월 4일 일요일, 새벽 5시 짧은 꿈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첫눈이 내려 아파트 밖 찻길이 허옇도록 눈이 왔습니다. 첫눈이라 반갑기도 하지만 그날 산행에 미칠 영향 때문에 긴장도 되었습니다. '이런 날도 산행을 하나?' 비가오나 눈이 오나 산행한다는 글을 찌라시(?)에서 본 것 같았습니다. '그래 가는거야, go다!' 급히 아내를 깨워 밥을 얻어 먹고 버스와 전철로 잠실을 향하였습니다.  

 

그나저나 그날 일요일인데 성당 미사는 빼먹고 월요일 새벽 미사에 가기로 정했습니다. BMW는 그 전날 토요 특전 미사에 참석했을 터인데, 천당행 우선권에는 제가 또 밀렸습니다.

7시 10분전에 잠실 네거리 버스 기다리는 곳에 도착하니 BMW가 1호차에 먼저 자리를 잡고 반겨 줍니다. 전화 통화는 가끔 했지만 갈전곡봉 구간 산행후 2주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지난 번 산행에서 고생했던 이야기와 오늘 산행의 기대감에 대해 몇마디 나누다가 눈을 감고 각자의 생각 속으로 침잠하였습니다.(저의 독백 : 우리 둘 친구 맞는겨? 2주만에 만나도 이렇게 할말이 없다니. 얼씨구 코까지 고네. 그래 좋아. 오늘로 우리의 후렌드쉽도 끝이여...) 그날 저의 친구버리기는 여기서부터였나 봅니다. 

 

보통 때보다 좀 늦은 시각인 11시 30분에 구룡령에서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눈은 거의 없고 바람이 제법 불며 날은 차가웠습니다. 오래간만의 겨울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분쯤 올라가니 전망대같은 곳이 나오는데 경치가 좋은 곳이었습니다. 친구는 벌써 뒤로 처져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쉴 여유가 제겐 없었습니다. 송백의 산행은 먹는 시간도 줄여야 한다는 걸 몇번의 산행에서 터득한 저였습니다. 원방재를 향해 힘차게 매진하였습니다. 

 

원방재까지의 이정표가 드문드문 몇개 나타나기에, 어서 빨리 원방재까지 가려는 욕심에 휴식은 안하기로 마음을 굳게 다잡고 발길을 서둘렀습니다. 앞에서 부르는 봉우리(알고 보니 상월산)가 멋지기에 나뭇가지 사이로 두 컷을 찰칵한 다음 또 걸었습니다. 카메라가 덜렁거려 배낭속에 넣으면 좋은 경치에 닿아 꺼내기가 귀찮아지니 작은 걸로 바꿔야겠습니다.

 

드디어 원방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37분, 산행 시작후 2시간 7분이 걸렸습니다. 친구의 모습은 여느 때처럼 또 안 보이는군요. 다리가 그런대로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지난번에는 왕승령 삼거리 조금 지나 무릎 위 근육이 아파서 좀 엉겼었지요. 무얼 좀 먹으려 하나 입맛이 없었습니다.

 

원방재는 오늘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곳인데 몇 분이 식사를 하며 쉬고 있었습니다. 저도 조금 쉬며 사진을 몇장 찍었는데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서 날리는 표지기를 몇 컷트 찍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염원이 표지기에 담겨 백두대간에 기도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들 모두 소원 성취하기를 빌어 보았습니다. 입맛이 없고 시간도 벌 겸 과자를 조금 씹고 물을 마신 다음 남쪽 언덕비탈을 향해 용감하게 올라갔습니다.

 

조금 힘들게 올라가며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능선이 너무나 아쉬워 다시 몇 장 찰칵! 원방재 출발 후 30분 쯤 지난 오후 2시 14분 상월산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자칭 1,500산이라는 호를 이름 앞에 붙이신 안산시 거주, 김정길님의 자필 표지기가 있기에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분의 친필 표지기는 저수령-묘적령 구간의 솔봉에서도 발견했고 홍천의 공작산 정상에서 본 적도 있기에 더욱 반가웠습니다.

 

전국(남한)의 모든 산 중 오를 가치가 있는 산을 1,500개로 골라내고 그 모든 산을 다 오르려고 직장도 조퇴하시고 SUV 차량 하나에 산행 기어를 싣고 차안에서 주무시기도 하며 사시사철 전국의 산을 순례하신다는 김정길님, 그 분의 열정에 탄복할 뿐입니다. 직접 뵙지는 못 했지만 산의 고수께서 저와 같은 곳에 머무셨다고 생각하니 산을 통해 그 분과 제가 연결되는 듯 하였고 제가 서있는 곳이 아주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우리가 순례하는 백두대간 마루금 어디인들 신성하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지금 이곳이 '거기'라는 느낌을 가져 보았습니다. 상월산 정상에는 고사목이 몇그루 있기에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이제 고생은 끝인 것 같았습니다. 솔밭을 지나 경사가 약한 내리막길을 30분 쯤 가니 2시42분 이기령에 도착하였습니다. 지난 10월초 송백에 처음 왔을 때 지나간 곳이라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정표를 카메라에 담고 나니 제 모습을 남기려는 욕심이 불현듯 발동하였습니다. 어느 분에게 부탁하여 저의 모습을 하나 찍었습니다. 그분의 사진도 그분의 카메라로 찍어드렸는데, 한 분이 카메라가 없는데 사진 한장을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흔쾌히 한장 찍어드리고 준회원 게시판에 올려 놓기로 약속하였습니다. 12월 5일 '준회원과 함께'라는 난에 올려 놓고 보니 결과는 역광으로 오른쪽이 빛으로 번진 사진이 되어 그분께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번엔 잘 짝어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산길은 끝나고, 끝없는 임도를 걸어내려 가야 했습니다. 가도가도 끝이 없으니 결국은 뛰면서 내려갔습니다. 4시 04분 버스 기다리는 곳이자 식사장소 부수베리에 도착했습니다. 저의 산행시간은 4시간 34분이었습니다. 인쇄물에는 6시간 30분이라 적혀 있었는데 제가 빨랐나요?  그래서인지 버스 3대가 아직 다 있었습니다. 저도 제법 빨리 내려올 수 있다니! 저 이제 BMW와 친구 안 할렵니다. 그러나 3호차는 곧 떠나 버렸습니다.

 

이제 친구인 BMW를 챙길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시간 이상 처져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네번째 백두대간 산행을 같이 하는데 네번 다 저보다 늦게 오는군요.

 

드디어 결단의 시간이 왔습니다. 안 나타나는 친구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휴대폰도 불통하는 구간이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쉽게 버릴 수 있었습니다. 게눈 감추듯 밥 한 술 하고 2호차에 앉아 버스가 빨리 떠나길 기다렸습니다. 오후 5시 정각 쯤, 드디어 버스가 서쪽으로 떠났습니다. 바람부는 부수베리에 어두움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버스 안에서 저는 머리를 굴리며 제가 쥐뜯어먹듯 여기저기 ZIGZAG로 갔던 백두대간을 가늠해 보았습니다.

 

'이넘의 백두대간 800km가 넘는다는데. 지금까지 내가 간 건 얼마나 되는겨? 송백에서 네번, oo산악회에서 한번, 설악산, 지리산, 속리산, 덕유산종주로 한 번씩, 대야산 조금, 속리산 천황봉, 황악산, 황장산, 두타산, 꼭 쥐 뜯어 먹은 생선 가시 같은데, 그러면 전체의 10%는 넘는 건가?  나두 모르지'

그러다가 어리석은 한 마디를 뱉고 말았답니다.

'제길헐, BMW는 거의 다 해 간다는데... 내가 왜 이 게임에 말려든겨? 또 질 텐데!'  

출처 : 송백산악회
글쓴이 : 하이맛 원글보기
메모 : 송백산악회에 올렸던 글입니다.